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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올해의 영화 / 음반





올해도 영화 / 음반 결산.

돈도 안주는데 이런 거 참 열심히 합니다.

하지만 돈 주면 더 열심히 해요.


어쨌든 영화 음반 각 10개씩.



# 영화


 

-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 홍상수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면 많은 걱정을 하게된다. 대부분의 경우에서 '더 나은'상황을 고려한 선택을 하게 되는데, 더 나은 상황을 고려하느라 진심이나 솔직함 같은 건 선택의 고려 요소가 아니게 된다.


그동안 홍상수의 영화는 선택의 그 덧없음을 보여줘 왔던 것 같다. "그렇게 따져봤자 어차피 안될거야. 병신들아" 같은 느낌. 이 영화라고 '어차피 안될'상황이 나아졌겠냐만 그래도 어차피 안될 상황에 대한 위로 정도일까. 우리의 삶은 어차피 안될 거고 실망할 테지만 지금 이순간 솔직할 수 있다면, 삶에 조금은 충일할 수 있다면 그래도 아주 약간, 이 뭣같은 삶에서 희망의 부스러기라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올해의 영화. 

이 영화를 보러 들어가던 날의 생각과 그리고 다시 영화관 밖으로 나왔을 때의 느낌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다. 


지금 이 느낌을 흘리고 싶지 않아요.


- 자객 섭은낭 / 侯孝賢, Hsiao-hsien Hou  





거장이라는 이름은 공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비정성시와 연연풍진 (특히 연연풍진)은 살며 본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꼽으라면 반드시 들어갈 영화기도 하다. 허우샤오시엔이 무협영화를 찍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미 장풍 쏘고 낙엽밟아 날아다니는 무협은 아닐 것을 알았다.


영화의 무협은 인간의 범주를 넘지 않고 섭은랑이라는 인물 역시 인간의 범주를 넘지 않는다. 자객이라는 비인간적 직업이 인간의 범주를 넘지 않고 존재했을 때 나타날 갈등 고민 연민이 그대로 담겨있으며 서기는 그 감정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다. (서기 누나는 여전히 완전 멋있다.) 


화려함보다는 수려함에 가깝고 침통보다는 아련에 가까운 화면이 백미다. 새로운 무협영화 장르가 개척됐고, 그 첫번째는 이 영화다. 



- 스파이 브릿지 / Steven Spielberg





냉전시대 이야기고, 스파이 얘기인데 심지어 스필버그가 만들어서 별로 보고싶지 않았는데.

반공영화는 아니고 미국 만세를 이야기하는 영화는 더더욱 아니다.


삶을 위대하게하고 세상을 유지시키는 것은 정의로움과 그 정의를 지켜내는 신념이라는 아주 당연한 상식에 대한 영화. 


신념은 내용이 아니라 신념 그 자체만으로 위대하고 사실 온전한 진실과 정의는 어디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 거울을 보며 자화상을 그리는 장면처럼. 그 장면에는 모두 4개의 시선이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남자, 거울속에 비친 남자, 자화상 속에 그려진 남자, 그리고 그걸 지켜보고 있는 나까지.

(그래서 모든 것엔 옳거나 그름이 없다는 양비/양시는 아니다. 그 믿는바를 지켜내려는 모든 신념이 위대하다는)


톰 행크스는 스필버그의 페르소나임에 틀림없고 스필버그는 거장임에 틀림이 없나보다. 그래도 난 ET가 여전히 제일 좋은데.



 

- 한여름의 판타지아 / 장건재





낯선 곳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 사람 '사이', 극과 다큐멘터리 '사이', 영화와 영화를 만드는 사람 '사이', 스크린과 관객 '사이', 카메라와 배우 '사이', 배우와 배우 '사이', 말과 말 '사이'


사이에 관한 영화이고 영화란 본질적으로 그 사이를 포착하고 담아내는 작업임을 알게하는.

그 사이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도 감독과 관객 저마다 제각각일테고 그 제각각이 영화의 매력이기도 하겠다. 사실 삶의 매력이기도 하겠다.


영화는 시종일관 선량하고 예쁘다. 그렇다고 지루하지도 않으니 로맨스 영화로서는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여행지에서 만난 낮선 사람과의 사랑은 비포 선라이즈 같은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데 뭐가 됐건 영화를 보고 나와 우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삶이 늘 그렇지 뭐. 현실은 시궁창. 젠장. 




- 버드맨 / Alejandro Gonzalez Inarritu 





다시 사랑받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그보단 사랑받은 적이 있기나 했던가.

사랑이라는 것은 어쩌면 받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깨달음.

버드맨의 가면 같은 건, 그러니까 내가 뒤집어쓰고 있는 가면같은 건 어쩌면 사랑을 받기 위한게 아니라 하기 위한 것.


삶은 늘 역설로 흐르고 인과는 무시되는 것처럼 보이거나 가끔은 정말로 무시되기도 하지만 삶의 불확실성이야말로 불확실한 삶에 세상이 주는 가장 따듯한 위로.일지 모르겠다. 그래도 살기는 참 힘들고 사랑은 주기보다 받고 싶은 법. 사실 영화 한 편으로 삶을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달라질까.ㅋ


이냐리투는 그동안 죽음과 감정이 베베꼬이는 영화들을 만들어내더니 버드맨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다른 영화를 만들어냈다. 아닌게 아니라 좋다. 나이가 들어서도 사람은 이렇게 변하고 발전하는구나. 




- 킹스맨 / Matthew Vaughn





'매너 매잌스 맨'. 올 상반기 최고의 유행어를 꼽으라면 주저없이.

오락영화란 이렇게 만들어야 한다는 걸 알려주기라도 하는 통쾌함과 뻔뻔함이 가장 큰 매력이다.

007도 사실은 실체를 모르고 (어쩌면 007에게 지령을 줄 것같은) 있을 듯한 고급 요원들이 아서왕과 기사의 이름을 받고 수제 양복과 포마드 잔뜩발라 넘긴 머리를 하고 앉아서 벌이는 그.


스냅백과 블링블링 악세사리를 차고 앉아 햄버거를 먹고 스마트폰을 무기삼아 세계를 정복하려는 악당과 대비되는 정갈함. 


뭐 내용이 필요한가. 그 잔혹한 액숀신에 흐르는 엘가 같은 게 이 영화의 요체고 전부다. 


그리고 콜린 퍼스의 간지. 갓양남의 전형일까. 

