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공연 짧은후기, 노래를 돌려받은 기분이에요






노래 잘해서 좋아해요.ㅎ



기회비용 15만원짜리, 재밌거나 의미있었을 시간까지 포함하면 더 큰 기회비용을 지불한 공연이었지만, 그럼에도 간만에 참 좋았던. 그동안 궁시렁 궁시렁 이러쿵 저러쿵 말이 참 많았지만, 이렇게 노래가 좋으면 다 좋아요. 바로 팬심 되살아나 또 하악하악.

십 수 년만에 다시 돌아온 원년멤버의 우당탕탕 드럼소리가 그 시절의 노래와 마음을 상기시켜 주는 양. 형들한테 덤비는 것 같고 감히 불러선 안될 것 같아 그것만이 내 세상이나 넋두리 같은 노래는 단 한 번도 부르지 않았었는데, "사실 덤비는거면 또 그게 어때서"하며 부르던 그것만이 내 세상이 참 좋더라. 기쁨보리떡이나 슬픈인연도 무척 좋았고.

하지만 그래도 역시, '노래만불렀지'. 작년쯤 한창 산만하고 정신없던 시절에 부르던 노래만 불렀지는 그렇게 싫었었다. "내 노래만 불렀지를 돌려줘"라는 공연후기도 썼었는데..ㅎ 그건 마치 노래를, 어쩌면 시절을 다시 돌려받은 느낌. 그래서 오랜만에 덩실덩실.ㅎ 대학로 소극장 구석에서 덩실덩실 우린 미쳤어 하고 소리지르던 시절도 다시 생각나 울렁울렁 하기도 하고. 여튼,

며칠 전 전인권 아저씨 공연도 그렇고 요즘은 참 좋은 노래들에 귀가 행복한 시절이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으니 이제 새로운 꿈을 꾸어요.ㅋ


2012 올 해의 음반



올 해도 어김없이 세금결산 대신 음반 결산.

돌이켜보니 작년에 비해서 기억하고 싶은 음반이 많지않다.

그건 아무래도 작년에 비해 음악듣고 흥아흥아 놀아재낄 시간이 적었던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작년에 비해 좋은 음반이 상대적으로 좀 적었던 탓인 것 같기도. 여튼.

언제나 그랬듯 내맘대로. 순위도, 근거도, 독자도, 상관도 없는 음반 결산 시작.



# 강허달림 - 넌 나의 바다





아마 지금 한국에서 한국말로 노래하는 여성보컬 중에는 이 언니가 1등이지 않을까.

그러니까 '매끄러운 은쟁반에 굴러가는 옥구슬만 먹고사는 꾀꼬리 같은 목소리' 같은 게 좋을 때도 가끔 있지만,

이렇게 묵직한 소리가 날아와 박히는 순간이 '진짜'다. 그걸 진심이니 하는 조악한 단어로밖에 표현하지 못해서 무척 안타깝다. 그 눈물나게 위로되고 아프고 씩씩한 소리들에 어울리는 더욱 좋은 말들이 있을텐데.


이 2집앨범은 가장 좋아하는 앨범인 1집앨범과 '독백'Ep만큼 달고 살지는 않았다. 예전에도 한 번 했던 말이지만, 같이 찌질거려주던 누이에서 이제 궁둥이 툭툭 두들겨주는 막내이모로 포지션을 바꾼 것 같아서. 아직 찌질한 누나가 더 고픈가보다. 여전히 전작들이 더 좋긴하다는 말이다. 신보보다 과거의 작품이 좋다는 말만큼 예술가에게 실례되는 말이 또 있겠냐만, 그건 전적으로 내 취향의, 마음의 문제. 


'꼭 안아 주세요', '아무도 모르고', '그리되기를' 같은 트랙은 강허달림이 얼마나 좋은 보컬이며 창작자인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넘버라고 생각한다.  '멈춰버린 세상'은 용산참사를 노래한 트랙이다. 본인에게 사회적인 메시지를 노래하는 가수라거나 페미니스트 가수라는 수식이 붙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거나 반기지 않는 것 같지만, 난 좋은 노래는 좋은 눈과 마음. 그리고 그렇게 살아온 삶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여러모로 강허달림이 짱이란 뜻이다.ㅋ 


여름, 두 개의 문이 개봉하고 다시 열린 용산참사 추모집회에서 조용히 뒷켠에 섰다 인터뷰도 발언도 없이 가버린 그녀를 목격한 건 내 자랑.ㅋ



# 강아솔 - 당신이 놓고왔던 짧은 기억




기타치면서 고운 목소리로 노래부르는 (좀 흔한) 여성 싱어송라이터.일 것 같았다.

