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들> - 무엇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는 이야기





# 극적인 순간


믿을 수 없는 일, 놀라운 시간, 기억하고 싶은 것들, 잊히지 않는 사람. 그런 것들을 극적인 순간이라고 부른 다면 영화의 순간이란 일상과는 가장 배치되는 것이다. 


어제 퇴근 길, 지하철 맞은 편에 앉아 있던 사람. 남자였는지 여자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그 사람의 얼굴. 오늘 점심시간 담배를 산 가게의 주인 아저씨의 얼굴과 목소리. 십수년 전 들었던 교양수업 강의실 건너건너 자리에 앉아있던 어느 과인지도 모르는 사람의 얼굴. 전혀 극적이지 않은 그런 것들을 그러모은다고 영화가 될 수 있을까. 하지만 영화가 될 수 없다고 그것들에 이야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이야기가 있으니 영화도 될 수 있는 것이지. 


<얼굴들>은 가장 극적이지 않은 영화다. 극적이지 않으니 서사에는 개연성이 없고, 갈등의 고조와 절정이나 해소가 없고 원인과 결과도 없다. 아니다, 없다기 보다는 보이지 않는다. 모든 얼굴들에는 저마다의 서사와 개연성과 목소리와 절정과 분노와 슬픔이 있겠지만 그런 것들이 모두 보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없는 것일까. 보이지 않는 이야기들을 보여주는 것. 여백이란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 있는 것이다. 


삶의 순간들이란 모든 곳에서 극적이고 모든 곳에서 극적이지 않다. 내가 평화롭고 안온하게 보낸 어느 순간이, 혹은 평화롭고 안온하다고 여겼던 어느 순간이 누군가에게는 삶이 뒤흔들리는 순간일 수도 있고 실은 그 어느 누군가가 나 자신일 수도 있다. 


<얼굴들>에서는 어떤 설명도 없고 어떤 이야기도 없었지만 혜진은 아마 회사동료들과 식사를 마치고 어색하고 쓸모없는 대화를 나누는 순간에 이미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결심했을테다. 그 순간 마치 인생극장의 이휘재처럼 '그래, 결심했어'를 떠올리지는 않았을 수도 있지만 그녀가 문득 "나가죠" 라고 말하는 순간에, 어쩌면 밥을 먹고 물을 마셔야 할지, 물을 먹고 밥을 먹어야 할지를 떠드는 순간에, 테이블 위 네명 중 어느 누구도 서로를 바라보고 있지 않을 때, 그녀는 회사를 나가게 될 것을 알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순간은 그렇게 극적이지 않은 얼굴들에서 보여지지 않는 것으로 있는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모두 보이지 않는 얼굴들이다. 잊히는 얼굴들이고 굳이 기억하지 않는 얼굴들이다. 그보다는 영화의 인물이라고 보이지 않으니 주인공이라는 말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다. 영화는 인물도 사건도 배경도 제공하지 않는다. 인물이 없으니 갈등이 없다. 갈등이 구체화되는 사건도 없다. 사건이 없으니 서사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들은 존재하고 있고 심지어 관객은 거기에 감응하고 이해하거나 오해하거나. 사실 모든 일이라는 것이 그렇지.


# 무엇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는 이야기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생각할 때면 늘 '사람'이나 '사건'의 돌출을 떠올린다. 누구의 이야기, 어떤 이야기, 어떤 일에 대한 이야기. 그런 것들은 극적인 요소다. "개가 사람을 무는 일이 아니라 사람이 개를 무는 일"에 천착하는 태도. 사실 상징과 은유, 메타포란 얼마나 작위적인 일인가. 고작 기호와 돌출된 이야기로 세계를 이해하겠다는 불온하기 짝이 없는 오만일지도.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이 다를 것인가, 왜 다를 것이고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 질문들의 중첩을 이야기라고만 여긴다면 <얼굴들>은 최악의 영화다. 다만 그 사이에 존재하는 여백들에 관심을 돌릴 수 있다면,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카페의 통창 너머 길 건너에서 걸어가고 있는 얼굴도 보이지 않는 남자의 삶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면, 그 남자의 삶을 함부로 말하거나 구기지 않고 그 얼굴 자체를 보거나, 그와 나 사이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그 공간에 실은 무엇이든 있을 수 있음을 떠올린다면 <얼굴들>은 근래 나온 영화 중에 가장 뛰어나고 가장 극적인 영화일 수 있겠다.


덧,

혜진이 지영과 함께 (영화에는 이 둘의 관계가 안나와서 영화를 보는 한동안은 혜진의 새 썸녀가 아니었을까, 기선과는 그래서 헤어졌을까..를 생각했지만 그게 뭐 무슨 상관이야) 골목골목을 헤매고 다니는 장면이 좋았다. 예쁘지도 요즘 유행이라는 그 흔한 벽화도 없는 골목. 빈 사무실, 공사현장. 뭐 그런 것들. 무엇이 있겠지만 내게 굳이 설명해주지 않는 그 공간들. 


초행을 볼 때도 생각했지만 김새벽은 정말 멋있는 배우다. 









  




요즘 본 영화 몇 편


1. 자객 섭은낭





허우샤오시엔은 친절하지 않다. 굳이 설명하려 들지도 않는다. 다만 보여주고 공감하고 상상하게 만든다. 

서사를 해설하는데 품을 들이는대신 치밀하고 아름다운 미장센이 극을 이끌어간다.

내면을 관조하는 데에는 대사보다는 배우의 치밀한 연기가, 풍광이, 영화 속의 장치들이 작용한다. 

느린 호흡과 진행, 순차적이지 않은 시퀀스의 배열 같은 걸 두고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건 일종의 여백의 미 같은 것. 상상력으로 채워넣으면 될 일.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의 영상미란 이런 것이다 라고 단정하는 듯한 그림들 앞에 지루할 틈이나 있을까.


2. 검은 사제들





호러 영화를 한국에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가장 명확히 보여준 영화가 아닐까.

엑소시즘 같은 거야 수입된 장르인데, 그게 한국 땅에서 한국인 신부들에게, 그것도 한국사회의 가톨릭 교회라는 공간에서 어떻게 조율될 수 있는가를 매우 적절한 균형감각으로 진행하고 있다. 쓸데없이 거창한 이야기들을 하지 않아서 좋았고 디테일한 부분들 (일테면 사제와 부제들의 일상적인 모습들, 꼰대스런 군상들)까지 명민하게 잡아내서 더욱 흥미롭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동원. "사제복은 그런 핏이 날 수 있는 옷이 아니"라는 어느 신부님의 절규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강동원은 반칙이긴 하다 좀. 돼지를 안고 있어도 케미가 쩔어.


아무튼 섹시하고 연기잘하는 중년배우.를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는 강참치가 이 영화의 미덕 1등.


3. 내부자들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니고. 오락영화로서 다가서고자 했다면 재미가 없고 흥미진진하지도 않으니 실패.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면 얄팍하니 실패. 배우들의 간지로 승부하고 싶었다면 캐릭터를 더 섹시하게 만들었어야지. 그것도 실패. 대 망작.


이병헌의 사투리 연기가 재미있었다. 만 네이티브 호남인이 사투리 너무 어색해서 확 깼다.고하니 수긍해야지. 하여 미덕없는 대 망작 확정.


4. 혼자





머릿속에 남아있는 잔여물들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것들을 직시할 수 있다면.

하지만 그것보다 좋은 건 잔여물을 남기지 않을 수 있도록 살아가는 것. 

있지도 않은 위협들. 사실은 내가 쳐 죽인 자아.

 

우리가 머릿속을 들여다 볼 수는 없으니 꿈에 의존하거나 아니라면, 영화를 만들거나.

야간비행 단상







이송희일 감독의 새 장편영화이고, 올 해 가장 기다렸던 영화다. 








1.

너 외롭지 않냐. 라고 물었고 그 대답은 결국 영화의 말미에 나왔다. 떠나지마.


영화 속 어느 한 명 외롭지 않은 이가 없다. 사실 사는 일이라는 게 다 그렇지 않나. 

우리는 모두 (아마) 외롭다. 외롭다는 말을 건낼 사람도 한 명 없을만큼.


외로움을 나눌 수 있는 이, 

사실 곁에 누군가 있다고 해서 외롭지 않을 수는 없다. 

그보다는 단지 서로가 외롭다는 사실을 나눌 수 있는 이를 친구라고 부른다.

너 외롭지 않냐. 라고 물을 수 있는 사람. 


그래서 친구가 없으면 세상은 어쩌면 정말로 세상은 끝이겠다. 

그 끝간데 없는 외로움을 토설할 이마저도 사라진다면.





2.

나중에 알게됐는데 영화 속 선생님으로 나왔던 현성은 임순례 감독의 세친구에 무소속으로 나왔던 배우였다.

(그래서 영화관 옆에 있는 카페에 임순례 감독님이 앉아계셨던 건가?ㅋ)


용주와 기웅이, 기택이나 성진이가 외롭고 슬픈만큼 현성이 연기한 담임선생님과 학주도 외롭고 슬퍼보이는 건 마찬가지였다. 장어즙과 하체운동, 해병대로만 자기를 과시할 수 있었던 찌질이. 친구가 뭐가 중요하냐는 말, 서울대 가라는 말을 그렇게 슬픈 얼굴로 하던 담임 선생님.

(사실 나는 영화에서 담임선생님의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오기를 바랐었다.)





"세친구의 무소속이 어른이 된다면 저 담임의 모습일까."하는 글을 읽고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 세친구들도 서로를 잊어갈테고 외롭다는 말을 건낼 이도 없이 세상을 견뎌내는 어른이 된다면 외롭다는 말을 하지도, 들어주지도 못하는 어른이 되겠구나. 그리고 또 똑같은 과정은 아이들에게.



3.

어떤 면에서 영화가 끝까지 가지 않았다는 느낌도 받았다. 


서로에게서 위로를 구하고 서로를 이해하거나 납득하거나, 그마저도 아니라면 까닭이라도 알아채는 일이란 생각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생떽쥐페리는 비행하다 결국 사라지듯 죽었다. 빛을 찾아 날아가는 일이란 생각처럼 낭만적이지 않다.


하지만 끝까지 가지 않은 것이 아쉬운 건지 아니면 더 다행인지는 모르겠다.


엘리베이터에서 눈물을 흘리던 소년을 보면서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그 끝을 굳이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을까, 아니 할 수나 있을까. 용주가 엘리베이터에서 주저앉아 눈물 흘릴 때 숨이 턱하고 막혀왔는데. 희망, 친구의 한 마디 눈길과 손길. 그까짓 거 그게 뭐 그렇게 어려운 거라고 영화에서마저 끝을 운운하나. 싶은 마음도. 



4.

그래서 마지막 장면이 좋았다. 이건 해피엔딩일까, 아니면. 

사실 해피엔딩이 뭐라고.


불안하고 무섭고 외로워 죽겠는데 부여잡은 건 고작 서로의 손밖에 없는 상황, 그나마 이 손도 언제까지 잡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그 어두컴컴한 마지막 장면에서 흐르는 음악이 어쩐지 행복하게 들렸다. 이건 해피엔딩이야. 라고 말하는 것처럼. 


해피엔딩 따위 모르겠지만 그저 살아가야 한다면 그 손이 아이들에게 희망이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에 흐르던 그 음악이 행복하게 들렸던 건 아이들이 부여잡은 가냘프고 위태로운 희망에 대한 찬가. 같아서일까.  




5.

기웅이를 연기한 이재준이 잘 생겼다. 카메라가 비추는 방향에 따라 계속 다른 얼굴이 나오는 느낌이었는데,

어떤 순간순간에 기깔나게 잘생긴 눈이 보인다. 수염도 좋고. 내가 수염 페티쉬가 있어서 그러는게 아니다. 하악하악.





그밖에 이송감독의 영화가 늘 고민할 수밖에 없는 신인배우의 연기력. 이 아쉽겠지만 어쩐지 이번 영화를 계기로 다음, 혹은 다다음 영화 쯤에서는 유명하고 연기도 잘하는 주연배우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후회하지 않아보다 더 상업적으로 흥행 할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 (만드는 입장에서도 그걸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좀 들었고)



6.

하지만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인물은 게이어플로 만난 용주의 친구다. 

이름이 안나왔었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용주를 짝사랑하던 귀요미.


생글 웃던 이 귀요미가 눈물 흘릴 때. 넌 등을 보이지 마.


 



7.




이 영화의 베스트 컷이다.

박미현 배우의 연기가 영화를 통틀어 등장하는 모든 배우들의 연기력을 합친 것만큼 좋기 때문이다.

는 공식입장이고


진짜 이유는 그냥 아는 사람들만 아는 걸로 하자.ㅋ


올해도 이런 짓이나 하고 놉니다 - 2013 영화/음반 결산


언제까지 이런짓이나 할른지 모르지만, 여튼 올해도 1년동안 좋았던 노래랑 영화들. 결산.


(오토플레이로 노래 걸어놨어요, 시끄러우면 맨 밑으로 내려가서 꺼주시압)


# 영화


1. 설국열차




어떤 사람들은 인간이 생존 할 수 있는 오직 하나의 생태계인 열차를 민주적이고 정의롭게 운영하는 방법에 대해 논의했어야 한다고 말했었다. 열차밖으로 나가선 결국 북극곰에게 잡아먹힐 뿐이라고. 그러나 북극곰이라는 생명체가 이미 (그것도 먹이 사슬의 최상위에 있는 포식자가) 살아가는 생태계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더욱 중요하다. 인류의 존속을 위해 열차의 운행이 지속돼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지극히 인간중심적 사고다. 생태계의 주인은 인류가 아니다. 오히려 인류는 지구의 '암세포'같은 존재에 가깝다. 여하튼, 결코 나아질 수 없는 이 세계보다 나은 세계를 상상하는 일은 이 세계에서 이뤄지지 않는다. 문을 부수고 밖으로 나가야지만.


