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성폭력'에 해당되는 글 1건

'위안부' 문제에 대한 몇가지 단상


'위안부' 문제에 대한 몇가지 단상
 
1.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 타결 이후 이에대한 비판과 비난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 모든 논의가 민족주의라는 다분히 감정적인 거대담론에 흡수되고 있다. 더구나 이 문제에 이의를 제기하는 소위 '진보' 내지 '개혁'진영에서는 반 박근혜 정서를 기반으로 민주대 반민주의 정치 구도까지 짜내고 있다. 표면으로만 보면 위안부 문제는 식민지 시대 일본과의 문제고, 이를 졸속으로 합의해버린 현 정권에대한 당연한 비판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이정도의 단조로운 논의와 투쟁은 결국 본질이거나 외면해선 안되는 영역까지도 은폐해버리는 기능을 한다. 

2. 
'순결한 소녀'가 짐승같은 왜놈 군인들에게 짓밟힌 사실에 대한 분노.라는 이미지가 '자발적 성판매'와 '인신매매'라는 극단적인 대립 구도를 낳지만 이는 기실 '여성의 순결'을 강조하는 가부장적 시선이라는 점에서 매한가지다. 위안부 문제는 본질적으로 전시 성폭력의 문제다. '순결'의 의미를 강조하는 것은 일본의 제국주의가 순결한 소녀의 삶을 짓밟았다는 또다른 가부장적 억압이다. 이같은 가부장적 억압의 시각은 한국 남성이 베트남이나 필리핀에서 저지르고 있는 수많은 성폭력, 라이따이한과 코피노들에 대한 외면으로 귀결된다. 그 지긋지긋한 변명, "걔들은 원래 매춘부잖아"로. 

3. 
위안부 문제에 대한 편협한 시각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배에 대한 역사연구 자체를 호도할 우려도 있다. 실제로 위안부 모집통로는 다양했지만 이 모든 과정에서 일본군이 주도적이거나 밀접하게 관여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 대한 면밀하고 구조적인 파악과 연구가 완료되기 전에 민족주의적 감정과 논리없는 일반화, 순결 이미지에 대한 추앙이 선행하면 일본군과 제국주의의 식민지배 구조를 올바르게 규명할 수 없게된다. 이를테면 식민지배 시절 조선인 포주나 자본가에 대한. 악마화 할 대상을 일원화하고 그에게 모든 분노를 쏟아내기는 쉽다. 하지만 제대로된 분노를 위해서는 먼저 제대로 잘잘못을 따지는 일부터 해야한다. 

4. 
여성의 성판매에 대한 입장도 분명해야 한다. 사회일반이 성노동을 인정하지 않고 여성 성노동자를 범죄자 내지는 피해자의 이분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가운데 위안부 피해 사례를 면밀하게 규정하기 어렵다. 정확하지 않은 사례지만 콩고에서 전시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이 식량조달을 위해 자발적 성판매를 하는 일.도 있다. 이를 '매춘'이라는 도덕적이지 못한 행위로 규정하면 정작 피해자의 실상과 경험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피해여성 제각각의 사례와 위안부 피해 과정을 단순하게 일반화 하면 현재의 성노동자는 물론이고 당시의 피해여성들에 대한 이해도 현저히 떨어지게 된다. 

4-1. 
전시 성폭력의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당장 베트남에선 한국 남성들이 가해자다. 전시 성폭력의 문제는 국제적 연대를 통해 전지구적으로 전시 성폭력 피해 여성들의 문제로 확장돼야 함이 옳다. 한국의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국제 사회의 압력이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고. 그러나 편협한 민족주의 시각, 뒤떨어진 가부장적 시각으로는 국제연대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이는 사실 독도와 야스쿠니 같은 일본과 얽혀있는 많은 문제들에서도 같은. 

5. 
현재 야권에서 만들고 있는 민주와 반민주의 대결이라는 구도 역시 마뜩치 않다. 사실 이 모든 논의를 수렁으로 빠뜨리고 있는 건 이 지점이다. 위에서 지적한 모든 복잡다난한 논의와 고민거리들을 다 재쳐두고, 분노와 당위가 수렴돼야하는 지점은 고작 박근혜나 정권 따위가 아니다. 이는 생존 피해자를 중심에 놓은 사고가 아니며 마찬가지로 역사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노력도 아니다. 민족주의 담론은 결국 대중적 감정의 문제고, 사람들을 추동해내기에 가장 좋은 미끼다. 결국 물 만난 김에 노 젓는 금배지 장사들의 장삿 속. (그러고 이기기라도 하면 다행이게. 어차피 질 거면서.) 

6. 
일본에서 우익정권이 집권하며 민족주의 정서가 강해진 것에 대한 효과로 한국의 민족주의 정서 역시 강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쟤가 똥먹는다고 따라 똥먹지는 말자. 

7. 박유하 교수의 책을 읽고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고 생각했다. 어떤 면에선 우익적 시각이라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겠다는 생각도. 하지만 학문의 영역에서 이뤄져야 할 토론을 법정공방으로 옮겨가거나, 이론과 지성의 기반 없이 이뤄진 감정적 '비난', 그리고 마녀사냥. 이런 건 너무 폭력적이지 않은가 싶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