이름도 그렇잖아, 아솔. 적당히 곱고 예쁜 목소리로 샤랄라한 멜로디를 부르다 외모가 화제가 돼서 여신으로 불리게 될. 그런. 뭐 그러다 어느 밴드의 누구랑 연애한다더라. 그러다 라디오에도 출연한다더라. 뭐 그런. 좀 뻔한.


그런 얘기들에 지겨워하고 있었다. 누가 누군지 구분도 안되는 목소리와 멜로디들이 쏟아지는데, 대단한 음악적 성취라도 있는 양 포장'하는' 레이블이나 방송들이. 그래서 '여성 싱어송라이터'로 소개되는 이들에게 보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사실 '여성' 싱어송라이터는 또 뭐야)


그런데, 강아솔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이건 뭐. 제가 완전히 잘못했습니다.

"4년 전 5월" 하고 부르는 그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 

"이 노래가 그대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바라오"하는 마음 씀씀이.


제 2의 OO 같은 말들이 아까운. 오래동안 노래부르고 듣고싶은 가수의 탄생.


(와우북페에 강아솔이 출연해서 꾸역꾸역 보러갔는데, 장래희망은 래퍼라고했다. 헐 대박. 근데 랩도 잘해. 이건 뭐. 못하는게 뭐임. 근데 얼굴도 예뻐. 엉엉엉)



# 정태춘 박은옥 -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선언의 결기나 혁명에의 꿈. 같은 것들이 민중가요라면 정태춘의 노래는 민중가요가 아니다.

다만 나약한 삶에 대한 위무, 미욱한 인간에 대한 응시와 절망. 역시 민중가요라고 부를 수 있다면 정태춘이야말로 민중가수다. 그런데 사실 이런게 뭐가 중요하겠는가. 


팔뚝질과 격렬한 언어만이 시대를 노래하는 것은 아니다. 시내버스와 고속전철, 서울역 이 씨에 대한 회한은 그대로 시대다. 마찬가지로 하룻밤 사랑이나 의미를 알 수 없는 주문같은 노래들도 시대의 반영이다. 민중가요라는 말 자체는 얼마나 어이없고 부질없는가.


정태춘과 박은옥의 노래들은 관조하고 위무하며 동시에 절망하거나 연민한다. 이건 어느 날들처럼 노래를 불러 분노하고 선동하고 다짐하는 대신 차라리 증언하고 있다. 시대를, 세상을, 사람을. 그래서 그들의 노래는 위로고 응원이다. 절망해주기 때문에 함게 희망일 수 있다는 메시지기 때문이다. 어설픈 낙관이 아니라 함께 절망해주는. 그걸 그대로 지켜보고있다고 증언해주는. 정태춘의 목소리는 외롭지만 감사하다.


이런 노래가 다시 불리워지지 않을까 무섭다.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를 타면, "아무도 손 흔들지 않는 등대 아래, 하얀 돛배 닻을 올리고 있을까"



# 여러 명 - Reborn 산울림




2011년의 들국화 트리뷰트에 이어, 2012년에는 산울림.

(2013년에는 어떤 전설에 대한 트리뷰트가 이어질 것인가ㅋ)


들국화가 놓쳐버린 시기에 존재했던 전설.의 위용이라면,(재결성해 더욱 위대한 음악을 들려주고 있지만 그것과 이건 또 다른 문제고 음악) 산울림은 꾸준히 지금껏 오래도록 이어오는 전설. 그러니까 들국화가 비틀즈 같았다면 산울림은 롤링스톤즈 같았달까.ㅋ (김창익 아저씨가 돌아가시고 산울림이라는 이름의 밴드는 없어졌지만, 김창완밴드는 그대로 산울림의 궤를 이어가는 또 다른)


여하간, 산울림의 노래는 그대로 '한 마디 말이 노래가되고 시가되는'.


NY물고기가 부른 '독백'이 가장먼저 귀에 들어오는 트랙. 장기하와 얼굴들이 부르는 '조금만 기다려요'는 그대로 너무 산울림스러워서.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무지개'나 킹스턴 루디스카의 '가지마오'는 그대로 자기들의 오리지널 넘버라고 해도 믿을만큼 신선하고 재미있는 헌정. 이진욱의 '나 어떡해'도 마찬가지. '나 어떡해'는 이렇게 변할 수 있을 줄 정말 몰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김창완밴드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산울림의 노래 중에 가장 애정하는 이 노래를 김창완밴드가이렇게 기깔나게 연주하는 것은 이 앨범이 지난 시대에 대한 존경심 따위가 아니라 지금 살아있는 위대한 음악인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한다. 그렇게 산울림은 지속된다. 그래서 차라리 Reborn은 적당한 이름이 아닐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태어나기는. 아직 그들은 죽지 않았다.



