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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데라곤 술 마시는 집밖에 없어요 Vol.9 - 을지로 판타지아



모친의 전성기 시절 나와바리는 을지로와 충무로 일대였다.

 

꿈많은 만화가 지망생이자 유명 만화가의 문하생이었던 모친은 결국 외할머니의 부지깽이 러시에 굴복해 인쇄소에 취직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하셨다. 내가 태어난 이후에도 꽤 오랜 시간 일을 놓지 않았으니 이십 년에 가까운 시간을 을지로의 인쇄소 골목에서 보냈다.


(나중에야 동생 넷이 줄줄이 딸린 가난한 집의 장남과 결혼한 탓으로 맞벌이가 필수였다는 정황을 이해했지만. 그땐 모친이 야근하고 돌아와서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사는 집을 청소하고 빨래하고 내일 아침밥을 준비하는 데 이어 고등학생이던 삼촌의 도시락까지 준비하는 걸 이상하다고 여기지 못했다. 참.)


# Pax Euljironia


당시 모친이 했던 일은 한자 타자기를 사용해 책을 조판하는 일이었다. 7~80년대엔 아직 컴퓨터가 널리 보급되지 않았었고, 당시의 책들은 대부분 한자 사용 빈도가 지금보다 훨씬 높았으니 한자 타자기의 활용도는 출판-인쇄에서 매우 중요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모친은 내가 아는 사람 중 한자를 가장 많이 안다. 여전히 가끔 방송에서 한자 사용을 틀리거나, 해석을 이상하게 하면 지적을 즐기신다.) 


이렇게 생긴 거다. 한자 활자만 3천 자 가까이 된다. 그 한자를 몽땅 다 알고 있을 뿐 아니라, 활판 어느 위치에 있는지도 모두 외고 있어야 한다. 역시 손발이 불편해야 머리가 좋아진다.




다니던 인쇄소에서도, 을지로 인쇄골목의 업자들 사이에서도 모친은 꽤 유능함을 인정받은 인재였다고 당신께서 직접 말씀하셨는데 나로선 본 바가 없으니 믿을 도리밖에 없다. 암튼 그 때가 모친의 가장 화려했던 시절이다. 


모친은 지금도 대단한 풍류객이라 가끔 만취한 모자가 동틀 녘이 되어서야 귀가하다 현관문 앞에서 만나는 일도 종종 있는데, 몸과 마음과 주머니 사정까지 좋았던 그 땐 참말 대단했다고 한다.   


# Midnight in EulJi-Ro


그날은 모친의 생일을 며칠 남겨두지 않은 겨울이었다. 생일 선물로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양희은 아줌마의 콘서트 티켓을 샀다. 빠듯했던 알바비밖에 없는 대학생 나부랭이였던지라 2층의 가장 싼 좌석이었지만 그래도. 모친은 그 시절의 노래를 따라부르면서 매우 좋아하셨다. 울다가, 웃다가. 돌이켜보니 그 해엔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러니까 엄마없이 맞이하는 모친의 첫 생일. 


공연을 보고 나와 모친과 술을 마시러 나섰다. 사실 그 즈음은 이미 내가 여기저기 술을 한창 마시러 다닐 때이기도 했고 특히 서울 도심 한복판은 집회 뒷풀이를 통해 수집해놓은 맛집 정보가 빠삭했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자연스레 모친을 인도하려 했으나 종로통 무교동 을지로 골목골목을 누비는 모친에게 어느새 주도권을 뺏기고 말았던 것이다. "니가 술을 마셔봤자지, 이 구역의 한량은 나야"라는 표정이었달까. 


