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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본 영화들 단상



- 베를린
류승완은 액션영화의 극의를 향해가고 있구나. 조금 뻔한 설정과 스토리지만 그건 나쁜 의미라기보다는 차라리 첩보액션 장르영화의 공식과 매력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 

무엇보다 액션이 발군. 많이 얘기하는 것처럼 본 시리즈가 생각난다. 정두홍이 누구보다 신났겠더라. 

캐릭터의 혜택을 가장 받은 배우는 류승범, 가장 눈길이 가는 배우는 전지현. 외모때문이 아님. 

전지현은 좋은 배우가 돼가고 있다는 느낌적인 느낌. 

- 남쪽으로 튀어
임순례의 연출과 김윤석의 연기력이야 두 말 필요없으니 재미있는 영화가 나오는건 당연하겠다. 그러나 김윤석이 분한 주인공은 그다지 흥미롭지도 새롭지도 않은 그냥 왕년의 '한국' 운동권이고, 다른 캐릭터들도 마찬가지. 아나키즘이 저항보다는 '억지'로 소비되는 모양. 최해갑이라는 인물은 모든 권위에서 탈주하고 싶어한다기 보다는 그냥 갑질하는 꼰대로 보여. 때문에 와이키키나 세친구에서 보였던 흥미나 아릿함도 없다. 

조금 더 얘기하자면 사실 영화가 하고싶었던 얘기가 뭔지 잘 모르겠는. 


신경쓰지 않으려해도 제작과정에서 발생한 마찰이 기억나게 되더라. 임순례 감독이 어느 곳에선가 "다 만들어진영화에 감독이름이 필요해 이름만 빌려준 것"이라고 말했다는 소식을 풍문으로 들었소만. 믿거나 말거나. (난 임순례 감독이 아무리 화가 많이 나도 공식석상에서 그런 말을 함부로 할 분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하지만 자기이름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성에차지 않는 것만큼 화나는 일이 어디있을까.) 


- 더 헌트
지혜로워야 한다거나 그럴 수 있다는 강박이 인간을 얼마나 어리석게 만드는가. 혹은 인간을 얼마나 폭력적으로 만들 수 있는가. 

어설픈 정신분석 상식을 들먹이며 "충격때문에 네 무의식이 기억을 지운거야"라고 말할때 소리를 지를 뻔했다. (객석에선 실제로 한숨을 내쉬거나 신음을 뱉는 관객들이) 그건 실수라기 보다는 게으름이다. 원하는대로 사건을 해결해 빨리 치워버리고 싶어하는. 그건 분노보다는 차라리 즐거움이었다. 꼼짝못할 곳까지 사냥감을 몰아놓고 정확히 조준해 총을 쏘아버리는. 거기서 이성의 역할은 없다. 

마지막까지도 이성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 사실 그게 실체기도 하고. 

메스미켈센이 멋있다. 고독한 중년 꽃미남. 남우주연상은 아무나 받는게 아니다.

-우묵배미의 사랑
"아, 사는거 참"


어느 누구든 살아가기 위해서 사랑해야하고, 마음을 기대야하고, 자기 존재를 가져야한다. 

그 형태가 불륜이거나 섹스이거나 집착이거나 이도저도 아니거나. 어쨌든 그렇게 살아야한다. 


90년이라는 기가막힌 시대적 배경은 그렇게 살아갈 마을 혹은 마음을 침식당한 시절이다. 20년도 더 지난 영화의 여성들이 갖는 그 수동적인 태도와 남성들의 성폭력적인 모습이 불편하다가 이내 "그게 사실인걸". 저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구나. 그렇게들 자기존재를 확인하고 증명하려고 한다. 다만 존재감을 지워버리는 시대.의 시작. 


사실 영화 얘기를 이렇게 주절거리는건 다시 본 이 영화 얘기를 하고 싶어서. 시골도 도시도 아닌 어느 '주변도시'. 그곳에서 살아가는 원주민도 뜨내기도 아닌 주변인들. 그건 사실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 보이는 이들. 그 우묵배미와 우묵배미의 사랑들은 지금도 여전히, 어쩌면 앞으로도.

장선우의 영화들은 (그러니까 '너에게 나를 보낸다' 나 '거짓말' 같은) 사춘기때 친구들과 몰래보며 키득거리던 야한영화.라는 이미지였는데. '접속'이 나오기 전까지 90년대의 한국영화들은 참 볼품없다고 생각했는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올 해에는 장선우와 배창호, 이명세를 다시 찾아봐야 하겠다.

덧,
이 모든 영화들이 '문라이즈 킹덤'의 매진으로 인한 예기치 못한 관람이었다는 충격적인 사실. 오늘은 기어이 문라이즈 킹덤을 봐야겠다. 효도르와 김보성의 '영웅'도 꼭 영화관에서 봐야지.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