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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야기


1.
꿈을 꿨는데, 중학교때 우리학교에서 싸움을 제일 잘하던, 지금은 건달이 됐다는 소식을 건너건너 들을 수 있던 놈이 나왔다. 난 그닥 누구에게 괴롭힘을 당하거나 폭력에 노출된(선생님들로부터 당하는 폭력은 제외하고) 청소년기를 보내진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마 폭력 그 자체에 대한 공포는 버젓이 있었나보다.

꿈에서 난 그에게 굉장히 굴종했고 비겁했고 그리고 자존심 상해했다. 그것은 내가 갖는 폭력의 이미지에 가까운것 같다. 저항하려 애쓰지만 존재하는 것만으로 이미 굴종할 수밖에 없는 것. 그리고 더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폭력의 성질이 본래 굴종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상대를 제압하지 못하는 자신을 부끄러워 했다. 꿈에서도, 깨고 나서도. 그건 물리적 힘과 권력에 대한 동경, 마초적 본성. 난 그 물리적 힘이라는 것이 사실은 굉장히 부질없는 것이고 타인을 억압하고 짓누르는 권력은 타도의 대상이라고 여겨왔지만, 사실 내 자아는 그걸 그리고 있었던거다.
하긴, 영화나 드라마에서 권력이나 금력을 가진 악당앞에서 옴짝달싹 못하던 주인공을 보면서 압도적인 폭력을 행사해 순간의 권력을 챙겨내는 장면을 상상한 적도 많다.

생각해보니 이건 내 무기력이나 비겁함, 위선, 이중성에 대한 자학이었다. 자학을 통해 스스로 위로하는 비겁함이다. "직시하고 있으니까 굳이 건들고 말하지마"같은. 아무도 보지 않을 글을 끄적이면서 얻는 자기만족, 골방의 수음.
이전에 운영하던 블로그 이름은 자학일기였다.

2.
나도 꽃에서 이지아는 꿈을 꾸지 않아도 살 수 있는것 아니냐며 고함쳤다.
결국 드라마에서 이지아는 꿈도 꾸고 그걸 이뤄갈 단초도 얻고 희망도 얻는 해피엔딩이 될 가능성이 높겠지만, 순간 고개를 끄덕였다.

난 지금 꿈도 희망도 재능도 의지도 없다. 갖고 싶은 것도 버리고 싶은 것도 없다. 외롭지만 그것도 별 상관없다. 관계의 부담과 성가심보다는 훨씬 좋다. 다만 이런 상태를 한심함이라고 부르거나 안타깝다 말하는 일들을 납득하지 못하겠다. 꿈을 꾸지도 희망을 갖지도, 생에 대한 열정을 갖지 않고도 살 수 있다. 벤야민은 인생은 살만한 값어치가 있어서 사는게 아니라 자살할 만한 값어치가 없어서 사는것이라고 말했다. 자살할 만한 값어치도 느끼지 못하는 삶도 있는거다.

하지만 사실 이렇게 말하는 까닭은 알고있기 때문이다. 이건 인지부조화다. 난 희망도 꿈도 재능도 열정도 갖는 일이 싫은게 아니라 못하는거다. 그래서 싫은척 쿨한척 하는거다. 이게 The 구려.

3.
외면하거나 직시하거나. 그건 오직 한번만 선택할 수 있는 수능시험 같은건 아닐거다. 난 직시하기도 외면하기도 한다. 흔들흔들. 일일드라마같은 삶이 부럽다. 고난과 역경을 딛고 꿈을 위해서 한 발 내딛는. 광기에 찬 자살도 부럽다. 세상을 조소해줄 용기가. 열정만 못한 재능을 탓하는 괴로움조차 부러움의 대상이다.

좀 똑바로 산 다음에 얘기해. 라고 꼰대같은 잔소리를 누가 늘어놓는다면 죽여버릴거야. 물론 그럴 용기도 없이 쿨한척 웃어주겠지만 하하하.

4.
영화나 음악은 회피와 도피의 가장 좋은 수단이다. 예쁜 연예인이나 사회적 분노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데모를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술을 마신다. 그런 의미에서 노래나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