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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데라곤 술 마시는 집밖에 없어요 Vol.11 - 친구 자취방


짜장면이나 한그릇 얻어먹을 셈이었어. 몸을 쓰는 일을 하는 데 내가 얼마나 무용지물인지는 니가 더 잘 알테니까. 이사하는 날 나를 굳이 부른 건 혼자 짐을 싸고 나르기 적적하니 와서 재롱이나 떨고 핑계김에 술이나 마시자는 네 배려인줄 알았지 뭐. 졸업하고 몇년이더라. 서른 몇 살이 어느새 훌쩍 넘어있었으니까. 아마 그 때를 떠올린 거야. 스무살 무렵에 그 스머프 반바지만한 네 자취방에 모여 앉아서 죽어라 부어 마시던 그 때 말이야. 


이사를 하니까 와서 손을 거들라던 네 전화를 받고 호기롭게 그러마 말했지만, 실은 그날 아침에 정말 무진장 가기 싫었드랬다. 일은 왜 그렇게도 바빴냐 말이야. 기자질이라는 게 그랬어. 특히 우리 회사는 더 그랬지. 주말이면 일은 더 많았단다. 뭔 놈의 집회는 그리 많고, 뭐 그걸 굳이 다 챙기려고 하는지. 그날은 모처럼 일정이 없는 주말이었어. 그래서 늦잠을 자고 싶었나봐. 집에서 일어나서 늬 집까지 버스를 타고 또 한시간은 가야 하는데, 넌 아침 9시까지 오라고 했잖아 임마. 알람 소리를 들으면서 이불 속에서 실눈을 뜨고, '급한 취재가 생겼다고 말하면 이해해주지 않을까?', '걍 무시하고 자버린 다음에 나중에 쿨하게 사과할까' 같은 생각들을 하는 통에 잠이 깨버렸다. 씻지도 않고 비척비척 나와서 버스를 탔다.   


실은 너희 집을 다시 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거기엔 너무 기억이 많아. 부끄러워서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이제 그곳이 없어지는 걸 보고 싶지 않았던 걸까. 잘 모르겠으니 그냥 아침의 일정이 귀찮았던 걸로 해두자. 그게 제일 평범하잖아. 


# 방 한구석 먼지 쌓인 기타 


그러게, 난 어차피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했잖아. 우리 엄마도 이삿날이면 나한테 집 밖에 나가있는 게 더 도움이라고 말했다니까. 내가 늘 지정석처럼 앉던 구석에 또 앉아서, 그 구석에서 살았던 날들의 이야기를 꺼내 수다를 떠는 게 내 역할이었지 뭐. 이럴 줄 알고 너도 이삿짐 센터 아저씨들을 부른 거잖아. 누누히 말하지만 일은 원래 잘하는 사람이 해야 한다구. 


누구 누구가 애인한테 차이고 와서 엉엉 울다가 이불 위에 토하던 날, 군대가기 싫다고 새벽까지 술을 퍼마시다 결국 늦잠을 자곤 아침에 춘천까지 택시를 타니 퀵을 부르니 법석을 떨던 날, 너랑 나랑 주먹다짐을 한 날도 있었다. 분명히 내가 이겼지. 코피가 나면 지는 거라는 룰은 도대체 어느 동네 룰이냐. 니가 먼저 울었는데. 거기다 난 원래 코피가 잘 나는 타입이라니까. 그 때 우리가 왜 싸웠는지는 기억하느냐. 난 기억하지만 차마 너무 부끄러워서 말은 못하겠다. 하지만 지금에서 다시 분명히 말하건대 전지현이 더 예쁘다 임마. 


술을 참 많이도 마셨다. 어제 밤에 초록색 위액을 봤네, 난 피를 토했네, 붉은색 즙이면 그건 쓸개즙이네. 뭐 그런 말들을 줄줄이 늘어놓으면서도 밤이 되면 또 술을 들이 부었어. 스물 몇 살 때더라. 누구의 생일이었더라. 하여튼 누구의 스물 몇 번째 생일이었어. 넷이 앉으면 무릎과 무릎이 닿는 네 좁은 방에 7명이서 낑겨 앉아 술을 마시던 날. 생일이라고 굳이 양주를 마셔야 한다면서 싸구려 양주 몇 병을 사들고 들어와서 과일 안주랍시고 귤을 까먹었다. 그 때 우리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 날이 참 좋았어. 개미 오줌만큼도 안들어있는 양주병을 죄다 비우고 늘 그랬듯 소주병과 맥주캔이 방 여기저기에 다시 흩어졌고, 먹다 남은 라면국물과 냉동만두 따위가 널부러진 밥상. 그 밥상을 발로 슬슬 밀면서 눕듯이 앉아 노래를 흥얼 거리던 그날. 그 날 눈이 펑펑 왔던 건 기억이 난다. 뻑뻑 피워 올린 담배 연기 넘어 반지하 창문에 눈이 쌓이던 모습이 참 예뻤다. 우리가 불렀던 노래는 뭐였더라. 내가 김장훈을 고래고래 부르다 시끄럽다고 너한테 귤을 맞은 건 분명히 기억하는데. 


