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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추수주의에 대한 추억



MB “인기·인심 얻는 데 관심없다”



우리학교는 재단의 비리, 방만한 경영, 어른의 사정등의 이유로 초유의 학교부도 사태를 맞은 적이 있다. 그 초유의 사태를 해결코저 재단과 학교당국이 생각해낸 방법이라는 것이 '캠퍼스 이전'이었다. 서울시내에서 땅값으로 둘째가라면 서럽던 땅을 몽창 팔아서 빚을 갚고 헐값에 사두었던 변두리 귀퉁이로 학교를 통째로 옮기는 막돼먹은 퍼포먼스. 당연히 학생들은 결단코 반대해 나섰고 90년대를 관통하며 지지부진 늘어진 이 싸움이 학교의 전통처럼 자리잡아갔다. 그러던중 20년만에 운동권 학생회가 총학생회 수권에 실패하고 어용(이라 짐작되는) 총학생회가 들어서자마자 총학생회장은 이전 합의에 도장을 찍어버렸다. 싸움이 끝난 것이다.

그토록 치열하게 싸워왔던 학교 이전이 확실시되자, 더이상 투쟁의 방향성조차 잡아낼 수 없었고 마침내 온 학교의 학생회 일꾼들이 모여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중론은 현실을 수용하고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15년을 백지화와 반대만을 외쳐왔으니 대표체로서 '이후'에 대한 준비가 있었을리 없다. 소소한 생활환경적 준비에서부터 이후의 학자투쟁에 대한 전망까지 무엇하나 마련된게 없는 상태였다. 아무런 준비없이 시장나가는 소마냥 끌려가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냉철하게 현실을 파악하고 이제부터라도 내일을 준비하자는 의견이 대세였다. 물론 학생회에 바라는 학우들의 의견도 거기에 모아져 있었다.

난 패배한 총학생회선거에서 학자정책을 맡았다. 때문에 조직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운동권들의 습성대로 패배 후 비공식적으로 만들어진 새조직에서도 학자정책을 맡고 있었다. 이후의 투쟁방향을 토론하자며 모인 그 자리도 내가 제안해서 만들어진 자리였다. 패배이후 현실인식과 이후를 대비하자는 말들이 이곳 저곳에서 터져나오는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론과 대세였음에도 난 패배주의라 단정지으며 말을 꺼냈다.

"패배주의다. 상황이 어찌됐든 옳은 방향성을 제시하고 투쟁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인데 상황논리에 밀려서 정작 해야 할 투쟁을 도외시 하겠다는건 말이 되지 않는다. 학우들이 원하는대로 모든 투쟁을 진행하겠다는 말은 어느 것도 책임지고 헌신하지 않겠다는 무책임하고 비겁한 대중추수주의일 뿐이다. 결국 소 끌려가듯 끌려가더라도 끝까지 저항하며 우리가 원하는게 무엇인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결코 단념하고 걸어서 따라가서는 안된다. 그 끝모를 저항이 대중들에게 우리의 진정성과 순수성을 확인시켜줄 것이다."

고백하건대 당시 써냈던 학자운동총론에도 [골 터질때까지 싸운다. 안되면 될때까지 싸운다.]로밖에는 요약되지 않는 말들을 써내렸었다. 실제로 그런 생각뿐이었다. 우리가 옳으니 아니, 결국 내가 옳으니 이대로 싸워나간다면 언젠가는 알아줄거야.라는 막연하고 헛된 믿음이었다. 마치 오늘은 오해받더라도 후일엔 기억되는 선지자를 코스프레 하고 있었다. 그 코스프레의 시작은 끝간데 없는 자기확신. 그건 오만이었다.

그 되도않는 일장연설이 먹혀들었는지 그 날부터 새로운 캠퍼스에 등교를 하게되는 날까지 다들 머리통이 터지도록 싸웠다. 앞에서는 학교당국과 재단, 어용(이라 짐작되는)총학생회를 규탄하며 이미 구부능선을 넘어 현판식만 마치면되는 신캠퍼스 이전을 백지화하라고 소리치며, 뒤로는 새 캠퍼스에서 살아갈 방편을 물어오는 학우들을 만나는 후배일꾼들만 죽어나는 판이었다. 그/녀들은 어지러워했다. 도대체 무엇을 하는지도 몰른다고 말했다. 그럴수밖에. 나도 그게 뭐하는 짓인지 몰랐으니까. 난 그 말도 안되고 억지스런 쑈를 보면서도  애써 이게 진정성이고 모든것을 결의한 투쟁이라고 자기합리화 했다.