새로운 지구에 새로이 발을 디딘 어린아이들(신 인류의 조상)이 인상적이었다. 어린 흑인 남자아이와 벽 너머를 볼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진 연상의 동양소녀. 인류가 지향해야 할 혹은 인류가 가장 꿈꾸는 형태의 조합 아닌가. (사실 앵글로 색슨이 멸종한게 아주 초큼 통쾌했었다ㅋ)



2. 노라노




역사란 고루하거나 박제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또 내일을 주조하는 것이라는 사무치는 교훈. 꼰대질하는 늙은이가 아니라 삶의 지혜를 나눠주는 어른들. 그보다는 계속계속 지혜로워지며 함께 살아갈 나이들었지만 늙지 않는 언니들과 그녀들의 예술. 


엄마를 극장으로 끌고가게 하는 힘. 

"엄마, 노라노 입어봤어요?"



3. 카운슬러




카운슬러의 감독이 코엔형제라고 착각했던 건 매카시의 극본을 처음 본 영화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였기 때문이다. 아마. 그러니까 이건 리들리 스콧보다는 매카시가 먼저 떠오르게 되는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가 선명하게 기억나던. 그러니까 우리에게 공포와 폭력, 그런 것들을 가져오는 운명앞에 우리는 얼마나 가련하고 나약하고 하잘것 없는 존재인지, 또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는 건지를 잔인하고 집요하게 보여주는데 혈안이 된 영화다. 


그건 인간이, 혹은 살아가는 모든 존재가 갖는 근원적 비극이고 어쩔 수 없는 일이며 그다지 의미있는 일도 아니다. 죽이는데 죽어야지. 그리고 그 죽음이란 것도 사실 별거 아니다. 드럼통에 시체를 담아 이쪽 저쪽 국경을 옮겨 다니거나 죽은 시체를 쓰레기장에 버리거나 하는, 그러니까 죽음이란게 (누군가에겐) 그렇게 하잘것 없고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삶이라는 것도 어느 누구에겐 퍽이나 쓸모없다는 그런 얄밉게 정확하고 냉정한 이죽거림.


문학작품처럼 받아들여질 법한 대사들도 그렇고 치타가 약한 짐승들을 사냥하는 걸 또 지켜보며 그 치타를 키우는 카메론디아즈도 그렇고 탄성이 나올법한 장면들이 숱하다. 그리고 페넬로페 크루즈는 엄청 예쁘고 카메론 디아즈는 늙어서 더 섹시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브래드 피트. 헐 대박.



4. 더 헌트




소수가 다수를 상대로 사냥을 하는 일은 없다. 언제나 떼를 지어 포위망을 이루고 도망갈 곳을 잃은 한마리의 사냥감을 죽인다. 더 헌트는 사냥에 관한 영화이며 인간이 무리를 이뤄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그 사냥의 대상이 되는 '개인'은 얼마나 무력한지를 드러낸다. 우리가 오직 옳은 것이라고 믿었던 공동체나 혹은 다수결, 민주주의 같은 말들이 실은 무엇보다 어리석고 폭력적이며 돌이킬 수 없는 실패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직시한다.


인간사회에서 대개의 경우 사냥감은 합리적 비판과 준엄한 재판 대신에 감정과 알리바이(난 거기에 가담하지 않았다는)를 위해 결정된다. 그리고 결정된 사냥감을 향해 드러내는 이빨이나 가학성은 놀랍도록 잔인하며 그 잔인함은 대게 정의나 도덕, 혹은 이성같은 말들로 포장된다. 영화에서 어른들은 주인공의 아동성추행을 입증하기 위해, 자신의 거짓말을 시인하는 소녀에게 "너무 두려운 사건이라 네 무의식이 그날의 기억을 지운거"라는 되도않는 심리학 지식을 들먹이는 장면에선 실소를 넘어 공포심까지 들었다.


우리는 공동체를 만들고 그에 속하려고 발버둥친다. 대게 공동체에서 버림받아 상처받지만 상처를 주는 배제와 소외 역시 공동체에 의해 이루어진다. 



5.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더이상 '이야기'를 치밀하게 짜는 일 따위엔 관심을 두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홍상수의 영화들은 도리어 치밀한 이야기 구조를 갖는 것처럼 보인다. 그건 플롯이나 서사에 따르는 구조라기 보다는 캐릭터와 그에 다르는 자연스런 상황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힘에 가까운데 아마 캐릭터만 주고 그날의 상황이나 배우의 연기에 많은 것을 맡기는 그의 작업방식에 따른 것이기도 하겠다.


여하간 해원은 근래 홍상수의 영화에서 가장 '예쁜'여자였는데 유부남을 만나는 언니를 미쳤다고 표현하면서 정작 자신은 유부남을 사랑하거나. 자유로운 사랑을 꿈꾸며 이선균의 속물근성을 비난하는 동시에 자신은 결혼상대로 적합한 미국교수에 호감을 표현하는 것 같은 종잡기 '충분한'그 꼴보기 싫음에 기인하는 바가 크겠다. 원래 썅년들이 예쁜법이다.


누구의 딸도 아니고 싶었던 해원은 사실 누구의 애인이거나 딸이거나 제자이거나. 하는 관계 밖에서는 살 수 없는, 혹은 살아본 적도 살아갈 능력도 없는. 그런 보통의 여자애, 라기 보단 보통의 사람. 늘 우리는 독립과 주체를 꿈꾸지만 한 순간도 종속되고 소속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것처럼.


최근의 홍상수 영화에서 '꿈'이나 '상상'이 주된 소재로 쓰이는데,(시간과 공간을 완전히 무시해버리는) 꿈을 꿨다 깼다하는 해원처럼 잘 어울리는 이도 없더라. 정은채도 예쁘고. 



6. 러시안소설



영화보다는 한 편의 소설같은 영화는 그 문장(대사라기 보다는)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해내는 듯한 영상들로 흥미를 배가한다. 흑백과 같은 톤으로 진행되는 영화의 전반부는 러시아 소설마냥 급하지도 경쾌하지도 않은 속도로 꾸역꾸역 이야기를 전개한다.


과장된 자의식과 꼭 그만큼 유난스런 컴플렉스가 절묘하게 버무려진 캐릭터들과 그들을 부추기는 주변부의 조화가 병맛같은 이 상황을 극단적으로 몰고가면서도 부대끼거나 억지스럽지 않게한다. 사실 러시아 소설이 그렇지않나. 장황하고 엄숙하지만 뚝 덜어져서보면 병맛같은 상황. 심지어 이름도 지랄같고.


두번재 오프닝 시퀀스가 등장하고 나오는 총천연색의 현시점은 어쩐지 전반부의 남자애들처럼 들뜨고 산만하지만 그건 그거대로 뭐. 어쩐지 급하게 마무리한 것 같은 성긴구석이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그대로 읊어 나가던 카페 느와르가 떠오르기도 하고. 지루해질 것 같으면서 전혀 지루하지 않았던 소설책, 이거 재밌자고 쓴게 맞다.  



7. 홀리모터스



영화와 세계에 대한 질문이면서 동시에 감독 자신에 대한 자기고백. SF와 뮤지컬 가족드라마를 넘나드는 '오스카'( 참 이름도 의미심장하다), 혹은 감독 자신의 꿈의 연장이면서 동시에 현대의 영화의 연장이다. 통일되는 주제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으며 사실 어떻게 보면 무슨 말인지도 모를만큼 혼란스럽다. 하지만 그것은 놀랄만큼 영화의 거의 모든 즐거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고 영화란 결국 꿈의 연장임을 또 감독과 배우란, 그리고 영화를 보는 관객 일반들 역시 꿈을 꾸고 그에 열광하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입증한다. 그리고 곧 다가올 '자정' 모든 것이 끝날 자정에 대한 부담과 걱정. 


재미있는 것은 카락스의 영화를 보면서 종종 일으키곤 하는 이미지의 착각인데, 카락스의 전작(은 폴라X라고 말하겠지만 도쿄 3부작의 '메르드'가 있다. 사실 이 광인, 메르드의 이미지가 홀리 모터스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로 이어진다) 메르드를 보고 나는 갑자기 '체 게바라'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순간 깜짝 놀랐는데, (전적으로 외모 때문이다) 예수와 닮은 메르드에 대해 말하다 불현듯 체와 예수의 공통점을 발견하려고 애쓰기도 했었다. 홀리모터스의 메르드를 보고도 같은 생각을 하다가, 몽유병에 걸린 귀신이 극장을 빠져나오는 장면에선 "하나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고 말하던 맑스를 떠올렸다. 뭐, 가져다 붙이자면 못할 것도 없겠으나, 이거 좀 병이다.ㅋ


8. 아티스트 봉만대



여배우의 몸을 전시하고 섹스신과 어색한 연기, 개연성없는 상황을 즐비하게 늘어놓고 남성 관객 일반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켜주지도 못하니까 요즘 고삐리들은 에로영화 안보고 일본 AV를 보는거 아니냐)시키려는 목적만을 갖는 저열함. 이 한국의 에로영화를 바라보는 스테레오 타입이면서 동시에 비교적 정확한 분석.되겠다.


'에로영화'라면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보기 일수인 상황에 (실제로 색안경 끼고 봐도 할 말없어지는 에로영화들이 즐비한 것도 현실) 봉만대의 존재는 어쩌면 감사할 일이다. 봉만대의 영화는 적어도 개연성 없이 배우들의 몸을 소모하거나 그들을 남성관객 일반의 눈요기로 전락시키지는 않는다. 그리고 적어도 "정말 야하다" 야한게 그저 훌렁훌렁 옷을 벗기는 것은 아니라는 걸 확실하게 알고 있다는 느낌. 일까.


에로영화라기 보다는 에로영화 현장에 대한 페이크 다큐에 가까운 영화는 실제로 어떻게든 색안경에서 벗어날 수 없는 감독과 배우들과 현장에 대한 관찰이다. '노출'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성은이나 곽현화 이파니는 물론이고 (그녀들에게 그런 편견을 주입한 것도 그것을 이용하고 좋아하는 것도, 그리고 그래서 또 그 편견을 경멸하는 것도 오직 남성임을 영화는 여실히 드러낸다) 십여년동안 대표작이 여전히 번지점프를 하다인 여현수까지 배우들의 적나라한 고민과 한계를 필터없이 보여준다. 이는 봉만대 감독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인데, 에로라는 장르영화에 애정과 나름의 철학을 갖고 임하는 감독 자신을 '떡감독'이라 칭하는 웃픈대사가 영화의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라디오스타에 나왔던 봉만대에서 드러났지만 영화는 시종일관 유머러스하면서도 동시에 그 설움과 그럼에도 갖는 'B급'들의 열정에도 소홀하지 않다. 다소 성긴 이야기와 구성이 거슬리기도 하지만 그런건 얼마든지 웃어넘길만큼의 미덕들이 있다.


9. 힘내세요, 병헌씨



청춘이나 꿈, 위로, 격려 같은 말들에 얼마나 신물이 나면 얼마전엔 서점에서 "청춘으로 사느라 힘들었지"같은 제목의 책도 목격했다. 영화를 만들겠다는, 혹은 그게 아니라도 무엇인가 하고 싶다는 꿈이 괴로운 것은 비단 우리가 청춘이어서가 아니며 그래서 청춘이 그렇게 아름답게 포장되거나 대상화되길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원래.


똥마렵다고 연출부에서 잘린 병헌씨는 되도 않는 헛소리로 시간을 보내는 백수한량이고, 어쩌다 운좋게 얻어걸린 시나리오로 데뷔를 하려다 결국엔 좌절된 어이없는 인상이며, 임신한 아내를 두고 바람피우다 이혼당한 못난 남자고, 그럼에도 어께에 힘이 잔뜩 들어가 강형철 따위.라고 말하는 찌질한 군상이다. 그러니까 곧 '나'고 어쩌면 '당신'이다.


그래서 그가 좌절하지 않고 끝내는 운좋게 얻어걸린 시나리오로 입봉하고 흥행한 상업영화 감독이 되길 바랐지만 어차피 안될거라는 걸 영화 시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 애가 성공하면 안되는 거다. 찌질하고 못나고 게으른 사람은 성공할 수 없다. 그러니까 우리가 할 수 있고 또 듣고 싶은 말은 "잘될거야" 같은 의미없고 막연한 위로나, 어차피 다 알고 있는 귀찮은 잔소리가 아니라 "힘내라"는 단 한마디였다. 사실 그거 아니면 할 것도 없으니. 병헌씨가 상업영화 감독으로 성공하길 바라진 않지만, 그가 영화를 꾸준히 계속 만들어주길 바라는 마음.  


10. 지슬



어떤 영화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을 꺼내기가 어렵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5월의 광주를 소재로 삼아 욕지기 나오는 영화 따위나 만들었던 어느 작품들에 대해 경멸 이상의 감정을 갖고 있지만 지슬에는. 제주 토박이 감독이라 할 수 있는 표현들과 대사들에서 그 날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어쩌면 필름도 제주도에서 만들어진걸 쓰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4.3에서 희생된 그 모든 넋들에 대한 진혼곡이었던 영화는 어느 편에 서서 분노를 부추기지도 뜨거움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저 죽어간 모든 이(군인이든 양민이든)들의 넋을 위로하는데만. 그래서 뜨거움을 강요하고 선악을 굳이굳이 구분하려던 몇몇의 (정치적) 영화들에서 보이는 거북함이 없다. 다만.


때마침 지난 4월, 제주를 찾아 항쟁의 유적지를 둘러본 직후 영화를 봤다. 아직 우리 사회엔 미처 정산하지 못한 일들이 숱하다.  그들은 무엇때문인지 죽어야했고 무엇때문인지 감춰지거나 외면당하거나 왜곡돼야 했으며 무엇때문인지 아직도. 


11. 그밖에,


블루재스민이나 화이, 사이비, 베를린, 우리선희 같은 영화들도 참 좋았지만 힘들어서 패스. 10개 채웠잖아.ㅋ

전설의 주먹, 감기 같은 올해의 (대)망작들도 한마디씩 써볼까 했지만 힘들어서... 좋은 영화도 안쓰는데 뭐. 

하지만 강우석은 전설의 주먹이 재미없으면 앞으로 영화를 안만들겠다고 공언했으니 다시는 영화를 만들지 않아야 한다. 퉤퉤퉤.