  



- 소셜포비아 / 홍석재





영국의 퍼기경은 SNS를 인생의 낭비라고 표현하셨다. (그러니까 퍼디난드 이 양반아 축구 좀 잘하지.)

혹자는 SNS를 시간(S) 낭비(N) 서비스(S)의 줄임말이라고도 했다. (그러니까 트위터와 페북을 끊고 모두 싸이월드 블로그의 세계로 돌아오세요)


소셜포비아는 스릴러 같거나 추리물 같지만 매우 엉성하다. 그렇다고 그 엉성함이 흠결은 아니고.


투명성에 대한 요구는 더욱 첨예화되어 하나의 정언명령이 된다. "다른 모든 것을 대체할 수 있는 윤리학의 유일한 계율은 다음과 같습니다. 온 세계가 보거나 들어서는 안 되는 것은 절대로 말하지도 말고 행하지도 말라. 나 자신으로 말하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밖에서도 다 보이는 집을 짓고 싶어 했던 한 로마인이야말로 가장 존경할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병철 <투명사회>


영화가 보여주는 건 우리사회가 이미 익숙하게 알고 있는 SNS의 폐해들이다. 마녀사냥이 어떻게 가능해지는지, 그리고 얼마나 바보같은 말과 행동들이 이를 통해 전파되고 있는지. 음모론 같은 거.


엉성한 남자애들이 나오기 때문에 영화 전체가 엉성하게 흘러도 어색하지 않고 실제 세계가 엉성하기 짝이 없다는 것도 더욱 여실히 드러난다. 어쨌든 결론은 이 세계에서도 우리들은 모두 패자에 불과하다는 것.


“디지털 파놉티콘의 특수성은 무엇보다도 그 속의 주민들 스스로가 자기를 전시하고 노출함으로써 파놉티콘의 건설과 유지에 능동적으로 기여한다” 같은 책

 

인디영화씬의 핫피플 변요한과 이주승이 동시에 나온다. 

그러고보니 이제 얘들은 인디영화씬의 핫피플이 아니라 그냥 핫피플이지. 



- 베테랑 / 류승완





얼마전에 개봉한 내부자들이 노렸던 건 베테랑이 가졌던 지위였겠지만 그러려면 영화를 그렇게 만들면 안됐지.


영화는 시종일관 가장 '대중적'인 언어로 악을 꾸짖는다. 분명 우리사회의 모순을 규명하는데는 더 많은 언어와 고민이 필요하겠지만 사실 2시간 남짓의 오락을 위해서 필요한 건 그게 아니다. 통쾌한 일침과 꿀밤. 


나쁜 놈을 나쁜 놈이라고 부를 수 있고, 그 새끼한테 꿀밤 날려주는 좋은 형에게 박수치는 단순하지만 명쾌한 구조. 여기에서 필요한 건 깊이가 아니라 정확함이다. 황정민과 유아인, 유해진은 모두 정확했고 그래서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거기에 유행어가 될 듯한 명대사까지.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같은. 이건 사실 강수연이 술 마실 때 배우들과 종종하는 건배사라고 한다)


장점이 명확한 만큼 한계들도 비교적 뚜렷한데,

구조적 모순에는 침묵하던 경찰조직이 '내 새끼'가 다치자 몽땅 나선 다는 점이나, 일상적 폭력을 희화하고 있다는 점이나, '영화적 재미를 위해 감안할 수 있는 범위'보다 과한 마초적 언어들이라든가. 

(그래서 사실 이 목록에 넣고 싶지는 않았는데, 너무 예민하게 구는 건가 싶기도 하고 한국영화도 너무 없고...)



- 잡식가족의 딜레마 / 황윤





우리는 늘 고기를 먹지만 그 고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모른다.

고기 역시 생명이고, 그 생명의 존엄성을 갖는다. 사실 존재하는 모든 먹거리는 다 생명이다. 그래서 모든 생명은 다른 생명의 죽음을 딛지 않으면 살 수 없다. 때문에 온정적인 태도로 '죽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삶을 인정할지 묻는 것. 그리고 내 생이 어떤 죽음을 딛고 있는지를 아는 것. 감사히 여기는 것, 나 역시 결국 흙으로 돌아갈 것을 아는 것. 


인간은 본래 채식을 하는 생물이 아니므로 나 역시 원칙적인 채식을 옹호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현대인의 섭생이 과도한 육식에 매몰돼 있고 그를 위해 엄청나게 많은 자본이 소용되고 있으며 지구 생태를 파괴하고 있다는 것은 알아야. 현재 지구에는 지구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소와 돼지가 있고 그네들이 뿡뿡 내뿜는 방귀와 가스들이 메탄가스란 이름으로 지구를 병들게 한다. 그들이 먹어재끼는 옥수수가 토양을 갉아먹고 있기도 하고.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풍경이다. 자본주의가 부채질한 풍경이고. 


황윤 감독은 이번 총선에 녹생당 비례대표 후보로 나섰다. 이 포스팅에는 그녀와 녹색당의 선전을 바라는 마음이 아주 많이 담겼지만 사전 선거운동은 아니다.



- 아무르 포 / Jessica Hausner 





폰 클라이스트는 천재 극작가였지만 자살했다. 생전에는 아무도 그의 작품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았고 극도로 가난했던데다, 조국인 프로이센은 식민지나 마찬가지였고, 연애도 잘 안됐다고 한다. (게이였다는 얘기도 있고) 여튼 그는 베를린의 어느 강변에서 유부녀와 함께 동반자살했는데, '유부녀와 동반자살한 천재 극작가'라는 모티프는 그동안 몇 번이고 영화화 됐어도 이상할 게 없는 소재되겠다. 낭만적이지 않은가 말이야.


영화 속 클라이스트가 실제의 클라이스트와 얼마나 가까운지는 모르겠다. 영화는 주로 동반자살한 유부녀 헨리에테 포겔의 입장에서 그려지는데 이 언니가 좀 멍청하다. 난 동반자살로 표현되는 자살 대부분이 사실은 살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삶을 남의 손에 맡길만큼 유약한 건 결국 멍청함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게다가 둘은 사랑하는 사이도 아니잖아.


그에반해 클라이스트는 또라이 기질이 코믹스러울 정도로 유쾌한데, 압권은 보는 사람마다 동반자살을 제안하는 장면. 그 유쾌함이 혁명 이후의 유럽과 그 지독하고 갑갑한 세상을 살아가는 천재의 염세를 잘 그려내고 있다. 


덧,

전주영화제에서 히트를 했다는 소문에 전주는 못갈지언정 어둠의 경로를 통해 힘겹게 구했는데, 자막 ㅆㅂ.

