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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뚫고 하이킥 - All You Need Is Love





처음 하이킥 시즌2가 방영된다는 기사를 어느 포털의 메인에서 접하고서 탐탁찮아 했습니다. [거침없이 하이킥] 이후로 수년간 변변한 인기 시트콤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MBC의 진부한 상술이라 여겨졌기 때문이죠. 대개의 경우 흥행한 영화나 드라마의 속편은 별다른 미덕 없이, 전작의 후광에만 기대려다 결국 모두에게 외면 받곤 했으니까요. 나아가 그렇게 의미 없는 속편은 전작에 대한 좋은 기억까지도 바래게 만들어 버립니다. 대개의 경우 그러하단 말입니다. 그렇게 대개의 경우를 중얼거리면서도 지붕킥 첫 주 방영분을 고스란히 봤습니다. 그것도 정좌하고선. 전작에 대한 변치 않은 애정 때문이었겠죠. 그리고 일주일치의 지붕킥을 몰아본 주말이 지난 월요일 저녁, 다시 TV앞에 앉으며 중얼거렸습니다. “악! 이건 대개의 경우가 아니잖아.”

 

지붕킥이 재밌고 좋은 이유는 우리 사는 모습을 빼다 박은 듯 하기 때문이에요. 예상치 못한 반전이 주는 박장대소 보단 고개를 끄덕이며 씨익 웃는 동감과 여운의 미소가 있기 때문이죠.

 

## 해리와 미스터 순대. 그리고 우리

 

전 가여운 신애와 세경이 보다, 해리와 미스터 순대에게 더 많은 감정이입을 합니다. 온 집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자신의 소유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고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갖은 구박과 핍박을 일삼는 해리는, 더 많이 가지려고만 하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고만 하는 우리 사는 모습을 닮지 않았나요? 심지어 해리는 그 작은 몸으로 감당하지 못할 만큼 먹어대는 고기 탓에 늘 변비에 시달립니다. 지나친 육식과 불균형한 섭생. 그 때문에 나타나는 질병과 또 질병들. 그러고 보면 그것도 또한 우리 얘기구요. 무엇보다 해리의 외로움에 더 큰 싱크로를 느낍니다. 해리는 부잣집의 사랑받는 막내딸이지만, 사실은 참 외로운 아이죠. 잘못을 혼내주는, 아니 바로잡아 주는 사람도 없고 딱히 이렇다 할 친구도 없습니다. 많은걸 갖고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지만 고작 사소한 인형놀이를 함께 하거나 빠진 이를 같이 신기해 해주거나 잘못되고 틀린 행동에 대해 바로잡아 줄 친구도 어른도 없어요. 해리 얘기냐고요? 아니 우리 얘깁니다. 사람도 많고 가진 것도 많지만 사실은 외로워 죽겠는 우리들 얘기요.

 

미스터 순대는 황혼의 로맨스를 이뤄가는 로맨틱 마초입니다. 황혼 로맨스의 상징인 멋들어진 콧수염도 기르고 있죠. 다리가 좀 짧긴 하지만 이 정도면 숀 코네리인들 부러울까요. 그러나 로맨틱 마초인 미스터 순대는 동시에 구시대적 가부장이기도 합니다. 체면과 권위, 자기과시를 지나치게 중시하는. 여자 친구에게 잘 보이겠다고 가정의 생활비를 강제적으로 줄이고 여자 친구와의 관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것을 가족들에게 일방적으로 요구하기도 하죠. 며칠 전엔 심지어 자기를 욕보였다고 20년 넘게 성실히 일한 우리의 봉실장을 해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가장의 권위, 사장의 권위를 운운합니다. 그에게 가정이나 직장이란 그렇게 장의 권위만이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곳 인가 봅니다. 이 사람을 보면서도 저는 우리들 사는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앞에서 말한 것들을 전부 포함 할 수 있는 그 말이요. 바로 ‘소통의 부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도무지 소통이 뭔지 모르는 것 같은 또 다른 어느 ‘장’을 떠올리지 않아도 바로 우리부터 가족 간에, 친구 간에, 직장에서, 사회에서 너무 소통 없이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요? 타인의 이야기를 듣지는 않고 정작 내 얘기를 듣지 않는다고 투덜거리고 있지 않은가요? 너무 비약입니까? 저 오바인가요?

 

## 세경이와 정음이. 그리고 우리

 

지붕킥의 인기를 책임지며 뭇 남성들은 물론 뭇 언니들의 마음 까지도 설레게 하는 미모의 그녀들은 극중에선 가장 약하고 힘없는 아이들로 나옵니다. 놀기 좋아하고 허영 많은 지방대생과, 집도 절도 없는 가난한 식모. 냉정하게 말한다면 그녀들은 세상이 말하는 루저일지도 모르죠. 그래선지 그녀들은 일종의 피해의식 같은 것도 있어 보입니다. 다른 이의 호의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경이도, 학벌 얘기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정음이두요.

