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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1.


이것이 명절의 진수.jpg

이번 명절, 불패의 신화를 새로썼다. 모친은 예년처럼 판을 뒤집진 않았지만 나중엔 정색하며 똥비를 흔들면 따따블이란 규칙을 내세웠다. 잃을수록 판을 키우고싶은 마음을 억제해야 돈을 딸 수 있다는 간단한 진리를 알려드렸으나 끝끝내 평정심을 회복하지 못하고 쓰리고를 맞으셨다.

돈을 딴 사람이 술을 사기로했기 때문에 치킨과 맥주를 샀지만, 잃은 돈을 주량으로 만회하겠다는듯이 들이키는 모친의 과음으로 딴 돈의 배가 넘는 돈을 탕진해야했다. But 이것이 명절의 진수. 명절음식따위 떡국 없어도 오늘만 같으라는 마음이면 그것이 명절. (아, 이건 한가위용 격언인가?ㅋ)

2.



Two Door Cinema Club - This Is The Life

요 며칠 내도록 듣고있는 투 도어 시네마 클럽.
노래도 잘하고 기타도 잘치는 예쁜 아일랜드 소년들.
제길, 이건 뭐 거의 판타지잖아.ㅋ

어쨌든 나이도 어린 것들이 바락바락 이것이 삶이라며 외치는 소리가 듣기 싫지 않다.
사실 어린 날은 (예수나 부처가 아니라면) 삶의 진실이 이것이라고 소리 지를 수 있는 유일한 시절이니까.

3.
명절 아침,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싸움을 보았다.
내용인즉슨 할아버지의 자신은 처가에 해야 할 도리는 다한 더할나위 없는 모범사위였다는 주장에 평생을 살면서 당신의 부모님 제사는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는 할머니의 한서린 분노가 부딪히며 만들어진 대결이었다.

결혼생활을 60년이 넘게 해오면서도 잊지 못하는 한이라니 그것이 얼마나 큰 것이었을지 짐작도 할 수 없겠단 안타까움과, 진심으로 자신은 처가에 도리를 다했다는 할아버지의 조금은 황당한 당당함에 대한 안타까움이 떠올랐으나 사실 안타까움보다는 웃겼다.

친정에 가지 못하는 것이 평생의 한이었던 할머니가 왜 명절에 친정엘 가냐고 엄마에게 윽박 지르며 온 집안이 발칵 뒤집혔던 기억이 선하기 때문이다. 또 웃으면서 자기는 외가집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며 할머니 편을 들던 아버지가 며칠전 내게 할아버지와 똑같은 대사를 (신기하게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했기 때문이다. 사실 나야말로 외가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이 소름끼치도록 철저한 이중잣대.

3-1.
요즘 화제인 학교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은 모두가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했다. 그건 작금의 사태가 제도의 미흡함이나 처벌의 경중따위의 문제가 아니라 폭력에 대한 감수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은 가정이나 학교에서 폭력에 피해를 입은 또다른 피해자다. 그들은 자신이 받은 폭력을 또다시 누군가에게로 전이시키는 것이다. 그들이 폭력으로부터 배운 것은 약자에게 행하는 폭력의 정당성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폭력은 전염되고 대물림된다. 결국 모두 가해자이면서 피해자.

웃긴 것이 명절 아침 노부부의 싸움을 보면서 비슷한 것을 생각했다.
가해자는 잘못을 기억하지 않고, 피해자는 정당화의 과정을 거쳐 다시금 가해자로 둔갑한다.
사실 그건 자신을 들여다보는 성찰과 사유의 과정도, 타인과 관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의 과정도 없기 때문이다. 서러움과 분노가 다시 다른 약자에게 행해지는 폭력으로 변화하는 과정. 그것이 모든 폭력의 발생 과정이다.

4.
말나온김에 가족얘기 하나 더.
외가와 친가 양쪽에 소위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이들이 별로 없다. 이혼과 별거, 재혼, 사별까지. 얼마전 할머니는 내게 50이 넘은 자식의 재혼을 위한 상견례까지 해야하는 당신의 팔자를 한탄하셨다. 그러면서도 이제 결혼할 나이가 된 손주들의 결혼걱정과 (거~~~의)연이 끊어진 사돈댁 손주(그러니까 내 외사촌들)의 결혼소식까지도 걱정하셨다.

내가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대한 막연한 긍정에 염증을 내고, 결혼제도를 회의하는 까닭은 전적으로 이성적인 판단에 의한 합리적인 것이지만, 이런 가정환경이 영향을 전혀 주지 않은건 아니겠다. 평생을 두고 어떻게 변할지 모를 마음만을 담보로 관계를 장담하고 책임지겠다는 약속이 얼마나 어리석고 오만한 일인가를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고 있으니까.
그 마음 담보만으로는 부족해서 법적 구속력까지 만들어 놓은게 결혼의 정체라서 담보가 신용을 잃었을 때 얼마나 귀찮고 애매한 문제들이 나서는가. 오직 가족만이 최고라고 울부짖듯 강변하는 이 사회는 그 행위 자체로 얼마나 스스로 납득하고 세뇌하고 있는가. 결혼따위, 가족따위.

5.
여행을 한 번 더 가야겠다.
이번엔 당황이나 혼란같은거 말고 정말 훌쩍 다녀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