  







# 음반



- 모노톤즈 / Into The Night





“난 처음부터 록 스타가 되고 싶었다. 아니면 의미가 없지. 비틀즈한테 고무가 됐었는데, 그렇게 빛나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그만큼 행복하게 만들어줘야지. 내가 그랬거든. 로큰롤을 처음 들었을 때 너도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어.” 차승우


청년폭도맹진가와 청춘98을 듣고 자란 차차키드에게 모노톤즈는 평가나 왈가왈부의 대상은 아니다. 그야말로 락스타, 경배의 대상. 로큰롤은 차차고, 차차의 음악은 로큰롤이다. 여기서 로큰롤은 일개 장르따위가 아니라 삶의 태도 같은 건데, 로큰롤을 들었을 때 행복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차차의 말처럼.


문샤이너스 해체이후 차차가 박현준과 밴드를 만들었다는 소문, 보컬을 구하고 있다는 소문, 음악이 거의 완성됐다는 소문, 박현준이 결국 밴드에서 나갔다는 소문. 뭐 이런저런 소문들만 들으면서 간간이. 하지만 모노톤즈가 나온다던 락페스티벌에도, FF에서 했다는 데뷔공연에도 가지 않았다. 삶은 로큰롤이 없이도 굴러갔고 더이상 로큰롤은 곧 행복을 의미하지도 않았던. 블로그 이름을 바꿀까 하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름을 바꿀만큼 부지런하지도 않았던 날들. 하지만 다시 모노톤즈의 노래를 듣고있다. 그리고.


모노톤즈의 노래를 뭐라고 말해. 그게 뭐든 난 다시 시작했고, 공연날짜를 기다리고 있고, 또 사랑을 찾을 거고, 행복해질 거다. 가끔 방황해도 괜찮고, 질퍽하거나 암울해도 괜찮다. 그래서 다시, 그렇게, 로큰롤하게. 삶을 행복하게 살아도 괜찮다.


그래도 Let's Rock'n Roll   



강허달림 / Beyond The Blues





강허달림은 독보적인 블루스 보컬이다. 사실 한국은 블루스 풍토가 워낙에 척박해서 마땅히 대중적인 블루스 보컬 하나 없는 게 사실이긴 하다만.


2집에서 어쩐지 이모같은 노래로 살짝 엇나갔던 노래가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 쓸쓸하고 사무치는. 블루스는 그래야 제 맛. 그보다는 어떤 노래를 불러도 블루스가 되는 보컬이 된 느낌일까. '기슭으로 가는 배'나 '이슬비', '거리' 같은 트랙을 들었을 때 그런 느낌이 선연하다.


리메이크란 원곡의 후광에서 멋어나지 못하거나 어설픈 도전으로 이도저도 아닌 우스꽝스러움이 되기 십상인데 어느 쪽도 아닌 것 같아 좋았다. 마치 처음부터 자기 노래였다는 듯이.


얼마전에 본죽 광고에 강허달림의 노래가 나오던데, 

무엇보다 강허달림이 꿋꿋하게 블루스 보컬이었으면 좋겠다.  



- Kendrick Ramar / To Pimp A Butterfly





켄드릭 라마를 처음 들은 건 몇 해 전 '컨트롤 비트 대전'때문이었다. 사실 힙합은 그렇게 즐겨 듣는 편도 아니고. 어쨌든 켄드릭 라마는 컨트롤 비트 이후 "새 앨범이 나왔다니 들어는 봐야지" 정도.


켄드릭 라마의 랩은 어떤 의미에서 랩보다는 선언이나 연설과 같다고 생각했다. 'I'나 'King Kunta'같은 트랙들. 돈 많이 벌고, 예쁜 여자하고 섹스하고, 약이나 쭉쭉 빨아먹고 다니는 걸 자랑하는 게 전부인 노래가사랑은 다르게. 


무엇보다 전자음에 기반하거나 훅이 강한 멜로디만 넘실대는 주류힙합.(이라고 표현하기에 내가 뭘 딱히 대단히 많이 듣는 건 아니다만, 나 같은 애가 찾지 않아도 들었으면 주류힙합이겠지)에선 잘 들을 수 없는 음악. 펑크나 재즈에 가까운 사운드들도 매력적이다. 신나고 잘한다.의 느낌을 넘어서 분명 한 획, 내지는 거장의 냄새가 폴폴. 

(I를 듣다가 마틴 루터 킹을 생각했는데, 자기는 쿤타킨데라네. 역시 나 같은 범인과는 다르다.ㅋ)


비트나 따라하지 말고 좀 제대로 따라했으면 좋겠다.


- 정차식 / 집행자





"귀신 나올 것 같다"던 얘기처럼 그의 음악은 귀곡락이다. 듣기에만 그런 게 아니라 음악을 만드는 과정도 그렇다고. 코드 몇 개를 펼쳐놓고 입에서 나오는 말을 그대로 옮겨적으면 그게 노래.라니 그게 작곡이냐 신탁이지.ㅋ


정차식의 음악은 격려, 위무 이런 것들하고는 상관이 없다. 노래는 지난 '황망한 사내'에서보다 더욱 처절하고 고달파졌다. 할렐루야라니. 절대자인 아버지에게 구원을 갈망할만큼.


하지만 힐링이니 하는 거짓부렁 상품이 넘쳐나는 와중에 차라리 죽도록 힘들다며 "무엇을 선택해도 후회되며 어디로 가려해도 꿈이라 허무하다"는 말은 차라리 위로에 가깝다. 나도 사는 게 좆같애. 힘내라고, 내가 너를 힐링해 주겠다고 덤비는 사기꾼들 틈새에서 그만 오직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은 느낌. 한 번만 더 내게 힘내라고 말하면 침을 뱉어주겠어요.


  

- Bob Dylan / Shadows In The Night





예전에 며칠 연속으로 밥딜런이 죽는 꿈을 꾼 적 있다. 아마 내가 생각하는 가장 죽지 않았으면 하는 뮤지션이 밥딜런인가보다. 이 나이 든 히피는 여전히 한 순간도 안주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과거의 영광 같은 건 모른다는 듯이 연이어 앨범을 내놓다가 36번째 정규앨범마저 내놨다. 36집 가수라니.


