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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자국 - 엄마


어느 날, 나는 내가 진정으로 배곯아본 경험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어리둥절했던 적이 있다. 궁핍 혹은 넉넉함을 떠나, 말 그대로 누군가의 순수한 허기, 순수한 식욕을 다른 누군가가 수십 년간 감당해왔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놀라웠던 까닭이다. - 김애란, '칼자국' 中


아침 느즈막히 일어나 담배 한개비 물고 화장실로 향하다 잠결에 아장아장 쫓아오는 강아지 몸통을 걷어찼다.
"그러게 왜 알짱대냐"라며 생각해보니 엄마가 집에 없구만. 밥통에 밥이 비었으니 밥달라는 얘기였다.
강아지 밥을 퍼담다 보니 주방 밥솥엔 내 먹을 밥이 한가득. 냄비엔 콩나물국이 한가득. 어제 먹은 술에 또 밤새 끙끙거렸나보다.

당연스레 받고 있는것들, 당연스레 누리고 있는 것들.
숨쉬고 있는 일과, 오른팔이 움직이는 일과, 앞이 보이는 일과, 살아있는 일들. 이런 것들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누리고 살아가기때문에 존재의 가치조차 외면하게 되는 것들. 살아가며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 물었을때, 공기나 오른팔이나 생명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내 허기를 채워주던 그녀의 존재를 인식이나 하고 살아갈까. 나는, 우리는.

중학교때 가정환경조사서를 작성할때 한자로 쓰기 쉬운 엄마 이름이 반가웠다. 잊지 않겠구나. 이름을 잊지 않을 수 있다는게 무에 그리 반가웠을까만. 실존하는 그녀를 인식할 수 있다면 더욱 감사할수도. 실존하는 '나'를 인정하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을 경외할 수도 있을테지.




Ozzy 아저씨의 Mama I'm Coming Home.
엄마 나 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