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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뚫고 하이킥



Paolo Pavan - Looking For a Way Out


'하이킥' 시즌2라는 진부한 홍보를 맘에 안들어 하면서도 꾸역꾸역 티비앞에 앉아 지붕뚫고 하이킥을 봤다. 전작에 갖는 흥미와 애정때문이었겠다. 별다른 의미도 없이 흥행작을 울궈먹는 수작이라고 생각했다. (안녕프란체스카 시즌3가 그랬던것처럼.) 거침없이 하이킥 이후로 다시 변변한 시트콤을 못만들고 있는 MBC가 띄운 의미없는 한 수라고 궁시렁거리면서 티비앞에 앉아있는데 "어라, 이거 뭔가 좀 다른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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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옮겨 놓은 것 같은 - 메타포

신애와 세경은 갈데없는 신세로 우여곡절 끝에 이순재의 집에 식모로 들어간다. 이야기의 기본적인 골자는 이 자매의 서울 생활기, 혹은 성장기쯤이겠다.
거의 매회의 갈등은 가난한 이 자매를 구박하는 주인집 딸 해리의 핍박에서 시작된다. 해리는 집안의 모든 것을 '소유'한다. 이 집안에 있는 것은 모두 자기 소유임을 간절하게(그렇다. 그건 간절하게에 가깝다.) 주장하고 신애와 세경의 인신마저도 소유하려 한다. 동시에 신애와 자신의 계급적 차이를 항상강조하며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모두에게 인정받으려한다.

이는 마치 유산계급이 무산자를 핍박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어쩌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에 가깝다. 존재에 대한 인식보단 소유에 대한 강박에 시달리는. 군중속에서도 고립된채 살아가는 모든 현대인들처럼 해리도 가정에서 고립되어있다. 유복한 가정의 사랑받는 막내딸인듯 보이지만, 저마다의 삶과 생활로 어느 누구도 해리의 잘못과 집착에 응징을 가하지 않는다. 결국 엄마의 꿀밤으로 소동은 마무리되지만 엄마조차도 해리의 잘못이 무언지 자세하게 얘기해주지 않는다. 결국 해리는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한다. 무엇과도 소통하지 못하고 물질만을 맹신하는 욕심쟁이 현대인들처럼.

너무 많은 것들을 삼키기만 할 뿐 쏟아내지는 못하는 우리처럼 해리의 작은 몸은 감당하지 못할 고기때문에 늘상 변비에 시달린다. (사실 과도한 육식같은 잘못된 섭생때문에 변비에 시달리는건 바로 우리들 자신아닌가)


## 엄연히 존재하는 계급

하이킥엔 엄격한 계급이 존재한다. 그것이 금력에 의한 것이든 가부장적 권위에 의한 것이든 학력 혹은 나이든 관계없이 하이킥은 무엇으로든 계급을 규정짓고 지배하려는 서슬퍼런 계급투쟁의 과정이다.

가짜학력으로 과외선생노릇을 하고있는 황정음은 학력이 들통나지 않으려 애쓴다. 가짜 서울대생인 그녀에게 진짜 서울대생 지훈의 "몇학번인데요?"라는 말은 친근감의 표현보다는 추궁에 가깝다. 마찬가지로 가장 쿨한 캐릭터를 표방하는 지훈조차도 은연중 자신의 우월적 지위와 카르텔을 확인하려는 질문인것이다.

정보석은 이순재의 신임을 얻기 위해 세경과 경쟁하고, 해리는 신애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고자 끊임없이 신애를 핍박한다. 결국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물고 뜯고 싸우는 세상의 축소판.


## 가족의 정체

하이킥 오늘 방송분의 에피소드는 저마다 다르게 해석하는 가족의 의미에서 기인하는 갈등들.  각자 "가족이라면 이래야지"를 외치지만 사실 그건 가족안에서 자기가 주도권을 차지하겠다는 욕망의 발로. 그 욕망을 예의니 상식이니 하는 말들로 치장해 봤자.

애초에 가장의 권위라는 말로만 가족의 형태를 얽메이려드니, 서로가 가장이 되고자 할 수밖에. 결국 누가 주도하든 고리타분한 가부장제다. 권위와 권위만이 맞붙어 싸우는.
가족이란 본래 그렇게 불완전한 공동체다. 에피소드의 끝무렵 해리의 나레이션처럼 가족은 선택하지 못한 최초의 공동체. 그 공동체의 빛나는 부분을 발견하게 해주는건 배려와 소통이다.


## 그래도 따듯한, 그래서 더 세상과 같은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고 말하는 어른들의 말처럼 그래도 세상은 따뜻하다. '뭐가 따뜻한데?'라고 물으면 딱히 할 말은 더오르지 않지만, 그래도 분명 세상은. 학교에 가고싶은 세경을 위해 새 참고서를 몽땅 버려주는 준혁처럼, 갈 곳없는 세경자매에게 기거이 방을 내주는 줄리엔처럼. 세상은 분명히 따듯한 곳이어서 우린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저마다 한걸음씩 내딛어 지금은 비록 아니어도 언젠간 더 좋은 곳을 찾고자 발버둥치면서 살아가는 세상.

지붕뚫고 하이킥의 제목은 헤르만헤세의 소설 데미안에서 차용해왔다고 한다. 다른 세상을 찾기 위핸 지붕을 뚫는 것처럼 알을 깨는 것처럼 지금 사는 세상을 파괴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한 발 한 발의 하이킥이 언젠간 지붕을 뚫을거라고 믿고 살아간다. 그래서 그 한 발 한 발의 하이킥을 매일 저녁 즐거운 마음으로 시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