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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이런 짓이나 하고 놉니다 - 2013 영화/음반 결산


언제까지 이런짓이나 할른지 모르지만, 여튼 올해도 1년동안 좋았던 노래랑 영화들. 결산.


(오토플레이로 노래 걸어놨어요, 시끄러우면 맨 밑으로 내려가서 꺼주시압)


# 영화


1. 설국열차




어떤 사람들은 인간이 생존 할 수 있는 오직 하나의 생태계인 열차를 민주적이고 정의롭게 운영하는 방법에 대해 논의했어야 한다고 말했었다. 열차밖으로 나가선 결국 북극곰에게 잡아먹힐 뿐이라고. 그러나 북극곰이라는 생명체가 이미 (그것도 먹이 사슬의 최상위에 있는 포식자가) 살아가는 생태계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더욱 중요하다. 인류의 존속을 위해 열차의 운행이 지속돼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지극히 인간중심적 사고다. 생태계의 주인은 인류가 아니다. 오히려 인류는 지구의 '암세포'같은 존재에 가깝다. 여하튼, 결코 나아질 수 없는 이 세계보다 나은 세계를 상상하는 일은 이 세계에서 이뤄지지 않는다. 문을 부수고 밖으로 나가야지만.


새로운 지구에 새로이 발을 디딘 어린아이들(신 인류의 조상)이 인상적이었다. 어린 흑인 남자아이와 벽 너머를 볼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진 연상의 동양소녀. 인류가 지향해야 할 혹은 인류가 가장 꿈꾸는 형태의 조합 아닌가. (사실 앵글로 색슨이 멸종한게 아주 초큼 통쾌했었다ㅋ)



2. 노라노




역사란 고루하거나 박제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또 내일을 주조하는 것이라는 사무치는 교훈. 꼰대질하는 늙은이가 아니라 삶의 지혜를 나눠주는 어른들. 그보다는 계속계속 지혜로워지며 함께 살아갈 나이들었지만 늙지 않는 언니들과 그녀들의 예술. 


엄마를 극장으로 끌고가게 하는 힘. 

"엄마, 노라노 입어봤어요?"



3. 카운슬러




카운슬러의 감독이 코엔형제라고 착각했던 건 매카시의 극본을 처음 본 영화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였기 때문이다. 아마. 그러니까 이건 리들리 스콧보다는 매카시가 먼저 떠오르게 되는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가 선명하게 기억나던. 그러니까 우리에게 공포와 폭력, 그런 것들을 가져오는 운명앞에 우리는 얼마나 가련하고 나약하고 하잘것 없는 존재인지, 또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는 건지를 잔인하고 집요하게 보여주는데 혈안이 된 영화다. 


그건 인간이, 혹은 살아가는 모든 존재가 갖는 근원적 비극이고 어쩔 수 없는 일이며 그다지 의미있는 일도 아니다. 죽이는데 죽어야지. 그리고 그 죽음이란 것도 사실 별거 아니다. 드럼통에 시체를 담아 이쪽 저쪽 국경을 옮겨 다니거나 죽은 시체를 쓰레기장에 버리거나 하는, 그러니까 죽음이란게 (누군가에겐) 그렇게 하잘것 없고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삶이라는 것도 어느 누구에겐 퍽이나 쓸모없다는 그런 얄밉게 정확하고 냉정한 이죽거림.


문학작품처럼 받아들여질 법한 대사들도 그렇고 치타가 약한 짐승들을 사냥하는 걸 또 지켜보며 그 치타를 키우는 카메론디아즈도 그렇고 탄성이 나올법한 장면들이 숱하다. 그리고 페넬로페 크루즈는 엄청 예쁘고 카메론 디아즈는 늙어서 더 섹시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브래드 피트. 헐 대박.



4. 더 헌트




소수가 다수를 상대로 사냥을 하는 일은 없다. 언제나 떼를 지어 포위망을 이루고 도망갈 곳을 잃은 한마리의 사냥감을 죽인다. 더 헌트는 사냥에 관한 영화이며 인간이 무리를 이뤄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그 사냥의 대상이 되는 '개인'은 얼마나 무력한지를 드러낸다. 우리가 오직 옳은 것이라고 믿었던 공동체나 혹은 다수결, 민주주의 같은 말들이 실은 무엇보다 어리석고 폭력적이며 돌이킬 수 없는 실패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직시한다.