# 음반


1. 들국화 - 들국화



전설의 귀환. 몇몇 사람들이 "수작이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을 내놓아서 맘에 들지 않았지만 그건 취존의 영역. 그들은 전설이라고 하여 음악 외적인 것들로 그들을 평가(저평가든 고평가든)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일견 동의. 사실 나도 들국화의 앨범을 올곧이 음반 자체로서만 평가하는건 아니기 때문이다. 들국화의 1집을 들으며 자란 세대들에게 이번앨범의 의미와 들국화를 상상하며 자라 이제서야 비로소 들국화를 만나게 된 이들에게 이 앨범의 의미는 분명히 다르다. 분리시킬 수 없는 것을 분리시키라고 한다면 그건 억지. 


그래서 들국화의 이번 앨범은 내게 전설의 위용을 그대로 확인시켜주는 음반이다. '걷고걷고'같은 노래는 환갑의 나이든 '형등'에게서만 들을 수 있는, 그리고 그들이 여전히 꼰대가 아니라 선배임을 알려주는. 더욱이 재채기 같은 곡들은 그들이 어쩌면 나이도 먹지 않은게 아닐까 싶어지는 노래다. 


주찬권 아저씨가 돌아가셔서 아마 공연을 보지는 못하겠지만, 아듀 주찬권 공연이라도 한 번 쯤 해줬으면 싶은 팬으로서의 욕심이 있다.


(앨범 녹음을 다 끝내놓고 불현듯 떠나버린 주찬권, 어느 땐 그 위력에도 불구하고 앨범을 몇 장 만들지 못한 들국화의 새 앨범을 위해 하늘이 주찬권 아저씨에게 소명을 줬다가, 소명을 다한 그를 데려간 건 아닐까.. 뭐 그런 공상도 해본다. 여튼 아저씨..엉엉엉)


2. 윤영배 - 위험한 세계



종탑이나 망루, 구럼비, 자본주의, 국가주의 같은 말들을 이렇게 서정적이고 담담한 목소리로 부를 수 있다니.

그의 노래를 듣고 누가 "민중가요 흉내내는 겉 멋"이라고 혹평했는데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서정성이라는게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이나 남녀간의 오매불망한 마음만을 노래하는데서 오는 것은 아니다. 또한 '시대'나 세상을 이야기한다고 그대로 진지하고 무거운 이야기로 빠져드는 것도 아니다. 분명 그동안의 경향성이 그래왔던게 사실이라면 윤영배의 음악은 그 모든 것이 가능한, 그러니까 서정적인 민중가요라든가(이런 표현은 쓰면서도 심히 거슬린다) 하는데 닿아있다. '좀 웃긴' 앨범부터 그랬지만 윤영배는 어저면 조동익 조동진 이후 가장 걸출한 포크가수인 것 같다. 


3. 조용필 - Hello



들국화를 비롯해 유독 '전설'이라 불릴만한 이들의 귀환이 많았던 해지만, 그 중에서도 최고의 화제는 역시 조용필 (JYP...같은 농담하면 안되겠지?ㅋ) 가왕이 왜 가왕인지, 그가 왜 여전히 현역인지. 세월이 묻어서 녹이되고 지난 날의 영광을 붙잡고 산다면 추해지겠지만 세월의 먼지와 주름을 골골이 새겨 숙성시킨다면 그게바로 '장인'이겠다. 여전한 용필오빠. 혹은 옛날보다 더 멋있는 용필오빠.


(여담이지만, 우리 엄마는 용필오빠의 앨범이 나온 날 바로 조인성에 대한 애정을 거두셨다. 그냥 걔는 귀여워 한거지 용필오빠를 향한 팬심은 거둔 적 한 번도 없었다는 명언을 남기시기도. 때마침 조인성이 연애를 시작하면서 아줌마 팬들의 인기를 잃어가는 중이었다는 말은 패스ㅋ)


4. 장필순 - Soony 7



올 한 해 가장 많이 들은 앨범은 역시 장필순이겠다. 신보 발매직후 찾았던 공감에서도 느꼈지만 그녀의 음악은 이전보다 훨씬더 사색적이고 고요하고 평온하다. 그렇다고 노래가 지루하거나 평이하게 흐른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그녀가 사는 곳을 들먹이며 제주의 바람같은...을 운운하면 너무 유치하니까 빼버리더라도 마치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도 평온한 자연 속의 노래들.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줄곧 귀에 곷고 있었던 거겠고. 특히 '눈부신 세상' 같은 노래는 아마 올 해의 단 한 곡.


5. 이승렬 - V



고백하건대, 이승렬쯤 좋아해주지 않으면 음악 듣는게 아니지. 같은 마음이 없는건 아니다..ㅋ

열광하는 유앤미블루나 그의 솔로1집과는 다분히 차이나는 이번 앨범은 이런 고백을 이끌어낼만큼 낯설었다. 그렇다고 그의 음악이 생소해 좋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신기하고 재미있는 사운드 모음집. 좋아하는 그의 보컬과 세련되고 안정적인 멜로디에 빠졌던 팬의 마음에서 지나간게 더 아쉬운 그런거다. 왜, 난 소녀시대의 노래중에 다시만난세계를 제일 좋아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달까.ㅋ


여튼 나올거라는 소문만 무성한 유앤미블루의 앨범도 얼른얼른. 이승렬은 이제 솔로에선 예전으로 회귀할 것 같지 않았거든. 하지만 좋습니다, 이번엔 진짜라구요.


6. 강아솔 - 정직한 마음



강아솔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흔해빠진 '홍대 여신'을 연상한게 비단 내 잘못만은 아니다. 기타를 매고 예쁜 목소리로 조근조근 말하는 '여성' 싱어송라이터.라는 말에 그동안 덧씌워놓은 이미지는 그런거 아니었나. 다만 강아솔의 음악을 듣고서 그녀가 그런 '흔해빠진' 누구들과는 사뭇 다르다고 느낀 까닭을 뭐라 명확하게 말할 수는 없다.


그건 이번 앨범 제목처럼 '정직한 마음'때문일 수도 있겠고. 그녀가 단지 예쁘고 '잘 팔리는'노래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말 좋은 노래를 만들고 부른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일테다. '엄마'나 '남겨진 사람'같은 트랙에서 보이는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 관계에 대한 그녀의 정직하고 착한 마음이 느껴지는 때문일테다.


우클렐레나 오카리나 같은 악기 써가며 예쁘고 상큼하게, 그러니까 대학 새내기들이 싸이월드 배경음악에 걸어놓을 법한 사운드들을 부러 만들어내지 않아서 그런 마음이 더 잘 닿는 것이겠지. 여튼, 언젠가의 와우북페에서 랩퍼가 되고 싶다고 말했었는데, 아.. 진짜로 랩음반 내줬으면 좋겠네..ㅎㄷㄷ


7. 이효리 - Monochrome



핑클은 나에게 빛이고 과학이며 진리였으며 곧 신앙이다. 그래서 사춘기 때부터 줄곧 꿈에 효리가 등장하면 연애대상이었고 다소간 야한 상상도 곁들여지는 발칙한 소년이었는데.. 그런데 어느날부턴가 꿈에 이 누나가 나오면 연애를 하는게 아니라 연애'상담'을 하고 있다. 내가 인식하는 그녀의 포지션이 이제 그렇게 바뀐거겠지. 이건 그녀가 나이들었다거나 섹시하지 않다는게 아니다. 그녀는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가장 섹시한 여성이고 가장 매력적인 여성이다. 무려 거기에 현숙함가지 더해져 이젠 넘사벽이 된..엉엉엉 이상순 나쁜놈.


언젠가 토크쇼에서 동물보호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공장식 축산과 반련동물 시장의 비대화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봤는데, 이 누나가 패션으로 생명권보호를 소비하는게 아니라는 확신을 다시 한 번 갖게됐다. 그리고 다시 그녀의 매력속으로..이상순 나쁜놈 엉엉엉.


그러면서 기대했던 것은 그녀의 노래였다. 난 노래란 사는만큼 불러지는 것이라 믿는 낭만주의자여서 더욱 넓어지고 현숙해진 그녀의 노래가 좋을 것이라는 당연한 기대를 품었고 역시 빛이고 과학이고 진리인 그녀는 내게 응답을 주셨다. 아멘, 이상순 나쁜놈 엉엉엉.


앨범 전체가 좋은 트랙들로 꽉 차있었고, 여러가지를 시도하며 재미있게 만들었습니다.란 느낌이 확실히 전해지는 앨범이었다. 특히 미스코리아 같은 노래는 더. 앨범 전체에 묻어있는 롤러코스터의 냄새는 그녀의 남편의 도움이겠고 그걸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말하는 옛날 DSP시절부터의 안티놈들의 분열책동과 악선전이 있었지만 그게 뭐 어때서.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좋은 마음과 좋은 영향을 받으며 변모해가는 그녀에게 아낌 없이 지지와 박수를 보낸다. 이효리를 국회로... 이상순 나쁜놈 엉엉엉


8. Sigur ros - Kveikur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면서 '시규어로스'와 비욕의 나라.라고 표현하던 친구가 아이슬란드의 펍에도 제이슨므라즈가 흐르더라.는 통탄을 뱉어냈었다. 그래, 술마시며 노는 펍에서 시규어로스는 무리야.


하지만 이번 앨범의 시규어로스는 펍마저도 정복할 심산인가보다. 보고있나 므라즈. 

서정성, 간결함, 신성, 아이슬란드의 찬바람. 같은 말들로나 표현되던 그들의 음악은 보다 격정적이 됐고, 한 걸음 더 세련되졌다.  이야 겨우 익숙해진 것 같은 그들의 '말'도. 기품과 우아함을 포함한 모종의 격정.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까, 써놓고도 참 조야하다.


지난 여름 시규어로스의 공연을 가지 못한게 일평생의 한으로 남겠지만, 또 오겠지?   


9. Arcade Fire - Reflektor



이번 앨범에 대해 댄서블해졌느니 리듬이 어쩌구 하는 말들을 막 하더라만, 잘 모르겠으니 패스. (흠좀무)

하지만 기존의 앨범들이 지나면서 망작을 내버리는게 (대) 유행인 시절에 꾸준히 좋은 또 일관성있게 좋아지는 모습을 보여주는건 엄청난 미덕이다. 게다가 남의 나라말로 하는 노래는 별로 듣지도 않는 나같은 아이에게 아케이드 파이어의 존재는 대 축복. 내가 앨범을 챙겨 듣는 남의 나라 '현역'밴드가 있어효..ㅎㄷㄷ


기존의 앨범들에서 보여주던 훨씬 폭발적이고 열기띈 음악에 대한 아쉬움들이 있겠지만, 이들도 나이를 먹어가고 동시에 음악도 변모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하낟. "아, 그랬어, 그럼 다음은 뭐야?"하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그런 좋아하는 팀이 있는 건 참 복받은 일이다. 


우리의 선배들이 라디오헤드나 콜드플레이, 좀 더 위로가서 U2에게 가졌던 그런 마음들을 꾸준히 나도 가지고 가다 십 몇년 후엔 아케이드 파이어도 레전드가 될 날이 오면 좋겠다.


10. GD - Coup d'etat



난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가장 과소평가 받는 음악인 중 하나로 GD를 꼽는다. 그가 패션센스 예능감, 스타성을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의 가장 큰 매력인 음악을 평가절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가 방송이나 공연에서 기깔나는 간지를 보여줄 때마다 열광하면서 동시에 안타까운 맘을 갖게 될 수밖에 없는데, 그건 "저러면 또 음악은 듣지도 않고.."하는 팬심 때문이다.


이번 앨범은 그의 음악적 성취와 그의 상업적 성취가 가장 적절한 비율로 섞여있는 앨범이라고 생각했다. 삐딱하게 같은 트랙은 우리가 그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가장 신나고 가장 보편타당한 노래였다. 방송에서 부르면서 팬들은 물론 관객 일반 모두를 열광시킬. 동시에 늴리리야나 Black 같은 곡들은 그가 작곡자나 프로듀서로서 얼마나 좋은 감각을 가졌는지를 보여주는 곡이겠다. 단언컨대 가장 완벽한 아이돌.


GD에 대한 호불호는 취존의 영역에서 인정할 수 있지만 GD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취존의 영역이 아니다.


11. 그밖에,


우리 지은이의 이번 영리한 앨범이나, 김오키, 나윤선 같은 앨범들이 좋았다. 특히 나윤선의 앨범은 상찬이 자자했지만 그래서 더욱 나는 뭐. 좋은거 알겠는데, 나까지 좋아해야해.? 하는 마음도 약간. EXO나 샤이니, F(x)도 역시 좋았다. 이로서 난 SM의 노예 인증. 





Sigur Ros - Brennisteinn

은밀하게 위대하게




은밀하게 위대하게. 

1.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때부터 그랬지만 장철수 감독은 영화를 잘 찍는다. 말인즉슨 김봉남도 은밀하게도 모두 이 영화가 내보여야 할 가장 큰 매력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있다. 는 것.

2. 은밀하게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김수현이다. 김수현은 또래의 남자배우들 중 특출날 정도로 영민한 연기를 해내고 마찬가지로 특출나게 아름답다.

3. 지난 해 늑대소년 개봉당시 이후 영화관에 가장 많은 여성관객이 몰려드는 것을 봤고 몇년만에 처음으로 멀티플렉스에서 영화가 매진돼 두시간 이상을 기다려봤으며 늑대의 유혹 이후 처음으로 영화관 안에서 비명소리를 들었다. (괜찮다. 나도 비명 지를 뻔 했다. 어후. 그리고 같이 본 우리 엄마는 비명을 질렀다. )

3. 간첩, 바보, 꽃미남, 야오이, 슬랩스틱, 가족애. 까지. 오락영화의 흥행요소들을 전부 버무려놓은 영화는 그럭저럭 볼만한 수준에서 흘러가고 다시 강조하지만 그건 김수현의 압도적인 매력과 그를 표현해 낼 줄아는 감독의 역량 때문이겠다. 

4. 다행인지 나는 이 영화의 원작 웹툰을 보지 않았다. 