학교에서 도망나와 잠수를 탄 것도 그 구석자리였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워서 며칠동안 밥도 안먹고 술도 안마셨다. 그냥 그렇게 침잠하고 싶었어. 그 땐 뭐가 그렇게 괴로웠는지 모르겠다. 그냥 하염없이 괴롭고 슬펐어. 하긴 그 때 우리는 온갖 것들이 다 아프다고 했고, 모든 것들이 다 사랑스럽기도 했어. 사흘째인가 나흘째인가 내가 "틀리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던 네 말이 참 큰 위로였다. 나중에 넌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넌 늘 그렇게 날 위로해주곤 했었다. 


실은 내가 더 좋은 삶을 살고 더 열심히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한 건 너 때문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일을 시작한 네 삶이, 스스로 삶을 꾸리고 지탱해가는 모습이 어느어느 문건 속에서 본 혁명이니 변혁이니 노동의 가치니 하는 말들 보다 훨씬 더 감격스러웠다. 밤새워 술을 마시면서 노동해방이 어쩌구를 지껄이던 내게, "이렇게 술을 마시고도 아침이면 꾸역꾸역 눈을 뜨고 일을 해야 하는 게 노동자의 삶"이라면서 "니가 읽는 책 속에도 이런 게 있길 바란다"고 말하던 것도 네 방의 그 구석자리였다. 


내가 너에게 위로가 됐던 날도 있었길 바란다. 그래, 그날처럼. 지금 생각해봐도 넌 참 모질게도 차였었다. 무식하기 짝이 없는 순정마초인 네놈이 이별을 통고하는 그녀 앞에서 온갖 멋있는 척은 다 하고 돌아온 것도 모자라 우리 앞에서도 멋있는 척 폼잡다가 취해서 질질 짜는 걸 그 때 찍어 놨어야 하는데. 잡스가 조금만 더 일찍 노력해서 아이폰이 몇년만 더 일찍 나왔으면 그 희대의 명장면을 남겨놓을 수 있었을 텐데. 그날 니가 폼잡다 넘어지면서 쪼개진 변기 커버는 아직도 그대로네. 그때 우리의 위로는 정말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왜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지 못했느냐고, 왜 그 앞에서는 울지도 못하고 여기서 추태냐고 놀려댔지만, 우리가 그녀의 결혼식에 똥물이라도 뿌리겠다며 허황된 악다구니를 부렸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진짜였단다. 서툴러서 그랬다. 어쨌든 걘 너 버리고 만난 그 양반이랑 결혼해 잘 산다더라. 이제 너도 행복해야 한다. 침대 밑에 아직도 고이 모셔놓은 그 상자도 이제 그만 버리렴.

    

우리의 안주는 늘 너무 초라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다들 그럭저럭 돈을 벌고 살았으니, 이제 그럴듯한 안주를 먹을 수도 있었을텐데, 그래도 우리의 안주는 계속 초라했다. 가끔 짜장라면을 끓여먹는 게 가장 스페셜한 안주였다. 면이 퍼지도록 졸여서 치즈와 계란을 범벅해 죽처럼 만들어 퍼먹던 그 우리의 스페셜 안주가 어느날 티비에 나왔을 때 호들갑 떨면서 저작권을 요구해야 한다면서 또 낄낄거리기도 했다. 간짜장 곱빼기를 시키고 짬뽕국물을 추가로 달라고 하면 자장면과 짬뽕을 다 먹을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누가 냈더라. 기억나지 않으니 내가 낸 걸로 하자. 그건 정말 연필에 지우개를 붙인 이후 인류가 고안한 가장 좋은 아이디어였지. 우리는 그 싸구려 안주들에 줄창 술을 들이 부었다. 이과두주를 그라스에 따라 마시면서 황비홍의 주제가를 엉터리로 따라부르기도 했다. 사내란 응당 강해야 (男兒當自强) 한다면서. 