# 3호선 버터플라이 - Dreamtalk




3호선 버터플라이를 처음들은 건 2003년, <네 멋대로 해라>에 삽입된 '나비의 꿈'.


남상아의 보컬이나 성기완의 곡은 이미 그 자체로 완성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사실 남상아같은 목소리를 갖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전생에 나라를 한 100번 쯤은 구했었나봐. 허클 팬들이 괜히 이소영이랑 비교를 하면서 찌질거렸던게 아닌거다. (음.. 작년 이맘때 허클 앨범 얘길 하면서 다시는 비교를 안하겠다느니 하는 말을 했던 것 같은데...)


여하간 더욱 좋아진 것을 보면 아마 그게 완성은 아니었나보다. 멜로디는 더욱 정겹고 남상아의 보컬은 더 적절하다. '달이 뜨지않고 니가 뜨는 밤'처럼 더 슬프거나 '헤어지는 바로 오늘'처럼 더 묵직하다.


연주력이 어쩌고 하는 말은 내가 할 수 있을만한 얘기가 아니니 차치하고 다만 이런저런 노이즈를 가장한 사운드들이 매우 흥미롭게 반복돼 더 좋았다는 말 정도만. 사운드와 소음을 가르는 기준, 그게 연주력이겠지. 아마. 이런저런 의미부여 없이 가장 좋은 음악을 가장 적절히 해내는 밴드.라고 하면 올해는 단연 아마 이 밴드가 아닐까.



# 박지윤 - 나무가 되는 꿈





박지윤의 음악을 이야기함에 있어 늘 언급되는 JYP나 성인식의 이미지들은 이제 그녀에 대한 무례일 것이다. (아마)

그 시절의 아픔을 딛고 이제는 성숙한 여성 싱어송라이터로 거듭난. 같은 표현들로 치부하기에 박지윤은 훌륭한 보컬이고 이 앨범은 그 훌륭한 뮤지션의 수작이다.


거의 가성을 사용하지만 그 소리가 결코 부담스럽지 않다. (난 가성을 쓰는 노래들이 대부분 버겁다. 그래서 조관우를 높이 평가하는 이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잘) 그녀의 음색은 기타뜯는 소리, 올갠소리와 무척 잘 어울린다. 특별한 고조 없이 무난하고 평이하게 이어지는 멜로디도 좋다. 


'좋은 친구들'의 도움이 컸을 것으로 보인 지난 앨범과 달리 이번 앨범은 그녀의 심지에 좋은 친구들이 얹어진 듯한 느낌이다. 마치 이상은이 담다디를 부르고 춤을 추던 모습에서 탈피하기 위해 노력하다 이제는 그 시절을 말하며 탬버린 들고 담다디를 불러주는 것 처럼, 그녀도 어느 날인가 기타치며 성인식을 불러줄 수 있을 것 같다.



#  여러 명 - 블루스, The 블루스

 



블루스 앨범. 같은게 있을리 없다. 블루스라고 말하면 R&B를 떠올리는 이 땅에 말이다.

기껏해야 신촌블루스 정도가 대중들이 기억하는 블루스일까.


블루스는 재즈와 로큰롤의 기반이 되는 음악이고 좋은 로큰롤 연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연습 공부해야 하는 음악. 이라고 음악 교과서 같은데 보면 나온다. 지난 시즌 탑밴드에서 신대철은 자기 제자들에게 블루스를 연주하게하는 과제를 주기도 했었다. 거기서 애들한테 근본없다고 쿠사리 엄청 주더라만. (그 신대철의 아버지 신중현이 한국 블루스 음악의 거두.라고 볼 수 있겠다. 미군부대에서 기타를 연주하던 신중현의 음악은 블루스 기반이다)


여하간 이 블루스 컴필레이션은 그런면에서 신기하기도 소중하기도 한 음반이다. 강허달림이나 로다운, 림지훈 같이 꾸준히 블루스 연주를 지속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한번에 듣기가 어디 쉬운가. 거기에 조이엄이나 강산에, 깜악귀 같은 이들까지도. 