시나트라의 노래들을 다시 부른 10곡으로 채워진 앨범은 이 노래가 원래 시나트라의 노래였나 싶다. (My Way는 없다.ㅋ) 전형적인 헤테로섹슈얼 마초 남성이었던 시나트라와는 또 다른. 시나트라의 도시적 우울함, 그러니까 30년대 뉴욕 뒷골목, 마피아와 시가같은 목소리보다는 더 관조적이고 더 쓸쓸하다. 70이 넘은 노인이 지나간 세월을 조망하는 것 같은.


이런 느낌은 Auyumn Leaves에서 가장 도드라진다. 온갖 드라마 같은데서 늘 끈적끈적 흐르는 노래인 이 곡을 더할 수 없게 담백하게 불러버린다. "가을 정도 지나는 게 뭘 그리 거창해"하는 것처럼.


하지만 나이든 히피의 목소리가 짙은 허무따위는 아니다. 오히려 삶을 관조해서 더욱 희망적인. That Luck Old Sun 같은 노래. 


Like that lucky old sun. Give me nothing to do But roll around heaven all day.

저 나이든 행운의 햇살처럼, 

천국을 배회할 일 말곤 아무것도 남겨두지 말아주세요. 


할아버지처럼 늙고 싶네요.



- 혁오 / 22





눈독 들이고 있던 밴드가 유명해지는 건 기분이 나쁘면서 동시에 좋은 일이다. 장기하나 국카스텐 같은. 이젠 지들 입으로 '나만 알고싶은 밴드'라고 말하는 혁오도 그 중 하나 '였다'. 망할 무한도전.


여튼 정규앨범 한 장 내지 않은 주제에 기똥찬 음악을 해내는. 이걸 어떻게 구분해야하나. 소울도 아니고 펑크도 아닌 것이 가만 듣다보면 알앤비같기도 하고. 여튼 제일 좋아하는 트랙은 'Hooka'인데 끈적거리면서 느끼하지 않은 오혁의 보컬이 가장 매력이다. (공드리가 제일 좋아. 라고 누가 말하길래 후카 끝나면 공드리 나와. 로 정리했다.. 이래저래 다 좋다는 얘기다.ㅋ) 요즘 표절 얘기도 나오고 방송에 너무 노출돼 이런저런 하마평에 시달리는 모양이더라만, 결국 나온다는 그 정규앨범이 모든 걸 설명하겠지.



- 이승열 / SYX





지난 앨범이 너무 실험적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유앤미블루 시절이나 솔로 1,2집 정도의 정서로 조금은 돌아온 느낌. 이거말곤 무슨 말을 더할 수 있을까. 그냥 마냥 좋은데. 올 해 가장 많이들은 앨범. 이자 올 해의 음반을 쓸 때 가장 먼저 떠올린. 지난 V 부터 뭔가 확고해진 형이라는 느낌이 들었고, 기다리던 유앤미 블루는 이제 물건너 갔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보다는 이제 기다릴 의미가 없겠다는 느낌에 더 가깝겠다. 한국에서 '음악'을 가장 잘하는 남자. 라고 부르고 싶은. 


'a letter from'은 세월호 이야기다.

깊은 물 속에서 온 편지. 




- Jamie XX / In colour





트랜스나 EDM을 영 듣질 않아서 가끔 뒤처지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클럽을 안다니는 게 문제인가 싶기도 (하지만 클럽에서 날 안받아 줄거라는 게 문제, 나이트가 더 체질이라는 게 더 큰 문제) 하지만 영 뚱땅거리는 소리가 익숙해지질 않았다.


올 여름에 EDM을 좀 '공부'하고 싶어져서 친구에게 물었더니 Jamie XX를 추천해줬다. 이걸 듣고도 맘이 동하지 않으면 다 텄으니 그냥 LA 메탈이나 들으라며. 다행히 다 트진 않았는지 이후에도 이 앨범을 꽤나 많이 들었는데, 특히 노동요로 이만한 게 없었다. 하반기에 나온 내 대부분의 글들은 대부분 여기에 힘입은. (지금도.ㅋ) 


클럽사운드에도 우아함이. 

얼마 전에 데미안 라이스를 폄훼하다 반성했던 일도 있고. 음악엔 편견을 두면 안된다.



- 김사월 / 수잔





김사월을 처음 본 건 우연히 따라간 김사월 X 김해원의 공연. 어쩐지 퇴폐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던.

인디씬의 여성 솔로에게 포크는 드문 장르가 아닌데, 그게 너무 지나쳐서 이제는 좀 지겨울 지경. 이런 상황에서 김사월은 특별한 존재가 된다. 예쁘기만 하지 않은 노래지만 예쁘다. 이 말도 안되는 문장으로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김사월의 앨범 커버에 있는 사진을 봐도 그렇다. 예쁘지 않은데 예뻐. 이상하게 예뻐.

퇴폐적이지만 참 곱다.   

 


- Steve Hackett / Wolflight





프로그래시브는 폼잡고 싶어서 듣기 시작했다. 뉴트롤즈나 QVL같은. 

그러다 학교 앞에 '르네상스'라는 펍의 사장님한테 물려서. (그 아트록밴드 르네상스 맞다. 신도시의 대학가 앞에 르네상스라니!!) 프로그레시브의 세례를 받게 됐는데, 괜히 QVL 노래를 신청했던 게 화근이었다. 여튼 거기서 맥주 공짜로 엄청 얻어먹었다. 스티브 해킷도 그 때 그 사장님이 소개해준. 씨디도 한 장 주셨다.  


아무튼 스티브 해킷 할아버지는 여전히 왕성한 창작력을 보여주는 록음악계의 흰수염해적. 힘이 괴물같아서 아직도 엄청난 대작들을 막 쏟아낸다. 'Love Song to A Vampire'같은 거. 9분이 넘는데 후반부는 심지어 메탈 사운드도 나온다. 


아트록 앨범들은 대부분 한바퀴를 다 듣고 나면 진이 다 빠지는 느낌이다. 고전파 클래식은 듣다가 간간히 졸기라도 하지. 이건 뭐 졸만 하면 쾅쾅거리니까.ㅋ


여튼 올해의 아트록 앨범을 끝으로 연말 정산도 끝. 진이 다 빠지는 느낌이다.   




2011 '내 멋대로' 올 해의 음반 / 올 해의 영화 결산


딱히 정산할만한 것도 없어서 늘 그랬듯이 올해의 음반과 영화 결산.
당연히 내 멋대로이며 순위는 없고, 가나다순은 복잡해서(귀찮아서) 못하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따위도 없다.

