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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제 헤어져


 진보정당이 유시민 전략을 받아야 하는 이유

## 사표론 혹은 비판적 지지론

노도와 같았던 87년의 항쟁을 끝마치고서도 노태우가 대통령직을 승계받는 꼬라지를 물끄러미 지켜봐야 했던 이유는 양김의 분열이었다. 분열에 대한 공포와 승리에 대한 집착은 그때부터였다. 많은 이가 '그들'을 싫어하고 미워했다. '그들이 다시금 권력을 잡아  내 삶을 파괴할 모습'을 보게 되는 걸 두려워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눈물을 머금고 '될 놈'을 밀어주자고 다짐했다. 다음에, 다음에를 기약하면서.

다음은 계속 차일피일 미뤄졌다. 김대중과 노무현을 지나 변변한 진보후보도 하나 내지 못한 지난 대선까지도 비판적 지지론과 사표론은 스멀스멀 고개를 디밀었다. 대선뿐이 아니었다. 총선과 지방선거에서도 마찬가지. 웃긴건 진보를 자처하며 비판적 지지론에 치를 떨던 이들조차도 정작 의회입성이 가시권에 들어오자 선거연대를 운운하던 모습.

그렇다면, 그간 일련의 정치협상들은 모두 진보나 혁명을 위한 것들이 아니었단 말이다. 그건 단지 금뱃지 패티시였다. 어떻게든 금뱃지를 탐하려는 저열한 욕심.들 주제에 진보니 개혁이니 집권저지니 비판적지지니 하는 말들을 입에 올려왔던거다. 어느 진영에든 노골적인 금뱃지 페티시 환자들이 넘쳐나는데 대의와 명분과 미래와 우리를 위해서 일단 지금은 닥치고 요기 붙어라 루저들아 라는 외침에 홀랑 넘어갈 바보가 어디있겠는가.

## 진보의 약진, 그리고 몰락

진보정당의 약진이라고 한다면 역시 2004년 총선의 결과다. 13%의 지지를 받고 두자리수 의석을 확보한 민주노동당의 약진은 그야말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게 탄핵과 민주당과 노빠들의 공이었다고 자처하기에는 글쎄. 난 유시민이 사표를 운운하며 민노당 찍으면 또 한나라당이 이긴다고 했던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당연하다. 내가 그러고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ㅡㅡ;;) 민노당 당게와 아고라를 오가며 사표론을 들먹이며 비판적 지지를 외치던 그 많던 불망의 밤들을 분명 기억하고 있는데 모든게 민주당의 공이라니.

진보의 몰락이라던 지난 대선의 2%지지와 분당은 한나라당의 탓이 아니다. 오히려 진보와 개혁을 자처하던 지난 정권이 보여준 행태라는 것이 아프간, 이라크도 모자라 대추리에까지 군대를 파병하고, 대량해고와 비정규직법을 만드는 것도 모자라 한미 FTA까지 채결한 것이 원인이라면 원인이겠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일단 지난정권과 민주당도 진보를 자처했으니 진보니 뭐니 하는 딱지가 붙은 모든 집단에 응징의 철퇴가 가해진건 어쩌면 당연한 일. '초록은 동색일지도 모르지만 쟤네와 우린 달라'라는 말조차 꺼내보지 못한 진보정당에 제일 큰 책임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은 차치하더라도.

이런 판국에 진보정당의 약진은 민주당 덕, 몰락은 한나라당 탓.이라는 해괴막측한 논리를 들고 나온다면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라도 발딱발딱 일어나 게거품 물어댈판이다.

## 백마 엉덩이와 흰말 궁둥이

초록은 동색이다. 행정수도 이전과 4대강사업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또 비핵개방3000과 대추리 파병또한 마찬가지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행정수도이전은 지방 발전 계획이라는 별로 아름답지도 않은 미명으로 또다시 작위적으로 근대화된 도시를 만들겠다는 단순무식한 발상에 다름없었다. '발전'이라는 미명이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다는 발상. 또 발전이라는 것이 오직 근대화되고 물질화되는 형태로만 나타나야 한다는 어리석고도 오만한 믿음. 개발이라는 당치도 않은 미명으로 강바닥을 해집겠다는 4대강 사업은 그런 개발주의, 물질주의를 부모로 둔 행정수도의 쌍생아와도 같다. 이제와선 노무현 정권에 입안됐다는 이유만으로 세종시 원안 추진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몰상식이 짜증날 뿐이다.

평화를 졸로 보고 경제를 숭배하고 생태를 외면하는 곳.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닮은 차원을 넘어 완전히 똑같다.
연대가 이루어져야 할 곳은 오히려 그들이다. 난 그들이 속시원하게 다르지 않음을 인정하고 똘똘 뭉쳐줬으면 싶다. 괜히 헷갈리지 않게.

앞서 말한것처럼 반MB전선은 진보니 혁명이니 개혁이니를 위한 것이 아니다. 오직 금뱃지 페티쉬 환자들의 사이좋은 위장술. 비슷하고 공감해서 짜여진 연대가 아니라 오직 적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짜여진 연대. 공감을 얻을 수 있을리 없다. 

## 진보의 목적 - 그러니까 무엇을 위해서

정당의 목적은 물론 정권창출에 있다. 그러나 진보의 목적이 정권창출과 의회진출에만 있느냐. 글쎄 과연.
대의를 이루는 쉬운길을 놔두고 왜 어려운 길로 돌아가냐 묻는 비담에게 스승 문노는 말했다.
"쉬운길로 가선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대의인 것이다"

진보정당이 모든 진보운동의 주력군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동의한다. 그러나 의회진출과 정권창출은 정당의 목적일 순 있겠으나 진보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진보의 목적, 동력은 '명분'이다. 이것저것 다 재쳐두고 의회에 진출하고 정권을 창출한다고 만사가 해결되지 않는다. 정당은 찾을 수 있겠으나 진보는 찾을 수 없는.
시작이고 끝은 아다시피 더 낮은 곳에 있다. 국회의원 금뱃지보다 마을사람들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이장님이 훨씬 진보의 명분에 가깝다. 이거고 저거고 일단 닥치고 의회진출부터.가 아니다.

의석과 정권을 잃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저들의 놀음에 놀아날 필요는 없다. 이미 저들이 되어버렸다면 할 말 없게 되는 거지만.

## 우리 이제 헤어지자

때만되면 이런 얘기가 나오는 이유는 '아깝기' 때문이다. 쌓아왔던 것, 버텨왔던 것 가진 것들을 내주기 싫기 때문이다. 그러나 줘야 할 건 버려야 할 건 다 버리는 것이 진보다. 쌓고 또 쌓아서 만족하는건 그야말로 꼰대들의 턱기 아닌가. 그리고 솔직히 얘기하면 이젠 가진것도 없지 않은가.

인정할건 인정하고 딱부러지게 말해야 한다.
민주당은 한나라당과 놀아라. 우린 너네랑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런 시시껄렁한 유혹에 넘어갈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

마음은 딴 집에 가있으면서 몸만 내게 와 부비며 용돈 타가는 옛날 애인하곤 헤어져야 한다. 그게 서로를 위해 좋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