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렉트 시네마와 시네마 베리떼 - 기록이 진실에 접근하는 방법에 대하여




다이렉트 시네마와 시네마 베리떼

- 기록이 진실에 접근하는 방법에 대하여



흔히 다큐멘터리를 ‘객관적인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큐멘터리는 객관적인 기록일까. 그보다 ‘객관’의 의미는 무엇일까, 차라리 ‘객관’이라는 것이 가능할까. 현상은 인식의 주체에 따라 다르게 보이며 그만큼 다르게 해석되고 받아들여진다. 코끼리의 다리와 귀를 각각 만진 맹인들의 우화는 어쩌면 현상의 인식과 실체적 진실의 결코 좁힐 수 없는 괴리를 나타내는 건 아닐까.



# 다이렉트 시네마


다이렉트 시네마는 미국의 프레드릭 와이즈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와이즈먼은 생생한 사건이 최대한 방해받지 않고 흘러가도록, 사건의 직접성을 포착할 수 있게 카메라 앞의 대상을 내버려두는 관찰자적 접근으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다. 그들은 카메라 앞의 모든 인공적인 요소들을 제거했다. 조명과 촬영장비, 스태프까지. 인위적인 모든 요소를 거부한 채 눈앞에서 사건이 발생할 때까지 기다리는 작업방식이다.

에릭 바누는 <다큐멘터리Documentary: A History the Non-Fiction Film>라는 저서에서 다이렉트 시네마에 대해


“다이렉트 시네마의 감독은 카메라를 상황 속에 던져놓고 위기의 순간이 오기를 바라면서 참을성 있게 기다린다. 다이렉트 시네마를 옹호하는 예술가는 자신이 투명인간이 되길 꿈꾼다. 다이렉트 시네마는 카메라가 접근할 수 있는 사건들 속에서 진실을 구축한다.” 고 설명한다.



프레드릭 와이즈먼, <티티컷 풍자극 Titicut Follies>, 1967



와이즈먼의 데뷔작인 ‘티티컷 풍자극’은 매사추세츠 주립병원의 간수와 치료사, 사회사업가 등이 재소자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84분간의 흑백 필름에 자세히 기록한다. 와이즈먼은 인터뷰와 내레이션, 자막 같은 ‘다큐멘터리 요소’를 철저히 배제한 채 병원의 인권유린과 권력을 비판한다.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는 주장이다.


다이렉트 시네마를 제작하는 사람들은 관찰자적 순수함을 강조한다. 하지만 카메라가 존재하는 한 대상은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꽁꽁 숨겨놓은 카메라를 귀신같이 알아채고 앵글 밖으로 나가버리는 야생의 맹수들을 보라. 몰래 카메라를 귀신같이 알아채는 눈치 빠른 연예인들도 사실 야생의 맹수와 같은 후각이 있겠다.)


영화는 편집의 과정을 거쳐 스크린을 통해 관객에게 전해진다는 점에서 이미 순수한 관찰자의 시점은 애당초 불가능한 이야기다. 그보다는 관찰 대상을 선정하고 관객에게 이를 소개하겠다는 생각부터 ‘객관’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대상의 선정이란 오롯이 감독의 ‘의중’과 ‘의도’아닌가.

다이렉트 시네마의 대표 작품 격인 ‘티티컷 풍자극’ 역시 매사추세츠 병원의 인권유린 실태를 고발하겠다는 와이즈먼의 의중과 의도가 반영된다.


결국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감독의 의도가 영화의 맹아인 것. 다이렉트 시네마가 주장하는 진실을 드러내는 방법은 어떤 불순물도 첨가되지 않은 ‘사실’을 적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감독이 ‘주장’하는 ‘진실’을 토대로 만들어지는 영화가 제작방식에서 ‘사실의 적시’만을 견지한다하더라도, 이미 ‘순수’와는 멀어진다. 사실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다큐멘터리에 애초에 순수가 가당키나 한 말인가.



# 시네마 베리떼


시네마 베리떼는 프랑스의 인류학자이자 민속지학자인 장 루슈에 의해 시작된 다큐멘터리 제작 이론이다. 그는 플레허티가 ‘북극의 나누크’를 찍으면서 에스키모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연출자와 등장 인물간 상호작용으로서의 다큐멘터리 제작을 실천했던 것처럼 다큐멘터리가 현실을 기록하는 것이자 곧 사람과의 관계를 기록하는 것임을 경험에 의해 인식한다.