5. 두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은 후반부로 갈수록 지루하다. 제 멋대로 반전이라고 우겨넣은 장치들은 유치하다못해 조악하고 지루하다. 개연성 없는 줄거리도 흥미로웠던 것은 캐릭터들의 매력 때문이었으나 김수현과 이현우가 억지부리고 납득도 안되는 인물로 돌변하자 영화 전체가 힘을 잃는다. 감정은 과잉하고 더불어 연기도 과잉한다. 한 씬을 십분가까이 끌어버리는 그 아연실색할 편집은 또. 난 무슨 타르코프스키인줄 알았다. 

6. 감독이 영화의 장르가 무엇인지 순간 착각한 듯한 후반부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그럭저럭 재미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미친듯한 흥행돌풍의 이유도 납득할 수 있을만큼, 오락영화의 미덕은 충분하다. 

7. 손현주, 고창석, 주현, 홍경인 같은 좋아하는 배우들이 잔뜩이지만 이네들의 매력을 충분히 살려주지 '않은' 것은 또 서운함. 그렇다 그건 살려주지 않은 것. 사실 씬 스틸러가 많을수록 영화는 산으로 가는 법이니까. 

8. 다 해야 예닐곱 씬밖에 안나온 박은빈은 엄청 아름답다. 내가 박은빈이 만 15세일 때부터 알아보고 찜해놓은 매의 눈. 근데 왜 구암허준 같은걸 찍고있냐 말이지. 

9. 영화에 나오는 동네를 보면서 엄마랑 저 동네 엄청 좋다고 얘기했다. 동네사람들이 같이 삼계탕을 끓여먹고, 어른들 심부름으로 멸치똥도 따고, 밤중에 애가 없어지면 온동네 사람들이 찾으러 다니고, 외상으로 산 담배를 슈퍼앞 평상에 앉아 피우는. 그런 동네.

전국노래자랑 - 그래도 Let's Rock'n Roll

 

 

 

영화는 나른하고 통속적이고 신파적이다.

그러니까 아무리 좋게 얘기해줘도 좋은 영화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그렇지만.

 

언제부턴가 영화의 이야기가 삶을 괴롭히지 않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다. 그건 현실의 삶이란 언제나 고단하고 비관적이며 (적어도 오늘 날의 세상에는) 희망같은 것을 말하기에 너무 가혹한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겠다. 그래서 해피엔딩(처럼 보이는) 통속신파극을 보고나서 늘 하는 말은 "결국 해결된 것은 없잖아"

 

사실 이경규 아저씨와 배우들(특히 류현경과 유연석)에 대한 팬심만으로 본 이 영화도 그랬다. 그래서 보는내내 투덜투덜. 마찬가지로 삶의 문제는 하나도 해결된 것이 없는데 영화는 그저 해피엔딩으로 달려가고.

 

하지만 아무 개연성 없이 무능한데다 무책임하기까지한 남편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장면에서 문득.

 

삶이란 복잡다난하지만 또 동시에 다분히 통속적이며 신파적이기도 하다. 개연성 없이 누군가를 증오하기도 하고 누군가를 용서하기도 한다. 하물며 반려자 혹은 가족이라면. (난 아직도 우리 부모님의 감정과 관계를 적절히 이해하지 못하겠다.)

 

삶의 문제란 종종 그렇게 미숙하게 봉합되고 사소한 계기로 해소된다. 거기다 그 해소란 것이 진짜 정답인지는 언제까지고 알 수 없다. 해결하지 못해 곪아터지기도 하지만 섣불리 해결하려 들다가 어긋나고 덧나 다치기도 한다. 그럼 어쩌면.

 

노래자랑에서 불러재낀 카스바의 여인 한자락이 지난한 삶의 고민들을 모두 해소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그건 상관 없다는 뜻이거나 모든 영화가 거기에 가닿을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는 뜻이다. 다만 이 영화의 바람처럼 "이게 당신의 문제를 해소해주지는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어쩌면 사소한 희망일 수도 있길 바라요"하는 마음.

 

 

고다르는 "영화는 현실의 반영보다는 반영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영화란 현실을 똑 떼어내 필름안에 박아넣는 것이 아니라 만든 이의 의식을 현실화 시켜내는 것.

 

요즘 무언가를 볼 때마다 극중 인물들의 고통을 대상화하며 즐거워했다. 좋아하는 어느 영화 감독의 "근래에 나오는 단편영화들이나 시나리오들에 대해 타자의 고통을 내면화하고 사유하는 과정없이 그저 소비, 전시하는 장르적 착취만을 가하고 있다"는 충고를 보고선 아 그렇구나. 싶었다. 그간 내 태도는 마치 삶의 정체를 응시하는 냉소적 관찰자 코스프레. 그리고 말한 것처럼 영화를 바라보는 태도는 곧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다.

 

타자의 고통을 소비하고 착취하면서 희망을 부정하는 것. 얼마전 예상치 못하게 갑작스레 끼적인 글쪼가리에서도 그랬다. 그저 괴롭히는데만 급급해서는.

 

더 폭넓게 사유하고 이해하고 응시하는. 그리하여 마침내 그럼에도 부여잡는 희망의 부스러기마저 포착해내는.

 

전국노래자랑이 그렇게 고단한 삶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그럼에도 한 줄기 희망을 부녀잡는 좋은 극본의 영화라는 것은 아니다. 그저 "삶이란 그럼에도" 같은 건강한 마음의 미덕을 돌아보게 됐다는 것.

 

 

그러니까 말인즉슨, 나도 류현경 같은 아내가 있으면 좋겠다는.ㅋ

 

요즘 본 영화들

 

 

 

끝과 시작

 

오감도를 그다지 재밌게 보지는 않았다. 민규동 감독들의 전작들도 어딘가는 늘 아쉬웠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은 다분히 오바스럽다고 느껴졌고,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은 그저 예쁘기만 했다. 결국 민규동의 최고작은 언제까지나 여고괴담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했드랬다.

 

그래서 오감도의 에피소드 중 하나였던 끝과 시작에도 그닥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마치 액자식 구성인 '양' (그렇다 액자식 구성인체 하고 있지만 이 영화는 액자식 구성이 아니다) 시간과 공간, 인물들의 인과가 말그대로 끝과 시작이 베베 꼬여들어서는. 마치 뫼비우스처럼, 그 끝과 시작을 알 수 없는. 아니 그보단 차라리 끝이 곧 시작이 될 수 있고 어느 시작은 끝에서 비롯됐음을 자연스레 이르는. 그래서 삶의 모형이란 마치 계단 모양의 꺾은선 그래프가 아니라 둥글고 원만해서 그 수식의 정리조차 어려운 연속의 그래프라는 그런.

 

물을 주면 식물이 자라는 카드나, 마술, 유령, 환상 같은 소재들이 눈에 띈다.

다만 김효진과 엄정화의 사랑은 너무 눈에 보이게 숨겨놓아 밋밋하다는 느낌도 든다.

황정민과 김효진의 정사장면은 엄청 섹시하다. 김효진이 엄정화 머리 감겨주는 장면도.

 

 

 

 

링컨

 

영화는 전형적인 스필버그 영화다. 위인은 다분히 신성화되고 정치적으로 올바르다. 공상과학에 대한 스필버그의 상상력은 대단하겠지만 그가 발휘하는 영화적 상상력은 언제나 아쉽다. 다만, 그럼에도 그의 영화는 재밌다.

 

그렇게 링컨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영화다.

노예해방을 이끌어낸 인간적인 대통령, 정치가로서의 링컨과 아버지, 남편으로서 괴로워하는 노년 남성으로서의 링컨을 적절히 조합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링컨을 덜 위대하게 그리지는 않는다. 영화는 그의 노예해방 정책이나 남북전쟁의 숨은 의도 같은 논란거리 많은 이야기들은 피해간다. 아니 피해간다기 보다는 아예 안중에도 없다. 그게 거슬리지는 않는다. 사실 링컨은 그런 뒷 이야기들을 하지 않아도 충분할 만큼 스토리도 많고 멋진 정치가임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긴 러닝타임에, 품 안에 숨겨놓은 비수같은 장치도 없는 영화가 재미있을 수 있는 공의 가장 많은 부분은 링컨을 연기한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가지고 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어쨌건 "내가 나오는 영화를 안보면 너희만 손해"라는 포스를 풀풀 풍겨주고 있고, 실제로 그의 영화를 보고 영화가 못마땅한 적은 있어도 (사실 거의 없다.. 라스트 모히칸이나 나인 정도..?) 그가 못마땅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심지어 잘생겼어.

 

 

 

장고

 

피가튀고 살점이 뚝뚝 떨어지는 와중에 묘하게 웃기기까지 한 서부극.은 아마 지구에서 타란티노가 가장 잘 만들 수 있을 테다.

 

제이미 폭스가 영화에서 몇 명의 백인이나 죽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진짜 엄청 많이 죽인다) 그가 죽이는 흑인은 단 한 명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디카프리오의 집사를 연기한 사무엘 잭슨을 죽이는데 그게 이 영화의 가장 재미있는 부분일테다. 영화의 와꾸는 결국 노예제도에 핍박받는 흑인들이 백인들을 향해 분노를 표출하는 내용인데, 영화의 가장 큰 악당은 백인 노예상들이 아니라 그 밑에서 호의호식(도 채 못하면서 오히려 제 동족들을 더욱 악랄하게 핍박하는) 흑인집사 사무엘 잭슨이다.

 

그밖에도 장고의 여정에 얼핏 보이는 모습들은 채찍맞는 노예 옆에서 행복하게 놀고있는 다른 흑인 노예들이 비춰지는데 사실 그게 타란티노가 보여주고 싶었던 모호함일테다. 더구나 주인공 장고 자체도 노예제도나 인권, 자유 이런 것 대승적인 것들에 별반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는 그저 사랑하는 아내를 구해서 함께 살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장고는 영웅이 아니다.

 

하지만 사실 이런 것들은 별반 중요하지 않다. 장고의 유럽인 백인 친구가 노예제를 찬성하든 반대하든, 뒤마가 흑인이었든 백인이었든 어쨌든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피칠갑과 통쾌함이다. 백미는 장고가 디카프리오의 저ㅐㄱ에서 벌이는 수십대 일의 총격전 장면. 오우삼 영화의 주윤발은 저리가라다. 역시 액션씬은 흑형들 간지가.

 

 

 

전설의 주먹

 

힐링캠프에 나온 강우석이 이번 영화가 투캅스나 공공의 적보다 재미가 없다면 더이상 영화를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걸 듣고 꾸역꾸역 봤는데, 결국.

 

강우석은 이대로 더이상 영화를 만들지 말라.

뭐 더 할 말도 없다. 굳이 끄적거리는 건 '강우석 이제 영화 만들지 말라'를 강조하고 싶어서. 

 

아, 이요원은 이런 영화에 발 좀 담그지 않았으면.

다른 좋은 배우들이야 강우석 영화를 찍고 강제규 영화를 찍어도 계속 좋은 배우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지만 이요원은 어쩐지 더 좋은 영화와 드라마에만 계속 나와야 할 것 같단 말이지.

 

 

 

모래가 흐르는 강

 

천성산 도롱뇽을 지키려던 지율스님의 노력과 강정마을의 구럼비를 지키려는 주민들의 싸움, 허물어지는 생명을 지키고자 열반하신 문수스님의 소신공양도 사실은 모두 다 같은 궤적을 그리는 일일테다. 인간은 불과 바람과 꽃처럼 모든 자연의 일부에 불과할 뿐이며 그것들과 함께 살아가지 않으면 결국 모든 것을 그대로 돌려받게 되는 것이 우주의 이치일 것이라는.

 

스스로 모래를 흘려 다시 깨끗해지고 아름다워지는 강의 모습을 보고 배워야 할 것이라는. 흐르는 것이 이치라면 억지로 고이게 만들어 썩게 한 물은 결국 다시 인간을, 우리를 썩게 할 것이라는.

 

4대강사업을 다룬 첫 번째 다큐멘터리를 지율스님이 만들어주셔서 참 좋다고 생각했다. 정권이니 자본이니 토건이니 하는 말들(그게 틀렸다는 것은 아니지만)보다는 자연과 사람, 모든 생명들이 서로를 기대고 서로를 바라보며 살아가야 한다는 불교적 이치가 영화에는 한가득.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모닥불을 태우며 스님과 어느 할머니가 나누던 대화. 흙을 밟고 강을 보며 살아온 긴 세월의 지혜는 어느 고승대덕의 깨달음 만큼이나 현숙할 수밖에 없더라는.

 

 

 

 

 

 

요즘 본 영화들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홍상수의 영화들은 갈수록 '이야기'에 천착하지 않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시간이나 공간을 훌쩍 뛰어넘는 일은 예사고(그래서 홍상수의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날짜나 계절, 시간의 방향을 먼저 파악하려고 신경쓰게된다.) 어느 결에는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어디까지가 꿈인지도 분간키 어렵다. 아무래도 이야기보다는 '캐릭터' 그 자체에 집중하게되는데, 특별한 대사나 콘티없이 캐릭터와 상황을 주고 영화를 완성하는 작업방식도 이를 구현하는데 일조하고 있는 것 같다'해원'에서도 그녀가 꾼 꿈이 어디까지인지, 그녀가 언급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그녀의 진심이 무엇인지도 알기 어렵다.


그럼에도 영화의 이야기를 파악할 수 있는 것들은 집요하게 반복되는 구조 혹은 등장인물의 '일관성'에 있겠다. 해원은 유부남을 만나는 언니를 미쳤다고 표현하면서 정작 자신은 유부남을 사랑하거나. 자유로운 사랑을 꿈꾸며 이선균의속물근성을 비난하는 동시에 자신은 결혼상대로 적합한 미국교수에 호감을 표현한다. 말인즉슨, 해원은 누구의 딸도 아닌, 온전한 자신의 삶을 원하지만 결국 누구의 딸로밖에 살 수 없다. 이런 이야기는 카메오 출연한 제인버킨과의 에피소드나 영화시작에 등장한 엄마와의 에피소드에서도 드러난다. 이 반복되는 구조의 에피소드들이 꿈인지 현실인지는 모르겠으나 해원이 결국 누구의 딸로 존재할 수밖엔 없다는 이야기를 구축하고 있는 것.