모친은 그 날 골목 골목을 누비면서 그 때와 달라진 풍경, 이제 떠난 사람들, 여전히 남아있는 사람들, 변해버린 당신의 모습, 하지만 여전한 당신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주당을 자부하던 남정네들을 말술로 꺾어버린 이야기, 미녀 동생에게 흑심을 품은 남자 놈들을 혼내주던 무용담, 그렇지만 너무 새침해 사실은 밉상이었던 동생, 그러니까 내 이모에 대한 험담, 생각보다 시시했던 첫사랑 이야기, 야근하는 밤이면 전화기 너머로 기타치며 노래를 불러주던 잘생긴 남사친, 빽판을 구하러 미군부대에 함께 숨어들던 큰오빠, 큰오빠보다 사랑하는 조용필 오빠, 양희은 언니, 못생긴 배철수, 쉘부르, 쎄시봉, 명보극장과 국도극장, 어울리지 않게 책을 좋아하던 거래처 남자, 다시말해 내 아버지 이야기까지. 골목골목의 굽이는 그녀의 삶의 주름이었고 그 골골에 갖은 이야기와 술과 음식과 토악질과 눈물이나 땀이나 설움 같은 것들이 잔뜩 남아 여전히 눅진눅진했다.  


모친을 따라 '동원집'에 처음 갔다. 동원집은 모친이 다니던 인쇄소와 매우 가까워서 당시에도 즐겨찾던 집이라고 했다. (그 땐 이 집이 TV 프로그램들이 앞다퉈 꼽는 맛집이 될 줄 알았을까.) 감자국 두그릇과 머릿고기 한접시를 시키고 소주를 마셨다. 술이 취할수록 그날 모친과 내가 나눈 대화는 아무말 대잔치가 됐다. (사실 그날의 느낌들이 남아있을 뿐 어떤 얘기를 했는지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이게 벌써 근 10년 전 얘기다.) 


이 사진은 며칠 전 동원집에서 찍은 사진. 10년 전엔 먹기 전에 사진찍는 문화같은 건 없었다.



서로 자기말만 떠들어대고 있었고 허름한 감자국집에 앉은 모자의 다소 어색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우리의 그 날 대화는 대단히 매끄러웠는데, 그 순간 우리는 아마 같은 나이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공구상가 어디쯤을 지나다 우리도 모르게 80년대 초반의 을지로로 흘러들어가버린 사람들처럼. 55살의 지훈이 엄마가 아니라 25살의 미스 박, 조용필 빠순이, 미래문화사의 에이스, 을지로의 풍류객. 박신자 씨를 만나러.


박신자 씨와 난 서로의 삶의 고민이 가장 힘들다는 듯 떠들어댔다. 그랬던 것 같다. 집을 떠나버린 남편, 내 맘도 몰라주는 그녀, 조국통일과 노동해방, 가정경제와 건강, 학생운동의 전망과 언론사 시험 진로 사이의 간극, 도무지 오르지 않는 우리집 집값. 등등등. 등등등. 서로 제 말만 떠들어대는 만취한 스물 다섯살들의 대화가 그렇듯. 영원히 넌 내게 스물다섯이야 배배, 오 곱하기 오 배배.


동원집에서 이미 취할만큼 취했지만 2차를 갔다. 굳이 골뱅이를 자셔야 한다고 하셔서. 골뱅이는 모친의 훼이버릿 술안주다. 그게 팍스 을지로니아 시절에 생긴 취향이라고. 사실 나도 술자리를 1차로 끝내본 적이 살며 없어서 (이는 모친 역시 '여전히' 마찬가지... 이걸 쓰고 있는 지금, 모친은 2차로 옮긴다며 먼저 자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오셨다.) 골뱅이 집으로.


영동 골뱅이를 갔다. 노가리 골목과 함께 을지로 직장인들이 퇴근길에 들러 맥주를 마시는 집이다. '오비 맥주집'과 함께 이 일대 주당들의 아지트 같은 곳이었다고. 


작년 여름에 찍은 사진이다. 여기는 옆집인 영락 골뱅이.


   

그 날 우리 술판은 매우 늦게까지 이어졌다. 조용필과 최진희, 김현식, 스모키에 로보까지 등장한 노래방과 3차까지. 집에는 택시를 타고 갔다. 다행히 택시비는 모친이 내셨지만 그 날 술 마시느라 한 달 알바비를 거의 다 탕진했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풍류객의 올바른 자세.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 미드나잇 인 을지로.