로버트 J 플레허티, <북극의 나누크 Nanook Of The North>, 1922



시네마 베리떼는 주제와 연출자의 상호작용을 허용하고 심지어는 촉발시키기도 한다. 이 방법론은 카메라의 존재를 합법화시켰으며 감독에게 화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함께 책임지는 촉매자의 역할을 부여했다. 가장 중요한 점은 감독이 특정한 순간을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대신 그 순간을 예상하고 자극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음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시네마 베리떼 형식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장 루슈의 ‘어느 여름의 연대기’다. 영화는 감독인 장 루슈가 파리의 시민들에게 던지는 ‘당신은 행복하십니까?’라는 근본적인 질문 하나만으로 진행된다. 이 질문은 출연하는 시민들은 물론 감독인 루슈까지, 근원적 행복에 대해 자신을 점검하게 한다. 때로 감독은 촬영한 장면을 해당 인물에게 보여주면서 그 인물이 말했던 내용들을 수정하거나 더욱 깊이 생각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장 루슈, <어느 여름날의 연대기 Chronique d'un été Chronicle of a Summer>, 1961



시네마 베리떼 형식은 우리가 익숙하게 ‘다큐멘터리’로 인식하고 있는 작품들에도 차용된다. 소개했던 ‘웰랑 뜨레이’에서 감독의 가족들이 내적과 학살의 기억을 가진 캄보디아의 마을공동체에 녹아들어가던 모습, ‘할매꽃’에서 감독이 외할머니의 사연을 받아들여가는 과정, 그리고 어머니에게 ‘용서’를 묻던 모습이 모두 시네마 베리떼의 제작이론에 기반을 두었다 할 수 있겠다. (그들이 제작이론에 의거해 부러 그 같은 대화를 시작했다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취할 수밖에 없는 그 방식들을 루슈가 이론으로 정립한 것에 더 가깝겠다.)



# 다이렉트 시네마와 시네마 베리떼


1930년대 이후로 다큐멘터리 제작방식은 격렬한 논쟁을 거치게 된다. 대상에 대한 서정적 관찰과 기록에 집중한 플래허티와 철저한 장인정신의 제작기술과 철저한 주관의식이 개입되는 지가 베르토프의 그것이다. 플래허티의 서정성도, 베르토프의 과장된 예술의식도 마뜩치 않았던 젊은 예술가들은 ‘프리 시네마 운동’이라는 새로운 문화 사조를 창출해낸다. 거기서 탄생하는 것이 시네마 베리떼와 다이렉트 시네마다. TV의 보급, 촬영과 음향장비의 발전 등의 변화에 맞춰 ‘기록’과 ‘현장성’에 방점을 찍은 미국의 다이렉트 시네마와 대상과의 관계에 작가의 미학적 관점을 반영하도록 노력한 프랑스 중심의 시네마 베리떼로 분화된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은 서로 다른 극단에 있는 제작 기풍인 것처럼 보이는 두 가지 제작이론의 뿌리가 사실은 같다는 것이다. 그들이 모두 추구하던 것은 대상의 ‘진실’을 기록하는 것이다. 결국 다큐멘터리는 ‘사실’을 기반으로 ‘진실’을 탐구하는 예술이라는 정의가 확립돼 온 과정이다.



# 역사란 대화, 그리고 현실을 다듬는 망치


기록의 의미란 ‘사실의 축적’에 있다. 그리고 축적된 사실을 토대로 ‘진실’을 찾는 탐구의 과정이다. 진실이란 그렇게 단편적이지 않으며 곧바로 눈에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바라보는 지점에 따라, 바라보는 사람의 세계관에 따라, 바라보는 시대에 따라 다르게 기억되고 또 새롭게 기록된다. 그렇게 다르게 해석된 또 다른 기록들의 계속된 축적. 그것이 켜켜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 진실, 그리고 ‘역사’다.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첫 장에서는 역사의 정의에 대해 배운다. 역사는 ‘사실로서의 역사’와 ‘기록으로서의 역사’로 분류할 수 있다. 전자가 객관적 의미의 역사라면 후자는 기록한 역사가의 세계관에 의해 해석된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사실로서의 역사가 우직하게 사실을 기록함으로서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 노력하는 다이렉트 시네마와 같은 것이라면 기록으로서의 역사는 사관의 세계에 따라 사실의 이면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를 통해 진실을 탐구하려는 시네마 베리떼와도 같겠다.