음반

1. 코스모스 사운드 - Ep. 스무살


이 생소했던 이름의 노래는 듣는 순간부터 빠져들었다.
기타와 목소리외엔 별다를 것 없는 단촐한 사운드와, 후벼피듯 찌질하고 서글픈 가사는 얼마나 제목에 충실한가.
나는 성대다 류의 뽐내는듯한 보컬을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투박하고 서툰 목소리의 진심을 더 믿는편인데 한음절 한음절마다 마음을 다 담아서 내뱉는 것 같은 목소리는 금세 그의 세계로 빠져들게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여전히 아직도 스무살의 그 쓸쓸함과 절망감의 어귀에서 헤매는 중이라.ㅋ
 Ep를 넘어 나올 그의 정규앨범에 침만 꼴깍꼴깍.

2. 허클베리 핀 - 까만 타이거


나에게 최고의 밴드는 허클베리 핀이다. 사막이나 Somebody To Love가 들었던 2집은 내 생 최고의 음반을 결산하라고해도 반드시 들어갈 앨범.
당연히 늘 기다릴 수밖에 없고 나오면 뛰어가서 앨범을 사고 공연을 봐야했던 이 밴드가 유래없이 규칙을 깨고(허크는 3년마다, 11곡의 노래로, 한글이름의 정규앨범을 낸다.) 4년반만에 낸 앨범.

너무 오래기다린 탓일까(유앤미 블루 앨범도 아직 기다리는 주제에ㅋ) 괜히 이기용이 연애를하는 것 같네, 너무 방방떠서 진중하지도 사유할 수도 없는 것 같네, 이건 변절이네 하며 툴툴거렸지만, 언제나 버리지 못하는 노예근성. 결국 내내 허크 앨범을 듣고, 올 여름의 공연엔 모두 허크가. 그런데. 어라, 이거 좋잖아. 그것도 엄청.

그동안의 허클베리 핀에서 벗어나는 앨범을 만들어낸 이기용은 이 앨범을 백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을 앨범이라고 자평. 동의한다. 객석을 움직이게 하는 사운드에 얹은 메시지. 베이스가 탈퇴했음에도 더욱 또렷한 리듬감은 백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을테다. 심지어 이소영 누나는 치명적인 외모까지 갖게됐다. 하악하악. 옛날에 남상아 언니랑 비교해서 미안했어요.ㅋ 앞으로도 당분간 내 최고의 밴드는 허클베리 핀일듯. 한 백년쯤?ㅋ (아는 사람은 아는 밴드, 한국사람은 논외로ㅋ)

3. 이승렬 - Why We Fail


"이승열 신보 들어봤어요?"
"아니, 아직. 왜?"
"엄청나던데요."
"그렇겠지. 이승열인데"

딴딴함, 완결성, 신뢰감, 명불허전 같은 고루한 말들이 어울릴까.
코스모스 사운드가 처연하고 서글픈 친구의 노래였다면, 이승열은 내 맘을 어루만져주는 큰 형의 위로주같달까.
지루하거나 꼰대같은 맞는 말 퍼레이드가 아니라 고단함과 외로움을 앓을만큼 앓았다 일어선 똑똑한 큰 형. 미국유학 갔을때 놀만큼 놀아봤을것 같은 그런 큰 형.ㅋ 한대수 아저씨와의 콜라보가 주는 신선한 재미는 형님의 위트같은 느낌.ㅎㅎ

4. 2011 들국화 리메이크


헌정앨범은 당연히 별로일 수밖에 없다. 애초에 존경하는 뮤지션의 아우라를 넘어서기 위한 앨범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대해야 할 것은 상상력이다. 그리고 솔직한 고백이다. "난 이 노래를, 이 뮤지션을 좋아해서 이런 음악을 하고 있습니다."를 보여주는 고백.


들국화 리메이크는 그 미덕을 골고루 두루두루 보여주고 있다. 일단 참여 뮤지션의 면면이 화려하기 이를데 없는데, ( 그간 있었던 헌정앨범에 메이저씬의 유명한 가수들이 참여에 의의를 두었던 일은 그냥 잊어버리고)  김바다, 허클베리핀, MOT, 국카스텐, 한음파, 이장혁, 몽니, W&Whale, 그리고 무려 테이의 밴드 핸섬피플까지.

곡과 뮤지션을 떼어놓고 어울리는 짝을 찾아주자고 했을 때, 대부분이 이장혁에게 제발을 권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나 못에게 매일 그대와를 매칭시키는건 쉽지 않은 일이다. 전자는 고백이고 후자는 상상력이다. 모든 트랙이 훌륭하다. 김바다는 시나위 보컬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라는걸 확실히 보여준다. 그가 외치는 "앞으로!"를 듣다가 정말 앞으로 걸어갈 뻔 했다.(물론 뻥이다ㅋ) 못의 매일 그대와는 마치 음울한 스토커 살인마의 침실을 떠올리게한다. 사랑하는 그녀의 시체 옆에서 매일 아침햇살 받으며 눈뜨는 스토커.ㅋ 몽니의 치기어린 그것만이 내 세상은 그것만이 내 세상이라 외칠 어린 치기를 그대로 보여줬다. 한음파는 어떤 면에선 들국화보다 낫더라는...ㅋ 염려했던 웨일의 사랑한 후에도 무리없고 담백했다. 허크야 말해 뭐해..ㅋ

5. 나는 가수다 3차 경연 - 내가 부르고 싶은 남의 노래


MBC연예대상을 받은 나는 가수다를 빼놓고 올 해를 결산할 수는 없다.
나는 가수다는 이 즈음이 정점 아니었을까 하는. 지금이야 뭐. (인터넷 기사에서 전인권 아저씨가 나는 가수다에 나올 수 있다는 얘기를 봤는데, 반갑기 그지 없다가 괜히 속상해질수도 있단 생각에 마냥 반가워하기도 애매하더라능)

임재범이, 그 임재범이, 무려 그 임재범이 나와서 빈잔을 불렀을 때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게 저렇게 부를 수 있는 노래였구나. 임재범은 애국가나 찬송가에도 롹 스피릿을 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롹 스피릿이라면 이소라의 넘버원도. 사실 이소라가 나가수에서 부른 최고의 넘버는 사랑이야라고 생각하지만 넘버원도 빼 놓을 수 없다. 올 해 최고의 돌풍의 곡임을 온갖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자가 증명해 준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도 이 에피소드에서 불렸다. 여러모로 대단했던 에피소드.

6. 정차식 - 황망한 사내


레이니썬은 그렇게 주목하거나 좋아하는 밴드가 아니었다. 사실 잘 몰라서 더 관심이 없었던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당연히 정차식도 앨범 발매 후 한참이나 지나서야 듣게 됐다.

