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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총궐기 참석 후기

주말이 지났지만 100만의 여파는 아직 사그라들질 않는듯 보인다. 그동안 억압당한, 혹은 스스로 억제해온 분노의 크기가 얼마나 거대한지.

100만의 집결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억압당한 분노의 표출이었다면 평화시위의 프레임은 스스로 억압해온 분노의 관성이다. 저들에게 빌미를 줄 수 있으니 폭력만은 안된다는 말, 아이와 노인, 여성들도 함께 하고 있으니 그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말, 문법이니 규칙이니 전략이니 하는 말들이 그 관성을 옹호한다. 그러나 그건 사실 전복의 상상력이 부재한 것에 다름 아니다. 제도와 법이라는 거대한 아버지를 정점에 둔 일종의 오이디푸스 삼각형.

선거와 법치주의 같은 현대 민주주의 제도들 역시 마찬가지다. 오늘의 법치주의는 법의 지배 보다는 법에의한 지배에 가깝다. 그보다는 법 자체가 민중을 지배하기 위한 수단으로 탄생한다.모든 법을 부정하는 아노미를 지향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좀 그런 걸 지향해야 하지 않나 싶지만.. 좀 더 아나키적으로) 법이나 선거제도가 누구에 의해 만들어지고 무엇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져 왔는지를 살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종종 쓰는 표현이지만 주인집 허락을 받아, 주인집 망치를 빌려, 주인집을 부술 수는 없다. (주인집 망치를 '빼앗아' 주인집을 부수는 일과는 다르다.)

아버지, 주인집, 제도, 법 같은 것들을 살해하는 일에 죄의식을 느낄 필요는 없다. 그 죄의식이란 강력한 삼각형의 강박이 날조한 것이기 십상인 때문이다. 그 콤플렉스 안에서 발생한 저항은 저항이라기 보단 순응에 가깝다. 전복과 탈주의 상상력을 좀 더 발휘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삼각형의 정점만을 갈아치운 채 우리는 여전히 갇혀있게 된다. 민주당을 비롯한 정치권이 저렇듯 개수작을 부리는 건 그 징후다.

100만의 사람이 모이면 100만의 욕망이 분출되게 마련이다. 우리가 할 일은 이 욕망의 분출을 긍정하는 일이다. 혁명은 욕망의 분출에서 시작한다. 욕망은 그저 결핍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생산되고 또 생산하는 일이다. 평화라는 말에 욕망을 가두지 말자. 평화는 고착된 상태가 아니라 추구하고 지향되는 과정이다. 평화를 지향하는 상상, 탈주를 도모하는 용기. 필요한 건 오직 그런 것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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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민중총궐기의 브금은 <청년폭도맹진가>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는 자 그 누구라더냐 
저 철옹성을 쳐부수고져 힘차게 맹진하노라 
 짓밟힌 자들의 처절한복수리로다 
주먹 불끈쥐고 일어설 때 

화염 속에 불타오르는 저 철옹성의 끝을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