다이렉트 시네마는 진실의 의미를 사실의 나열로 좁히는 것이 아니다. 진실에 접근하기 위한 구도자적 끈기가 오히려 더 그 실체에 가깝다. 와이즈먼의 최고작으로 꼽히는 ‘벨파스트, 메인’은 뉴잉글랜드 지역의 지역공동체를 끈질기게 담아낸 그 구도의 산물이다.


시네마 베리떼는 진리에 닿기 위한 끊임없는 질문과 탐구다. 제멋대로 사실을 왜곡하고 변주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이면의 진실을 캐내기 위한 노력이다. 감독들의 다양한 세계관과 의도는 왜곡과 편향이 아니다.


청와대 탱크 진격의 사실을 두고 쿠데타로 규정할지 혁명으로 규정할지는, 그 공과 과는 무엇인지 두고 다투는 건 현재의, 그리고 더 많은 시간이 흐른 후대의 몫이다. 그 치열한 쟁명과 토론의 축적이 빚어내는 것이 역사다. 역사란 단면이 아니고, 알량한 단편의 사실로 규정할 수 있을 만큼 진실의 무게는 만만한 것이 아니다. 역사란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진행하는 것이다.


E. H 카의 말을 굳이 인용하자면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 여기에 브레히트의 한마디 조언을 덧붙이자면, “다큐멘터리는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현실을 다듬는 망치다.” 지금도 역사는 기록되고 있다. 그리고 그 기록은 현실을 다듬는 망치가 될 테다.




최후의 제국, 막다른 자본주의의 경고

<최후의 제국>, 막다른 자본주의의 경고

- 이미 지나가버린, 혹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


#1
대한민국의 18대 대통령 선거가 16일 남았다. 이번 선거의 가장 큰 화두는 역시 ‘경제민주화’다.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조차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고 복지를 강화하겠다고 약속한다. 민주통합당은 스스로를 ‘서민’정당이라고 변설한다. 문재인 후보는 “경제력집중의 폐해를 시정하여 헌법정신과 공동체 가치 구현”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쌍용자동차와 현대자동차, 유성기업에 이어 전북의 버스노동자들이 고공 농성에 들어갔다. 전기가 끊긴 가정의 조손은 촛불을 켜고 자다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

#2
얼마 전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민주당은 ‘의료개혁’을 핵심 정책으로 내세웠다. 오바마를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했던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의 기조연설에서 오바마는 “아들의 약값 4500만원을 마련하지 못해 눈물 흘리는 직장 잃은 아버지”를 위로했다. 그는 “모든 어린이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돕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현재 미국은 여전히 상위 1%가 전체 부의 43%를 차지하고 아이들 5명 중 1명이 밥을 굶고 있으며, 45명 중 1명은 모텔이나 자동차, 심지어 지하 배수구에서 생활하며 집 없이 살고 있다.

#3
중국의 시장경제는 덩샤오핑의 유명한 ‘흑묘백묘론’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고양이는 검든 희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이 이야기는 “사회주의 잡초를 심을지언정 자본주의 싹을 키워서는 안 된다”는 마오쩌둥의 ‘잡초론’을 누르고 중국에 시장경제를 도입시켰다. 흑묘백묘가 등장하고 30년, 중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경제규모를 자랑하는 사회가 됐다. 그러나 동시에 상위 1%가 전체 부의 41%를 차지하고 모유를 팔아서라도 생활을 이어가야 하는 도시빈민과 매일 밤 슈퍼카를 몰고 고급 클럽을 찾는 ‘소황제’들이 같은 도시에 공존하는 모순도 함께 찾아왔다.


[출처: SBS <최후의 제국> 화면캡쳐]

일요일, 주말드라마와 개그콘서트의 단 꿈에 빠져있었다. 방바닥을 뒹굴 거리며 “500원!”을 외치는 코미디언을 보고 낄낄거리면서 다가올 월요일이 몇 시간이나 남았는지 헤아리고 있을 때쯤, “당신이 가난한 것은 당신의 책임”이라 일갈하는 미국의 정치인을 봤다. 