결국 새로운 캠퍼스를 맞닥드리고나서 모든 것은 명확해졌다. 아무런 준비없이 목청껏 있는 힘껏 치대온 팔뚝질은 아무런 대책도 마련해주지 않았다. 이전이후 1년간은 그 공백을 매워내느라 정신없는 시간이었다. 학우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갓끈이나 고쳐매고 있던 우리를 외면했다. 총학생회 선거에서 다시 패배했다.

처음 '학습'을 하던 때 받은 책은 '학생회 운영의 원칙과 방도'라는 거창한 제목의 책이었다. 책장을 넘기다보면 종종 나오는 어휘가 대중추수주의에 빠져선 안된다는 말이었다. 무조건 대중들이 원하는대로 행동해선 혁명이고 나발이고 결국 아무것도 못한채 쫑나기 십상이라는. 선배들도 그렇고 나도그렇고 그 말이 깊이 와닿았었나보다. 이후 뭔가 학우들의 의견이 어떻고 하는 말이 나타나면 '대중추수주의'라는 간편한 말로 뭉개버리기 시작했다. 무슨 말만하면 빨갱이를 운운하던 꼰대들처럼. 그 편리한 무기를 무기라 인식하지도 못하고 있었으니 그건 지독한 자기확신이었다.

대중추수주의란 말은 확고한 자기확신없인 가능하지 않다. 물론 무조건 대중들만을 쫓는 인기영합, 포퓰리즘은 어디서든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사랑이든 삶이든 혁명이든 정치의 영역이든 모든 곳에서 자기애와 확신은 명확해야 하는것도 맞는 일이다. 그러나 확신만큼 오만한 것이 없는 것 또한 맞는 일이다. 정도가 지나친 자기애로 자기를 민족의 태양으로 만들어버린 사례도 있지 않은가. 인민들이 굶고 있으니 지금하는 짓들 당장 멈추고 인민들 밥부터 주시오. 라고 말하면 그는 무어라고 할까. 대중추수주의라고?

인기따위 신경쓰지 않겠다는 MB의 말을 보고 있다가 여러 생각이 들었다. 서로를 가장 싫어해 양극단에 서있는 그들은 사뭇 닮았다. 자기 신념에 대한 흔들림없는 확신.(무엇을 향한 어떤 신념인지가 중요한건 아니다. MB에게 신념이 있겠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자신의 이익, 자본의 이익만을 자신의 신념으로 삼았다면야.) 한 줄의 의심도 하지 않으니 끝없는 평행선을 달릴밖에. 대중의 말따위야 한낱 우민(愚民)들의 의미없는 하소연일뿐.
결국 선지자를 코스프레하는 대책없는 책임감과 헌신에 혀를 내두르다가 지난 시간이 떠올라 얼굴이 빨개진다. 잃어봐야 알게 될 것들. 그러나 나야 고작 대학생활5년과 학생회를 잃었다지만 저들이 잃을건 수천만명의 삶인데.

난 여전히 정답을 알지 못하겠다. 어쩌면 앞으로도 영원히 모를지도 모를 일이다. 자기를 확신하는 일과 남을 받아안는 일의 적절한 경계선따위 도대체 어떻게 짐작해야 할까. 그러나 한개 두개 만들어진 오답노트 같은 것들은 있다. 확고한 신념같은 것들. 그건 너무 위험하지 않은가 하는.생각.
신념을 표피로 드러내 마침내 영웅이되는 옛날 이야기도, 목숨은 내놓을지언정 신념은 내놓지 않는 신념의 강자들이 이루어낸 혁명의 시대도 내가 감당하기에 난 너무 소시민적이다. 난 언제나 틀리고 틀린문제 또 틀리기도 하고 찍어서 맞춘걸 알고서 맞춘듯 으스대기도 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흔들리지 않는 확신, 모두를 거스르는 신념 같은거 난 두렵다. 오답을 놓고도 결국 정답으로 증명해낼 지혜와 의지가 있는 이라면 모를까. 그러나 인간사 예수와 석가 이후로 그런 인간이 있기는 했나?   





사과즙 글씨
정을 의심하여 반을 내세우고 합이 도출되어 다시 정이되는 변증법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논리라고 말하던 고교때 국사선생님이 생각난다. 지금 생각하면 정체를 숨긴 주사파였던것 같지만, 변증법이 아름다운 논리라는건 여전히 동의하는 바이다. 흔들림없이 '정'을 세우는 일, 거리낌없이 '반'을 받아안는 일, 그리고 마침내 합을 만들어내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내는 것이 진보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