어느 드라마나 영화의 조연으로 눈에 익은 정은채는 홍상수가 새로 발견한 여배우가 되는 듯. 정유미나 송선미에 이은. 옥희의 영화즈음부터 등장한 이선균은 그동안 홍상수 영화에 등장한 모든 남자배우를 통틀어 가장 잘생겼지만 아무래도 홍상수 영화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는 유준상인듯. 안느송 부를 때부터 알아봤다니.


덧1. 무엇보다 이번 영화를 보고서도 술을 마셨다. 영시 홍상수 영화는 술부르는 영화. 참이슬은 뭐하나 홍상수 섭외 안하고. 홍상수가 참이슬 광고만드면 매출량 급증을 장담합니다. 진심임.


덧2. 서촌일대, 그러니까 사직동 그 가게를 위시한 그 일대는 요즘의 내 워너비 플레이스. 사직동 그 가게 엄청 좋다니까... 주변의 맛집 리스트도 하나 둘 씩 쌓여가고 있슴니다..ㅎ






신세계


박훈정 감독이 각본을 썼던 부당거래나 악마를 보았다, 혹은 장편 데뷔작인 혈투는 모두 신선하고 새로운 이야기와는 거리가 있다. 그보다는 이미 뻔한 내용을 어떻게 '재미있게'(재미있게는 치밀하다와도 다르다) 짜맞추느냐에 방점을 찍었던 작품들. 신세계는 노골적으로 무간도의 설정을 가져오고 저수지의 개, 흑사회, 심지어 대부까지 온갖 조폭영화의 재미있는 점들을 다 끌어다가 한국이라는 공간에 우겨넣는 영화다. 대부분 이런 경우엔 이도저도 아닌 영화가 돼서 눈뜨고 못볼 두시간을 만들기가 십상이지만 차라리 이 노골적인 '참조'(표절은 절대 아니다 이렇게까지 가져오면)는 재미를 쌓아내는데 적절한 역할을 한다. 


감독은 감독이 재밌게 보고 자란 느와르 영화들을 켜켜이 쌓아내면서 '장르영화' 자체에 대한 오마쥬를 하고 싶었던 듯 보인다. 당연히 양복입고 간지나는 형들이 나와서 쌈박질하는 영화를 좋아한다면 신세계는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다. 황정민과 최민식의 좋은 연기는 이런 장르영화의 매력을 한껏 증폭시킨다. 그리고 나는 이런 느와르 매우 좋아한다. (내가 앉은자리에서 86년 영웅본색을 시작으로 2002년 무간도까지 발표된 홍콩느와르 전편을 3박4일간 훑은 경력도 있는 남자임.)


말한 것처럼 아이디어가 번뜩거리거나 기가막힌 액션씬, 입체적인 캐릭터가 돋보이는 영화는 아니다. (기껏해야 황정민이 연기한 정청이 가장 복잡한 내면을 가진 인물일 수 있는데 캐릭터를 십분 살려내는 서사구조도 아니고 이를 받쳐주는 주변인물도 없다) 치밀하고 긴박감 넘치는 새로운 느와르를 기대했다면 빵점짜리 영화, 진부하더라도 간지나는 느와르 영화를 기대했다면 90점 이상. 


근데 그냥 이 영화는 원래 진부하더라도 간지나는 영화.가 목표인 영화다.






스토커


박찬욱의 영화는 대체로 얄밉다. 이 똑똑한 영화광 감독의 영화는 언제나 미장센으로 가득차 있다. 거기다 늘상 고전영화들을 탐닉하며 얻어온 고풍스런 장치들이 영화 곳곳에. (예전에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박찬욱이 늘어놓은 고전영화 예찬이 아직도 귀에 웅웅거린다.) 이건 질시, 경외, 경탄 같은 감정들이 복합된 것일텐데 그래서 박찬욱의 영화들을 마냥 고운 눈으로 봐주기 싫어진다. 뭐라도 하나 흠집내고 싶어. 아마 맨날 전교 1등만하고 싸움도 잘하고 얼굴도 잘생긴데다 밴드부 보컬에 학생회장까지 하는 인기많은 선배가 사실은 게이라더라는 헛소문을 내는 마음 같은 것. 일까..ㅋ


스토커는 대단한 주제의식 같은 건 없다. 그보다는 숙녀가 되기 직전의 소녀. 이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존재에 대한 탐구, 집착, 관찰. 근친상간이라는 관계설정과 살인으로 만들어진 상황설정까지. 성적욕구를 자극하는 모든 요소가 총망라한. 이 미친것같은 상황과 관계들은 그래서 더욱 환상적이다. 심지어 소녀 인디아를 연기한 미아 바시코브스카는 엄청 예쁘다. 니콜 키드먼도 당연히 예쁘고 섹시하다. 모든 박찬욱 영화에서 그렇듯 배경이 되는 공간은 (박찬욱 영화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색'이라는 생각도 한다 올드보이 벽지같은.) 몽환적이고 무섭다. 집이 이렇게까지 낮설고 두려운 곳이 되다니.


영화의 첫대사, 그러니까 구두는 삼촌에게 벨트는 아버지에게, 블라우스는 어머니에게 받았다는 대사는 소녀가 아직 완전히 독립적인 숙녀가 되지는 못했다는 뜻이겠지만, 그 소녀는 엽총을 들고 보안관을 쏴죽인다. 아마 이게 이 영화의 줄거리.겠지.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박찬욱의 연출, 여배우들의 자태, 각본가의 유명세. (각본은 석호필로 유명한 엔트워스 밀러가 썼다고). 올 해들어 본 가장 섹시한 영화지만, 노출씬은 하나도 없다는 점을 엉뚱한 마음품고 극장으로 달려갈 뭇 남성들에게 미리 밝혀둠미다.






가족의 나라


디어평양을 만든 양영희 감독의 첫 극영화다. 디어평양과 굿바이 평양을 봤다면 이 영화가 양영희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겠고, 그래서 영화의 말미에 감독의 자전적 캐릭터인 리애에게 성호가 해주는 "넌 누구의 인생도 아닌 너의 인생을 살라" 는 말의 울림이 심상치 않게 느껴진다.


전작 다큐들에서도 그런 것처럼 양영희 감독은 가족을 갈라놓은 북송사업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고 그보다는 이념같은 모호한 것들이 강요하는 것들에 반감을 표한다. 하지만 그것은 곧 영화에서 가장 적대적인 캐릭터인 '양 동지' 역시 자곧에 대한 그리움과 연민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되거나 그 양 동지가 "그런 나라에 나도 당신 오빠도 살고 있다"는 대사를 토해내면서 시대를 향한 시선이 적대보다는 연민에 가까워진다.


다큐 영화를 찍어온 감독인 탓인지, 영화는 거의 롱테이크로 이루어지고 호흡도 차분하다. 감정의 격변이나 클라이막스도 없다. 하지만 그 침착함이 오히려 더 큰 감정의 파고를 불러일으킨다. 내 생각이지만, 아마 그건 감독의 의도 여부와 상관 없이 원래 그런 것인 것 같다. 아무렇지도 않은 말이 사실은 가장 격렬한 말이다. 






굿바이 홈런


잘만들고 좋은 다큐는 아니다. 결국 생활인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야구 못하는 고교야구 선수들의 적막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지도 못했고, "그런 건 난 몰라요" 꿈만 꾸는 마운드의 낭만만 파고들지도 않는다. 그런데 그 어정쩡한 포지션. 그게 참.


야구를 미친듯이 좋아하지도 않지만 안타를 치고싶고, 야구를 당장이라도 그만두고싶지만 이거 하길 잘했다고 말하는 그 열일곱살들. 남들보다 일찍 현실을 알아버린 피로함과 남들보다 더 큰 순수와 열정을 품고있는 열일곱의 앳된 얼굴들. 그 어정쩡한 처지의 아이들을 그대로 담고있는 것처럼.


사실, 이런 감수성이 고팠다. 질질짜고 찌질해도 괜찮을 감수성. 그래서 얘네가 안타치고 1루베이스를 밟을 때마다 울컥울컥.ㅋ






남자사용설명서


정말 시간과 문화상품권이 남지 않았으면 보지 않았을 제목이었지만 말이지.


제목을 보며 떠올렸던 걱정은 좀 쓸데없는 걱정(어떤 걱정인지는 제목을 보면서 골똘히 생각해보자)이었고 생각보다는 건강한 영화였다. 본격 코미디를 지향하고 있었고 적당한 성과도 있다. 웃기다는 말이다. 영화속 이원종처럼 아방가르드하고 유치한 웃음을 웃음으로 만들거나 뒤틀줄 아는. 


온갖 처세와 '여성'에 대한 불쾌한 선입견이 판을치는 현실에 대한 뒤틀린 숟가락 얹기. 쯤일까. 


이시영은 단연 돋보이는. 이 언니 권투 시작할때부터 알아봤다니까. 한다면 하는 언니임. 다만, '흔녀'로 등장하기엔 너무 예쁘다는게 흠. 오정세는 정말 엄청 찌질해서 탑스타처럼 보이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뭐 탑스타라고 찌질하지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뭐가 다르겠어. 박영규나 이원종이 좀 거슬렸지만, 뭐 그건 그런대로 넘어가고. 


그러나 역시 중요한건 제목짓기와 포스터 사진이라는 진리를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천하장사 마돈나, 김씨표류기에 이은 '제목에 속았어' 시리즈 3탄. 쯤.. 남자사용설명서가 뭐람.



요즘 본 영화들 단상



- 베를린
류승완은 액션영화의 극의를 향해가고 있구나. 조금 뻔한 설정과 스토리지만 그건 나쁜 의미라기보다는 차라리 첩보액션 장르영화의 공식과 매력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 

무엇보다 액션이 발군. 많이 얘기하는 것처럼 본 시리즈가 생각난다. 정두홍이 누구보다 신났겠더라. 

캐릭터의 혜택을 가장 받은 배우는 류승범, 가장 눈길이 가는 배우는 전지현. 외모때문이 아님. 

전지현은 좋은 배우가 돼가고 있다는 느낌적인 느낌. 

- 남쪽으로 튀어
임순례의 연출과 김윤석의 연기력이야 두 말 필요없으니 재미있는 영화가 나오는건 당연하겠다. 그러나 김윤석이 분한 주인공은 그다지 흥미롭지도 새롭지도 않은 그냥 왕년의 '한국' 운동권이고, 다른 캐릭터들도 마찬가지. 아나키즘이 저항보다는 '억지'로 소비되는 모양. 최해갑이라는 인물은 모든 권위에서 탈주하고 싶어한다기 보다는 그냥 갑질하는 꼰대로 보여. 때문에 와이키키나 세친구에서 보였던 흥미나 아릿함도 없다. 

조금 더 얘기하자면 사실 영화가 하고싶었던 얘기가 뭔지 잘 모르겠는. 


신경쓰지 않으려해도 제작과정에서 발생한 마찰이 기억나게 되더라. 임순례 감독이 어느 곳에선가 "다 만들어진영화에 감독이름이 필요해 이름만 빌려준 것"이라고 말했다는 소식을 풍문으로 들었소만. 믿거나 말거나. (난 임순례 감독이 아무리 화가 많이 나도 공식석상에서 그런 말을 함부로 할 분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하지만 자기이름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성에차지 않는 것만큼 화나는 일이 어디있을까.) 


- 더 헌트
지혜로워야 한다거나 그럴 수 있다는 강박이 인간을 얼마나 어리석게 만드는가. 혹은 인간을 얼마나 폭력적으로 만들 수 있는가. 

어설픈 정신분석 상식을 들먹이며 "충격때문에 네 무의식이 기억을 지운거야"라고 말할때 소리를 지를 뻔했다. (객석에선 실제로 한숨을 내쉬거나 신음을 뱉는 관객들이) 그건 실수라기 보다는 게으름이다. 원하는대로 사건을 해결해 빨리 치워버리고 싶어하는. 그건 분노보다는 차라리 즐거움이었다. 꼼짝못할 곳까지 사냥감을 몰아놓고 정확히 조준해 총을 쏘아버리는. 거기서 이성의 역할은 없다. 

마지막까지도 이성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 사실 그게 실체기도 하고. 

메스미켈센이 멋있다. 고독한 중년 꽃미남. 남우주연상은 아무나 받는게 아니다.

-우묵배미의 사랑
"아, 사는거 참"


어느 누구든 살아가기 위해서 사랑해야하고, 마음을 기대야하고, 자기 존재를 가져야한다. 

그 형태가 불륜이거나 섹스이거나 집착이거나 이도저도 아니거나. 어쨌든 그렇게 살아야한다. 


90년이라는 기가막힌 시대적 배경은 그렇게 살아갈 마을 혹은 마음을 침식당한 시절이다. 20년도 더 지난 영화의 여성들이 갖는 그 수동적인 태도와 남성들의 성폭력적인 모습이 불편하다가 이내 "그게 사실인걸". 저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구나. 그렇게들 자기존재를 확인하고 증명하려고 한다. 다만 존재감을 지워버리는 시대.의 시작. 


사실 영화 얘기를 이렇게 주절거리는건 다시 본 이 영화 얘기를 하고 싶어서. 시골도 도시도 아닌 어느 '주변도시'. 그곳에서 살아가는 원주민도 뜨내기도 아닌 주변인들. 그건 사실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 보이는 이들. 그 우묵배미와 우묵배미의 사랑들은 지금도 여전히, 어쩌면 앞으로도.

장선우의 영화들은 (그러니까 '너에게 나를 보낸다' 나 '거짓말' 같은) 사춘기때 친구들과 몰래보며 키득거리던 야한영화.라는 이미지였는데. '접속'이 나오기 전까지 90년대의 한국영화들은 참 볼품없다고 생각했는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올 해에는 장선우와 배창호, 이명세를 다시 찾아봐야 하겠다.