SBS의 특집 다큐멘터리 <최후의 제국>이다. 화려한 조명과 불빛이 꺼지지 않는 건물. 번쩍이는 광고판과 그 광고가 팔아재낀 상품들, 사람들. 그야말로 ‘불야성’을 비추고 있는 화면이 가리키는 것은 ‘자본주의’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본주의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는 “보이지 않는 손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애초에 그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담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을 주창한 이래로 ‘자본주의’는 인간사회에 최적화된 시스템인 양 군림했다. ‘사회주의’를 대표하던 소련이 무너지고서는 그 독주를 견제할만한 어떤 것도 나타나지 않을 듯 보였다. 그러나 지금 자본주의는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2008년 세계 자본주의의 총화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발생하고 자본주의의 병증은 확연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스티글리츠는 “미국의 사회적 불평등은 100년 만에 최고조에 달했다”고 말했다.

<최후의 제국>에 등장한 미국 플로리다 올랜도 129번 도로 변 모텔촌에 사는 사람들은 집이 없어 모텔에서 삶을 이어가는 이들이다. 그들은 보증금 낼 돈이 없어 집을 잃었거나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해 은행에 집을 빼앗긴 사람들이다. 그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교회의 구호식품으로 연명한다. 그마저도 아무런 소스도 바르지 못한 파스타다. 하루 종일 일해서 번 돈은 대부분 모텔의 숙박비로 지출된다. 그러나 그런 일자리를 구하는 일도 쉽지 않다. 공장과 기업은 더욱 싼 인건비를 찾아 나라 밖으로 떠난다. 하루아침에 떠난 기업들이 남긴 것은 실직과 빈곤, 그리고 절망이다. 

[출처: SBS <최후의 제국> 화면캡쳐]

그들이 먹는 구호식품은 대부분 유통기한을 하루 남기고 폐기처분되기 직전인 음식들이다. 유통기한이 다 될 때까지 팔리지 않을 만큼 음식은 만들어지고 있지만 배를 곯는 이들도 있다. 음식을 먹을 사람도 있고 먹을 음식도 있지만 정작 음식을 먹는 사람은 없는 모순.

반면에 보험회사 CEO인 스티븐 마리아노는 1천만 달러짜리 집에 살면서 21만 달러짜리 승용차를 타고 출근한다. 12만 달러짜리 야구장 전용권으로 여가를 즐기고 상담 1회에 9백 달러를 받는 주치의를 두고 있다. 자산규모 6천5백억 원의 그의 보험회사는 금융위기의 불안감을 먹이로 승승장구한다. 그는 “돈은 사람을 당당하고 독립적으로 만들어 준다”고 말한다. 그 말은 곧 “돈이 없으면 사람은 당당하지도 독립적일수도 없다”는 말이다.

누구의 경제민주화 

CNN의 한 토론 프로그램, 진행자는 론 폴 하원의원에게 묻는다. “의료보험이 없는 사람이 치료비가 비싸게 나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론 폴 의원은 답했다. “그게 자유입니다,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죠.” 진행자가 다시 물었다. “돈 없고 의료보험 없는 사람들은 죽도록 내버려둬야 하나” 이번에는 론 폴 대신 론 폴의 지지자로 보이는 방청객들이 답했다. “그렇다”

얼마 전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는 ‘경제민주화’를 주창했었다. 그는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고 따뜻하게 입히고 밤에는 아이들을 잠자리에 눕히고 안전하게 그들을 지켜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를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은 ‘의료개혁’으로 대변되는 그의 경제민주화에 많은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올랜도 모텔촌에 사는 8살 세라는 아플 때 병원에 가지도, 배고플 때 배불리 먹지도 못한다. 그의 부모가 가난하기 때문이다.

[출처: SBS <최후의 제국> 화면캡쳐]

올랜도 모텔촌에 살고 있는 이들은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되던 그가 우리로부터 무엇을 빼앗아 갈까봐 두렵다”고 말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공화당의 조지부시든,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든 결국 다를 것이 없다. 