인간사회에서 대개의 경우 사냥감은 합리적 비판과 준엄한 재판 대신에 감정과 알리바이(난 거기에 가담하지 않았다는)를 위해 결정된다. 그리고 결정된 사냥감을 향해 드러내는 이빨이나 가학성은 놀랍도록 잔인하며 그 잔인함은 대게 정의나 도덕, 혹은 이성같은 말들로 포장된다. 영화에서 어른들은 주인공의 아동성추행을 입증하기 위해, 자신의 거짓말을 시인하는 소녀에게 "너무 두려운 사건이라 네 무의식이 그날의 기억을 지운거"라는 되도않는 심리학 지식을 들먹이는 장면에선 실소를 넘어 공포심까지 들었다.


우리는 공동체를 만들고 그에 속하려고 발버둥친다. 대게 공동체에서 버림받아 상처받지만 상처를 주는 배제와 소외 역시 공동체에 의해 이루어진다. 



5.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더이상 '이야기'를 치밀하게 짜는 일 따위엔 관심을 두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홍상수의 영화들은 도리어 치밀한 이야기 구조를 갖는 것처럼 보인다. 그건 플롯이나 서사에 따르는 구조라기 보다는 캐릭터와 그에 다르는 자연스런 상황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힘에 가까운데 아마 캐릭터만 주고 그날의 상황이나 배우의 연기에 많은 것을 맡기는 그의 작업방식에 따른 것이기도 하겠다.


여하간 해원은 근래 홍상수의 영화에서 가장 '예쁜'여자였는데 유부남을 만나는 언니를 미쳤다고 표현하면서 정작 자신은 유부남을 사랑하거나. 자유로운 사랑을 꿈꾸며 이선균의 속물근성을 비난하는 동시에 자신은 결혼상대로 적합한 미국교수에 호감을 표현하는 것 같은 종잡기 '충분한'그 꼴보기 싫음에 기인하는 바가 크겠다. 원래 썅년들이 예쁜법이다.


누구의 딸도 아니고 싶었던 해원은 사실 누구의 애인이거나 딸이거나 제자이거나. 하는 관계 밖에서는 살 수 없는, 혹은 살아본 적도 살아갈 능력도 없는. 그런 보통의 여자애, 라기 보단 보통의 사람. 늘 우리는 독립과 주체를 꿈꾸지만 한 순간도 종속되고 소속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것처럼.


최근의 홍상수 영화에서 '꿈'이나 '상상'이 주된 소재로 쓰이는데,(시간과 공간을 완전히 무시해버리는) 꿈을 꿨다 깼다하는 해원처럼 잘 어울리는 이도 없더라. 정은채도 예쁘고. 



6. 러시안소설



영화보다는 한 편의 소설같은 영화는 그 문장(대사라기 보다는)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해내는 듯한 영상들로 흥미를 배가한다. 흑백과 같은 톤으로 진행되는 영화의 전반부는 러시아 소설마냥 급하지도 경쾌하지도 않은 속도로 꾸역꾸역 이야기를 전개한다.


과장된 자의식과 꼭 그만큼 유난스런 컴플렉스가 절묘하게 버무려진 캐릭터들과 그들을 부추기는 주변부의 조화가 병맛같은 이 상황을 극단적으로 몰고가면서도 부대끼거나 억지스럽지 않게한다. 사실 러시아 소설이 그렇지않나. 장황하고 엄숙하지만 뚝 덜어져서보면 병맛같은 상황. 심지어 이름도 지랄같고.


두번재 오프닝 시퀀스가 등장하고 나오는 총천연색의 현시점은 어쩐지 전반부의 남자애들처럼 들뜨고 산만하지만 그건 그거대로 뭐. 어쩐지 급하게 마무리한 것 같은 성긴구석이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그대로 읊어 나가던 카페 느와르가 떠오르기도 하고. 지루해질 것 같으면서 전혀 지루하지 않았던 소설책, 이거 재밌자고 쓴게 맞다.  



