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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데라곤 술 마시는 집밖에 없어요 Vol.3 - 피맛골, 전봇대집



게을러서 블로그질을 하겠냐 싶지만 그래도 술집 유랑기는 꼭 쓰겠단 다짐을 쭉 해오긴 했다. 정말이다.

'연간'을 빙자해 게으름을 포장하려 했지만 2편이 올라온지 벌써 2년이네.ㅋ 하지만 어쨌든, 3편.





고갈비집, 전봇대집, 봇대집, 간판없는 집 등등등. 저마다 다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이 집의 진짜 이름은 '와사등'이라고 한다. 그래봤자 이 이름도 전해지는 이름이다. 주인 할머니도 이름에는 크게 연연치 않는 모양새다. 언젠가 진짜 이름을 물었더니 할머니도 "니 맘대로 부르라"하셨다. 종종 이곳을 찾는 친구들과는 고갈비집, 내지는 '카드되는 막걸리집'으로 통한다. 처음 여길 찾은 친구들은 외관만 보고 카드 결제가 안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능숙하게 카드를 긁는 주인 할머니가 인상적이었나 보다.ㅋ


60년째 같은 자리에서 장사를 해오고 있다. 그래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과 그 기억도 저마다다. 60년대, 산업화의 시대를 살았던 이들에겐 고된 하루의 끄트머리에 찾는 대폿집으로. 7,80년대 거리의 뜨거움을 견뎌낸 이들에겐 숨죽여 부르던 노래가 새겨진 곳으로, 낙원상가의 가난하지만 즐거운 예술가들에겐 그들만의 아지트로, 나같은 애늙은이 한량들에겐 아버지와 형들의 이야기 속 그곳으로. 뭐 저마다. 제각각. 제 맘대로.





고갈비는 본래 잘 구워낸 고등어를 일컫는 말이지만, 고등어가 뭔지도 모르던 서울의 촌놈들은 고등어와 비슷하게 생긴 이면수어를 고갈비라고 부른다.(고 바닷가 출신 외할머니가 어릴 때 말씀해 주셨다) 고갈비집이란 이름에 걸맞게 가게에 들어가면 인원수에 맞춰 적당히 고갈비로 불리는 이면수와 막걸리를 내어주신다. 맛은 뭐 그냥 이면수어 맛이다. 바닷가에선 그냥 버리는 생선이라는데 이면수가 맛있어봐야 얼마나 맛있겠나. 막걸리도 사실 그냥 그렇다. 워낙에 막걸리를 좋아하지 않는데다가 사이다 풀어놓은 듯 달달하기만 한 막걸리가 그저 그렇다.만.


그래도 누군가 '술집'을 묻는다면 아마 1번으로 대답할 곳은 여기겠다. 그 이유는 아마 내가 생각하는 술집의 '원형'에 가장 가까운 모양이기 때문도 있을 것이고, 종로 서울 한복판이라는 지리적 이점도 있을 것이고, 스무살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여기서 몰래 마시던 술맛의 알싸함도 있겠다. 





처음으로 좋아하는 여자애가 생겼을 때도 여길 찾았고, 처음으로 데모에 따라나왔다가 똘망똘망 되바라진 질문을 던지던 후배들에게 잘난 체 설교하던 곳도 여기였다. 화장실엔 토악질의 기억이, 덧쓰이다 못해 이제는 읽지도 못할 낙서들 어디 사이에는 어느 부끄런 고백이 남아있기도 하다.


(어느 날, 술을 마실 때 내가 여길 가자고 하면 제가 그 쪽을 되게 맘에 들어하고 있다는 뜻임미다.ㅋ)



홍상수의 영화에도 종종 등장하기 때문에 여기가 눈에 익은 이들도 많다.


북촌방향에서 유준상이 혼자 술을 마시던 가게, 오 수정에서 이은주가 술을 마시던 곳이 여기다. 홍상수의 영화를 보고 술을 마시지 않은 적이 없다. 감독 중에서 가장 술마시고 싶게 만드는, 그래서 아무래도 본인이 술을 가장 좋아할 것 같은 감독도 홍상수라고 생각하는데. 그 홍상수의 영화에서도 인정받은 술집이라는 거다.ㅋ 





몇 년 전이더라 불이 나서 문 앞의 전봇대는 없어졌다. 화재 이후 공사를 해서 입구만은 넓고 훤해졌다. 

막걸리를 담아내던 양푼도 좀 깨끗해진 것 같고, 막걸리 맛도 예전과는 조금 달라졌다고 한다.

오래된 가게들의 오래된 단골들은 이런 사소한 변화에도 민감하다. 그건 기억 속의 '원형'을 혼자 그대로 간직하고 싶은 욕심이겠다. 


시간이 만든 주름 틈새에 켜켜이 쌓인 사연들은 저마다. 

그 주름을 가로지르는 또 한 번의 시간들이 새롭게 쌓은 또 저마다의 이야기.

그렇게 반복되고 또 반복되는 이야기들이 오래된 장소들을 만들고 쌓이고.


다만 그 주름 어느 한 귀퉁이에 내 이야기와 시간과 노래가 남았다면, 그깟 욕심이야 뭐.


비가 아직도 추적추적 오는데, 술을 마시러 가야겠다.


+

사진은 죄다 어디서 훔쳐온 겁니다. 

술 마시느라 바빠서 사진을 찍은 적이 없슴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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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유랑기를 꼬박꼬박 올리겠습니다.

4편은 와사등 길건너 파고다 공원 옆에 유진식당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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