더 블루스엔 갖가지 블루스가 다 들었다. 엄인호의 신촌블루스와 채수영의 저스트블루스에서 노래부르던 강허달림의 '그러면 돼'는 그야말로 한국의 블루스다. (강허달림의 1집 앨범엔 엄인호와 채수영의 연주가 몽창 들어있다. 그야말로 한국의 블루스 디바) 제일 좋아하는 곡은 김대중의 '300/30'과 림지훈의 '좋아서 우는 겁니다'.


'300/30'은 300에 30짜리 월세를 구하러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는 청년빈곤층의 이야기. 옥탑방에 앉아 비행기 바퀴가 잡힐 것 같다고 얼버무리는 해학이 좋다. 사실 블루스야말로 흑인들의 애환을 노래하던 음악 아닌가.ㅋ

'좋아서 우는 겁니다'는 마치 60년대 대포집에 젓가락 두들기는 취객의 연주같다. 블루스가 부루스로 발음되며 불리던 노래처럼. 


여튼, 이런 음반이 발매되는 것은 이제 좀 더 많은 노래들이 더 쉽게 나올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을 갖게한다. 소모는 소리 정말이지 너무 지겹잖아.


# 김장훈 - Adieu


 

그래도 제일 좋아하는 가수는 김장훈이다. 

난 정말로 김장훈이 한국에서 가장 노래를 잘하는 보컬 3위안에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지난가을, 싸이와의 시덥잖은 소동과 SNS를 통해 보여지는 그의 창피한 모습에 이 앨범이 가려지는게 좀 안타깝다.

실제로 그의 노래는 한동안 별로였다. 8단고음이니 하는 웃기지도 않는 말을 하고 자기변명적 스토리만 주구장창 늘어놓는 태도나 별로 아름다워보이지 않는 기부와 선행, 독도. 그놈의 독도. 그런 것들이 그의노래에 전부 반영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앨범을 내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예상치 못하게(?) 좋았던 그의 이번 앨범이 안타깝다. (물론 몇몇 트랙은 그 맘에 안드는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 아니꼽다) 어느 시점부터 히트곡도 딱히 없고, 공연은 볼거리 이벤트용으로 취급받았던 그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독도니 기부천사니 하는 말로 칭찬이나 받는 것이 만족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노래가 슬프지 않아 떠난다던 그 절박함은 어디로 갔나. 싶었던.


이번 앨범에 실린 곡들은 대부분 좋다. '그림자'나 '너를 모른다'같은 곡들은 그의 슬픈 목소리가 그대로 드러나는 좋은 노래다. 이름이 아직 생소한 작곡가들의 곡이지만 좋은 곡들을 만들어낼 줄 아는 이들인 듯 했다. 'Someday'나 'Way You Are'같은 빠른 곡들도. 적절한 연출로 공연에서 좋은 효과를 얻어낼 수 있는 곡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그 사랑이 뭔데'같은 곡은 대중적인 히트를 노릴만한 곡이라는 생각도. 어느 히트한 드라마의 OST같은 느낌도 나면서 말이다. 아.. 말 할 수록 아깝고 안타까워.


결국 지금 김장훈에게 필요한 것은 좋은 형. 김장훈에게 스마트폰을 뺐고 다시 '노래만불렀지'하게 할 수 있는 그런 형님. 인권이 형은 요즘 바쁘신가.(말이 나와서 말인데, 랩버전으로 다시 실린 노래만 불렀지는 그게 뭔가. 그 구구절절한 자기변명과 느끼한 자기연민. 내 노래만 불렀지를 돌려줘)



#  No Control - No Control




인디 펑크 락밴드란 이런 것이다.

그들은 자립음악생산가협동조합의 멤버인데, 이 조합의 대표로 회기동단편선과 무키무키만만수가 거론되는 것에 반대한다. 최고는 단연 이들이다. 


'사장님 개새끼'같은 넘버가 비교적 가장 유명한데, 이들의 음악은 이 곡으로 대표되는 역동성이 있다. 장르의 경계나 연주의 숙련도 같은거야 내가 말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니까 넘어가고 시원하고 통쾌한 거칠고 날것같은 소리. 조선펑크를 부르짖던 노브레인이 돌아온 것 같았다.(지금의 그 완전 별로 노브레인을 말하는게 아니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이게 바로 '인디(펜던트)'다.



+

그 밖에도 윤영배나 로다운, 9와 숫자들, (외국인으로는 유일한)글렌 한사드 같은 앨범들이 좋았지만 지쳐서 더 못쓰겠다. 패스. 