외모도 영 별로고 뚱뚱한데다 좋은 학교를 나오지 못하고 심지어 영어도 잘 못하는 저는 그녀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해요. 세상의 기준대로라면 저 역시도 루저일테니까요. 어쩌면 그래서 그녀들에게 더 마음이 가고 어떨 땐 콧날이 시큰해져서는 괜스레 콧잔등만 긁어내리고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여전히 세상은 돈 많고 명문대 나온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들만 좋아하니까요. 에잉~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 메시지

 

지붕킥의 매력중 하나는 에피마다 한 번씩 등장하는 알듯 모를 듯 한 메시지들입니다. 자옥 아줌마와의 이벤트 비용을 메우려는 미스터 순대의 노력 편에서는 생활비를 아끼기 위한 세경이의 노력이 빛을 발했습니다. 세경이는 세제대신에 쌀뜨물로 설거지를 하고, 난방을 끄고, 변기에 벽돌을 넣고, 과소비하던 사과를 줄이고, 식단을 간소화 하죠. 식구들은 불편해 하면서도 그럭저럭 살아갑니다. 웃음의 포인트는 가정은 나 몰라라 하며 또 자옥아줌마에게 밍크를 사주는 미스터 순대에게 있었지만 전 사실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소비하고 있던 것들에 대해 반성을 초큼 했습니다. 빈 방에도 불을 켜거나 난방을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음식을 남기고 하던 생활들에 대해 말이죠.

지붕킥은 그렇게 어느 곳엔가 갖은 메시지들을 들여 놓습니다. 가족, 여성, 환경 같은 얼핏 재미없어 보이는 그런 얘기들을 매우 재미있는 소재로 만들어서요. 웃자고 만든 시트콤을 이렇게 진지하게 바라보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제작진이란 말임미다.ㅋ




## 그래도 우리는 사랑을 해요. 사랑하는 그들과 사랑하는 우리

 

전 지난 연말 MBC 연예대상에서 준세커플에게 베스트 커플상 투표를 했습니다. 예쁘잖아요. 걔들.ㅋ 제가 진짜 지붕킥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은 그래도 사랑하기 때문이에요. 학벌차도 가난도 나이도 무엇도 상관없이 그들은 그래도 사랑을 해요. 우리처럼요.

 

늘 괴롭히고 괴롭힘 당하는 해리와 신애는 어느 새 알 수 없는 단짝이 됐고, 왠수 같던 지훈이와 정음이는 연애를 시작했어요. 까칠한 준혁이는 첫사랑을 앓고 있고 세경이는 가슴 아픈 외사랑을 합니다. 백수날건달 광수와 인나도, 보석 아저씨와 현경이 아줌마도 티격태격하면서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죠. 미스터 순대와 자옥 아줌마도 황혼의 로맨스를 즐기구요.

 

우리도 그렇게 사랑을 합니다. 왠수 같은 아이를, 더 왠수 같은 남편을, 밉상인 친구를. 서럽고 아픈 세상이지만 우리는 그렇게 사랑을 하기 때문에 살아가고 있어요. 서로 상처주고 서로 위로해주면서 세상이 준 상처를 서로 치유해주면서 그렇게요.

 

어쩌면 세경이와 신애는 쉽게 아빠를 만나지 못할 수도 있겠어요. 정음이와 지훈이는 서로의 차이를 견뎌내지 못하고 헤어질 수도 있고, 미스터 순대는 가족의 반대를 못 이기고 언젠가 다시 가슴 아픈 이별을 할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그래도 그들은 다시 또 사랑을 할 겁니다. 상처받고 넘어져도 다시 사랑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처럼요.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라던가요??ㅎㅎ

 

 

 

 

 

 



Beatles - All You Need Is Love

지붕뚫고 하이킥



Paolo Pavan - Looking For a Way Out


'하이킥' 시즌2라는 진부한 홍보를 맘에 안들어 하면서도 꾸역꾸역 티비앞에 앉아 지붕뚫고 하이킥을 봤다. 전작에 갖는 흥미와 애정때문이었겠다. 별다른 의미도 없이 흥행작을 울궈먹는 수작이라고 생각했다. (안녕프란체스카 시즌3가 그랬던것처럼.) 거침없이 하이킥 이후로 다시 변변한 시트콤을 못만들고 있는 MBC가 띄운 의미없는 한 수라고 궁시렁거리면서 티비앞에 앉아있는데 "어라, 이거 뭔가 좀 다른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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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옮겨 놓은 것 같은 - 메타포

신애와 세경은 갈데없는 신세로 우여곡절 끝에 이순재의 집에 식모로 들어간다. 이야기의 기본적인 골자는 이 자매의 서울 생활기, 혹은 성장기쯤이겠다.
거의 매회의 갈등은 가난한 이 자매를 구박하는 주인집 딸 해리의 핍박에서 시작된다. 해리는 집안의 모든 것을 '소유'한다. 이 집안에 있는 것은 모두 자기 소유임을 간절하게(그렇다. 그건 간절하게에 가깝다.) 주장하고 신애와 세경의 인신마저도 소유하려 한다. 동시에 신애와 자신의 계급적 차이를 항상강조하며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모두에게 인정받으려한다.