7. 홀리모터스



영화와 세계에 대한 질문이면서 동시에 감독 자신에 대한 자기고백. SF와 뮤지컬 가족드라마를 넘나드는 '오스카'( 참 이름도 의미심장하다), 혹은 감독 자신의 꿈의 연장이면서 동시에 현대의 영화의 연장이다. 통일되는 주제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으며 사실 어떻게 보면 무슨 말인지도 모를만큼 혼란스럽다. 하지만 그것은 놀랄만큼 영화의 거의 모든 즐거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고 영화란 결국 꿈의 연장임을 또 감독과 배우란, 그리고 영화를 보는 관객 일반들 역시 꿈을 꾸고 그에 열광하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입증한다. 그리고 곧 다가올 '자정' 모든 것이 끝날 자정에 대한 부담과 걱정. 


재미있는 것은 카락스의 영화를 보면서 종종 일으키곤 하는 이미지의 착각인데, 카락스의 전작(은 폴라X라고 말하겠지만 도쿄 3부작의 '메르드'가 있다. 사실 이 광인, 메르드의 이미지가 홀리 모터스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로 이어진다) 메르드를 보고 나는 갑자기 '체 게바라'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순간 깜짝 놀랐는데, (전적으로 외모 때문이다) 예수와 닮은 메르드에 대해 말하다 불현듯 체와 예수의 공통점을 발견하려고 애쓰기도 했었다. 홀리모터스의 메르드를 보고도 같은 생각을 하다가, 몽유병에 걸린 귀신이 극장을 빠져나오는 장면에선 "하나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고 말하던 맑스를 떠올렸다. 뭐, 가져다 붙이자면 못할 것도 없겠으나, 이거 좀 병이다.ㅋ


8. 아티스트 봉만대



여배우의 몸을 전시하고 섹스신과 어색한 연기, 개연성없는 상황을 즐비하게 늘어놓고 남성 관객 일반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켜주지도 못하니까 요즘 고삐리들은 에로영화 안보고 일본 AV를 보는거 아니냐)시키려는 목적만을 갖는 저열함. 이 한국의 에로영화를 바라보는 스테레오 타입이면서 동시에 비교적 정확한 분석.되겠다.


'에로영화'라면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보기 일수인 상황에 (실제로 색안경 끼고 봐도 할 말없어지는 에로영화들이 즐비한 것도 현실) 봉만대의 존재는 어쩌면 감사할 일이다. 봉만대의 영화는 적어도 개연성 없이 배우들의 몸을 소모하거나 그들을 남성관객 일반의 눈요기로 전락시키지는 않는다. 그리고 적어도 "정말 야하다" 야한게 그저 훌렁훌렁 옷을 벗기는 것은 아니라는 걸 확실하게 알고 있다는 느낌. 일까.


에로영화라기 보다는 에로영화 현장에 대한 페이크 다큐에 가까운 영화는 실제로 어떻게든 색안경에서 벗어날 수 없는 감독과 배우들과 현장에 대한 관찰이다. '노출'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성은이나 곽현화 이파니는 물론이고 (그녀들에게 그런 편견을 주입한 것도 그것을 이용하고 좋아하는 것도, 그리고 그래서 또 그 편견을 경멸하는 것도 오직 남성임을 영화는 여실히 드러낸다) 십여년동안 대표작이 여전히 번지점프를 하다인 여현수까지 배우들의 적나라한 고민과 한계를 필터없이 보여준다. 이는 봉만대 감독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인데, 에로라는 장르영화에 애정과 나름의 철학을 갖고 임하는 감독 자신을 '떡감독'이라 칭하는 웃픈대사가 영화의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라디오스타에 나왔던 봉만대에서 드러났지만 영화는 시종일관 유머러스하면서도 동시에 그 설움과 그럼에도 갖는 'B급'들의 열정에도 소홀하지 않다. 다소 성긴 이야기와 구성이 거슬리기도 하지만 그런건 얼마든지 웃어넘길만큼의 미덕들이 있다.