덧,
이 모든 영화들이 '문라이즈 킹덤'의 매진으로 인한 예기치 못한 관람이었다는 충격적인 사실. 오늘은 기어이 문라이즈 킹덤을 봐야겠다. 효도르와 김보성의 '영웅'도 꼭 영화관에서 봐야지.ㅋ

2011 '내 멋대로' 올 해의 음반 / 올 해의 영화 결산


딱히 정산할만한 것도 없어서 늘 그랬듯이 올해의 음반과 영화 결산.
당연히 내 멋대로이며 순위는 없고, 가나다순은 복잡해서(귀찮아서) 못하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따위도 없다.

음반

1. 코스모스 사운드 - Ep. 스무살


이 생소했던 이름의 노래는 듣는 순간부터 빠져들었다.
기타와 목소리외엔 별다를 것 없는 단촐한 사운드와, 후벼피듯 찌질하고 서글픈 가사는 얼마나 제목에 충실한가.
나는 성대다 류의 뽐내는듯한 보컬을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투박하고 서툰 목소리의 진심을 더 믿는편인데 한음절 한음절마다 마음을 다 담아서 내뱉는 것 같은 목소리는 금세 그의 세계로 빠져들게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여전히 아직도 스무살의 그 쓸쓸함과 절망감의 어귀에서 헤매는 중이라.ㅋ
 Ep를 넘어 나올 그의 정규앨범에 침만 꼴깍꼴깍.

2. 허클베리 핀 - 까만 타이거


나에게 최고의 밴드는 허클베리 핀이다. 사막이나 Somebody To Love가 들었던 2집은 내 생 최고의 음반을 결산하라고해도 반드시 들어갈 앨범.
당연히 늘 기다릴 수밖에 없고 나오면 뛰어가서 앨범을 사고 공연을 봐야했던 이 밴드가 유래없이 규칙을 깨고(허크는 3년마다, 11곡의 노래로, 한글이름의 정규앨범을 낸다.) 4년반만에 낸 앨범.

너무 오래기다린 탓일까(유앤미 블루 앨범도 아직 기다리는 주제에ㅋ) 괜히 이기용이 연애를하는 것 같네, 너무 방방떠서 진중하지도 사유할 수도 없는 것 같네, 이건 변절이네 하며 툴툴거렸지만, 언제나 버리지 못하는 노예근성. 결국 내내 허크 앨범을 듣고, 올 여름의 공연엔 모두 허크가. 그런데. 어라, 이거 좋잖아. 그것도 엄청.

그동안의 허클베리 핀에서 벗어나는 앨범을 만들어낸 이기용은 이 앨범을 백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을 앨범이라고 자평. 동의한다. 객석을 움직이게 하는 사운드에 얹은 메시지. 베이스가 탈퇴했음에도 더욱 또렷한 리듬감은 백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을테다. 심지어 이소영 누나는 치명적인 외모까지 갖게됐다. 하악하악. 옛날에 남상아 언니랑 비교해서 미안했어요.ㅋ 앞으로도 당분간 내 최고의 밴드는 허클베리 핀일듯. 한 백년쯤?ㅋ (아는 사람은 아는 밴드, 한국사람은 논외로ㅋ)

3. 이승렬 - Why We Fail


"이승열 신보 들어봤어요?"
"아니, 아직. 왜?"
"엄청나던데요."
"그렇겠지. 이승열인데"

딴딴함, 완결성, 신뢰감, 명불허전 같은 고루한 말들이 어울릴까.
코스모스 사운드가 처연하고 서글픈 친구의 노래였다면, 이승열은 내 맘을 어루만져주는 큰 형의 위로주같달까.
지루하거나 꼰대같은 맞는 말 퍼레이드가 아니라 고단함과 외로움을 앓을만큼 앓았다 일어선 똑똑한 큰 형. 미국유학 갔을때 놀만큼 놀아봤을것 같은 그런 큰 형.ㅋ 한대수 아저씨와의 콜라보가 주는 신선한 재미는 형님의 위트같은 느낌.ㅎㅎ

4. 2011 들국화 리메이크


헌정앨범은 당연히 별로일 수밖에 없다. 애초에 존경하는 뮤지션의 아우라를 넘어서기 위한 앨범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대해야 할 것은 상상력이다. 그리고 솔직한 고백이다. "난 이 노래를, 이 뮤지션을 좋아해서 이런 음악을 하고 있습니다."를 보여주는 고백.


들국화 리메이크는 그 미덕을 골고루 두루두루 보여주고 있다. 일단 참여 뮤지션의 면면이 화려하기 이를데 없는데, ( 그간 있었던 헌정앨범에 메이저씬의 유명한 가수들이 참여에 의의를 두었던 일은 그냥 잊어버리고)  김바다, 허클베리핀, MOT, 국카스텐, 한음파, 이장혁, 몽니, W&Whale, 그리고 무려 테이의 밴드 핸섬피플까지.

곡과 뮤지션을 떼어놓고 어울리는 짝을 찾아주자고 했을 때, 대부분이 이장혁에게 제발을 권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나 못에게 매일 그대와를 매칭시키는건 쉽지 않은 일이다. 전자는 고백이고 후자는 상상력이다. 모든 트랙이 훌륭하다. 김바다는 시나위 보컬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라는걸 확실히 보여준다. 그가 외치는 "앞으로!"를 듣다가 정말 앞으로 걸어갈 뻔 했다.(물론 뻥이다ㅋ) 못의 매일 그대와는 마치 음울한 스토커 살인마의 침실을 떠올리게한다. 사랑하는 그녀의 시체 옆에서 매일 아침햇살 받으며 눈뜨는 스토커.ㅋ 몽니의 치기어린 그것만이 내 세상은 그것만이 내 세상이라 외칠 어린 치기를 그대로 보여줬다. 한음파는 어떤 면에선 들국화보다 낫더라는...ㅋ 염려했던 웨일의 사랑한 후에도 무리없고 담백했다. 허크야 말해 뭐해..ㅋ

5. 나는 가수다 3차 경연 - 내가 부르고 싶은 남의 노래


MBC연예대상을 받은 나는 가수다를 빼놓고 올 해를 결산할 수는 없다.
나는 가수다는 이 즈음이 정점 아니었을까 하는. 지금이야 뭐. (인터넷 기사에서 전인권 아저씨가 나는 가수다에 나올 수 있다는 얘기를 봤는데, 반갑기 그지 없다가 괜히 속상해질수도 있단 생각에 마냥 반가워하기도 애매하더라능)

임재범이, 그 임재범이, 무려 그 임재범이 나와서 빈잔을 불렀을 때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게 저렇게 부를 수 있는 노래였구나. 임재범은 애국가나 찬송가에도 롹 스피릿을 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롹 스피릿이라면 이소라의 넘버원도. 사실 이소라가 나가수에서 부른 최고의 넘버는 사랑이야라고 생각하지만 넘버원도 빼 놓을 수 없다. 올 해 최고의 돌풍의 곡임을 온갖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자가 증명해 준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도 이 에피소드에서 불렸다. 여러모로 대단했던 에피소드.

6. 정차식 - 황망한 사내


레이니썬은 그렇게 주목하거나 좋아하는 밴드가 아니었다. 사실 잘 몰라서 더 관심이 없었던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당연히 정차식도 앨범 발매 후 한참이나 지나서야 듣게 됐다.

난 우울함과 쓸쓸함의 정서를 좋아하는데 그 한탄이나 슬픔, 체념의 정서에서 억지 희망의 강요보다 더 많은 위로를 얻기 때문이다. 윽박지르면서 행복하고 재미있게를 가장하는 노래들은 사실 거짓말이다. 세상은 그렇게 쉽사리 희망과 즐거움을 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정차식의 황망한 사내는 그렇게 황망한 슬픔을 노래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즈막한 바람은 없었다. 단지 내가 쓰라리고 아프고 격했던 시간 뿐인걸.] - 용서 中

이 퍼석퍼석한 슬픈 노래들에 위로받는 건 결코 내가 변태여서가 아니다.

7. 꽃다지 - 노래의 꿈


고등학교때 어릴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대학생 형이 '바위처럼'을 들려줬다. 대학에 가면 다들 이런 노래를 듣는다고 했다. 그건 반은 사실이었으나 반쯤은 거짓말이었다. 바위처럼만은 정말 시도때도 없이 울리는 노래였으나 꽃다지로 대변되는 민중가요는 그렇게 흔한 노래가 아니었다. 이미.

어느 시절엔 소위 '빡쎄다'고 표현되는 민중가요들을 즐겨들었다. 학생회실에서 엄청 큰 소리로. 그걸 부담스러워 하는 '학우들'의 찌푸린 얼굴을 오히려 즐기면서 오만했던거다. 그때 울리던 노래들의 많은 목소리가 꽃다지였다. 꽃다지는 어떤 운동권의 상징같은 존재였던거다.

더이상 대학생과 운동권이 등치하지 않고, 민주화는 이뤄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서 꽃다지는 무대를, 노래와 관객을 잃었다. 더이상 단결과 투쟁을 외치는 결기어린 선언의 노래가 필요치 않게됐다. 그러나 꽃다지는 희망의 노래답게 계속 노래를 불렀다.

이제 꽃다지의 노래는 결기와 분노에 찬 선언이 아니다. 그건 지나온 삶에 대한 고백과 기억이고, 희망에 대한 다짐이고 연대에 대한 위로다. 노래의 꿈이다. 그저 제창하기 쉬운 노래를 벗어나 음악적 성과를 내고, 그 성과로 다시 희망이 움트는 노래다. 그 희망에 동조하는 이들의 연대와 사랑으로 만들어진 이 앨범은 분명 올 해 최고의 음반 중 하나다.

8. 조덕환 - Long Way Home


일단 나는 거장이라거나 노인, 세월 같은 키워드에 굉장히 약해지는 어른공경컴플렉스 환자라는 것을 밝혀두자.

하지만 그럼에도 이 앨범이 엄청나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가 그 전설의 밴드 들국화의 한 축이었다는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위에 나는가수다에 대한 얘기도 있지만 지난 노래들을 다시 부르는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심지어 자신의 노래들이라면 그 부담은 더하다.(만약 자신의 노래라 더욱 쉽다면 그건 가짜예술이다. 자기복제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그건 지난 시간을 긍정하는 동시에 현재를 살아 한 걸음 나아가야하는 때문이다. 안주하지않는 삶의 증명.


난 들국화의 시대를 살진 않았지만 들국화의 위대함은 알고있다. 그래서 난 이 앨범의 노래가 역시 위대하고 30년쯤 후에 어느 찌질한 블로거가 역시 들국화와 조덕환의 위대함을 곱씹고 있을 것을 확신한다.


9. Iron & Wine - Kiss Each Other Clean


Flightless Bird American Mouth로 대변되는 그간의 아이언 앤 와인과는 또 다르다. 기타 한대에 고운 목소리로 노래하던 미국의 조동익같은 사람이었는데 현란한 비트와 사운드가 귀를 잡아끈다. 그런데 이게 좋다. 그건 아마 사운드가 덧씌워져도 티가 나게 마련인 좋은 멜로디와 예쁜 목소리때문. 그동안과는 조금 다른 음악을 상상하는 듯한 샘교수님의 다음이 더 기다려진다.


10. GD & Top - GD & Top


난 힙합이나 랩은 잘 듣지 않아서 좋고 나쁘고의 기준은 아무래도 굉장히 직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절묘하고 기발한 라임과 흥겹고 맘이 동하는 플로우에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그건 결국 간지가 전부라는 뜻이다.ㅋ (물론 전문가들이 그랬듯이 버벌진트나 가리온이 짱이겠지만 난 GD가 박명수랑 만든 랩이 더 좋은걸 어째.ㅋ)

난 이렇게 신나게 양아치처럼 노는 친구들을 본적이 없다.(양아치라는 표현이 거슬릴수도 있으나 이건 굉장히 좋은 의미임. 얽메이지 않고, 말 안듣고 노는 귀엽고 예쁜 동네 말썽쟁이쯤?ㅋ) 특히 GD는 타고난 양아치. Top도 멋지지만 그건 왠지 만들어지고 훈련된 느낌이랄까..ㅋ 그래서 GD는 어저면 현존하는 가장 완전한 아이돌.

11. 조동희 - 조동희 1


엔리케 이글레시아스는 인터뷰중에 아버지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얘기를 꺼내면 두말없이 자리를 떠나버린다고 한다. 후광이란 간절하고 감사할때도 있지만 지워내고 싶을만큼 혐오스러울 수도 있는거다. 조동희는 그런 엄청난 후광을 갖고 있다. 그녀의 오빠, 조동익과 조동진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빼놓기는 커녕 가장 앞장에 넣을 것인지 표지에 넣을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뮤지션이다. 요 며칠전에도 술자리에서 조동희 얘기를 꺼내다 그녀를 조동익의 동생으로 소개해야했다.


그녀는 그 후광을 거부하지도 거기에 매몰되지도 않았다. 그저 오빠들의 조언을 받기도 하고 도움을 받기도 하면서 자기의 노래를 완성했다. 그렇게 나온 첫번째 앨범. 지나간 시간들의 힘일까 아니면 정말 그건 핏줄의 힘일까 조동희의 노래엔 억지도 부담도 없다. 그 독백같은 목소리로 그저 담담하게 지나온 날을, 앞으로의 삶을, 소중한 것들을 노래한다. 슬프라고 강요하지도 기쁘라고 윽박지르지도 않는 자기 노래. 이 조씨남매들의 어마어마한 위력이다.


12. Paul Simon - So Beautiful Or So What



말했다시피 거장이나 어른에대한 무조건적인 동경이 있다. 그 대상이 폴 사이먼쯤 되면 사실 음반을 듣기전부터 좋을거야란 자기최면을 걸기도..ㅋ 사이먼 앤 가펑클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음악을 만들어내는 팀 중 하나기도 하다.그걸 영어로 하면 SG Wannabe(정말이다. 이 팀은 사이먼 앤 가펑클 워너비란 뜻이다).

여튼 그런 어른공경컴플렉스를 감안해도 이 앨범은 충분히 좋다. 풍부한 소리가 나는 포크랄까. 그리고 무엇보다 사이먼 아저씨의 멜로디. 이건 뭐 신사동호랭이 저리가라. 젊은 감각이란 뜻임.ㅋ 이 아저씨도 안주하지 않는 남자. 거장들은 역시 해내주신다. 어른공경컴플렉스를 고칠 생각이 전혀 안드는 이유다.




