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nny Boy - 북아일랜드가 부르는 상실과 그리움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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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재인을 보다 이 곡을 들었다. 서재명이 죽고 인우가 슬퍼하던 장면. 슬픈 장면인데도 왠지 웃음이.

'Danny Boy'의 원곡은 'Londonderry Air'라는 북아일랜드의 민요다. 하지만 이게 민요라는 간단한 말로 부르기 힘든 것이 북아일랜드에서의 위상이 우리나라의 '아리랑'쯤 되는 노래다. 심지어 북아일랜드의 국가도 이 'Londonderry Air'의 변형이다. 대니보이 역시 'Londonderry Air'의 한 변형이니까 그 무게감이 북아일랜드의 국가와 비슷한 격인 셈.

19세기 아일랜드가 영국의 식민지일때 아일랜드의 젊은이들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수없이 전쟁터로 떠나야 했다. 하지만 죽으러 가는 길, 그들이 어찌 기꺼웠을까. 하물며 그들의 부모는. 언제부턴지도 모르게 북아일랜드 지방에서불려지던 구슬픈 멜로디의 이 노래를 북아일랜드 사람들은 전쟁터에 나간 자식들을 그리워하며 불렀다.

And if you come, when all the flowers are dying
And I am dead, as dead I well may be
You'll come and find the place where I am lying
And kneel and say an "Ave" there for me.

꽃이 지면 네가 돌아올거야.
그리고 난 아마 죽어있겠지.
누워있는 내 곁에 무릎을 꿇고 넌 말할거야.
안녕, 당신 곁에 있을거에요.

전쟁을 치룬듯 격렬했던 시간을 마치고 아버지의 영정앞에 섰을 때 흐른
'Danny Boy'에 살짝 웃음이 날만하지 않은가.ㅎ
이 곡은 드라마 '아일랜드'에 삽입되기도 했었는데(지금 기억엔 거의 메인테마쯤 됐던듯.)
상실과 그리움의 정서가 골자였던 '아일랜드'에 아주 적절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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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나온김에 아일랜드 이야기.
19세기를 지나 1949년 아일랜드는 독립했지만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에서 이주해온 개신교도가 기득권을 행사하던 북아일랜드는 독립에서 제외된다.(아일랜드는 국민 대다수가 카톨릭이다.)

그 기득권 행사는 여전하다. 북아일랜드에서 아일랜드인들과 영국인들의 종교분쟁, 민족분쟁은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IRA의 투쟁이나 신페인당, 부활절 봉기같은 일들이 모두 북아일랜드와 영국간의 분쟁들이다.

그리고 가장 비참하고 유명했던 사건은 Bloody Sunday(피의 일요일). 시민권을 요구하는 비무장의 평화시위대에게영국군은 무차별 발포를 자행한다. 이후 처절한 싸움의 도화선이 됐던 사건. 피의 일요일이 지나간 후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는 노래를 발표한다. 'Sunday Bloody Sunday'와 'Give Ireland Back to the Irish'. 폴 매카트니의 'Give Ireland Back to the Irish'는 BBC의 금지곡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영국에서 비틀즈의 곡이 금지곡이라니. 엄청 예민한 사건이었던 거다.

그리고 한참이나 지나서 아일랜드 출신인 U2가 다시 부른 'Sunday Bloody Sunday'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다. 보노가 말하길
"난 아일랜드 사람으로 그 날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말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Broken bottles under children's feet
Bodies strewn across the dead end street
But I won't heed the battle call
It puts my back up
Puts my back up against the wall

아이들 발밑엔 깨진 유리병.
시체들이 늘어선 거리.
전쟁의 부름을 신경쓰지 않았어.
그저 벽에 등을 기대 서 있었어.

How long...
How long must we sing this song?

얼마나 오래, 얼마나 더 이 노래를 불러야 하는거지?


IRA의 테러리즘이나 아일랜드의 극우민족주의를 옹호하는건 아니다.
다만 알아야 할 것은 삶이란 오직 행복을 향해서만 가야 하는 것이라는 것.
그건 억압이나 종속, 복종,포기보단 자유와, 연대, 희망, 저항, 불복종에 가까운 느낌이라는 것이다.



코스모스 사운드 - 스무살

올 한 해 어떤 영화를 보고 어떤 노래를 들었는지를 돌아보는 것이 몇 년간 계속된 내 연말 결산이다.
나중이 되면 세금공제나 송년회 같은 번잡한 일들이 많아지겠지만(정말 그렇겠지? 그렇지 않으면 그것도 큰일.ㅋ)
지금은(아직은) 이렇게 좋은 영화와 음악, 책같은 것들로 지난 시기를 돌아보는 게 더 좋다.

좀 더 정리해보고 제대로 결산하겠지만 우선
아무래도 올 해의 음반은 내겐 코스모스 사운드다.

찌질하고 안타까운 노래, 그게 듣기 싫거나 추해보이지 않는 노래라면 그게 아마 스무살의 노래.
스무살에 관한 다큐를 고민중이란 말에 '아무래도 너에겐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키워드'란 말을 들었었다.
스물보다 서른이 훨씬 가까운 나이가 됐는데도 여전히 이런 노래에 이런 정서에 반응하는건 아직 명확히 짚고나서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여튼, 이 덤덤하게 아픈. 쥐어짜지도 허세부리지도 않는 아픔이 올 해 가장 좋았다.