난 우울함과 쓸쓸함의 정서를 좋아하는데 그 한탄이나 슬픔, 체념의 정서에서 억지 희망의 강요보다 더 많은 위로를 얻기 때문이다. 윽박지르면서 행복하고 재미있게를 가장하는 노래들은 사실 거짓말이다. 세상은 그렇게 쉽사리 희망과 즐거움을 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정차식의 황망한 사내는 그렇게 황망한 슬픔을 노래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즈막한 바람은 없었다. 단지 내가 쓰라리고 아프고 격했던 시간 뿐인걸.] - 용서 中

이 퍼석퍼석한 슬픈 노래들에 위로받는 건 결코 내가 변태여서가 아니다.

7. 꽃다지 - 노래의 꿈


고등학교때 어릴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대학생 형이 '바위처럼'을 들려줬다. 대학에 가면 다들 이런 노래를 듣는다고 했다. 그건 반은 사실이었으나 반쯤은 거짓말이었다. 바위처럼만은 정말 시도때도 없이 울리는 노래였으나 꽃다지로 대변되는 민중가요는 그렇게 흔한 노래가 아니었다. 이미.

어느 시절엔 소위 '빡쎄다'고 표현되는 민중가요들을 즐겨들었다. 학생회실에서 엄청 큰 소리로. 그걸 부담스러워 하는 '학우들'의 찌푸린 얼굴을 오히려 즐기면서 오만했던거다. 그때 울리던 노래들의 많은 목소리가 꽃다지였다. 꽃다지는 어떤 운동권의 상징같은 존재였던거다.

더이상 대학생과 운동권이 등치하지 않고, 민주화는 이뤄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서 꽃다지는 무대를, 노래와 관객을 잃었다. 더이상 단결과 투쟁을 외치는 결기어린 선언의 노래가 필요치 않게됐다. 그러나 꽃다지는 희망의 노래답게 계속 노래를 불렀다.

이제 꽃다지의 노래는 결기와 분노에 찬 선언이 아니다. 그건 지나온 삶에 대한 고백과 기억이고, 희망에 대한 다짐이고 연대에 대한 위로다. 노래의 꿈이다. 그저 제창하기 쉬운 노래를 벗어나 음악적 성과를 내고, 그 성과로 다시 희망이 움트는 노래다. 그 희망에 동조하는 이들의 연대와 사랑으로 만들어진 이 앨범은 분명 올 해 최고의 음반 중 하나다.

8. 조덕환 - Long Way Home


일단 나는 거장이라거나 노인, 세월 같은 키워드에 굉장히 약해지는 어른공경컴플렉스 환자라는 것을 밝혀두자.

하지만 그럼에도 이 앨범이 엄청나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가 그 전설의 밴드 들국화의 한 축이었다는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위에 나는가수다에 대한 얘기도 있지만 지난 노래들을 다시 부르는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심지어 자신의 노래들이라면 그 부담은 더하다.(만약 자신의 노래라 더욱 쉽다면 그건 가짜예술이다. 자기복제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그건 지난 시간을 긍정하는 동시에 현재를 살아 한 걸음 나아가야하는 때문이다. 안주하지않는 삶의 증명.


난 들국화의 시대를 살진 않았지만 들국화의 위대함은 알고있다. 그래서 난 이 앨범의 노래가 역시 위대하고 30년쯤 후에 어느 찌질한 블로거가 역시 들국화와 조덕환의 위대함을 곱씹고 있을 것을 확신한다.


9. Iron & Wine - Kiss Each Other Clean


Flightless Bird American Mouth로 대변되는 그간의 아이언 앤 와인과는 또 다르다. 기타 한대에 고운 목소리로 노래하던 미국의 조동익같은 사람이었는데 현란한 비트와 사운드가 귀를 잡아끈다. 그런데 이게 좋다. 그건 아마 사운드가 덧씌워져도 티가 나게 마련인 좋은 멜로디와 예쁜 목소리때문. 그동안과는 조금 다른 음악을 상상하는 듯한 샘교수님의 다음이 더 기다려진다.


10. GD & Top - GD & Top


난 힙합이나 랩은 잘 듣지 않아서 좋고 나쁘고의 기준은 아무래도 굉장히 직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절묘하고 기발한 라임과 흥겹고 맘이 동하는 플로우에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그건 결국 간지가 전부라는 뜻이다.ㅋ (물론 전문가들이 그랬듯이 버벌진트나 가리온이 짱이겠지만 난 GD가 박명수랑 만든 랩이 더 좋은걸 어째.ㅋ)

난 이렇게 신나게 양아치처럼 노는 친구들을 본적이 없다.(양아치라는 표현이 거슬릴수도 있으나 이건 굉장히 좋은 의미임. 얽메이지 않고, 말 안듣고 노는 귀엽고 예쁜 동네 말썽쟁이쯤?ㅋ) 특히 GD는 타고난 양아치. Top도 멋지지만 그건 왠지 만들어지고 훈련된 느낌이랄까..ㅋ 그래서 GD는 어저면 현존하는 가장 완전한 아이돌.

11. 조동희 - 조동희 1


엔리케 이글레시아스는 인터뷰중에 아버지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얘기를 꺼내면 두말없이 자리를 떠나버린다고 한다. 후광이란 간절하고 감사할때도 있지만 지워내고 싶을만큼 혐오스러울 수도 있는거다. 조동희는 그런 엄청난 후광을 갖고 있다. 그녀의 오빠, 조동익과 조동진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빼놓기는 커녕 가장 앞장에 넣을 것인지 표지에 넣을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뮤지션이다. 요 며칠전에도 술자리에서 조동희 얘기를 꺼내다 그녀를 조동익의 동생으로 소개해야했다.


그녀는 그 후광을 거부하지도 거기에 매몰되지도 않았다. 그저 오빠들의 조언을 받기도 하고 도움을 받기도 하면서 자기의 노래를 완성했다. 그렇게 나온 첫번째 앨범. 지나간 시간들의 힘일까 아니면 정말 그건 핏줄의 힘일까 조동희의 노래엔 억지도 부담도 없다. 그 독백같은 목소리로 그저 담담하게 지나온 날을, 앞으로의 삶을, 소중한 것들을 노래한다. 슬프라고 강요하지도 기쁘라고 윽박지르지도 않는 자기 노래. 이 조씨남매들의 어마어마한 위력이다.


