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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커스_아무말큰잔치] 아무말 아무말 아무말

[워커스_아무말큰잔치] 아무말 아무말 아무말

“그래서 청년의 문제가 뭔데?” 물으면서 <아무말 큰잔치>를 시작했다. 청년 문제를 주제로 매달 15매의 원고를 써내라는 도무지 무리한 청탁을 받았고, 청년 문제 같은 건 없다는 말로 첫 회 원고를 때웠다. 써놓고 보니 너무 아무말이나 지껄인 것 같아 내친김에 코너 이름도 <아무말 큰잔치>로 지었다. 지난 29호에서 시작했고 이 원고는 아마 40호에 실리게 될 테니, 1년 동안 그렇게 아무말이나 막, 그리고 잘 떠들어댔다. 아무튼, 지나 생각해보니 (실은 구색을 끼워 맞춰 보니) 코너 이름을 잘 지었구나 싶다.

애초의 기획의도였던 청년의 문제란 어쩌면 우리가 언어를 상실하면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가 아닐까. 400자의 트위터, 사진과 해시태그의 인스타의 세계에는 담을 수 없는 긴 이야기. 진지충의 오글거리는 이야기. 설명충의 따분하고 재미없는 이야기.

얼마 전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자기의 ‘배우론’을 이야기하던 젊은 배우에게 면박을 주던 진행자들을 봤다. ‘오그라든’ 손발을 내밀면서 “혹시 아직 싸이월드 하세요?”라고 묻더라. 그러게, 싸이월드를 하던 때만 해도 우린 사이좋은 사람들과 함께 오글거리는 이야기를 지금보다는 많이 나눴다. 삶이 어쩌고, 세계가 저쩌고. 내가 처음으로 PC통신이라는 걸 시작했을 땐 더 했다. 그때 파란 바탕의 ‘BBS’에서 만난 누나와 형들은 짤방 한 장, 3분 순삭되는 요약으로는 차마 전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떠들고 욕하고 싸우고 그랬던 것 같다. 원고지에 눌러쓴 주의와 주장을 투고하고 연애편지에 마음을 담던 시대는 더 진지하고 오글거렸겠지. 시대는 변하고 기술은 발달하고 거기에 맞춰 사람도 취향도 트렌드도 변해가겠지만 그 흐름의 방향을 단 한 문장으로 압축한다면 ‘언어를 잃어가는 과정’이겠다.

오글거린다는 말이 나온 게 언제더라. 그 말이 나온 후부터 우리는 진지한 이야기를 견딜 수 없게 된 것 같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인터넷이 가장 빠른 나라가 된 이후 텍스트의 자리를 이미지가 차지하게 된 것 같다. 긴 글을 올리고 삭제당하지 않기 위해 올리던 ‘짤림방지용 사진’이 이제 긴 글을 대신한다. 스마트폰과 트위터가 등장하자 400자가 넘는 글은 길다며 읽지 않는다. 조금 진지한 글이 올라오면 ‘진지충’, 조금 긴 글이 올라오면 ‘설명충’이라는 놀림이 따라붙는다. 쿨과 담백이 득세하는 세상에서 사유의 언어는 유실됐고 비디오와 스킵과 유동성의 세계에서 텍스트에 정주하며 행간을 비집는 상상력의 언어는 도태됐다. 우리는 너무 많은 말을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언어는 상실했다.

저마다 힙스터가 되겠다고 하지만 정작 몰개성화하는 일이란 자기를 들여다보고 자기의 언어로 자기를 피력하지 못 하는 일이다. 수십 명이 같은 장소에 모여 비슷한 옷을 입고 모두 똑같이 급식체로 말하는 게 무슨 힙스터야. 타자를 혐오하는 일은 타인과 주고받는 언어가 사라진 일이다. 타인의 언어를 받아들이지 못하니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리 없다. 생리휴가를 말했더니 군대나 가라고 말하는 빈약한 언어 말이다. 세계를 단편적으로 이해하고 그 단순한 논리에 끼워 맞추지 못한 모든 것들을 배제하는 광기도 마찬가지. 그의 언어가 단순하기 때문이다. 세계에 선과 악만이 있고 우리 편이 무조건 좋은 편이라는 단순한 세계의 단순한 언어.
과거로 돌아가자, 스마트폰을 파괴해라, 옛날이 좋았어, 20대 이 ‘멍청한 개새끼’. 이런 얘기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러다이트 운동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다만 우리가 쿨과 담백, 편의와 유행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위해 무엇을 버렸는지 상기해 볼 일이라는 거다.

우리는 ‘아무말’을 떠들어야 한다

우리는 ‘아무말’을 떠들어야 한다. 나는 청년의 문제는커녕 당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심지어 내 문제가 무엇인지도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래서 더욱 떠들어야 한다. 나는 아무말을 떠들고 그걸 들은 당신은 내게 욕을 한 바가지씩 던져야 하고, 난 발끈해서 또 아무말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그 상호작용이 쌓이고 쌓여야 우리는 서로를 조금이라도 알 수 있게 될 거다. 세계에 대해 질문하고 주장하고 싸우고 화해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3분 순삭을 위해 편집하고 잘라내는 자투리들에 실은 진실이 담길 수 있고, 400자로는 표현해낼 수 없는 더 진지하고 구구절절한 이야기에 삶의 비밀 같은 게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서로에게 더 진지하고 장황하고 느끼하고 오글거리는 아무말을 던져야 하고 그걸 견뎌내야 한다. 한없이 빈궁해지는 언어를 채우는 것만이 나와 당신과 세계를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는 일이다.