9. 힘내세요, 병헌씨



청춘이나 꿈, 위로, 격려 같은 말들에 얼마나 신물이 나면 얼마전엔 서점에서 "청춘으로 사느라 힘들었지"같은 제목의 책도 목격했다. 영화를 만들겠다는, 혹은 그게 아니라도 무엇인가 하고 싶다는 꿈이 괴로운 것은 비단 우리가 청춘이어서가 아니며 그래서 청춘이 그렇게 아름답게 포장되거나 대상화되길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원래.


똥마렵다고 연출부에서 잘린 병헌씨는 되도 않는 헛소리로 시간을 보내는 백수한량이고, 어쩌다 운좋게 얻어걸린 시나리오로 데뷔를 하려다 결국엔 좌절된 어이없는 인상이며, 임신한 아내를 두고 바람피우다 이혼당한 못난 남자고, 그럼에도 어께에 힘이 잔뜩 들어가 강형철 따위.라고 말하는 찌질한 군상이다. 그러니까 곧 '나'고 어쩌면 '당신'이다.


그래서 그가 좌절하지 않고 끝내는 운좋게 얻어걸린 시나리오로 입봉하고 흥행한 상업영화 감독이 되길 바랐지만 어차피 안될거라는 걸 영화 시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 애가 성공하면 안되는 거다. 찌질하고 못나고 게으른 사람은 성공할 수 없다. 그러니까 우리가 할 수 있고 또 듣고 싶은 말은 "잘될거야" 같은 의미없고 막연한 위로나, 어차피 다 알고 있는 귀찮은 잔소리가 아니라 "힘내라"는 단 한마디였다. 사실 그거 아니면 할 것도 없으니. 병헌씨가 상업영화 감독으로 성공하길 바라진 않지만, 그가 영화를 꾸준히 계속 만들어주길 바라는 마음.  


10. 지슬



어떤 영화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을 꺼내기가 어렵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5월의 광주를 소재로 삼아 욕지기 나오는 영화 따위나 만들었던 어느 작품들에 대해 경멸 이상의 감정을 갖고 있지만 지슬에는. 제주 토박이 감독이라 할 수 있는 표현들과 대사들에서 그 날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어쩌면 필름도 제주도에서 만들어진걸 쓰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4.3에서 희생된 그 모든 넋들에 대한 진혼곡이었던 영화는 어느 편에 서서 분노를 부추기지도 뜨거움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저 죽어간 모든 이(군인이든 양민이든)들의 넋을 위로하는데만. 그래서 뜨거움을 강요하고 선악을 굳이굳이 구분하려던 몇몇의 (정치적) 영화들에서 보이는 거북함이 없다. 다만.


때마침 지난 4월, 제주를 찾아 항쟁의 유적지를 둘러본 직후 영화를 봤다. 아직 우리 사회엔 미처 정산하지 못한 일들이 숱하다.  그들은 무엇때문인지 죽어야했고 무엇때문인지 감춰지거나 외면당하거나 왜곡돼야 했으며 무엇때문인지 아직도. 


11. 그밖에,


블루재스민이나 화이, 사이비, 베를린, 우리선희 같은 영화들도 참 좋았지만 힘들어서 패스. 10개 채웠잖아.ㅋ

전설의 주먹, 감기 같은 올해의 (대)망작들도 한마디씩 써볼까 했지만 힘들어서... 좋은 영화도 안쓰는데 뭐. 

하지만 강우석은 전설의 주먹이 재미없으면 앞으로 영화를 안만들겠다고 공언했으니 다시는 영화를 만들지 않아야 한다. 퉤퉤퉤.



# 음반


1. 들국화 - 들국화



전설의 귀환. 몇몇 사람들이 "수작이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을 내놓아서 맘에 들지 않았지만 그건 취존의 영역. 그들은 전설이라고 하여 음악 외적인 것들로 그들을 평가(저평가든 고평가든)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일견 동의. 사실 나도 들국화의 앨범을 올곧이 음반 자체로서만 평가하는건 아니기 때문이다. 들국화의 1집을 들으며 자란 세대들에게 이번앨범의 의미와 들국화를 상상하며 자라 이제서야 비로소 들국화를 만나게 된 이들에게 이 앨범의 의미는 분명히 다르다. 분리시킬 수 없는 것을 분리시키라고 한다면 그건 억지. 


