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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허달림 -독백,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독백 - 강허달림


노래는 아마 '시절'로 기억된다. 첫사랑 그애가 좋아했던 아소토유니온이나 정인의 노래들은 그 시절을 소환해낸다. 그래서 잘 듣지 않는다. 내 사춘기의 노래는 웃기게도 윤종신과 공일오비였다. 그 땐 HOT가 무림을 평정했을 시절이라 어디를 가도 '위 아더 퓨쳐'와 '행복'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다니던 학원 선생님이 윤종신과 공일오비를 좋아해서 늘상 그걸 듣고 있었고, 학원에서도 학교와 마찬가지로 교실보다 교무실에 앉아 선생님들과 농담따먹기 하길 즐겼던 나는 자연스레 윤종신을 들을 수 있었다.

이런식으로 노래 한 곡이 시절을 대변 할 수 있다고 하면, 그리고 내게 가장 소중하고 기억에 남는 노래라면, 아니 기억에 남는다느니 소중하다느니 하는 겸연쩍고 진부한 표현이 아니라 지금 내 삶이 그 노래라면, 그렇다면 난 그 노래로 대변되는 그 시절에서 한발짝도 나서지 못한걸까.

'독백'은 그런 노래다. 그 때.
그러니까 혼란스럽거나, 외롭거나, 어렵거나.
결심했다가 무너지거나, 금방 일어날듯 하다가 또 일어선지 못할거라고 체념하거나.
세상은 혼자라고 읊조리거나 그러면서도 누군가를 간절히 찾거나.
위로받고 싶었지만 실은 위로하고 싶었거나.
그러니까 아무것도 아니었고
무엇도 되지 못했고 또 무엇이 되고싶은지 알지 못해서 무엇이 되고 싶다고 말하지도 못했던.

이런저런 사소한 일들이 있었다.
감자탕 한 냄비를 나눠 먹는 방법을 몰라서 혼나고 질질 짜거나,
삶을 다시 세워 홀로 올곧이 서겠다며 잘난 척하느라 뻗어 온 손에 침을 뱉었다.
세상은 책 바깥에 있다는 말을 책에서 읽곤 세상에 서려 했고,
갈 곳이 없는 주제에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노라 떠들었다. 그건 생각보다 힘겨운 시절이었다.
무엇보다 외로웠다.  

아마 하루종일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큰 길에서 아무 것도 없는 어두운 골목을 지나면 놀이터 맞은편에 우리집이 있었다. 집에 들어가기 전에 놀이터에 앉아서 담배 한대를 태우는게 습관이었는데, 그 때였던것 같다. 이 노래가 박힌건. 강허달림의 노래야 그 전부터 들어왔지만 왜 갑자기 그렇게 서럽게 울어버렸을까. 얼마인지도 모를만큼의 시간동안 울었다.

"무엇들이 그렇게 진실인지 알수도 없을수도. 그런 후에 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가"

이 노래는 여전히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아소토유니온의 노래를 들으며 첫사랑을 떠올리거나 윤종신의 노래가 유년기를 떠오르게 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미 바래져 미화되거나 희미해진 기억이 아니다. 난 아직도 그 '어둠에 지친 긴 터널'의 정체를 모르는 까닭이다.

난 여전히 혼란스럽거나, 외롭거나, 어렵거나.
결심했다가 무너지거나, 금방 일어날듯 하다가 또 일어서지 못할거라고 체념하거나.
세상은 혼자라고 읊조리거나 그러면서도 누군가를 간절히 찾거나.
위로받고 싶었지만 실은 위로하고 싶었거나.
그러니까 아무것도 아니었고
무엇도 되지 못했고 또 무엇이 되고싶은지 알지 못해서 무엇이 되고 싶다고 말하지도 못한다.

한 걸음도 나서지 못했다.
애쓴 다짐의 말이나,고백의 말은 필요하지 않다. 한 걸음도 나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고백이나 다짐은 그동안 얼마나 숱했던가.

좋아하는 이송희일 감독의 단편중에 '언제나 일요일 같이'란 영화가 있다.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을 읽고 화분을 키우지만 그 화분이 말라 죽을때까지 아무 것도 하지 않던 룸펜이 나오는. 아 그 뻔해보이는 클리셰에 갇혀서 여전히 같은 노래를 듣고있다.

아, 나란 남자......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