영화

1. Black Swan - Darren Aronofsky


순수한 욕망이나, 솔직한 광기 같은 것들을 꿈꾸지만 늘 갇혀있다.
그건 이성이나 관습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건 언제나 날 가장 안전한 상태로 있을 수 있게 해주지만 가장 이상적인 상태가 되는 것을 방해한다. 내가 만든 벽에 내가 갇히는 모양. 완벽한 백조여서 결코 흑조가 될 수 없었던 니나는 사실 날, 아니 사실 규칙 바깥을 상상할 수 없는 우릴 닮아서 더 슬펐다. 그래서 마침내 흑조가 날아 올랐을 때, 니나가 죽었지만 행복했음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탈리 포트만과 위노나 라이더. 각자 마치 자신을 연기한 것 같은. 가장 완벽한 백조지만 결코 흑조를 연기할 수 없는 나탈리 포트만은 이 영화를 마치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정말로 한물 가버린 여배우 위노나 라이더는 무슨 생각으로 베스를 수락했을까.ㅋ

2. 만추 - 김태용


관계가 가져오는 삶의 변화를 믿지는 않지만 좋아한다. 그건 희망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그걸 찾아서 헤매는 일과 비슷한거다. 시간이 멈췄던 애나는 훈의 시계를 받아 시간을 다시 돌린다. 화면은 훈과 애나 둘을 잡지만 주인공은 그 사이 어느께에 있는 둘의 관계다. 마지막 장면, 오지 않는 훈을 기다리면서 마침내 웃는 애나의 변화.


색,계에서부터 주목이야 했지만 탕웨이가 이렇게 아름다운 배우인줄은 미처 몰랐다.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는 시크릿가든이 막 끝나서 온 나라에 현빈 열풍이 몰아치고 있었는데, 정말 현빈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만큼 탕웨이는 아름다웠다.


3. 세상의 모든 계절(Another Year) - Mike Leigh


이상적인 가족공동체에 들고싶은 외로움이야.
하지만 정말 그런 공동체따위 정말 있을까. 그건 사실 내 외로움이 만들어낸 허상일지도 모르겠다.
삶이란 어쩌면 그렇게 멋대로 이상을 만들고 거기 들지 못하는 자신을 괴롭히고 외로워하는 자학일기 같은 것.
세상에 외롭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으랴. 아마 메리는 죽을때까지 화목한 톰과 제리의 가족을 ㅂ러워하면서 자기를 괴롭힐테다. 그건 아마 나도 마찬가지. 외로워서 어디서 눈칫밥이나 얻어먹는 신세를.

마지막 장면이 좋다. 담담하게 그 외로움을 포착하던 그 장면. 올해의 라스트 씬.

4. 혜화, 동 - 민용근


버려진 건 유기견이기도 하고, 손톱이기도 하고, 아이이기도 하고, 자기자신이기도 하다.
버려진 것들을 다시 주워모아 혜화는 마침내 자기 자신도 주워담을 수 있다. 버려진 순간 멈췄던 혜화가 마침내 움직이는(動)이야기. 그 동력은 과거에 버린 것들이지만 혜화는 주워담을 뿐 뒤로 돌아가지 않는다. 다시 한 걸음 앞으로 내딛는다. 매력적인 신녀성. 영화 중간에 흐르는 앵콜요청금지가 이 영화의 테마송일까.

유다인은 올 해 발견한 주목할만한 뉴스타. 뭉테기로 볼아주는 방송국의 쓸모없는 뉴스타 상보다 내가 주는 뉴스타상이 훨씬 값진거임. 내가 찍은 배우는 반드시 곧 스타가 된다니까. 백진희도 송중기도 김수현도 그랬어.

5. 굿바이 보이 - 노홍진


비우티풀은 아버지를 긍정하면서 성장했지만, 굿바이 보이는 아버지를 부정함으로 유년기를 마칠 수 있었다.
"아버지가 밍키를 잡아먹은 날, 내 유년기는 끝났다"고 뇌까리던 진우는 아버지의 무덤앞에서 웃음을 흘리고 담배를 피운다.
영화는 80년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신파도 아니고, 가정을 파괴한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을 정당화하는 영화도 아니다. 그 모든 것들을 미제나 자본의 탓으로 돌리는 무책임한 운동권영화도 아니다. 그것들은 모두 공존했다. 폭력적이고 무능했지만 기타를 퉁기며 노래를 부르던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증오하면서도 사랑했던 어머니와, 아버지를 부정함으로 존재를 증명하려했던 누이. 그리고 폭력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늘 가해자를 꿈꾸는 소년.

부계, 폭력, 가부장, 경제력, 무능 같은 키워드들로 얼룩진 80년대, 하지만 사실 지금도.

류현경은 10년전 단팥빵에 나올때도 선생님 친구 역할이었는데, 여고생역이 어울리는 까닭은 무엇이냐.

6. 오월 愛 - 김태일


광주는 너무 아픈기억으로 남거나 영웅들의 신화적 싸움으로 남았다. 물론 그건 맞다. 도시 하나가 폭도가 되어 국가에 의해 학살당했고, 그에 맞서 저항했고, 스스로 해방의 도시 대동의 세상을 만들어 살았다. 그걸 가능케한 영웅들도 있었고 이름도 없이 사라진 결코 잊지 못할 아픈 기억들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에게 주먹밥을 만들어주던 아줌마들도 있고, 끝까지 도청을 지킬 수 없었던 어린 학생도 있다. 광주를 기억하는 방식도 기억하는 부분도 저마다 다르다. 광주는 결코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과거이기도 하고, 절대 잊지 않을 한이기도 하고, 꿈에서나 봤던 아름다운 세상이기도 하다. 그 모든 것이 80년 5월의 광주다.

"벌써 이 모양인데 이제 우리가 죽고나면 누가 광주를 기억하겠냐"던 얘기가 제일 가슴에 남았다. 광주가 잊혀질 수도 있겠구나. 그저 역사책 한 페이지에나 나오는 그런 얘기로 잊혀져 사라질 수도 있겠구나.

7. 고백(Koku Haku) - Tetsuya Nakashima


복수극은 이래야한다. 복수란 스스로 파멸하게 하는 것이다.
냉철하고 치밀하고 야비하게. 어설픈 도덕교과서식 권선징악이 아니라 스스로 그 죄의 무게에 짓눌려 압사하도록 만드는 야비한 복수극. 냉철한 얼굴 뒤에 숨은 뜨거운 복수의 화신.

스토리 전개가 좋지만 것보다 처음 30분가량 복수의 출사표를 던지는 유코선생님의 그 냉정하고 예의바른 선언이 더 오싹하다. 유코가 복수에서 한 액션이란 사실 그게 전부다. 죄 지은 자들에게 쥐어준 제 살을 달아 파멸케하는 저울.

8. 파수꾼 - 윤성현


청소년기 남자애들의 우정이란 생각보다 얄팍하다. 하지만 그 남자애들의 폭력이란 생각보다 훨씬 잔인하고 허술하다. 그건 개연성도 의미도 없는 그저 존재확인이기 때문이다. 내가 너보다 쎄.

파수꾼은 그 지점을 명확히 잡아낸다. 그 폭력이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하지만 그 폭력에서 어떻게 기어나오는지. 그건 우정이니 용서니 하는 알량한 언어가 아니다. 그건 삶에 대한 의지다. 살고자 하는 의지는 폭력을 극복한다. 폭력을 극복해내지 못한 의지는 결국 죽음으로 이어진 것처럼.

이제훈을 주목하고 있다. 고지전을 지나면서 벌써 여럿에게 주목받고 있는듯 하지만. 역시 난 신인배우를 집어내는 탁월한 역량이.ㅋ 서준영도 광평대군에 이어 KBS일일 드라마 주연을 따내며 출세의 고속 열차에..ㅋ

9. 비우티풀(Biutiful) - Alejandro González Iñárritu


고단한 경계의 삶. 구원과 안식은, 최후에 다가설 그 곳은 가족.
아버지를 만나고 싶었어요.

사실 비우티풀을 넣을까 말까 고민했지만,
하비에르 바르뎀 아저씨의 자태가 잊혀지지 않아서..ㅋ

10. 무산일기 - 박정범 


탈북자들은 125로 시작되는 주민번호를 받는다. 그건 2등시민의 주홍글씨다.
그들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북한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그들은 그저 견뎌야한다. 잘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그들은 변해야하고 또 모두 변한다.

승철이 아끼던 강아지의 시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외면하고 돌아설 때 그는 비로소 남한사람이 됐다. 그는 이제 함부로 착한척하지 않을 것이고, 쉽사리 호감을 표현하지 않을 것이고, 요령을 갖고 사람을 대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봤자 그는 2등시민이다.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굴레, 주홍글씨도 찍어주지 않아 불쌍히 보이는 일마저 차단당한 그게 바로 무산계급이다.

11. 북촌방향 - 홍상수


홍상수의 영화를 보고나면 할 말이 참 많지만 뭐라 한마디 감상문을 적기도 어렵다.
그저 영화속에 나온 술집들을 한번 기웃거리는 일밖엔.

매 영화마다 훅 꽃히는 장면들이 하나씩 있는데,(거의 모든 장면들이 재밌고 좋지만) 이 영화엔 김상중의 찌질한 동조장면. "나도 그 생각해본적 있는데"

나도 그래본적 있는데 말이야, 지기 싫어서 뱉은 말이지만, 대부분 정말 그 생각을 해본적 있었단 말이야.
이런 말 하면 더 찌질해 보일텐데.ㅋ

까메오 대박. 고현정은 그렇다 치고 백현진이라니..ㅎ

12. Source Code - Duncan Jones


평행우주 이론을 이용하는 SF를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미드도 로스트. 한창 시즌까지 평행우주에 의한 멘붕들이 일어나는거라고 확신했었.ㅋ

이렇게 스토리가 탄탄해서 러닝타임 내내 집중시켜주는 오락영화를 좋아한다. 국내영화에서 찾자면 범죄의 재구성이나 타짜같은 최동훈류의 영화들. 치밀한 스토리 구성은 그 자체로 영화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되도않는 이론으로 무장하여 볼거리로 어떻게 쳐발라 버리는 예의 그 헐리웃 영화들은 더욱 혐오스럽달까.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디워같은.ㅋ

소스코드는 복잡한 주제의식 같은 건 없지만 그 탄탄한 스토리로 두시간동안 숨도 쉬지 않게한다. 올 해 나온 영화들 중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던 영화.

13. 환상극장 - 김태곤, 이규만, 한지혜


옴니버스 환상극장 자체보다는 세개의 단편들 중 하나인 한지혜 감독의 소고기를 좋아하세요?를 꼽은거다.
누구나 지켜보고 싶은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예전엔 고교야구에서부터 선수를 찍어서 지켜봐오다 마침내 프로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곤 기뻐하며 내 선견지명을 자랑하곤 했다. (임찬규 이형종 한기주같은 애들은 고교때부터 지켜보고 있었..ㅋ) 한지혜 감독의 전작 기차를 세워주세요를 보고선 이 감독이 만드는 또 다른 영화들을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환상극장에서 이름을 발견.

사실 기차를 세워 주세요에서 받은 감흥을 받지는 못했다. 충분히 흥미롭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그 기대감이 전혀 줄어들지 않는 까닭은 감독이 영화를 만들며 하고싶어 하는 이야기들이 흥미롭기 때문일까. 어쩌면 기차를 세워주세요가 엄청 좋아서 아직도 이러는 걸수도 있다.ㅋ 그러고보니 저번에 케이블 티비에서도 틀어주던데..ㅎㅎ



아 이걸로 밥벌어먹는 것도 아닌데, 너무 에너지 쏟았다.
도대체 몇시간을 쓴거야...ㅡㅡ;;

쓰면서 더 생각난 음반이나 영화들이 있지만 여기까지만 해야지.
열심히 한다고 누가 밥사주는 것도 아닌데.


Iron & Wine - Tree By The River

비우티풀 - 아버지, 당신을 사랑 할 수 있을까요





# 고단함

욱스발은 경계에 서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 이민자와 원주민의 경계, 연민과 착취의 경계, 삶과 죽음의 경계.
그 경계의 삶은 고단하다.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그 마지막 처연한 눈을 보지 못한다면 괴롭지 않을 수 있을텐데. 그저 착취하고 제 배를 불릴만큼 뻔뻔할 수 있다면, 그들의 괴로움에 무관심 할 수 있다면 어쩌면 지금보다는 더 행복할 수 있을텐데. 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삶이 그를 더욱 고단하게 만든다. 그는 그 고단함을 묵묵히 견뎌내기만 한다. 정신줄을 놓아버리지도 않고, 아이들을 무책임하게 방관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뭐. 괴로움을 쌓아갈 뿐이다. 방출하지 않고 쌓았던 고단함은 한번에 추심을 시작한다. 병이다. 그는 끝까지 고단하다.

그만 유독 고단하고 고독한 것도 아니다. 이냐투리는 세계는 모두 고단하다는 말을 하고싶어 한다.누구는 행복하고 어느 곳은 불행하단 투덜거림이 아니다. 바벨에서부터. 세네갈 이민자들은 백만마리가 넘는 닭을 잡아도 바르셀로나에서 살아갈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래서 그들은 마약을 팔거나 쫓겨난다. 중국 이민자들은 갖은 착취를 당하면서도 중국보다는 훨씬 많은 돈을 받는다. 그들은 불평 한 번 하지 않고 일한다. 욱스발은 그들을 연민하지만 그들을 착취하고 세계는 다시 욱스발을 착취한다. 세계는 모두 고단하다. 영화 내내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도시를 오시하지만 구원따위는 없다. 거의 대부분의 집에 '신'의 그림이 붙어 있지만 사실 어쩌면 신을 가장 간절히 그리는 곳은 바로 지옥이다.