그래서 들국화의 이번 앨범은 내게 전설의 위용을 그대로 확인시켜주는 음반이다. '걷고걷고'같은 노래는 환갑의 나이든 '형등'에게서만 들을 수 있는, 그리고 그들이 여전히 꼰대가 아니라 선배임을 알려주는. 더욱이 재채기 같은 곡들은 그들이 어쩌면 나이도 먹지 않은게 아닐까 싶어지는 노래다. 


주찬권 아저씨가 돌아가셔서 아마 공연을 보지는 못하겠지만, 아듀 주찬권 공연이라도 한 번 쯤 해줬으면 싶은 팬으로서의 욕심이 있다.


(앨범 녹음을 다 끝내놓고 불현듯 떠나버린 주찬권, 어느 땐 그 위력에도 불구하고 앨범을 몇 장 만들지 못한 들국화의 새 앨범을 위해 하늘이 주찬권 아저씨에게 소명을 줬다가, 소명을 다한 그를 데려간 건 아닐까.. 뭐 그런 공상도 해본다. 여튼 아저씨..엉엉엉)


2. 윤영배 - 위험한 세계



종탑이나 망루, 구럼비, 자본주의, 국가주의 같은 말들을 이렇게 서정적이고 담담한 목소리로 부를 수 있다니.

그의 노래를 듣고 누가 "민중가요 흉내내는 겉 멋"이라고 혹평했는데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서정성이라는게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이나 남녀간의 오매불망한 마음만을 노래하는데서 오는 것은 아니다. 또한 '시대'나 세상을 이야기한다고 그대로 진지하고 무거운 이야기로 빠져드는 것도 아니다. 분명 그동안의 경향성이 그래왔던게 사실이라면 윤영배의 음악은 그 모든 것이 가능한, 그러니까 서정적인 민중가요라든가(이런 표현은 쓰면서도 심히 거슬린다) 하는데 닿아있다. '좀 웃긴' 앨범부터 그랬지만 윤영배는 어저면 조동익 조동진 이후 가장 걸출한 포크가수인 것 같다. 


3. 조용필 - Hello



들국화를 비롯해 유독 '전설'이라 불릴만한 이들의 귀환이 많았던 해지만, 그 중에서도 최고의 화제는 역시 조용필 (JYP...같은 농담하면 안되겠지?ㅋ) 가왕이 왜 가왕인지, 그가 왜 여전히 현역인지. 세월이 묻어서 녹이되고 지난 날의 영광을 붙잡고 산다면 추해지겠지만 세월의 먼지와 주름을 골골이 새겨 숙성시킨다면 그게바로 '장인'이겠다. 여전한 용필오빠. 혹은 옛날보다 더 멋있는 용필오빠.


(여담이지만, 우리 엄마는 용필오빠의 앨범이 나온 날 바로 조인성에 대한 애정을 거두셨다. 그냥 걔는 귀여워 한거지 용필오빠를 향한 팬심은 거둔 적 한 번도 없었다는 명언을 남기시기도. 때마침 조인성이 연애를 시작하면서 아줌마 팬들의 인기를 잃어가는 중이었다는 말은 패스ㅋ)


4. 장필순 - Soony 7



올 한 해 가장 많이 들은 앨범은 역시 장필순이겠다. 신보 발매직후 찾았던 공감에서도 느꼈지만 그녀의 음악은 이전보다 훨씬더 사색적이고 고요하고 평온하다. 그렇다고 노래가 지루하거나 평이하게 흐른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그녀가 사는 곳을 들먹이며 제주의 바람같은...을 운운하면 너무 유치하니까 빼버리더라도 마치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도 평온한 자연 속의 노래들.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줄곧 귀에 곷고 있었던 거겠고. 특히 '눈부신 세상' 같은 노래는 아마 올 해의 단 한 곡.