++

콜드플레이, 킨, 시규어 로스 심지어 스매싱펌킨스까지 엄청난 팀들이 앨범을 냈지만 패스. 위대한 밴드는 언제나 기대를 넘어야 하니까요. 시규어로스는 애매하고 아깝고 좋았지만.. 음 좋아하니까 탈락. 같은애정어린 마음이라능..엉엉엉







강아솔 - 그대에게



김장훈 꽃서트 공연후기 - 꼰대 아니고 어른


1.
오래간만의 공연이었다. 2년쯤됐을까.
그동안 공연에 뜸했던 까닭은 당연히 경제적 이유다. 김장훈같은 대형가수(?)는 공연비가 비싸다.
아니다, 사실 팬심이 조금 줄었기 때문이다. 플레이리스트의 노래들이 아주 조금은 변하기도 했고, 왠지 김장훈의 노래가 예전하고 다르다는 생각도 들었다. 소나기나 로망스같은 노래는 지금도 별로다. 기대했던 레터 투 김현식 앨범도 영 마뜩치 않았고.
그것도 아니다, 유달리 도드라지는 그의 정치적(?)행보가 더 큰 이유였겠다. 매번 노래보단 독도나 기부, 봉사, 부국강병같은 말로 사람들에게 인식되는 일이 싫었다. 그건 여러가지 의미에서였는데, 그의 노래를 매우 높게 평가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의 노래에 집중하지 않는 모습이 첫번째고(이게 정말 첫번째다), 둘째는 '국가'라는 허상에 천착하는 그의 태도가 싫었기 때문이다. '사노라면'을 부를 때 깔리는 애국가 전주나, 화면의 태극기도 영 싫었다.
좋아하는 가수의 정치성향에 이러쿵저러쿵 하는 일이 얼마나 웃긴 일인지 알고 있지만, 그거야 '가수의 철학과 삶이 그의 노래에 고스란히 베는 법'이라는 어디선가 주워들은 말로 떼우고.
여튼 '꽤나 충성도 높은 팬으로 그에게 기대한 것이 컸기때문에 마뜩찮은 부분도 많았다.' 정도로 정리해두고. 한동안  그렇게 그의 공연에 잘 가지 않았다.

2.
꽃배달 사업의 런칭쇼를 겸하는 공연이라는건 공연장에 들어가서야 알았다. 친구가 알아서 예매까지 해뒀기 때문에 어떤 사전 정보도 없이 갔다. 잘 매치가 되지 않는 조합일것 같다. 김장훈과 사업이라니. 기억이 맞다면 돈에 대해선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무던하려고 했던 그였다. 싫어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무던하려고 했었다. 그래서 수억씩 적자를 보는 공연도 계속하고, 단 한번의 연출을 위해 수천씩의 장치비를 들이기도 했었다. 지하 공연장에서 관객들이 쾌적 할 수 있도록 거액을 들여 공기청정기를 설치한 적도 있었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늘 청소년들에겐 반값으로 티켓을 판매한다. 부러 돈을 가져다 버리진 않지만, 마찬가지로 자기 주머니에 돈을 채우는 일에 무던하려는 노력. 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김장훈인데 사업 런칭쇼라니. "변했어"같은 생각이나 말따윈 떠올리지도 않았다. 그는 공연을 위해서라고 했다. 자기는 공연비를 조금이라도 낮춰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연을 볼 수 있으면 하는데 혼자서만 공연비를 낮출 순 없으니 또다른 수익창출의 길을 열어두려는 것이라고 했다. 당당하고 떳떳하게 공연비를 낮추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면 웃고 말았겠지만, 김장훈이라서 고개를 끄덕였다. 합리적 판단이나, 과학적 근거. 이런거 아니다. 오로지 팬심이다.ㅋ

다만 든 생각은 '무던하려는 강박'같은게 보이지 않았달까. 표현이 웃기지만, 무던하려는 노력보단 정말로 무던해보이는 모습이었다.  열심히 돈을 벌고 또 돈을 쓰고, 다시 노력해서 돈을 벌고. 그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모습. 이건 아마 팬심 아닐거다.