# 가족

바벨에서부터 이냐투리는 자꾸 가족에서 위로를 찾는다. 욱스발은 죽음을 준비하면서 가족을 돌이킨다. 붕괴된 가족은 욱스발의 상처를 마침내 보듬는다. 욱스발은 안나의 곁에서 죽었고, 죽어서 마침내 아버지를 만나 눈(雪)을 보고, 담배를 피우고, 웃음을 짓고, 질문을 한다. 어머니의 정 같은걸 겪어보지 못했을 남매는 이헤를 만나 상처를 치유하고(이헤가 정말로 반창고를 떼어내고 약을발라주는 장면을 상투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안심이 되는 기분이 들기도했다.) 젖을 물리는 어머니를 볼 수 있었다.

이냐투리는 이제 아버지를 이해하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영화를 떡갈나무 같은 아버지에게 바친다고.

하지만 가족이라는 것이 정말 그렇게 이해하고 위로하는 존재일까. 또 부성이라는 건 정말 그렇게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일까. 마음이 따듯해지고 눈물이 나는 일과는 별개로 부성에 대한 강요같았던 텍스트들은, 오직 아버지를 이해하기만 하려는 몸짓처럼 보이던 것들은 좀 불편했다. 그건 가족만이 최후의 보루라는 얘기를 하고싶었던 것 같지만, 그래서 가족에서 위로받는 삶의 희망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지만 난 글쎄. 가족도 고단하고 고독한 세계이긴 마찬가지. 난 차라리 이헤가 돈을 가지고 도망가 버리길, 욱스발이 남매로부터도 고립되길, 마람브라가 차라리 자살해 버리길 바랐다. 어쩌면 그런 완벽하고 갈데없는 절망만이 삶의 진실일지도 모르니까.

가족에서 구한 위로. 같은건 어쩌면 환상. 위로도 연민도 구원도 스스로 해야 할 일.



# 하비에르 바르뎀

길었던 영화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하비에르 바르뎀이다.
하몽하몽의 잘생긴 육체파 배우였던 이 아저씨는 씨 인사이드의 삶을 사랑하는 안락사 희망자와 단발머리 킬러 안톤 쉬거를 지나 이젠 2시간반 동안 혼자서 관객을 압도하는 본좌가 됐다.

다른 이였다면 가족에 대한 집착이나 도대체 정체를 알 수 없는 경계의 삶같은 걸 납득하지 못했겠지만 이 아저씨는그걸 해낸다. 결국엔 죽기직전 화장실에서 자신의 영혼을 목격한 순간, 이 아저씨가 구원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버리고 말았다.

어쩌면 스쳐갔을지 모를 영화를 (21그램이나 바벨이 좋았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진 않았던걸 보면 난 이냐투리를 크게 좋아하는 것 같진 않다) 내도록 새겨놓을 영화로 만든 힘은 역시 오롯이 바르뎀 아저씨의 공이다.


도대체 그 길은 무슨 맛이에요? - 아이다호 , My own private Idaho





길이란 떠남을 전제로 머무는 곳이다. 누구도 길을 향해 가지 않는다. 길을 통해 걸을 뿐이다. 어쩌면 삶도 마찬가지다. 떠남을 전제로 머무는 곳. 그래서 누구는 삶은 여행이라고 노래했나 보다. 삶이란 목적지가 아니라 목적지를 향해 걷는 길에 더 닿아있을 것 같다.

마이크의 길, His road.

“이 길은 어디로든 갈 수 있지. 난 도로의 감식가야, 평생 이 길을 맛보며 살아갈 거야.”

삶의 정체가 여행이고, 방황이고, 어딘지 모를 어딘가를 향해 가기만 하는 것이라면 길 위를 삶의 지대로 삼은 마이크의 ‘길의 삶’이야말로 본질에 가장 가까운 삶일지도 모르겠다. 어디로든 갈 수 있지만, 어디로 가게 될지는 모르는 길을 맛보며 살아가는 길의 감식가는 사실 삶이라는 여행, 세상이라는 길 위에 살아가는 우리의 정체이고 동시에 바람이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장면에, 예상치 못한 시간에 쓰러져 역시나 예상치 못하게 깨어나고 또 일어서는 기면증. 어느 상처가, 어느 사건이, 또 어느 누군가에게 상처를 좌절을 절망을 얻어맞고 넘어지고 잠들었다가 어느새 다시 깨어나고 일어서는 삶이라는 길 위의 기면증 환자들. 그러나 길 위에 잠든 마이크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주고 깨어날 때까지 지켜봐 주고 안아주는 스콧. 우리의 길, 그러니까 우리의 삶에도 깃들어 있을 그 스콧들.





스콧의 길, His ways.


“난 돈을 받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어. 널 사랑해, 돈은 내지 않아도 좋아”

그래서 마이크도 우리도 스콧을 사랑 할 수밖에 없다. 길 위에 지쳐 잠들어도 날 지켜주는 그 스콧을, 돈을 받지 않아도 사랑한다. 스콧은 잠든 내 머리맡을 영원히 지켜줄 거라고, 이 길 위를 계속해서 함께 걸어가 줄 거라고.

그러나 사실 스콧은 없다. 스콧의 길은 삶의 지대보단 차라리 한 번의 외유. 스콧에게 길이란 머물 곳으로 가는 도중. 마이크의 길이 어딘지 모를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끝이 없는 길이라면 스콧의 길은 목적지로 가는 여러 형태의 과정들. 언젠간 길의 끝, 집 안쪽 울타리 안에서 담장 밖 길 위의 삶들을 바라보겠지. 다른 이들처럼. 자신과는 다른 이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그렇게 길 위에 마이크를 남겨두고 떠나가겠지.

청춘을 돌려다오

그러나 사실 마이크는 없다. 평생 길을 맛보고 살아가는 방황과 청춘은 없다. 모두 어딘가를 향해 바삐 걸어갈 것을 강요하는 세상에 마이크는 없다. 우리는 모두 차라리 스콧에 가깝다. 우리는 마이크를 버려두고 언젠가는 담장 안쪽의 세계를 향해 갈 테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지금 잠든 마이크의 머리맡에서 담장 안쪽의 세계를 그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애써 ‘우리’라고 말했지만 사실 스콧을 닮은 건 나다. 꿈이니 청춘이니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삶이니 그저 잠깐, 마이크의 곁에서 마이크를 품 안에 안고 있는 동안에나 지껄인 허황한 ‘말’이다. 나는 길 그 자체보다 길의 끝을 상상하고 있다. 그래서 난 날 닮은 스콧이 싫었다. 다시 마주친 길에서 차창 너머로 마이크와 눈이 마주쳤을 때, 담담하게 바라보던 마이크의 눈과 달리, 미안함인지 미련인지 자괴인지 모를 끈적거리는 눈빛을 보이던 스콧이 싫었다.

청춘을 돌려주세요. 아니, 사실 내게 청춘이 있기는 했던 걸까. 내게도 머물지 않고 늘 변화하는 길 위의 삶이 있기나 했었을까. 그렇다면 언젠가는 나도 어딘지도 모를, 아니 어쩌면 있지도 않은 길의 끝이 아니라 내 발밑의 길에서 살아가고 잠들고 깨어나는 솔직하고 본격적인 삶을 긍정할 수 있을까. 이렇게 계속 막연히 마이크를 동경하기만 하는 건 아닐까. 어느 만화책에서 보니 동경은 이해와 가장 먼 감정이라던데.





리버는 마이크가 돼버린 걸까?

방황과 좌절의 무채색 청춘의 아이콘, 리버는 정말 마이크가 돼버린 걸까?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의 소실점을 보게 되면 여전히 또 영원히 길을 걷고 거기서 잠드는 리버를, 마이크를 그린다

요즘 본 몇 편


1. 하이킥

이제 고작 2회에 리뷰라니. 성급하기 이를데 없지만. 그러니까 이건 하이킥에 대한 리뷰라기보단 하이킥을 보고 반응하는 사람들에 대한 반응이다. 학자금 대출과 생활고와 취업난으로 대변되는 20대를 연기해낸 백진희에 대한 열광에 대한 반응인것이다.

물론 오늘의 20대는 괴롭다. 그러니까 도무지 앞 말고는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는 괴로움이다. 서점엔 청춘을 위로한다는 책들이 베스트셀러 수위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쉽게 88만원세대라고 부르고 쉽게 괜찮다고 힘내라고 말한다.

도대체 뭐가 괜찮고 또 어떤 힘을 내라고.

반값 등록금이니 청년실업이니 말을 만들어내기만 할 뿐 사실 달라지는건 없다. 오히려 이 요란스런 호들갑이 더 불편하다. 88만원 세대라는 말을 만들어낸 그 사람은 결국 우리가 짱돌을 들지 않은 탓이라고 말했고, 어떤 사람은 청춘은 원래 그런것이라고 말했고, 또 다른 사람은 이게 다 가카때문인데 그러니까 원인은 우리가 투표를 안해서라고 말한다. 뭐 다 틀린말도 아니지만, 그게 위로와 격려가 되진 않는다. 그걸 억지로 우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공허한 논의의 긑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보이는 앞을 향해서만 달려야한다. 그렇게 그들의 세계로 편입되거나 도태되어야 한다. 앞만 보이게 만들어 놓은 이 터널, 벗어나면 달릴 수 없는 이 철로에 대해선 이야기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고작 2회밖에 안된 하이킥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극은 현실을 적나라하게 전시했을 뿐 어떤 섣부른 위로나 해결이나 희망도 제시하지 않았다. 기대와 귀추가 주목될 수밖에 없다. 다만 사람들의 섣부른 호들갑이 이 정확한 드라마에 어떤 해악도 끼치지 않길 바란다. 그리고 백진희에게도.

2. 도가니

배트맨에 대한 논쟁을 벌인적이 있었다. 그는 영웅인가 아닌가. 사적 복수의 결과로 히어로가 되는 배트맨은 영웅일 수 없다. 거기다 그는 자신의 자본과 권력을 이용하는 철저한 자본주의형 히어로. 뭐 여러종류의 수퍼 히어로가 있지만  이런저런 이유를 들이대면 사실 '영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는 별로 없다.

사람들은 영웅을 희구한다. 클리셰와 CG를 적절히 버무리고 감동적인 권선징악의 메시지만 넣으면 완성되는 것이 히어로물인데도 끊임없이 양산되는걸 보면 알 수 있다.

인호는 영웅일까. 사적인 복수와 분노도 아니고, 남다른 정의감을 가진 것도 아닌 이 평범한 남자가 이렇듯 모든걸 걸어 뛰어 들게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조금더 설득해주길 바랐지만 영화는 그다지.

그럼에도 넘치지 않으려는 공유의 연기도, 넘치는 공유의 외모도 충분히 좋았다능.
정유미는 돈버는 영화에는 안어울린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능.

조금 더 담담하게 더 시니컬하고 더 우울한 영화였다면 좋았을걸.

3. 푸른소금

신세경은 예쁘다. 진짜 엄청 예쁘다.

세상의 모든 계절 - 누구나 대화상대는 필요한 법이잖아요





# 누구나 대화상대가 필요한 법이잖아요

톰과 제리는 그 이름에서 풍기는 아우라와는 달리 매우 이상적이고 행복한 부부다. 톰은 인자한 지질학자고 제리는 상담치료사다. 그들은 서로를 아껴주고 사랑하며 요리를 하고 주말엔 농장을 돌보는 생활을 한다. 잘생기고 위트있는 변호사 아들이 있고, 경제적으로 넉넉하며, 학식이 풍부하고, 탄소배출량을 고민할만큼 정치적으로도 깨어있다. 그야말로 동화책에나 나올법한 이상적인 가정.

메리는 제리의 직장동료다. 제리가 일하는 병원의 비서직 사무원이고, 학식이 부족하고, 이혼했고, 부유하지 못하고, 외롭고, 알콜의존증도 조금 있고, 너무 수다스럽다. 메리가 금붕어 똥마냥 제리에게 붙어있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제리는 자신의 환자를 대하듯이 메리를 받아준다. 늘 Yes라고 말해주고 귀를 기울여준다. 메리는 그들 곁에 있음으로 그들이 되고 싶어한다. 하지만 사실 그녀도 알고있다. 그녀는 결코 그들의 공동체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그녀의 얘기가 아릴정도로 와닿는다.
"누구나 대화상대가 필요한 법이잖아요"


# 우리는 모두 메리일지도


메리를 보면서 내가 메리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부끄럽고 슬펐다. 외롭고 얘기할데없어 어느 곳에도 들지 못하는. 사실은 이제 그만해야 하는걸 아는데 그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마치 눈치채지 못한것처럼 불청객이 되거나, 과도한 호의와 과잉된 적의로 주변을, 사실은 나를 괴롭히고 있다는 생각.

하지만 그건 어쩌면 우리 모두의 사정. 우리는 모두 완벽하고 이상적인 공동체를 꿈꾸지만 어느 누구도 행복에 달하지 못하는 메리같은 삶을 산다. 늘 이상을 설정해놓고 그 언저리를 맴돌다 지치고 슬퍼하고 쓰러지고 울고 이내 체념하고 죽어버리는. 하지만 이상적인 공동체나 삶이 있을까.톰과 제리에겐 불행과 결핍이 없을까. 결국 희구도 행복도 모두 허상일지 모르겠다.




# 마지막 장면

메리는 또 행복한 가족의 즐거운 한 때를 '목격'한다. 그렇다. 그건 목격이다.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이 그녀와 그들사이에 존재한다. 그 벽너머로 그들을 바라보며 메리는 속으로 운다. 그건 체념일까 갈망일까. 애써 이래라 저래라 가르치거나, 억지로 행복하게 만들어 위로하거나, 위악적으로 그녀를 괴롭히지 않고 그저 묵묵히 그녀의 얼굴을 응시한 마지막 장면은(10초정도의 시간동안 아무런 소리도 내지않고 그녀의 얼굴만을 응시한다.) 내가 본 영화중 최고의 마지막 장면이다.

파수꾼 - 그건 싸움잘하는거랑 아무 상관없어



1. 그건 추억이었을까?
2. 정말로 다치지 않았니. 나도 너도.
3. 그럼 그건 폭력이었을까?
4. 그렇다면 피해자는? 또 가해자는?
5. 얼버무릴 수밖에 없지만 그래서는, 또 그러고 싶지는 않아.

5. 이제훈 대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