5. 이승렬 - V



고백하건대, 이승렬쯤 좋아해주지 않으면 음악 듣는게 아니지. 같은 마음이 없는건 아니다..ㅋ

열광하는 유앤미블루나 그의 솔로1집과는 다분히 차이나는 이번 앨범은 이런 고백을 이끌어낼만큼 낯설었다. 그렇다고 그의 음악이 생소해 좋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신기하고 재미있는 사운드 모음집. 좋아하는 그의 보컬과 세련되고 안정적인 멜로디에 빠졌던 팬의 마음에서 지나간게 더 아쉬운 그런거다. 왜, 난 소녀시대의 노래중에 다시만난세계를 제일 좋아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달까.ㅋ


여튼 나올거라는 소문만 무성한 유앤미블루의 앨범도 얼른얼른. 이승렬은 이제 솔로에선 예전으로 회귀할 것 같지 않았거든. 하지만 좋습니다, 이번엔 진짜라구요.


6. 강아솔 - 정직한 마음



강아솔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흔해빠진 '홍대 여신'을 연상한게 비단 내 잘못만은 아니다. 기타를 매고 예쁜 목소리로 조근조근 말하는 '여성' 싱어송라이터.라는 말에 그동안 덧씌워놓은 이미지는 그런거 아니었나. 다만 강아솔의 음악을 듣고서 그녀가 그런 '흔해빠진' 누구들과는 사뭇 다르다고 느낀 까닭을 뭐라 명확하게 말할 수는 없다.


그건 이번 앨범 제목처럼 '정직한 마음'때문일 수도 있겠고. 그녀가 단지 예쁘고 '잘 팔리는'노래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말 좋은 노래를 만들고 부른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일테다. '엄마'나 '남겨진 사람'같은 트랙에서 보이는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 관계에 대한 그녀의 정직하고 착한 마음이 느껴지는 때문일테다.


우클렐레나 오카리나 같은 악기 써가며 예쁘고 상큼하게, 그러니까 대학 새내기들이 싸이월드 배경음악에 걸어놓을 법한 사운드들을 부러 만들어내지 않아서 그런 마음이 더 잘 닿는 것이겠지. 여튼, 언젠가의 와우북페에서 랩퍼가 되고 싶다고 말했었는데, 아.. 진짜로 랩음반 내줬으면 좋겠네..ㅎㄷㄷ


7. 이효리 - Monochrome



핑클은 나에게 빛이고 과학이며 진리였으며 곧 신앙이다. 그래서 사춘기 때부터 줄곧 꿈에 효리가 등장하면 연애대상이었고 다소간 야한 상상도 곁들여지는 발칙한 소년이었는데.. 그런데 어느날부턴가 꿈에 이 누나가 나오면 연애를 하는게 아니라 연애'상담'을 하고 있다. 내가 인식하는 그녀의 포지션이 이제 그렇게 바뀐거겠지. 이건 그녀가 나이들었다거나 섹시하지 않다는게 아니다. 그녀는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가장 섹시한 여성이고 가장 매력적인 여성이다. 무려 거기에 현숙함가지 더해져 이젠 넘사벽이 된..엉엉엉 이상순 나쁜놈.


언젠가 토크쇼에서 동물보호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공장식 축산과 반련동물 시장의 비대화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봤는데, 이 누나가 패션으로 생명권보호를 소비하는게 아니라는 확신을 다시 한 번 갖게됐다. 그리고 다시 그녀의 매력속으로..이상순 나쁜놈 엉엉엉.


그러면서 기대했던 것은 그녀의 노래였다. 난 노래란 사는만큼 불러지는 것이라 믿는 낭만주의자여서 더욱 넓어지고 현숙해진 그녀의 노래가 좋을 것이라는 당연한 기대를 품었고 역시 빛이고 과학이고 진리인 그녀는 내게 응답을 주셨다. 아멘, 이상순 나쁜놈 엉엉엉.