3.
삶과 철학이 노래에 그대로 묻어나는 법이라고 위에서 말했었다. 어제는 왠지 그의 노래도 그런 것 같았다. 그가 가창력의 절대 기준으로 삼고 있는 고음(아..8단 고음 드립은 정말 안 웃긴데..ㅋ)에의 의지를 버렸다는건 아니다. 그는 여전히 더 크고 더 높은 소리를 원했다. 하지만, 억지부리지 않아 보였달까. 뭐 이런건 지극히 주관적인데다 합리적 근거같은게 있을 수 없는 영역이니까. 다만 그의 노래가 마구마구 슬프고 처절하지 않았지만,(이건 어느정도는 선곡의 문제기도 함. 꽃서트에서 부른 노래는 주로 신나고 발랄한 노래들이었) 계속 듣고 싶어질만치 재밌고 즐거웠다. 일테면 'I Love You'. 이 노래가 처음 나왔을 때는 별로 신통치 않았는데, 이렇다할 고음도 클라이막스도 없는 이 노래가 참 좋고,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4.
무엇보다 연출과 선곡이 좋았다.
"끝 곡은 언제나 늘 당연히 무조건 '노래만 불렀지'"라고 말했었는데, '노래만 불렀지'가 끝 곡이 아니라서 참 좋았다.
김연우 덕분에(?) 예전보다 더 유명해진 '나와 같다면'을 더 뒤로 배치하는 마음, '여행을 떠나요'나 '그대에게' 같은 노래를 앵콜로 부르면서 신나하던 장면, 그리고 그 '내 사랑 내 곁에'를 부르던 마지막 장면도. 어떤 강박을 지나온 듯한 느낌. 그래서일까 '내 사랑 내 곁에'는 더 슬펐고, '그대에게'는 더 신났고.

체코필과의 협연으로 만든 레터 투 김현식이 못마땅했던건 아마 '과잉'때문이었다. 그 앨범 내내그런게 느껴졌다. 과한 소리 과한 연주. '김현식 노래니까 더 잘해야 돼.'라고 생각했었던 걸까.

무튼 꽃서트의 노래들은 그랬다. 과잉하지 않는 노래. 적절했고, 힘들지 않았고, 그렇다고 못나지 않았던.
꼰대같은 대충주의, 적당주의가 아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모욕같은거 당연히 절대 아니다. 최선을 다한 적당함. 이런거 얼마나 멋있나. 꼰대 아니고 어른. 앞으로 '형'말고 '아저씨'라고 부를까.ㅋ

5.
화면에 비친 김장훈의 얼굴이 자글거려서 좀 속상했다. 꽤나 시간이 지나갔음을 갑자기 알아버린 느낌. 하지만 나중에 잠깐 가까이서 얼굴을 봤는데, 잘생겼더라. 걱정은 패스. 하긴, 누가 누구 외모를 걱정하니.

사진은 정덤양. / 공연 당일에야, 덤양도 공연을 보러왔다는 소식을 접했다. 역시 중국대륙을 뒤흔들었던 한류스타의 위엄이랄까.



6.

그 시간들과 사람들도 오랜만이었다. 자꾸 옛 일을 주절거리며 낄낄댔지만, 사실 그건 결코 그 시절이 다시 올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때문에 가능했던 얘기다. 정말이지 세 얼간이들.ㅋ

2002년이나 2003년 어느 즈음의 대학로 모퉁이를 방황하던 건방진 청소년들은 지금, 처지를 비관하는 척 하면서 사실은 칼날을 갈고 있거나, 깨진 연애에 대한 슬픔을 개그소재로 삼거나, 서로에게 진심의 위로를 건낼만큼.의 지혜는 갖게됐다.

다시 10년쯤 지나서 또 오늘을 돌이켰을 때 낄낄거릴 수 있는 에피소드들이 다시 생겨서 좋았다. 오직 웃으면서 돌이킬 수 있는 시간과 공간들이 있다는 것은 참 다행스런 일이다. 그리고 그리워 하는 일이 욕망하는 일과는 다르다는 것을, 나도 그들도 알고 있다는 것 역시 참 다행이다.


7.

노래는 좋았던 I Love You. 로 할까하다가,
역시 나와 같다면. 하지만 굳이 어쿠스틱 버전으로 올리는 이유는
'나 이 냥반 꽤 예전부터 좋아했음'을 티내고 싶은 유치한 마음이라는 것도 솔직하게 고백해두자.ㅋ




8.

김장훈의 꽃민정음

꽃배달 서비스가 서로 달아 가격과 서비스가 서로 사맛디 아니할쎄
이런 전차로 어린 백셩이 마음을 전하고자 홀뺴이셔도 마참내 제 뜻을 능히 시러펴지 못할 노미 하니라
내 이를 어여삐녀겨
새로 꽃배달서비스를 맹가노니 사람마다 수비녀겨 날로쓰매
편안케 하고저 할 따라미니라