술을 마시고 울다, 싸우다, 노래를 부르다가. 우리의 이십대는 오직 그것들이었을까. 취하고 떠들고 속상해하고 슬퍼하다 토악질해내듯 다 쏟아내면 다시 살아나 또 집 밖으로 나서는 것. 생각해보니 그 스무살이 네 스머프 반바지만한 방구석에 다 쌓여있다.


# 여전히 난 스무살


어느 날부턴가 네 방에 우리가 모여 앉는 일이 줄어들었다. 누구는 차를 사고, 누구는 주택 청약을 시작하고, 누구는 장가를 가고, 어느 주식이 전망이 좋고 하는 이야기가 주된 이야기 거리가 되면서였던 것 같다. 사실 제일 먼저 발길을 끊은 건 나였다. 난 그런 이야기들이 싫었거든. 여전히 나는 철없이 가난하고, 제 앞가림도 못하고, 통장에 수만원이 없어서 벌벌떠는 삶이라. 사실 그보다는 이런 초라한 삶에도 응원을 보내주는 너희들이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믿는다고, 세상에 내가 하는 말이 가장 똑똑하고 믿음직스럽다고 말해주는 너희들에게 늘 화가 났고 부끄러웠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그런 것에 화를 내는 게 부끄러웠다. 아마 몇 년 사이에 위로조차 받지 못할 만큼 내가 형편없어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발길도 끊고, 연락도 뜸해졌다. 


네가 제일 서운해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들었다. 니 전화를 부러 받지 않은 것도 니가 제일 서운해 하리라는 걸 알아서 그랬던 것 같아. 그러면서 말은 참 호화롭게 했다. 삶의 궤적이 달라졌으니 의무감 처럼 만날 필요는 없다고 말했었다. 의무감처럼 지켜야 하는 것이 어떻게 우정이냐고도 말했다. 의리 놀이 같은 것 좀 하지 말라고 젠체를 하기도 했고. 생채기같은 말들을 소금처럼 뿌려놓고 실은 나도 참 속상했단다. 왜 내 삶은 계속 이모양인지. 왜 나는 늘 가난한지. 왜 나는 어른이 되지 못하는지, 왜 나는 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지. 술에 취해선 그런 말들을 일기장에 쓰는 날 밤에 전화기를 조물딱 거렸지만, 결국 너에게 전화를 하지는 못했다. 모두가 성장하고 있는데 나만 여전히 네 반지하 자취방에 있는 것 같았다. 실은 사과를 하고 싶었다. 너한테는 꼭. 

  

얼마만이더라. 너랑 통화를 한 것이. 너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사를 도와달라고 했고 난 아무렇지도 않게 그러마하고 호기롭게 말했다. 아침에 네 방으로 가는 것이 싫었지만 그건 아침 일정이 힘들고 귀찮았기 때문이라고 하자. 일은 안하고 구석에 앉아 쫑알쫑알 떠들어댔던 것은 실은 너에게 하는 사과였다. 여전히 서툴어서 그렇다. 하지만 마음은 정말 진짜였단다.  네 방이 없어졌으니, 이제 나도 방구석에 쳐박아놓은 스무살에서 빠져나와야 하겠다. 너희들은 이미 훌쩍 커버렸는데, 나만 꽁하니 구석에 처박혀 세상이 어쩌구하는 말을 떠들어댈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니. 네 방을 정리할 때 날 불러주어서 참말로 고맙다. 나도 그 구석에 안녕을 말할 기회를 주어서 고맙다. 무엇보다 전화해줘서 고맙다. 


네 새집에는 볕이 잘들어 참 좋더라. 그 스머프 반바지에 비하면 축구장만큼이나 넓어진 집이 네가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를 증명하는 것 같았다. 이제는 일곱명이 아니라 열댓명도 둘러앉아 술을 마실 수 있겠더라. 무엇보다 결혼을 축하한다. 어른이 됐구나. 삶에 사람을 들이는 일이, 누구의 삶 속에 들어가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두려운 일인지, 책임과 노력이 어떤 것인지 넌 참 잘 아는 사람이니까,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을테다.


이제 아마 그 때처럼, 이과두주를 그라스에 부어마시던 때처럼 살 수는 없겠지. 돌아갈 수도 없고 돌아가고 싶다고 말해서도 안되겠지. 하지만 그 때를 더 소중히 기억하면서 살자. 그리고 조금씩 더 좋은 어른이 되자. 


그래도 가끔 만나 황비홍 노래를 부르면서 술을 마실 수 있으면 좋겠다. 사내라면 응당 강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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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은 토이의 <안녕, 스무살>

생각해보니 나 이 노래 부르다가도 귤 맞았던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