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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떤 생을 살아야


일찍 양친을 잃고 어린 동생들과 이 세상에 남은 고모님은 책이 없이도 어린 동생들을 성장시키고 전쟁을 치러내며 아들을 낳아 길렀다. 그리고 지금 고달픈 인간생활을 피하지 않은 사람답게 당당하게 늙었다. 나의 소설은 무엇을 성장시킬 것인가. 내가 어떤 생을 살아야 먼 훗날 나의 소설도 고모님처럼 당당하게 늙을 것인가.

신경숙 - 모여 있는 불빛 中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말을 하는 것이 나에게 또 누구에게 위로가 되리라고 믿는다. 그건 물론이다.
지혜로운 이가 온 마음을 다해 써내려간 글들과 그들의 언어는 나의, 또 어느 누구의 상처를 언제나 보듬어 줄테다.

무슨무슨 '론'을 붙일만큼 거창한 관점을 갖고 있는건 아니지만, 살아오며 어떤 태도를 견지해야지 하며 들고 있는 생각들은 있다. 그 생각들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낱말들이 동감이니 위로니 치유니 진심이니 하는 말들인데, 어떤 날은 그런 말들에 조차 동감하지 못하고 위로받지 못하고 진정으로 다가서지 못하기도 한다. 그럴때마다 그런건 순전히 지혜의 문제라고 여겼다. 조금 더 지혜롭지 못해서, 아직 지식이 얇아서 일거라고 생각하며 자위했다.

그렇다, 난 여전히 어리고 미숙하니까. 라는 말은 겸손이라기보단 차라리 자위와 같은 것이었다. 아직도 많은 시간들에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말들을 주워삼기다 보면 언젠가는, 또 그 다음에는 더 현숙해지고 깊어질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무엇을 하자고 지혜롭고 싶은걸까. 아니, 그보다 지혜로운게 무언지에 대해 막연하게나마 알고는 있을까.

고달픈 인간생활을 피하지 않은 사람답게 당당하게 늙은 고모님의 이야기를 듣다가 나는 무엇으로 나부터를 성장시킬 것인가를 생각했다.

게으르지 말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 나의 말들이 누구에게 위로가 되고 치유가 되길 바라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진정이고 진심이란 그런것이다. 나부터 성장하는 것, 그렇게 게으르지 않게 열심히 살아가는 것. 삶을 피하지 않고 마주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