김장훈 꽃배달 '사랑'
http://www.janghoonflower.com
1644 - 0004


이건 팬심이다.ㅋ

단상


1.
사민주의, 한국 진보파 이념 최대치

레디앙의 최장집교수 인터뷰다. 북한이 사회주의를 대변하고 또 전쟁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남한사회에서 사회주의의 추구는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사민주의, 혹은 진보적 자유주의가 남한 사회 좌파이념의 최대치라는 얘기.
일견 동감하기도하고, 또 새겨들어야 할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북유럽의 사민주의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돌이킨다면 마냥 동의할 수만은 없다. 북유럽의 사민주의는 급진 사회주의 혁명노선의 결과다. 사회주의 운동과 그에 대한 자본주의의 타협의 산물이란 얘기. 결코 '사민주의자'들의 체제내변혁에 선량한 자본가들이 감화설복되어 만들어진 체제가 아니다. 지금이야 유럽식 사민주의가 시민사회의 상식이 되어 있다지만, 그 상식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상식적이지는 않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사회가 변증법적 논리에 의해 발전해 나간다면 테제에 반하는 안티테제를 던져야 합이 도출되는 법이다. 남이 만들어 놓은 합을 가지고 과정도 없이 들이밀면 뭐하나.
덧붙여 말하면 난 사민주의 역시 마뜩치 않다. 그건 결국 계급의 타협. 아다시피 타협이란 그 체제를 공고히 할 뿐이다. 뭐, 대한민국과 북유럽 사민주의 국가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하면 주저없이 북유럽을 고르긴 하겠지만.ㅋ

2.
뿌리깊은 나무가 끝나고 이제는 빠담빠담이다. 통영항구와 정우성과 한지민과 김범은 있기만 해도 그림이더라.

3.
사춘기 때 수음 직후의 그/ 죽어버리고 싶은 죄의식처럼,/ 그 똥덩어리에 뚝뚝 떨어지던 죄처럼/ 벚꽃이 추악하게, 다 졌을 때/ 나는 나의 생이 이렇게 될 줄/ 그때 이미 다 알았다 (황지우, 수은등 아래 벚꽃)
트위터 시봇이 계속 시를 읽어주는데 저게 눈에 확 들더라. 엄마야.

4.
정봉주 구출운운할 시간에 송경동 시인 안부도 좀 물어줬으면. 참말로 목숨걸고 정권에 맞서 이나라의 민주주의를 지켜주셨으면, 진짜 목숨걸고 노동자들의 삶을 지켜주던 시인도 좀 지켜주시지. 아, 욕나와.

5.
아이폰이 올 해의 운세를 봐줬는데 만사형통하단다. 애정운은 무려 첫사랑과의 재회. 흐음. 언제나 이발 직후의 단정한 머리모양을 유지해야겠다.

6.



자꾸 욕하고 다녀서 사람들이 오해하는데,
나 김장훈 엄청 좋아한다.
제일 좋아하는 노래. 가난한 날이 노래가 되어.

햇빛 비추는 날





우리들 함께 견뎌온 날들이
내겐 가장 그립고 소중해.

++
처음 들었을 때부터 오늘까지 이 노래는 이상하리만치 귀에 남아 눅진거린다.
이상했던건 2002년에 처음 공연을 보고 싸인을 받았는데, 싸인 위에 난데없이 '햇빛 비추는 날'이라고 써준 일.

김장훈, 봉중근, 애국주의 - 당신을 위해서만


그의 애국심은 언제나 조금 위태로워 보인다.

언제부턴가 '독도'에 아주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 그와 그런 그를 추켜세우며 '김장훈을 국회로'같은 시시껍절한 말을 무책임하게 내뱉어대는 사람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곤했는데, 기어이 노래를 못하게되는 한이 있어도 독도 문제는 지켜내고야 말겠다는 그의 말에 마침내 '아차'싶다.

독도의 '소유'에 대한 논쟁과 대립은 사실 대다수의 우리들의 삶과는 무관한 일이다. 결국 한떨기 애국심과 민족주의의 발로에 지나지 않는 그것에 우리는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바다 저편 새들의 고향에 대해서까지 '소유'를 주장함은 존재하는 모든 것을 소유하고 종속시키려는 자본과 국가주의의 탐욕이 정체를 드러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차원에서 일부 일본 극우세력의 파시즘과 역사왜곡에 마땅한 비판을 가하는 것은 정당하고 정의로운 일이겠으나 그 접근이 '소유를 우리의 것으로 확정짓는'형태라면 이는 그 극우 파시즘을 우리 안으로 확장시키는 것임을 자인하는 꼴이다. 당면한 일본내 극우파시스트세력에 대한 지탄과 철퇴는 응당 가해져야 할 것이나 더욱 신중하고 엄격해야할 것은 우리안에 존재하는 파시즘이다. '우리 것'아닌 것들에 대한 배타성을 전제로하는 애국주의, 민족주의는 결국 자본과 국가의 탐욕에 순응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중요한 것은 독도를 누구의 '소유'로 할 것인가 하는 의미없는 다툼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 줄 질문과 싸움이다. 그런 맥락에서 김장훈은 독도를 포기한은 있어도(포기라는 말조차 웃기지만) 노래를 포기해선 안된다.(물론 그 발언이 그대로 그의 진정이 아니라 그만큼의 굳은 각오를 표현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있지도 않은 독도의 '소유권'보다 곁에 존재하는 그의 노래가 우리의 삶을 훨씬 더 위로하기 때문이다.



