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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정류장 - 같은 버스를 타는 사람들





# 이제 만날 때가 됐다는 듯이
이 영화를 처음 본 건 개봉 당시였다. 분당 총알이 400발 이상씩 소모되고, 핵에 대한 언급이 반드시 한번쯤은 있으며, 도시 전체(보통 LA나 NY)를 날려버릴 양의 액체폭탄에 대한 걱정으로 불철주야 피 흘리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헐리우드 영화가 홍수처럼 쏟아지고 그 홍수에 화답하듯 그런 영화들에 열광하는 친구들과 몰려 다니던 시절이었다. 있어 보이는 척이 주고 일켠에 또 다른 영화에 대한 관심이 부였던 취향 덕에 일단 지루해 보이고 친구들은 혹평을 평론가는 호평을 던질 것 같은 영화들을 기웃거리고 다녔다. 이 영화도 그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영화를 보고나서 젠체하며 "나쁘지 않았어"라고 말하는 그 순간의 우쭐함을 만끽하곤 이내 잊어버린 그 영화들 중 하나.

이 영화를 다시 만난건 지난 봄이었다. 2010년의 봄.
언젠가 2010년을 정의한다면 '무의미'라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단 말을 친구에게 했었다. 정말 그즈음의 난 그런 생활을 하고 있었다. 스스로 무의미한 허송세월인줄을 알면서도 어떤 것도 하지 않는 무의미. 의미 없는 게으름. 집 밖은 커녕 방 밖으로도 나가지 않았다. 전화는 받지 않다가 이내 끊어버렸고(사실 끊겨버렸고) 귀찮아서 밥도 안먹었다. 담배도 잘 안폈다. 그 와중에 가지 않는 시간을 떼우려 영화들을 몇 편 다운 받아 보곤 했는데 그 안에 있었다.
정말, 이제 만날 때가 됐다는 듯이.

난 내가 아주 웃겼다. 생각해보면 대단한 고민거리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치열한 삶의 반동에 따른 은둔도 아니었다.  내가 아주 못나고 게으른 놈이란 자괴감에 자다가 벌떡 일어나기도 했지만, 정작 무얼 잘못하고 있는지 말해보라면 말도 하지 못했다. 이 은둔을 즐기기도 했다. 별 말은 안하셨지만 가끔 걱정스런 눈길을 보내던 엄마나, 밖으로 끌어내 보겠다고 야구티켓에 내 코드의 술집까지 찾아놨다는 친구들의 관심을 내심 즐기고 있었다. 그러니까 관심을 받고 싶었던 유아기적 외로움과 투정이었을까. 그래도 밖을 나가지 않았다. 도대체 왜. 라고 물으면 글쎄, 만사 귀찮아서. 가 가장 근거있겠다. 무엇도 명확한 이유가 있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 외로움만은 진짜였다.
그러다 이 외로운 사람들의 영화를 봤다. 이제 만날 때가 됐다는 듯이.





# 그 외로운 사람들
재섭은 핸드폰을 사지 않는다. 여전히 삐삐를 들고 다니지만 정작 누구와 연락을 주고 받지는 않는다. 관계를 유지해 나갈 의사가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 누군가 삐삐를 쳐주길, 누군가 다시 말을 걸어주길 기다리고 있다.
철학이니 역사니 정통이니 하는 말들을 제법 지껄일 줄 알던 그는 세상의 루저다. 차 한대 살 여력도 마땅치 않고 어둔 골방에서 의미 없는 소설이나 끼적이는 동네 학원 강사. 그래서 그는 모든 이들을 하찮게 여긴(여기려고 한)다. 시를 모르는 것들, 대화가 되지 않는 것들, 속물들. 친구들에게 컴플렉스를 운운하던 그의 말은 허세이기도 하지만 진심이기도 하다.


소희는 진실을 믿지 못한다. "진실은 곧 거짓"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말도 사실은 거짓이다. 그녀는 누구보다 진실된 말과 관계를 희구한다. 사는게 무슨 의미냐던 그녀는 친구의 죽음을 아파한다. 어쩌면 그녀는 영화를 보러가자던 원조교재 상대에게조차 진실된 관계를 그리워 했는지도 모른다. 결국 여관이나 가자던 그에게 환멸을 느끼는 반복을 볼 뿐이지만.  