이는 마치 유산계급이 무산자를 핍박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어쩌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에 가깝다. 존재에 대한 인식보단 소유에 대한 강박에 시달리는. 군중속에서도 고립된채 살아가는 모든 현대인들처럼 해리도 가정에서 고립되어있다. 유복한 가정의 사랑받는 막내딸인듯 보이지만, 저마다의 삶과 생활로 어느 누구도 해리의 잘못과 집착에 응징을 가하지 않는다. 결국 엄마의 꿀밤으로 소동은 마무리되지만 엄마조차도 해리의 잘못이 무언지 자세하게 얘기해주지 않는다. 결국 해리는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한다. 무엇과도 소통하지 못하고 물질만을 맹신하는 욕심쟁이 현대인들처럼.

너무 많은 것들을 삼키기만 할 뿐 쏟아내지는 못하는 우리처럼 해리의 작은 몸은 감당하지 못할 고기때문에 늘상 변비에 시달린다. (사실 과도한 육식같은 잘못된 섭생때문에 변비에 시달리는건 바로 우리들 자신아닌가)


## 엄연히 존재하는 계급

하이킥엔 엄격한 계급이 존재한다. 그것이 금력에 의한 것이든 가부장적 권위에 의한 것이든 학력 혹은 나이든 관계없이 하이킥은 무엇으로든 계급을 규정짓고 지배하려는 서슬퍼런 계급투쟁의 과정이다.

가짜학력으로 과외선생노릇을 하고있는 황정음은 학력이 들통나지 않으려 애쓴다. 가짜 서울대생인 그녀에게 진짜 서울대생 지훈의 "몇학번인데요?"라는 말은 친근감의 표현보다는 추궁에 가깝다. 마찬가지로 가장 쿨한 캐릭터를 표방하는 지훈조차도 은연중 자신의 우월적 지위와 카르텔을 확인하려는 질문인것이다.

정보석은 이순재의 신임을 얻기 위해 세경과 경쟁하고, 해리는 신애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고자 끊임없이 신애를 핍박한다. 결국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물고 뜯고 싸우는 세상의 축소판.


## 가족의 정체

하이킥 오늘 방송분의 에피소드는 저마다 다르게 해석하는 가족의 의미에서 기인하는 갈등들.  각자 "가족이라면 이래야지"를 외치지만 사실 그건 가족안에서 자기가 주도권을 차지하겠다는 욕망의 발로. 그 욕망을 예의니 상식이니 하는 말들로 치장해 봤자.

애초에 가장의 권위라는 말로만 가족의 형태를 얽메이려드니, 서로가 가장이 되고자 할 수밖에. 결국 누가 주도하든 고리타분한 가부장제다. 권위와 권위만이 맞붙어 싸우는.
가족이란 본래 그렇게 불완전한 공동체다. 에피소드의 끝무렵 해리의 나레이션처럼 가족은 선택하지 못한 최초의 공동체. 그 공동체의 빛나는 부분을 발견하게 해주는건 배려와 소통이다.


## 그래도 따듯한, 그래서 더 세상과 같은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고 말하는 어른들의 말처럼 그래도 세상은 따뜻하다. '뭐가 따뜻한데?'라고 물으면 딱히 할 말은 더오르지 않지만, 그래도 분명 세상은. 학교에 가고싶은 세경을 위해 새 참고서를 몽땅 버려주는 준혁처럼, 갈 곳없는 세경자매에게 기거이 방을 내주는 줄리엔처럼. 세상은 분명히 따듯한 곳이어서 우린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저마다 한걸음씩 내딛어 지금은 비록 아니어도 언젠간 더 좋은 곳을 찾고자 발버둥치면서 살아가는 세상.

지붕뚫고 하이킥의 제목은 헤르만헤세의 소설 데미안에서 차용해왔다고 한다. 다른 세상을 찾기 위핸 지붕을 뚫는 것처럼 알을 깨는 것처럼 지금 사는 세상을 파괴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한 발 한 발의 하이킥이 언젠간 지붕을 뚫을거라고 믿고 살아간다. 그래서 그 한 발 한 발의 하이킥을 매일 저녁 즐거운 마음으로 시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