앨범 전체가 좋은 트랙들로 꽉 차있었고, 여러가지를 시도하며 재미있게 만들었습니다.란 느낌이 확실히 전해지는 앨범이었다. 특히 미스코리아 같은 노래는 더. 앨범 전체에 묻어있는 롤러코스터의 냄새는 그녀의 남편의 도움이겠고 그걸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말하는 옛날 DSP시절부터의 안티놈들의 분열책동과 악선전이 있었지만 그게 뭐 어때서.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좋은 마음과 좋은 영향을 받으며 변모해가는 그녀에게 아낌 없이 지지와 박수를 보낸다. 이효리를 국회로... 이상순 나쁜놈 엉엉엉


8. Sigur ros - Kveikur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면서 '시규어로스'와 비욕의 나라.라고 표현하던 친구가 아이슬란드의 펍에도 제이슨므라즈가 흐르더라.는 통탄을 뱉어냈었다. 그래, 술마시며 노는 펍에서 시규어로스는 무리야.


하지만 이번 앨범의 시규어로스는 펍마저도 정복할 심산인가보다. 보고있나 므라즈. 

서정성, 간결함, 신성, 아이슬란드의 찬바람. 같은 말들로나 표현되던 그들의 음악은 보다 격정적이 됐고, 한 걸음 더 세련되졌다.  이야 겨우 익숙해진 것 같은 그들의 '말'도. 기품과 우아함을 포함한 모종의 격정.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까, 써놓고도 참 조야하다.


지난 여름 시규어로스의 공연을 가지 못한게 일평생의 한으로 남겠지만, 또 오겠지?   


9. Arcade Fire - Reflektor



이번 앨범에 대해 댄서블해졌느니 리듬이 어쩌구 하는 말들을 막 하더라만, 잘 모르겠으니 패스. (흠좀무)

하지만 기존의 앨범들이 지나면서 망작을 내버리는게 (대) 유행인 시절에 꾸준히 좋은 또 일관성있게 좋아지는 모습을 보여주는건 엄청난 미덕이다. 게다가 남의 나라말로 하는 노래는 별로 듣지도 않는 나같은 아이에게 아케이드 파이어의 존재는 대 축복. 내가 앨범을 챙겨 듣는 남의 나라 '현역'밴드가 있어효..ㅎㄷㄷ


기존의 앨범들에서 보여주던 훨씬 폭발적이고 열기띈 음악에 대한 아쉬움들이 있겠지만, 이들도 나이를 먹어가고 동시에 음악도 변모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하낟. "아, 그랬어, 그럼 다음은 뭐야?"하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그런 좋아하는 팀이 있는 건 참 복받은 일이다. 


우리의 선배들이 라디오헤드나 콜드플레이, 좀 더 위로가서 U2에게 가졌던 그런 마음들을 꾸준히 나도 가지고 가다 십 몇년 후엔 아케이드 파이어도 레전드가 될 날이 오면 좋겠다.


10. GD - Coup d'etat



난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가장 과소평가 받는 음악인 중 하나로 GD를 꼽는다. 그가 패션센스 예능감, 스타성을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의 가장 큰 매력인 음악을 평가절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가 방송이나 공연에서 기깔나는 간지를 보여줄 때마다 열광하면서 동시에 안타까운 맘을 갖게 될 수밖에 없는데, 그건 "저러면 또 음악은 듣지도 않고.."하는 팬심 때문이다.


이번 앨범은 그의 음악적 성취와 그의 상업적 성취가 가장 적절한 비율로 섞여있는 앨범이라고 생각했다. 삐딱하게 같은 트랙은 우리가 그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가장 신나고 가장 보편타당한 노래였다. 방송에서 부르면서 팬들은 물론 관객 일반 모두를 열광시킬. 동시에 늴리리야나 Black 같은 곡들은 그가 작곡자나 프로듀서로서 얼마나 좋은 감각을 가졌는지를 보여주는 곡이겠다. 단언컨대 가장 완벽한 아이돌.


GD에 대한 호불호는 취존의 영역에서 인정할 수 있지만 GD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취존의 영역이 아니다.