2012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도 ‘경제민주화’가 화두다. 여-야를 막론하고 경제민주화를 앞세운다. 서로 자신의 경제민주화가 ‘진짜’라고 우긴다. 어느 한 쪽의 경제민주화가 ‘진짜’라면 다른 한 쪽도 ‘진짜’일 수밖에 없다. 그들의 경제민주화는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미래성장 동력에 투자하고, 일자리를 만드는 일은 적극 지원하겠지만, 시장지배력을 남용하는 행위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말로 자신의 경제민주화를 규정한다. “우리 헌법의 규범 내에서 국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면서도 국민경제에 불필요한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는 박 후보의 경제민주화는 어쨌든 ‘시장경제체제’안에서 움직인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도 마찬가지다. 그는 “양극화 심화와 이로 인한 갈등과 분열이 새로운 성장과 변화를 막고 있으며 경제․지역․산업․기업 등 사회 전반으로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고 현상을 분석하면서 이 결과로 “시장경제질서의 근간 훼손되고 있다”고 밝힌다. 그의 경제민주화 역시 시장경제체제를 복원하는 일이다.

지금은 사퇴한 안철수 후보도 ‘정의로운 자본가’를 표방하면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한국사회가 그동안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착한 자본가’. 그가 1천5백억 원에 달하는 재산을 사회에 기부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그를 ‘경제민주화의 적임자’로 여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행처럼 번지는 ‘경제민주화’가 이 불안한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재벌을 개혁하고 복잡한 금융공학을 동원해 부채를 탕감하겠다는 ‘법’과 ‘제도’가 공장에서 쫓겨나 철탑에 오르고 밥을 먹지 못하고 병원에 가지 못하는 이들을 위로할 수 있을까. 1천5백억 원의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빈곤을 구제할 수 있을까. 맑스는 “사회가 법에 기반을 두는 것이 아니라 법이 사회에 기반을 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민주화 정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보호’, ‘금지’, ‘제한’, ‘강화’, ‘의무화’ 같은 말들이다. 오늘, 경제민주화의 주체는 ‘밥을 굶고 있는 이들’이 아니라 ‘밥을 남기고 있는 이들’인 것이다. 어쩌면 보호와 금지, 강화, 제한 같은 말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밥을 남길 수 있는 권리’일지도.

[출처: SBS <최후의 제국> 화면캡쳐]

오래된 미래


“한 농부가 풍성한 수확을 거두는 것이 다른 농부에게 흉작을 초래하지 않는다. 경쟁이 아니라 상호부조가 이곳의 경제를 이루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곳은 공생의 사회인 것이다”

- 오래된 미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최후에 제국>에 등장하는 브록파 마을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Helena Norberg-Hodge)의 ‘오래된 미래’에 등장하는 ‘라다크’의 마을이다. 

브록파 마을에선 밭에 나가 일 하는 동안 아이들을 이웃이 돌봐준다. 특별히 누가 부탁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사정과 필요한 도움을 알고 있다. 그들은 “마을의 아이는 우리 모두의 아이”라고 말한다. 

[출처: SBS <최후의 제국> 화면캡쳐]

특별한 제도가 마련돼 있는 것은 아니다. 이웃의 아이를 돌보지 않으면 일정한 규제가 가해지는 것도 아니다. 정부가 나서서 공동육아를 권장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이를 통해 척박한 환경에서도 함께 ‘공생’하고 있다. ‘무상보육’이나 ‘공동육아’ 같은 말들이 이념논쟁의 소재로 등장하고 무상급식을 둘러싼 논쟁이 수도의 시장까지 갈아치워 버리는 사회에선 낯선 풍경이다. 

산간마을, 척박한 토지의 브록파에는 풍족한 음식이 없다. 그러나 배를 곯는 어린아이도 없다. 그들은 잔치가 벌어지면 저마다 보리떡을 지어 나눠 먹는다. 한 덩이의 고기를 얻기 위해 한 마리의 소를 살처분 하는 이들과 하루에 한 끼 빈한한 식탁을 마주하기도 어려운 이들이 얼굴을 맞대고 살아가는 일 같은 것은 없다.

솔로몬제도의 아누타 섬은 인구 300명의 작은 섬이다. 이 곳의 아이들은 학교에 가면 청소를 한다. 수업시간엔 졸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칠판을, 어떤 아이는 옆자리의 아이를 바라보는 풍경은 여느 나라의 학교와 다르지 않지만 이곳의 아이들은 돈을 주지 않아도 학교에 간다. 