# EulJi-ro Fantasia


취향을 모친에게 물려받은 탓인지 아니면 피는 못속이는 건지 이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술마시는 동네도 이 일대가 됐다. 그보다는 을지로가 이렇게 멋과 풍류, 낭만과 해학이 가득한 동네입니다.


주로 1차는 5가의 경상도집에서 시작한다. 이른 저녁시간부터 길바닥 포장마차에 앉아 돼지갈비에 소주를 두어병 마시곤 배를 다 채우지 않은 채 일어서 을지면옥을 향한다. 냉면이 나오기 전에 술을 한 두잔쯤 미리 먹고, 냉면이 나오면 면을 흐트려 면의 곡향이 육수에 베기 전에 그릇째 두어 모금을 들이키면 돼지갈비 기름과 술냄새가 끈적하게 달라붙은 입천장을 씻어내는 느낌이 든다. 제육과 냉면을 두고 소주를 또 두어병 마시고 나면 근처의 영락 골뱅이나 노가리 골목으로 간다. 배가 아직도 다 차지 않았다면 조금 걸어 다동 용금옥의 추어탕이나 길 건너 종로통의 영춘옥엘 가도 좋다.


위에서부터 경상도집 돼지갈비, 영춘옥의 따귀찜과 을지면옥의 냉면

   



이 가게들은 모두 술 좋아하길 자부하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멋진 곳들이다. 특히 을지면옥같은 경우는 언제고 모친과도 꼭 함께 가길 바라는 곳이다. 냉면을 좋아하는 모친은 그 시절에도 을지면옥은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어느 곳에선가 평양냉면을 먹어봤지만 맛은 도무지 심심한데 고기 냄새는 날대로 나서 영 못먹겠더라는. 그래서 근래들어 티비에서 냉면을 소개할 때마다 저걸 무슨 맛으로 먹냐고 혀를 차는 모친에게 을지면옥의 개운한 육수를 꼭 알려주고 싶더라.


그래서 그렇게 대를 이어 을지로 판타지아. 낡고 오래됐지만 그래서 더 많은 것들을 품고 있는 건 노포들만이 아니다. 기억의 전승, 삶의 연속,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내 이야기를 더해 또 누군가에게. 술과 맛있는 음식이 연결짓는 것. 그 시절을 간직하고 오늘을 살아가는 일. 오늘을 살며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일. 하지만 그 시절이 쌓여 주조한 오늘을 똑바로 직시하는 일. 세월을 견디고 다시 오늘을 견뎌내는 삶. 내일을 희망하는 삶. 엄마의 삶, 나의 삶. 당신의 삶. 우리의. 그렇게 계속 계속 삶을 예찬하며 을지로 판타지아. 술도 마시고 고기도 먹고 냉면도 먹고.


# Diamond And Rust


기억이란 다이아몬드 아니면 녹.


을지로를 누비던 오늘의 박신자 씨에게 그날의 기억들이 찬연한 다이아몬드였으면 좋겠다.

삶에 최선을 다해 충실했고 가난과 고난에서 때로는 현명하고 또 때로는 어리석어서 이제는 나이들고 지치기도 한 그녀가, 그 다이아몬드를 자산 삼아 오늘을 더 찬연히 살아가는 멋진 여성이었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을지로를 누비고 다닐 나에게 오늘이 다이아처럼 남으면 좋겠다.

늘 삶과 관계에 솔직하면 좋겠다. 내가 누군가의 기억에 '녹'으로 남지 않으면 좋겠다. 

늘 삶에 최선을 다해 충실하고 가난과 고난을 가끔은 현명하게 또 가끔은 어리석게 맞이하면서도 늘 그 순간을 돌이키고 싶어하거나 후회한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다면 좋겠다.


엄마에게 배운 건 그런 거다. 넘치는 알콜분해효소와 새벽귀가 본능보다는.


어느 날엔가, 이 부정기 연재에 나온 집들에서 엄마랑 같이 술을 마실 수 있게되면 더할 나위 없겠다.

하지만 그 전에 을지면옥부터 먼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