11. 그밖에,


우리 지은이의 이번 영리한 앨범이나, 김오키, 나윤선 같은 앨범들이 좋았다. 특히 나윤선의 앨범은 상찬이 자자했지만 그래서 더욱 나는 뭐. 좋은거 알겠는데, 나까지 좋아해야해.? 하는 마음도 약간. EXO나 샤이니, F(x)도 역시 좋았다. 이로서 난 SM의 노예 인증. 





Sigur Ros - Brennisteinn

단상


1.

살아가는 일이란 고난과 해소, 다시 역경과 안도가 중첩되는 일이다. 

게임 퀘스트처럼 해결과 고난이 명확히 구분되고 상승과 하락의 변곡점이 분명할리가 있을까.


말은 쉽지, 죽겠다.


2.

예기치 못한 폭설에 자빠링 연타 달성. 다친데는 없냐는 후배의 물음에 '마음을 다쳤다'고 답했다. 여고생들이 나 보면서 키득거려서 엄청 쪽팔렸다고.


사실 산동네 사는걸 원망했다. 가난을 이토록 서러워하는 일은 처음이다. 문득 점차 별로인 사람이 돼가고 있다 생각했다. 요즘 예전만큼 멋있지 않은 엄마를 보면서 안타까워 하던게 우스워졌다. 가난은, 혹은 살아가는 일은 이렇게 내바닥이 얼마나 야트막한지, 내 심지란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를 드러나게 한다.


3.

'냉소' 혹은 '체념' 같은걸 한다.

철탑 위 노동자들을 바라보면서 울컥울컥 뜨거운 마음을 먹지 못한다.

그들을 보기보다 그들을 보지 않는높은 빌딩을 보면서 울컥울컥 서러워진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할거야. 


누가 말해줬었다. 희망을 갖지 못하면 패배하는거라고. 그럼, 지금 난 삶에 지고 있다.

바닥을 알지 못해 희망이나 앞으로를 보지 못하는 거였다면 좋겠다. 고 생각했었다.

그랬었다. 바닥을 알게되면 더 훌륭한, 똑똑한, 현명한 사람이 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바닥을 혹시 보게될까봐 무섭다. 바닥이라니.


4.

영화를 많이 봤다. 꼬박꼬박. 다운을 받아서든, 영화관을 찾아서든.

서울독립영화제는 찾지도 못했는데 그럼에도꽤 많이봤다. 

영화 속의 삶. 같은걸 바라게 됐다. 두 시간쯤 지나면 꿈인듯 끝나버렸으면.


5.

말 나온김에 올 해의 영화는 (올 해도 거의 끝나가니까) 남쪽으로 간다.

술에 취해 서글피 춤을 추는 그림자.에서 눈물을 쏟을 뻔 했다.


6.

아끼는 후배가 지난 달부터 연락두절이라는 소식을 한 달만에 알았다. 

대학 입학후 쭉 단짝으로 지내던 친구에게만 "다신 연락할 일 없을 거"라는 메시지만 남긴 채 잠수했다고.

걱정된다. 부친상을 당하고 오직 저 혼자 살림을 떠맡은 가난한 집의 장녀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사실 짐작은 간다.


말은 좋아하고 아낀다면서 정작 한 달이나 소식도 몰랐던 이 무심함에 미안하다. 사실 지난 여름 그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시고선 얼굴도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다. 조의금도 제대로 못냈는데.


소재나 알았으면 좋겠다. 어차피 아무것도 못해주겠지만.

위로가 되어줄 수 있다거나 그러고 싶다는 생각같은건 하지도 않는다.

다만.


내가 위로가 되주지 못할거라는 것을 아는 것처럼 그 녀석도 내게 위로가 되지 못한다는 걸

서로 알게만 돼도, 그 얘기만 서로 하더라도 조금쯤 힘이 되지 않을까.


7.

이 와중에 티비에선 김장훈 아듀 원맨쇼 광고가. 

아, 저 양반한테서 스마트폰을 뺏어야 하는데.


8.




눈오고 추운 날에는 오뎅빠.

작고 허름한. 유리문엔 김이 잔뜩 서린.

앞에 앉은 사람이 좋든 싫든 상관없어요.


9.



그리고 이런 노래.
조용필 - 그 겨울의 찻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