코스모스 사운드 - 스무살

강허달림 -독백,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독백 - 강허달림


노래는 아마 '시절'로 기억된다. 첫사랑 그애가 좋아했던 아소토유니온이나 정인의 노래들은 그 시절을 소환해낸다. 그래서 잘 듣지 않는다. 내 사춘기의 노래는 웃기게도 윤종신과 공일오비였다. 그 땐 HOT가 무림을 평정했을 시절이라 어디를 가도 '위 아더 퓨쳐'와 '행복'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다니던 학원 선생님이 윤종신과 공일오비를 좋아해서 늘상 그걸 듣고 있었고, 학원에서도 학교와 마찬가지로 교실보다 교무실에 앉아 선생님들과 농담따먹기 하길 즐겼던 나는 자연스레 윤종신을 들을 수 있었다.

이런식으로 노래 한 곡이 시절을 대변 할 수 있다고 하면, 그리고 내게 가장 소중하고 기억에 남는 노래라면, 아니 기억에 남는다느니 소중하다느니 하는 겸연쩍고 진부한 표현이 아니라 지금 내 삶이 그 노래라면, 그렇다면 난 그 노래로 대변되는 그 시절에서 한발짝도 나서지 못한걸까.

'독백'은 그런 노래다. 그 때.
그러니까 혼란스럽거나, 외롭거나, 어렵거나.
결심했다가 무너지거나, 금방 일어날듯 하다가 또 일어선지 못할거라고 체념하거나.
세상은 혼자라고 읊조리거나 그러면서도 누군가를 간절히 찾거나.
위로받고 싶었지만 실은 위로하고 싶었거나.
그러니까 아무것도 아니었고
무엇도 되지 못했고 또 무엇이 되고싶은지 알지 못해서 무엇이 되고 싶다고 말하지도 못했던.

이런저런 사소한 일들이 있었다.
감자탕 한 냄비를 나눠 먹는 방법을 몰라서 혼나고 질질 짜거나,
삶을 다시 세워 홀로 올곧이 서겠다며 잘난 척하느라 뻗어 온 손에 침을 뱉었다.
세상은 책 바깥에 있다는 말을 책에서 읽곤 세상에 서려 했고,
갈 곳이 없는 주제에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노라 떠들었다. 그건 생각보다 힘겨운 시절이었다.
무엇보다 외로웠다.  

아마 하루종일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큰 길에서 아무 것도 없는 어두운 골목을 지나면 놀이터 맞은편에 우리집이 있었다. 집에 들어가기 전에 놀이터에 앉아서 담배 한대를 태우는게 습관이었는데, 그 때였던것 같다. 이 노래가 박힌건. 강허달림의 노래야 그 전부터 들어왔지만 왜 갑자기 그렇게 서럽게 울어버렸을까. 얼마인지도 모를만큼의 시간동안 울었다.

"무엇들이 그렇게 진실인지 알수도 없을수도. 그런 후에 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가"

이 노래는 여전히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아소토유니온의 노래를 들으며 첫사랑을 떠올리거나 윤종신의 노래가 유년기를 떠오르게 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미 바래져 미화되거나 희미해진 기억이 아니다. 난 아직도 그 '어둠에 지친 긴 터널'의 정체를 모르는 까닭이다.

난 여전히 혼란스럽거나, 외롭거나, 어렵거나.
결심했다가 무너지거나, 금방 일어날듯 하다가 또 일어서지 못할거라고 체념하거나.
세상은 혼자라고 읊조리거나 그러면서도 누군가를 간절히 찾거나.
위로받고 싶었지만 실은 위로하고 싶었거나.
그러니까 아무것도 아니었고
무엇도 되지 못했고 또 무엇이 되고싶은지 알지 못해서 무엇이 되고 싶다고 말하지도 못한다.

한 걸음도 나서지 못했다.
애쓴 다짐의 말이나,고백의 말은 필요하지 않다. 한 걸음도 나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고백이나 다짐은 그동안 얼마나 숱했던가.

좋아하는 이송희일 감독의 단편중에 '언제나 일요일 같이'란 영화가 있다.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을 읽고 화분을 키우지만 그 화분이 말라 죽을때까지 아무 것도 하지 않던 룸펜이 나오는. 아 그 뻔해보이는 클리셰에 갇혀서 여전히 같은 노래를 듣고있다.

아, 나란 남자......ㅋ

강허달림



친구와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데, 라디오에서 그때 그사람이 흘러나왔다.
"잠깐, 이거 강허달림 목소리 아니야?"

그 때부터 친구 얘기는 듣는둥 마는둥. 모든 신경이 그리 향한다.

노래에 이렇게 자기를 싣는 목소리를 일찍이 들어본일이 있을까.
그녀의 노래는 말 그대로 내던진 모든 것이 그대로 날아와 몸통에 박히는 느낌.
달림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눈물이 난다.

빼곡히 들어찬 숨결조차 버거우면
살짝 여밀듯이 보일듯이 너를 보여줘
그럼 아니. 또 다른 무지개가 널 반길지.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새내기때 처음 노래를 들었다.
가난한 우리의 사랑을 위해 노래하던 그녁의 목소리에 폭삭 젖었다.

조금 시간이 흘러 그들이 다시 부른 노래를 듣고서 어줍잖은 말과 글을 주절거렸다.
'그들의 노래가 뜨겁지 않아.'

며칠전 어느 술자리에서 말이 없어진 틈사이, 다시 노래가 흘러 나왔다.
산다는 것은 위대해. 아, 나는 살고 있잖아.

용산에서 사람이 죽어나간지 200일이 되던날 용산역 광장 귀퉁이에 쭈구리고 앉아 나는 노래를 불렀다.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