어른들은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의 아이를 입양해 키운다. 한 집 건너 한 명씩은 입양된 아이다. 그러나 아누타 섬의 주민들은 입양된 아이를 ‘특별히’ 취급하지 않는다. 함께 식량을 구하고 함께 집을 짓는 아누타의 주민들에게 아이들은 ‘누구의 아이’기 보다는 ‘우리의, 공동체의 아이’다.

[출처: SBS <최후의 제국> 화면캡쳐]

브록파도 아누타도 척박한 곳이다. 농사를 짓기에도 험난한 땅이며 바다는 거칠다. 먹을 것은 풍요롭지 않다. 스마트폰은 물론이고 TV도 없다. 아누타 섬에 들어가기 위해 <최후의 제국>제작진은 이틀간 엔진도 없는 돛단배를 타야했다. 척박한 환경이 아마 끈끈한 공동체를 만들었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서로를 지켜줘야 했을 테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자본주의의 세상이 팍팍한 땅과 높은 파도보다 척박하지 않다고 말 할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지나가버린, 그러나 아직 오지 않은

1960년대 히피즘과 반전운동의 기수였던 조안 바에즈는 작년 월가점령에 참가해 노래를 불렀다. “Where's my apple pie?(내 사과파이는 어디에 있지?)”.

월가점령의 흐름은 다소 미약해지는 것 같지만 1930년대 미국 공산당들에 이어 처음으로 미국인들은 ‘사과파이’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경제민주화’라는 조금은 미심쩍은 말은 정치인들의 힘싸움에 전유되고 있지만 한국에서도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움직임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나누어, 함께 살아가는 일만이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인식을 갖기 시작했다.

원시공동체 사회엔 그랬다. 커다란 몸집도 날카로운 발톱도 없던 인간들은 서로의 체온과 서로의 어께를 빌려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부족했으니 모든 것을 나눠야 했다. 그러나 그 때엔 한 구석에선 음식이 썩어 가는데도 한 구석에선 밥을 굶는 이가 발생하는 모순 같은 것은 없었다.

자본주의는 인류를 풍족하게 했다. 그러나 삶을 풍요롭게 하지는 않았다. 돈을 받기 위해 학교에 가는 미국아이들과 쌀부대로 만든 가방을 짊어지고 학교를 청소하는 아누타의 아이들 중 어느 쪽이 더욱 행복한 학교생활을 하고 있는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법과 제도가 공동육아를 지시하고 이에 반발하는 정치인들이 이념공세를 퍼붓지 않아도 브록파의 아이들은 공동체와 함께 자란다. 이웃집 엄마가 나눠주는 밥을 먹고 자란 아이는 아마 자라서 제 이웃집 아이에게 밥을 나눠줄 것이다. 공짜밥을 주기 싫다며 눈물 흘리며 자기 자리까지 내거는 어른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나중에 무엇을 나누어 갖게 될까.

녹색평론 발행인인 김종철 씨는 “지금 필요한 것은, 이미 늦었는지 모르지만 이제라도 ‘경제’에 관한 정의를 다시 내리고, 그것이 사회 전체의 새로운 상식이 되도록 하는 노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300년간 화석연료·핵에너지에 기반을 둔 무한한 욕망 추구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온 개념체계인 그동안의 경제개념을 척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류의 오랜 생활방식이었던 순환경제 시스템의 복구·재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wealth)’ 나라인 미국과 중국이 브록파와 아누타의 주민들보다 ‘잘 살고(Wellbeing)'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브록파와 아누타의 생활은 어쩌면 인류가 이미 지나온 길이다. 그건 신비롭게도 아직 남아있는 화석과도 같은 삶. 그러나 동시에 브록파와 아누타는 여전히 오지 않은 인류의 바라마지 않는 미래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마 최후의 제국, 자본주의의 경고를 무시하고 지금의 삶의 방식을 그대로 지속한다면, 영원히 오지 않을 미래이기도 하다. 

[출처: SBS <최후의 제국> 화면캡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오래된 미래’에서 경고했다. 

“우리 자신의 본성, 우리 자신의 욕구가 지금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대중매체를 통한 선전이 아무리 광범위하고 끈질기게 끊임없는 경제성장을 밀어붙인다 하여도, 그것은 우리와 우리 아이들이 온전한 정신으로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하여 진실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우리 자신의 본능적인 이해를 꺾지는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