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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비행 단상







이송희일 감독의 새 장편영화이고, 올 해 가장 기다렸던 영화다. 








1.

너 외롭지 않냐. 라고 물었고 그 대답은 결국 영화의 말미에 나왔다. 떠나지마.


영화 속 어느 한 명 외롭지 않은 이가 없다. 사실 사는 일이라는 게 다 그렇지 않나. 

우리는 모두 (아마) 외롭다. 외롭다는 말을 건낼 사람도 한 명 없을만큼.


외로움을 나눌 수 있는 이, 

사실 곁에 누군가 있다고 해서 외롭지 않을 수는 없다. 

그보다는 단지 서로가 외롭다는 사실을 나눌 수 있는 이를 친구라고 부른다.

너 외롭지 않냐. 라고 물을 수 있는 사람. 


그래서 친구가 없으면 세상은 어쩌면 정말로 세상은 끝이겠다. 

그 끝간데 없는 외로움을 토설할 이마저도 사라진다면.





2.

나중에 알게됐는데 영화 속 선생님으로 나왔던 현성은 임순례 감독의 세친구에 무소속으로 나왔던 배우였다.

(그래서 영화관 옆에 있는 카페에 임순례 감독님이 앉아계셨던 건가?ㅋ)


용주와 기웅이, 기택이나 성진이가 외롭고 슬픈만큼 현성이 연기한 담임선생님과 학주도 외롭고 슬퍼보이는 건 마찬가지였다. 장어즙과 하체운동, 해병대로만 자기를 과시할 수 있었던 찌질이. 친구가 뭐가 중요하냐는 말, 서울대 가라는 말을 그렇게 슬픈 얼굴로 하던 담임 선생님.

(사실 나는 영화에서 담임선생님의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오기를 바랐었다.)





"세친구의 무소속이 어른이 된다면 저 담임의 모습일까."하는 글을 읽고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 세친구들도 서로를 잊어갈테고 외롭다는 말을 건낼 이도 없이 세상을 견뎌내는 어른이 된다면 외롭다는 말을 하지도, 들어주지도 못하는 어른이 되겠구나. 그리고 또 똑같은 과정은 아이들에게.



3.

어떤 면에서 영화가 끝까지 가지 않았다는 느낌도 받았다. 


서로에게서 위로를 구하고 서로를 이해하거나 납득하거나, 그마저도 아니라면 까닭이라도 알아채는 일이란 생각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생떽쥐페리는 비행하다 결국 사라지듯 죽었다. 빛을 찾아 날아가는 일이란 생각처럼 낭만적이지 않다.


하지만 끝까지 가지 않은 것이 아쉬운 건지 아니면 더 다행인지는 모르겠다.


엘리베이터에서 눈물을 흘리던 소년을 보면서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그 끝을 굳이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을까, 아니 할 수나 있을까. 용주가 엘리베이터에서 주저앉아 눈물 흘릴 때 숨이 턱하고 막혀왔는데. 희망, 친구의 한 마디 눈길과 손길. 그까짓 거 그게 뭐 그렇게 어려운 거라고 영화에서마저 끝을 운운하나. 싶은 마음도. 



4.

그래서 마지막 장면이 좋았다. 이건 해피엔딩일까, 아니면. 

사실 해피엔딩이 뭐라고.


불안하고 무섭고 외로워 죽겠는데 부여잡은 건 고작 서로의 손밖에 없는 상황, 그나마 이 손도 언제까지 잡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그 어두컴컴한 마지막 장면에서 흐르는 음악이 어쩐지 행복하게 들렸다. 이건 해피엔딩이야. 라고 말하는 것처럼. 


해피엔딩 따위 모르겠지만 그저 살아가야 한다면 그 손이 아이들에게 희망이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에 흐르던 그 음악이 행복하게 들렸던 건 아이들이 부여잡은 가냘프고 위태로운 희망에 대한 찬가. 같아서일까.  




5.

기웅이를 연기한 이재준이 잘 생겼다. 카메라가 비추는 방향에 따라 계속 다른 얼굴이 나오는 느낌이었는데,

어떤 순간순간에 기깔나게 잘생긴 눈이 보인다. 수염도 좋고. 내가 수염 페티쉬가 있어서 그러는게 아니다. 하악하악.





그밖에 이송감독의 영화가 늘 고민할 수밖에 없는 신인배우의 연기력. 이 아쉽겠지만 어쩐지 이번 영화를 계기로 다음, 혹은 다다음 영화 쯤에서는 유명하고 연기도 잘하는 주연배우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후회하지 않아보다 더 상업적으로 흥행 할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 (만드는 입장에서도 그걸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좀 들었고)



6.

하지만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인물은 게이어플로 만난 용주의 친구다. 

이름이 안나왔었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용주를 짝사랑하던 귀요미.


생글 웃던 이 귀요미가 눈물 흘릴 때. 넌 등을 보이지 마.


 



7.




이 영화의 베스트 컷이다.

박미현 배우의 연기가 영화를 통틀어 등장하는 모든 배우들의 연기력을 합친 것만큼 좋기 때문이다.