예전에는 아무도 자기를 잉여라고 부르거나 바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래서 가끔 자기를 땡중이라고 부르는 스님들을 보면 대단한 고승대덕처럼 보이기도 했다. 요즘은 다들 자기를 한없이 가벼이 여기고 잉여라고 여기니까, 특별해지고 싶은 마음만으로라도 아무말을 내뱉으며 조금 더 진지해지고 조금 더 허세를 부려보자. 진지충이라고 불리면 어떻고, 오그라든다고 놀림 받으면 또 어떤가. 사실 요즘 같을 때라면 그게 바로 힙스터다.

모쪼록 쓸데없이 진지하고 괜히 아무말이나 지껄이는 졸고에도 1년이나 지면을 내준 워커스에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그 아무말을 읽으면서 작자에게 욕설 협박 메일 한 번 보내지 않은 선량한 독자 제현들껜 더 큰 감사의 말씀을. 우리 더 허세 부리고 더 진지하게 삽시다. 그럼 전 안티에이징과 보습에 바빠서 이만. 코 찡끗.




[워커스 40호]
 


단상

1.
뿌리깊은 나무를 보다 이도의 꿈에 문득 조소를 보냈다. 글을 읽는다해서 모두 언어를 갖게되진 않는다. 지금 수백년후의 백성들이 보여주고 있다. 여전히 어린백성들은 이르고자 하는 바 있어도 '그들'의 언어만을 사용해야한다. 법이나 제도, 진영, 합법이나 비폭력같은 말은 역시 저들의 언어다. 청춘이니 희망이니 멘토니 통합이니 혁신이니 하는 말들은 저들의 '꼼수'고 포장이다. 언어를 상실한다는 것은 그런것이다. 이도도 말했지만, 우리의 언어로 제대로 말해야 한다. '지랄'이라고.

2.
나꼼수 여의도 콘서트에 3만명의 사람들이 운집했다고한다. 거북하다. 그들의 선의를 의심하진 않지만(사실은 아니다 그들의 선의도 조금은 의심한다)그들의 지성은 확실히 의심한다. 그들이 정말 FTA를 반대한다면 그들은 나꼼수에 열광해선 안된다. 어제 여의도에서 김어준과 아이들이 뭐라고 말했을지는 안들어봐서 모르겠지만, 그들의 스탠스는 명확하다. 그들은 '노무현은 좋지만 이명박은 싫어'가 전부다. FTA반대는 신자유주의 자체에 대한 거부여야 하고 자본주의를 극복한 도다른 대안에 대한 상상력이어야 한다. 사회의 모순은 체제에 있지 정권에 있지않다. 이명박 정권과 노무현 정권이 다른 점을 갖는 부분은 '권위주의'와 '노골적 몰염치'정도다. 신자유주의의 총아인 FTA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지나며 만들어졌고 성장했다. 이명박이 한 일이라곤 비준하고 부시 골프카트 몰아준 일 정도가 전부다. (고작 그거하고 이렇게 욕먹는 것도 쉬운일은 아니다. 인물은 인물이야) 본질따위 안중에도 없이 표면에만 천착하는 일, 그리고 그 천착을 이용하려는 꼼수는 사기다.

3.
더불어 멘토니, 희망이니,청춘이니, 닥치고니 하는 타령들 좀 이제 그만. 안철수와 박경철에게서 더이상 뭘 배우잔 말이냐. 도대체 청춘이 이런것이며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닥치고 정치나 하라는 폭력적 언사에서 뭘 배워야 하지? 그건 강박이다. 안철수의 서울시장 출마가 거론될 때 안철수가 3백명의 멘토를 가지고 있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는데 시껍했다. 아직 어려서 그런가 삶의 지혜를 물을 단 한명의 친구도 어려운데 난.위에서 얘기한것처럼 자신의 언어를 가져야 한다. 이도와 우리소이가 그 개고생하면서 글자 만들어주면 뭐하나. 자기언어로 글 한줄, 세상의 단면도 읽지 못하는 수백만의 멘티들만 만들어냈다. '닥치고'라는 말은 너의 언어를 봉인하라는 말이다. 좀 닥쳐라.

4.
티비를 켰더니 조선TV가 나온다. 헉. 한참을 찾아 헤맨끝에 나의 사랑 KBS드라마를 찾았다. 무려 96번. 리모컨질하다가 손가락 관절에 물찰 기세.내 재인이를 돌려줘 엉엉엉. 근데 얘네 살아남을수는 있을까?

5.
아침이라기엔 좀 이른시간, 그러니까 6시반쯤에 담배사러 갔다가 눈발인지, 빗방울일지 모를 것들을 맞으면서 한참쭈구리고 앉아 지나는 사람을 구경했다. 동도 채 트지 않은 시간에 사람들은 분주했다. 부지런한 사람들. 문득 날짜를 생각해보니 12월, 겨울의 첫날이다. 그렇게 노래를 흥얼거리며 한참을 앉아있다가 집으로 들어오는데 문득 이기선의 시가 생각났다.
"두 눈을 부릅떴지만 사랑은 보이지 않았다 앓을 만큼 앓아야 병이 낫던 시절이었다 "

6.
MAMA는 못봤지만 소시무대의 클립이라도 봐주는게 참된 소덕의 자세. The Boys는 오글거리는 가사에 짜증이 나다가도 아이들이 팔뻗고 걸어오면 심장이 덜컹한다. 하악하악. 어쨌든 영어가사가 더 간지나네. 이거 사대주의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