12. Paul Simon - So Beautiful Or So What



말했다시피 거장이나 어른에대한 무조건적인 동경이 있다. 그 대상이 폴 사이먼쯤 되면 사실 음반을 듣기전부터 좋을거야란 자기최면을 걸기도..ㅋ 사이먼 앤 가펑클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음악을 만들어내는 팀 중 하나기도 하다.그걸 영어로 하면 SG Wannabe(정말이다. 이 팀은 사이먼 앤 가펑클 워너비란 뜻이다).

여튼 그런 어른공경컴플렉스를 감안해도 이 앨범은 충분히 좋다. 풍부한 소리가 나는 포크랄까. 그리고 무엇보다 사이먼 아저씨의 멜로디. 이건 뭐 신사동호랭이 저리가라. 젊은 감각이란 뜻임.ㅋ 이 아저씨도 안주하지 않는 남자. 거장들은 역시 해내주신다. 어른공경컴플렉스를 고칠 생각이 전혀 안드는 이유다.




영화

1. Black Swan - Darren Aronofsky


순수한 욕망이나, 솔직한 광기 같은 것들을 꿈꾸지만 늘 갇혀있다.
그건 이성이나 관습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건 언제나 날 가장 안전한 상태로 있을 수 있게 해주지만 가장 이상적인 상태가 되는 것을 방해한다. 내가 만든 벽에 내가 갇히는 모양. 완벽한 백조여서 결코 흑조가 될 수 없었던 니나는 사실 날, 아니 사실 규칙 바깥을 상상할 수 없는 우릴 닮아서 더 슬펐다. 그래서 마침내 흑조가 날아 올랐을 때, 니나가 죽었지만 행복했음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탈리 포트만과 위노나 라이더. 각자 마치 자신을 연기한 것 같은. 가장 완벽한 백조지만 결코 흑조를 연기할 수 없는 나탈리 포트만은 이 영화를 마치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정말로 한물 가버린 여배우 위노나 라이더는 무슨 생각으로 베스를 수락했을까.ㅋ

2. 만추 - 김태용


관계가 가져오는 삶의 변화를 믿지는 않지만 좋아한다. 그건 희망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그걸 찾아서 헤매는 일과 비슷한거다. 시간이 멈췄던 애나는 훈의 시계를 받아 시간을 다시 돌린다. 화면은 훈과 애나 둘을 잡지만 주인공은 그 사이 어느께에 있는 둘의 관계다. 마지막 장면, 오지 않는 훈을 기다리면서 마침내 웃는 애나의 변화.


색,계에서부터 주목이야 했지만 탕웨이가 이렇게 아름다운 배우인줄은 미처 몰랐다.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는 시크릿가든이 막 끝나서 온 나라에 현빈 열풍이 몰아치고 있었는데, 정말 현빈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만큼 탕웨이는 아름다웠다.


3. 세상의 모든 계절(Another Year) - Mike Leigh


이상적인 가족공동체에 들고싶은 외로움이야.
하지만 정말 그런 공동체따위 정말 있을까. 그건 사실 내 외로움이 만들어낸 허상일지도 모르겠다.
삶이란 어쩌면 그렇게 멋대로 이상을 만들고 거기 들지 못하는 자신을 괴롭히고 외로워하는 자학일기 같은 것.
세상에 외롭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으랴. 아마 메리는 죽을때까지 화목한 톰과 제리의 가족을 ㅂ러워하면서 자기를 괴롭힐테다. 그건 아마 나도 마찬가지. 외로워서 어디서 눈칫밥이나 얻어먹는 신세를.

마지막 장면이 좋다. 담담하게 그 외로움을 포착하던 그 장면. 올해의 라스트 씬.

4. 혜화, 동 - 민용근


버려진 건 유기견이기도 하고, 손톱이기도 하고, 아이이기도 하고, 자기자신이기도 하다.
버려진 것들을 다시 주워모아 혜화는 마침내 자기 자신도 주워담을 수 있다. 버려진 순간 멈췄던 혜화가 마침내 움직이는(動)이야기. 그 동력은 과거에 버린 것들이지만 혜화는 주워담을 뿐 뒤로 돌아가지 않는다. 다시 한 걸음 앞으로 내딛는다. 매력적인 신녀성. 영화 중간에 흐르는 앵콜요청금지가 이 영화의 테마송일까.

유다인은 올 해 발견한 주목할만한 뉴스타. 뭉테기로 볼아주는 방송국의 쓸모없는 뉴스타 상보다 내가 주는 뉴스타상이 훨씬 값진거임. 내가 찍은 배우는 반드시 곧 스타가 된다니까. 백진희도 송중기도 김수현도 그랬어.

5. 굿바이 보이 - 노홍진


비우티풀은 아버지를 긍정하면서 성장했지만, 굿바이 보이는 아버지를 부정함으로 유년기를 마칠 수 있었다.
"아버지가 밍키를 잡아먹은 날, 내 유년기는 끝났다"고 뇌까리던 진우는 아버지의 무덤앞에서 웃음을 흘리고 담배를 피운다.
영화는 80년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신파도 아니고, 가정을 파괴한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을 정당화하는 영화도 아니다. 그 모든 것들을 미제나 자본의 탓으로 돌리는 무책임한 운동권영화도 아니다. 그것들은 모두 공존했다. 폭력적이고 무능했지만 기타를 퉁기며 노래를 부르던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증오하면서도 사랑했던 어머니와, 아버지를 부정함으로 존재를 증명하려했던 누이. 그리고 폭력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늘 가해자를 꿈꾸는 소년.

부계, 폭력, 가부장, 경제력, 무능 같은 키워드들로 얼룩진 80년대, 하지만 사실 지금도.

류현경은 10년전 단팥빵에 나올때도 선생님 친구 역할이었는데, 여고생역이 어울리는 까닭은 무엇이냐.

6. 오월 愛 - 김태일


광주는 너무 아픈기억으로 남거나 영웅들의 신화적 싸움으로 남았다. 물론 그건 맞다. 도시 하나가 폭도가 되어 국가에 의해 학살당했고, 그에 맞서 저항했고, 스스로 해방의 도시 대동의 세상을 만들어 살았다. 그걸 가능케한 영웅들도 있었고 이름도 없이 사라진 결코 잊지 못할 아픈 기억들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에게 주먹밥을 만들어주던 아줌마들도 있고, 끝까지 도청을 지킬 수 없었던 어린 학생도 있다. 광주를 기억하는 방식도 기억하는 부분도 저마다 다르다. 광주는 결코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과거이기도 하고, 절대 잊지 않을 한이기도 하고, 꿈에서나 봤던 아름다운 세상이기도 하다. 그 모든 것이 80년 5월의 광주다.