는 공식입장이고


진짜 이유는 그냥 아는 사람들만 아는 걸로 하자.ㅋ


[곤돌라 펌] 우리는 철거 당하고 있다


우리는 철거 당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영진위는 이번에 독립영화를 철거하고 싶은 모양이다. 아니, 철거에 성공하고 있다. 인디스페이스를 철거했고, 미디액트를 철거했고, 한국 영화인들의 또다른 산실인 영화 아카데미를 축소 재편, 혹은 철거하려고 한다. 영진위 조희문 위원장은 '시네마테크와 그의 친구들' 오프닝 행사에 가서 "3D 극장이 본격화 되는 이 때에 오래된 영화를 상영하는 시네마테크가 필요한지 의문"이라고 말하며 철거에의 의지를 천명했다. 어쩜 그리 똑같나, 재개발업자들의 단골 주장 되겠다. 자칭 평론질로 밥 빌어먹은 이력의 소유자가 스스로 영화의 역사를 부정하는 저 발언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문광부와 영진위는 3D 시장을 한국에 안착시키겠다고 잔뜩 벼르고 있다. 이 와중에 독립영화며, 예술영화며, 2D 영화들이며, 영화 인력풀이며를 전적으로 쓸모 없는 것들로 치부하는 양상이 적나라하다. 철거가 시작된 것이다. 다양한 문화적 양상을 '낡은 것'이라 치부한 채 도태되어야 할 철거 대상으로 설정하는 것이 그러하며, 독립영화와 예술영화에 대한 감각과 경험이 거의 부재한 자칭 젊은 우익들에게 개국공신에게 나눠주는 전리품인 양 10년 성과물들을 던져주고 있는 것이 그렇다. '한예종 사태'는 영화판 철거의 시작이었다.

그래놓고, '100분토론'에 나가서 이명박 정부는 민간 영역과 정부 부처의 소통이 가장 원할한 정부라는 터무니 없는 궤변을 늘어놓고, 현 영진위가 마치 영화판 사람들과 원할하게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거짓말의 향연을 벌였다. 어디서 많이 보아오지 않았나? 뒤로는 철거 연장을 든 채 앞에서는 시민 여러분과의 소통 어쩌고 하는 저 잿빛 재개발 정치인들 말이다.

대통령이란 사람은 삽질의 기술을, 문화를 담당하는 저 공무원들은 3D의 원천기술을 우리네 유일한 삶의 원천인 양 설파하고 있는 이 살풍경한 시대에 '예술'은 철거되고, 기술의 수사만 횡행하고 있다. 하긴 어디 영화판 뿐이랴, 곳곳이 철거 투성이다. 곳곳이 용산이다. 과연 이 정부를 '철거 정부'라 불러도 하등 이상할 게 없겠다. 그래, 이랬으면 좋겠다. 왜 구태여 '영화진흥위원회'라는 타이틀을 고수하는가. 이 참에 영진위는 아예 문광부와 통합해 '3D진흥위원회'로 개명하고, 향후 남은 철거 일정을 고시해주길 바란다.

워낭소리의 흥행에 힘입어 손수 미디액트까지 왕림하셨던 유인촌 문화부 장관은 "지원에서는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알고 보니 "배제와 선택"이었다. 덧붙여 "많은 사람들에게 적은 액수의 지원을 하는 것보다 확실한 쪽을 밀어주는 게 낫지 않겠나."고도 말했다. 알고 보니 "확실히 듣보잡들"을 밀어주고 있다. 이게 바로 그들의 철거의 논리다.


이송희일 - 곤돌라

++

돌아와줘, 독립영화

2008년을 맞이할 즈음의 겨울에 나는 그야말로 한량이었다. 주어진 일도 없고 주어질 일도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세수도 안하고 슬리퍼 바람에 동네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 아카이브에서 교과서나 똑똑한 감독님들 인터뷰에서만 보던 제목의 영화들을 찾아서 한참을 보고
열람실에가서 배깔고 누워(물론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다, 한시간쯤 읽다보면 자연스레 몸의 고도가 낮아지는것이...흠흠) 고전 명작과 역시 똑똑한 형들의 인터뷰에서 거론 되던 제목들의 책을 찾아 읽었다.

어느 날에는 아침 댓바람부터 인디스페이스로 출근해서 그 날 인디스페이스에서 하는 영화들을 죄다 보고 오기도 했다. 그 즈음의 계절엔 영화제도 많아서 나다의 마지막 프로포즈나 서독제나 시네마 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여성영화제 인디다큐페스티벌까지 영화제란 영화제는 다 찾아다니며 기웃거렸다. 인디스페이스에 앉아서 영화시간을 기다리며 주워 듣는 풍문이나 넥스트 같은 종이 쪼가리들은 그런 정보들이 차고 넘쳤다. 그 해에 여성영화제 자활을 지원하기도 했다. 떨어졌지만..ㅎ

그런 한량세월이 수개월이 누구에게는 한심해 보이고 누구에게는 찌질해 보였을지어도 돌이켜보면 그렇게 '유익했던'시간들이 또 있을까 싶을만큼 소중하다.

그때 봤던 그 영화들의 관객수를 다 합친다 하여도 해운대가 한 극장에서 동원한 관객보다 많을까. 그 영화들의 모든 수익을 더해봐야. 아니, 경제적인 수익이 있기나 했을까 그 영화들에. 그러나 그 영화들은 이렇게 소중한 영화들이 또 있을까 싶을만큼 소중하다.

자본주의의 총화라고 불리지만 영화는 오직 상품이 아니다. 위로와 치유, 해소와 사랑 같은 역할은 '오직 상품'이 감당할 수 있는게 아니다. 

또 어느 계절인가 내겐 그렇게 찌질하고 능청스럽게 영화를 보러 다닐 계절이 올테다. 그 영화들과 책들에서 또 위로 받고 치유하고 성장해 가며 다음 계단을 노려보게 될테다. 그런 날이 왔을 때 돈 되는 영화, 조폭과 3D와 예쁜 여배우와 PPL만 남은 영화들만 극장 간판에 걸려 있다면 대단히 슬퍼질테다. 그러면 정말이지 난 아마 삐뚤어지고 말테야.

돌아와줬으면 좋겠다, 용관이 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