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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 어쩌다보니 정치Ver


1.
서울대학교에 김정일분향소를 설치한 학생이 고발당했다. 난 김정일의 죽음을 과도하게 애도하거나 분향소가 차려진다해도 조문할 생각따윈 없지만,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슬퍼하는 이들의 정치적 자유까지 막을 생각은 없다. 다만 마찬가지로 그들을 비판할 나의 정치적 자유 역시 요구하겠지만. 볼테르의 유명한 경구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한국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는 여간해선 잘 지켜지지 않는 가치다. 언론법 수업시간에 교수님은 늘 미국의 수정헌법 제1조엔 표현의 자유가 명시돼있음을 강조했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근본이다.

2.
'닥치고'라는 말에 염증이난다. 무슨 말만하면 이젠 유행처럼 '닥치고'를 연발한다. 그건 닥치고 정치하라는 이들이 그렇게도 싫어하는 저들의 논리다. 닥치고 일하라던게 새마을 운동이었고, 닥치고 돈벌라는게 신자유주의, 엠비노믹스의 실체다. 언어를 상실하는 것은 저항을 상실하는 것이고, 주체를 상실하는 것이다. 삶의 주체가 되지 말라는 말. 그게 바로 '닥치고 정치'의 본질이다. 정치의 본질은 '무슨 일이 있어도 닥치지 않는 일'이다.

3.
정명훈 얘기로 타임라인이 시끄러워진게 한참 전인데 여전히 사그라들지 않는다.(이게 다 진중권때문ㅋ) 정명훈이 얼마를 받건 마에스트로에 대한 거장 예술인에 대한 예우와 그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감수성의 중요성에 대해선 일말의 의심도 없다. 언젠가도 말했지만 물 없인 살아남을 수 없지만, 노래없인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또한 고급예술이니 대중예술이니 하는 것들로 예술을 나누는 일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그건 접근성과 공공성의 문제,그건 좁혀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일이고 그에 남한사회가 극도로 미진할 뿐이다.

다만, 몇 억씩이나 받는 시향의 상임지휘자와 백만원을 겨우 넘긴 급여를 받는 연주자가 같은 오케스트라에 있을 때 양질의 예술이 만들어지리라곤, 또 예술이 공공성을 가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걸 가지고 정명훈 개인을 까댈거냐, 그럼 정명훈이 자기 연봉에서 연주자들 월급 인상해주랴.라고 물으면 할 말 없지만, 사실 세계적 지휘자인 그에게 가난한 예술인들이 연대의 손길을 요구하는 것외에 할 수 있는 일이 또 얼마나 있을까. 그에게 연대의 손과 더 적극적인 대처를 요구하는게 그렇게 몰염치하고 비상식적인 일일까. 심지어 그도 바스띠유에서 해고됐을 때 그렇게 예술적 동지들의 연대를 통해 구원받았었는데.

예술이 공공성을 갖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일은 예술이 공공재임을 모두가 인식하는 일이 가장 먼저겠지만, 동시에 창작자들의 삶의 문제도 해결하는 노력이 동반돼야한다. 이걸 가지고 닭이냐 달걀이냐를 놓고 싸우듯이 아웅다웅하기만하면, 나라면 일단 외면하게 될 듯.

4.
강정에서 27명의 활동가가 연행됐다. 문정현, 문규현 신부님도 포함해서. 대추리가 생각나는건 어쩔 수 없다. 구럼비 바위는 조금씩 조금씩 깨져나가고 있다고한다. 연대가 필요한 곳은 강정이다. 검찰청 앞에서 어느 쇼맨이 구속되는 현장이 아니라. 비행기 삯이 비싸다면, 강정 상단에서 멸치라도 한박스 주문하는 연대.

5.



종편이나 케이블이나
정치성같은건 사실 없다.
중요한건 팔 수 있느냐 없느냐.
체게바라가 길바닥 티셔츠의 인기프린트가 될줄 생전엔 알았을까.
자본이 무서운건 그점이다. 자신을 향한 저항까지도 상품으로 만들어내는 힘.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유머와 위트가 계속됐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