그/녀는 외롭다. 고립돼 있지만 그 고립을 누구도 봐주지 않아서 더 외롭거나 어쩌면 그 고립을 자기가 자초하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때문에 더 괴롭다. 혹은 내가 정말 외롭기는 한걸까. 하는 물음. 그 알량한 자기 확신조차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외롭고 또 괴롭다. 자기로 부터도 타자로 부터도 고립돼 있는 것 같아 더욱 그렇다. 재섭과 소희 얘기가 아니다. 내, 우리의 이야기다.




# 같은 버스를 타는 사람들
서울 시내에 수백개의 버스 노선과 정류장이 있겠지만 사실 이용하는 정류장은 그리 많지 않다. 생활이 일차원적인 외로운 사람들이라면 더욱 더. 거기에 시간도 매일 어슷비슷하니 버스에서 정류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어쩌면 매일 매일 같은 삶을 공유하는 사람들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면, 이 사람들은 한 다다음 생애쯤엔 대단한 친구로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

같은 버스를 탄다는 것은 같은 곳을 향해 간다는 뜻이다. 그 버스를 같은 정류장에서 기다린다는 것은 우리가 지금 함께 있다는 것이다. 서로 닮은 소희와 재섭이 있기에 가장 적절한 곳.

같은 버스를 탄 그/녀는 서로의 곁에서 목 놓아 눈물 흘린다. 아주 솔직한 울음. 조금 더 솔직했던 소희가 조금 먼저, 말도 행동도 운동신경도 마음도 조금 더딘 재섭이 조금 더 늦게. 그렇게 온전히 서로의 같은 방향을 같은 정류장을 확인하려는 듯 감독은 그 눈물을 오래도록 담아낸다.
(재밌었던건 재섭이 눈물 흘리던 우체통.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을 전하는 그 빨간 상자. 재섭은 우체통을 사이에 두고 소희와 이야기 나누다 눈물을 흘린다. 마치 편지 하듯이.)




눈물을 훔친 건 그 장면이다. 아, 같은 버스를 타고 눈물을 받아 줄 친구.
아니, 그보다 그런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여담이지만, 영화 이미지를 찾으려고 검색을 하다 '지루한 원조교재 영화'란 댓글을 봤다. 원조교재의 정의는 이미 영화 안에서 원조교재 아저씨가 내려줬다. 사랑없이 돈만 왔다갔다 하면 원조교재라고. 재섭과 소희는 사랑을 한다. 그 사랑이 연인의 마음이어도 좋고 동류의 인간에게 느끼는 우정이어도 좋고 사제간의 의리어도 좋다. 다만 그들이 사랑을 하는게 중요한거다. 그렇게 편협하게 정의 내리기에 사랑이란 말은 너무 예쁘고 아깝고 소중하다.
참고로 이 댓글을 본 포털은, 예전에 '사랑'을 검색했을 때 '이성간의 연애 감정'이란 편협한 정의로 난 짜증나게 한 그 곳이다. 내 이놈을 참.




# 김민정
아, 이렇게 예쁠수가.
연기를 잘 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이렇게 잘 맞을수가. 마치 맞춰 입은 것처럼.
'아일랜드'의 시연도 그렇고 김민정은 상처받고 아파서 더 날을 세우는 그런 슬픈 역할이 잘 어울린다.

사실 제일 좋아하는 여배우다.
정유미나 백진희를 주목하고 있고 윤아나 신민아를 보면 정신 못차리고 하악거리지만
팬카페까지 가입한건 이 언니 하나다...ㅋ



# 이 영화에 이렇게까지 집착할 줄이야


이런 저런 말을 쏟아냈지만 그저 보고 있으면 맘이 설레는 영화다. 며칠전엔 버스 안에서 OST를 듣다가도 그런 맘이. 위로일까. 그런거였으면 좋겠다. 무튼 외로운 누구를 알게 된다면 이 영화 DVD를 내밀어 볼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