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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두비 - 타인과 관계맺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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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들리지 않아 수술 날짜를 받아 놓고 기다리고 있을 즈음, 시시껍절한 농담 한마디를 끼적인 적이 있었다.
'내가 귀가 들리지 않는 이유는 뇌안에 대화 뉴런이 망가져서 그런거다' 라는 자학쯤 되는 우스개.

우스개였지만 웃기지도 않았던 그 끼적임은 어쩌면 은연의 진심이었겠다.
'대화'란 그렇게 쉽지 않은거니까. 하물며 마음과 마음이 부닥쳐 영그는 소통이야 말해 무엇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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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인
대화와 소통이 어려운 이유도 가능한 이유도 나와 네가 서로 다른 존재 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대화하고 소통해야 하고,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대화와 소통이 쉽지 않다.

소통은 벽에다 문을 내는 것이다. 하여 문을 내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벽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다.
벽이 무언지, 얼마나 두꺼운지. 벽을 이루는 것이 인종인지 계급인지 성별인지 나이인지. 아니면 그 모든 것들인지. 무엇이 나와 너를 가로막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벽을 인정하는 것부터 벽을 허물어 문을 만드는 일이 시작되는 법이다.

결국 소통은 타인과 하는 것. 중요한 건 벽을 부수어 통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말이 아니라.
그러니까, [난 숟가락으로, 넌 손으로 하지만 이 음식이 네게 맛있었음 좋겠어.] 같은 마음이랄까.

타르코프스키의 노스텔지어에서 허물어진 벽에 홀로 남은 문이 계속해서 남는다. 문이 온전하려면 벽도 온전해야 하는 법. 벽은 허물어지지 않는다. 허물려 해서도 안되고. 소통이든 연대든 그 전제는 타인. 타인으로서 온전해야 소통도 온전 한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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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 이주노동자
세계시민이란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음에도 짙은색 피부와 두꺼운 쌍커풀의 외국인들에게 내보이는 시선은 싸늘. 세계화를 외치는 이들이 인식하는 '세계'란 고작 북반구의 하얀색 코쟁이들.

이 곳은 즐거운 나라 대한민국에서 한국사람들도 잘 모르는 택껸을 배우는 미국인과 떼인 돈을 받으러 주소 한 장들고 골목골목을 누벼야 하는 방글라데시인의 동석만큼 우스꽝스러운 곳.
이 곳은 지주에게 핍박받는 마름이 소작농을 학대하듯, 지배받는 개인이 타인을 학대하는 곳.
분노한 만큼 서러울 밖에, 서러운 만큼 포기할 밖에 없는 곳.
제가 노예인것도 모르는, 어쩌면 모른 채하는 사람들이 지지고 볶고 살아가는 곳.
답 대신 눈물이 먼저 흐르는 곳.

## 노골적이어서 재미없는

민서의 가방에 달린 촛불소녀 뱃지, MB수학학원, 한겨례21, 조선일보, 돌발영상, 불탄 남대문..
너무 노골적이어서 가끔 극을 향한 집중을 방해할정도.
위트와 풍자와 해학은 언뜻언듯 보일락말락이 정도인 것을.

감독은 전작에서도 똑같이. 전작 '방문자'에 비해 훨씬 더 재치있고 부드럽고 유연한 진행이었지만, 그 프로파간다에 가까운 풍자는 여전히. MB시대를 살아가는 오늘에 있어 MB는 풍자가 아니겠지만, 그래도 목에걸린 밥알처럼 까끌까끌.

##  백진희

예쁘고 잘한다.
처음 만난 카림에게 입맞추고 돌아서는 장면에서의 그 눈빛은 아주 '정확해'보였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예뻐서 잘해보일 수도 있는거다. ;;
박보영, 정유미와 함께 주목하고 싶어지는.
 

## 청소년 관람불가

분두비 이미지를 찾으려고 네이뇬에서 반두비를 검색하자 영화에 달린 온갖 악플들이 쏟아져 나온다.
'외국인(피부색 짙은)이 우리나라 여고생을 강탈하는 쓰레기영화'라는 평을 보다 생각했다.

청소년 관람불가는 청소년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치부를 감출때 쓰는 요령이구나.
사기꾼 약장수가 애들은 가라고 말했던 것도 같은 이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