봉중근은 팔꿈치 부상의 와중에서도 팀을 위해 몸바쳐 경기에 나서겠다고 한다. 그의 숭고한 희생과 의지에 많은 팬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지만, 글쎄.

봉중근은 명실상부 국내 프로야구에 손꼽히는 에이스투수다. 95마일을 육박하는 그의 묵직한 직구와 예리하게 허를 찌르는 너클 커브는 명품중의 명품이다. 8개구단의 주전 타자 72명중 봉중근의 볼을 자신있게 쳐 낼 수 있다고 장담 할 자 얼마나 될까.

걸출한 실력을 가진 봉중근에게 LG팬들이 거는 기대는 컸다. 8년만의 플레이오프 진출, 몇년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투수부문 수상, 소박하게는 탈꼴찌. 그런 부담을 고스란히 전해받아서일까, '팀을 위해'라는 말이 그의 입엔 아주 붙어 있다. 시즌 초반 인터뷰에서도 다승이나 삼진보다는 이닝을 많이 소화하는 것이 팀을 위한 길이라고 말하던 그는 '팀'의 의미를 과대 확장하여 해석한다. 그는 팀을 위해 던지지 않아도 괜찮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팬들을 위해서나 다른 누구를 위해서 던지지 않아도 좋다. 그는 그저 자신을 위해서만 던지면 된다. 자신을 위하는 것이 높은 연봉이든, 명예의 전당이든 그저 그는 자신을 위해야만 한다.

박민규의 소설 [삼미 수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엔 도대체 정체도 모를 팀의 위기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바보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저 팀을 위해 조직을 위해 헌신을 강요받는 일은 지독한 폭력이다. 하물며 그것이 자신의 선수 생명을 갉아먹는 어리석은 짓임에야. 국기에 대한 맹세를 매 월요일 아침마다 강요받고, 조직을 위해 제 한 몸 희생하는 영웅들의 영웅담을 교과서로 배우면 자란 우리는 조직에 헌신하고 나라에 충성하는 것만이 '절대 선'인줄로 착각하고 있다. 착각이다. 오히려 암묵적으로 헌신과 충성을 강요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건 선이라기 보단 차라리 악.

WBC가 시작되기 전, 김인식감독은 국가가 있어 야구를 할 수 있음을 명심하고 군말없이 대표팀 차출에 응하라는 엄포를 놓았다. 김인식 아저씨를 좋아하지만 그건 틀렸다. 국가가 있어 야구인생에 방해가 될지언정(군대같은거) 국가가 있어 그들의 야구인생에 도움이 되었던적은 결단코 없다. 지금도 WBC의 영웅들은 막판 체력저하와 잔부상으로 개고생중.


한겨레 지면을 통한 장은주 교수와 권혁범 교수의 애국주의 논쟁이 흥미롭다. 이택광 교수까지 덤으로 끼어들어 장은주 교수를 물리치는 형국. 장은주 교수의 민주적 애국주의란 개념은 모호하다. 결국 논의를 대한민국이 민주주의를 확립한 공화국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진행시키기 때문에 논리가 허공에 맴돌밖에.

애초에 민주주의는 가당치도 않은 개념이다. 다들 이 민주주의라는 말에 목메어 살지만 사실 그건 되게 거추장스럽고 어리석은 장치. 심지어 이루기조차 지난한. 하여 민주주의는 현실에선 그저 지향의 문제일 따름이다. 공고한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민주공화국 따위 소설책에도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약간의 민주주의와 약간의 파시즘과 약간의 폭력과 약간의 저항이 어우러진 세상을 살며 애국주의를 말하는 것은 이미 숱한 근로인민들을 바탕으로 하는 진보적 민주주의를 포기하며 국가에 투항하겠다는 말과 같다. 오늘 국가는 투쟁의 대상이지 종속의 대상은 아니다.

대한민국 좀 싫어하면 어때. 그거까지 보듬는게 민주주의 아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