"벌써 이 모양인데 이제 우리가 죽고나면 누가 광주를 기억하겠냐"던 얘기가 제일 가슴에 남았다. 광주가 잊혀질 수도 있겠구나. 그저 역사책 한 페이지에나 나오는 그런 얘기로 잊혀져 사라질 수도 있겠구나.

7. 고백(Koku Haku) - Tetsuya Nakashima


복수극은 이래야한다. 복수란 스스로 파멸하게 하는 것이다.
냉철하고 치밀하고 야비하게. 어설픈 도덕교과서식 권선징악이 아니라 스스로 그 죄의 무게에 짓눌려 압사하도록 만드는 야비한 복수극. 냉철한 얼굴 뒤에 숨은 뜨거운 복수의 화신.

스토리 전개가 좋지만 것보다 처음 30분가량 복수의 출사표를 던지는 유코선생님의 그 냉정하고 예의바른 선언이 더 오싹하다. 유코가 복수에서 한 액션이란 사실 그게 전부다. 죄 지은 자들에게 쥐어준 제 살을 달아 파멸케하는 저울.

8. 파수꾼 - 윤성현


청소년기 남자애들의 우정이란 생각보다 얄팍하다. 하지만 그 남자애들의 폭력이란 생각보다 훨씬 잔인하고 허술하다. 그건 개연성도 의미도 없는 그저 존재확인이기 때문이다. 내가 너보다 쎄.

파수꾼은 그 지점을 명확히 잡아낸다. 그 폭력이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하지만 그 폭력에서 어떻게 기어나오는지. 그건 우정이니 용서니 하는 알량한 언어가 아니다. 그건 삶에 대한 의지다. 살고자 하는 의지는 폭력을 극복한다. 폭력을 극복해내지 못한 의지는 결국 죽음으로 이어진 것처럼.

이제훈을 주목하고 있다. 고지전을 지나면서 벌써 여럿에게 주목받고 있는듯 하지만. 역시 난 신인배우를 집어내는 탁월한 역량이.ㅋ 서준영도 광평대군에 이어 KBS일일 드라마 주연을 따내며 출세의 고속 열차에..ㅋ

9. 비우티풀(Biutiful) - Alejandro González Iñárritu


고단한 경계의 삶. 구원과 안식은, 최후에 다가설 그 곳은 가족.
아버지를 만나고 싶었어요.

사실 비우티풀을 넣을까 말까 고민했지만,
하비에르 바르뎀 아저씨의 자태가 잊혀지지 않아서..ㅋ

10. 무산일기 - 박정범 


탈북자들은 125로 시작되는 주민번호를 받는다. 그건 2등시민의 주홍글씨다.
그들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북한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그들은 그저 견뎌야한다. 잘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그들은 변해야하고 또 모두 변한다.

승철이 아끼던 강아지의 시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외면하고 돌아설 때 그는 비로소 남한사람이 됐다. 그는 이제 함부로 착한척하지 않을 것이고, 쉽사리 호감을 표현하지 않을 것이고, 요령을 갖고 사람을 대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봤자 그는 2등시민이다.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굴레, 주홍글씨도 찍어주지 않아 불쌍히 보이는 일마저 차단당한 그게 바로 무산계급이다.

11. 북촌방향 - 홍상수


홍상수의 영화를 보고나면 할 말이 참 많지만 뭐라 한마디 감상문을 적기도 어렵다.
그저 영화속에 나온 술집들을 한번 기웃거리는 일밖엔.

매 영화마다 훅 꽃히는 장면들이 하나씩 있는데,(거의 모든 장면들이 재밌고 좋지만) 이 영화엔 김상중의 찌질한 동조장면. "나도 그 생각해본적 있는데"

나도 그래본적 있는데 말이야, 지기 싫어서 뱉은 말이지만, 대부분 정말 그 생각을 해본적 있었단 말이야.
이런 말 하면 더 찌질해 보일텐데.ㅋ

까메오 대박. 고현정은 그렇다 치고 백현진이라니..ㅎ

12. Source Code - Duncan Jones


평행우주 이론을 이용하는 SF를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미드도 로스트. 한창 시즌까지 평행우주에 의한 멘붕들이 일어나는거라고 확신했었.ㅋ

이렇게 스토리가 탄탄해서 러닝타임 내내 집중시켜주는 오락영화를 좋아한다. 국내영화에서 찾자면 범죄의 재구성이나 타짜같은 최동훈류의 영화들. 치밀한 스토리 구성은 그 자체로 영화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되도않는 이론으로 무장하여 볼거리로 어떻게 쳐발라 버리는 예의 그 헐리웃 영화들은 더욱 혐오스럽달까.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디워같은.ㅋ

소스코드는 복잡한 주제의식 같은 건 없지만 그 탄탄한 스토리로 두시간동안 숨도 쉬지 않게한다. 올 해 나온 영화들 중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던 영화.

13. 환상극장 - 김태곤, 이규만, 한지혜


옴니버스 환상극장 자체보다는 세개의 단편들 중 하나인 한지혜 감독의 소고기를 좋아하세요?를 꼽은거다.
누구나 지켜보고 싶은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예전엔 고교야구에서부터 선수를 찍어서 지켜봐오다 마침내 프로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곤 기뻐하며 내 선견지명을 자랑하곤 했다. (임찬규 이형종 한기주같은 애들은 고교때부터 지켜보고 있었..ㅋ) 한지혜 감독의 전작 기차를 세워주세요를 보고선 이 감독이 만드는 또 다른 영화들을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환상극장에서 이름을 발견.

사실 기차를 세워 주세요에서 받은 감흥을 받지는 못했다. 충분히 흥미롭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그 기대감이 전혀 줄어들지 않는 까닭은 감독이 영화를 만들며 하고싶어 하는 이야기들이 흥미롭기 때문일까. 어쩌면 기차를 세워주세요가 엄청 좋아서 아직도 이러는 걸수도 있다.ㅋ 그러고보니 저번에 케이블 티비에서도 틀어주던데..ㅎㅎ



아 이걸로 밥벌어먹는 것도 아닌데, 너무 에너지 쏟았다.
도대체 몇시간을 쓴거야...ㅡㅡ;;

쓰면서 더 생각난 음반이나 영화들이 있지만 여기까지만 해야지.
열심히 한다고 누가 밥사주는 것도 아닌데.


Iron & Wine - Tree By The Ri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