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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행 - 그런 것들과 싸우며 사는 거지



두려움은 낯선 것들에서 오는 법이다. 가보지 않은 길. 다음을 예측할 수 없는 지금. 다가올 것, 알 수 없는 것,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게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감정이란 어쩌면 '기대'같은 것일 수도 있지만, 이미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그렇다. 어차피 슬픈 예감이란 틀리는 적이 없다.


안온함은 익숙함에서 오는 법이다. 벽지에 묻은 때와 장판의 무늬까지 눈에 익은 오래 산 집. 내 손길의 흔적이 묻지 않은 곳은 단 한군데도 없는 물건들. 내 손길과 눈길이 익숙한 사람의 체온 같은. 그런데 언제부터일까. 집은 사는 곳(住) 보다는 사는 것(買)이 돼버렸고 물건들의 수명은, 그러니까 핸드폰 같은 것도 약정 2년이 지나면 바꾸는 게 당연해졌다. 사람이야 뭐. 피상적 관계, 파편화, 이런 말들이 시덥잖아진 건 이런 말들을 너무 많이 쓰기 때문이니까. 


# 집, 차, 길


동거중인 수현과 지영은 더 싼 집을 찾아 서울 외곽으로 이사를 준비 중이다. "우리가 이 동네에 다시 올 수 있을까?"라는 지영의 물음에 수현은 "아니"라고 답했다. 지영의 모친은 이사를 다니면서 시세차익을 남겨 돈을 번다. 이사가 지긋지긋하다는 가족들의 말에 "이렇게라도 하니까 이만큼 산다"고 답한다. 가족들은 수긍한다. 수현의 부친이 사는 집은 허름하다 못해 을씨년스럽다. 저런 곳에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싶을정도. 그 집에 사람이 사는 모습은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집이란 정착의 공간이다. 삶의 익숙함을 만들어내고, 내일의 삶이 이 공간에서 이루어진다는 보장이 집이라는 공간의 전제다. 그러나 지영과 수현은 물론 영화 속 누구도 집에 정착하지 못한다. 누구에겐들 그렇지 않을까 집이 정주보다는 탁족의 공간으로 변한 것이. 


집이 안온함의 공간이 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삶의 모든 순간에서 우리에게 편안함이란 허용되지 않는다는 의미이지 않을까. 영화 속에서 지영과 수현이 가장 오랜시간을 보내는 공간은 차 안이다. 그러나 차란 결국 이동과 부유를 위한 도구다. 길 위에서 어딘가로, 또 낯설고 두려운 곳으로 향하는 것.  


영화 속 네비게이션도 없는 차안에서 그들은 언제나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헤매고 길을 잘못들어선다. "여기는 나도 처음 와보니까"라고 말하면서. 살면서 어느 공간인들 초행이 아닐까. 어느 시간인들 처음이 아닐까. 매 순간 우리는 두렵고 모르고. 어느 드라마 제목이었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 


# 연애, 결혼, 출산


살아가는 일이라는 게 대단해 보이지만, 그러니까 인생이라는 단어가 대단히 거창해 보이지만, 실은 연애와 결혼, 거기에 따르는 돈벌이 같은 뻔한 요소들로 이뤄진 지루한 클리셰에 불과할지 모른다. "순서대로 좀 하자 순서대로". 


결혼하고 애 낳고 애 키우기 위해 돈벌고 시세차익 남겨 집 옮겨가면서 삶의 '안정'을 만들고. 그런데 그 익숙한 클리셰의 나열은 정말 안정이고 안온함일까. 불안감을 시시각각 맞이해야 하는 안온함이 어디있어. 


가족, 가정. 안온함과 편안함의 상징같은 그곳마저 수현과 지영에겐 두렵고 낯선 곳이다. 모르겠어. 라고 말해버리고,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하고, 자리를 피해버려야 하는 곳. 


수현의 모친이 "결혼은 살아보고 이 사람이랑 평생 살 수 있겠다 싶으면 해."라고 말하자 지영은 "살아보고도 모르겠으면요?라고 되묻는다. 수현의 모친은 대답해주지 못하고. 영화는 대답대신 지긋지긋하게 맞이하는 똑같은 두려움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게, 지긋지긋. 낯선 것이 두려워 익숙한 것을 찾는데 그것이 안온함보다는 지긋지긋함이면 어쩌지. 안락함이란 어쩌면 지긋지긋함의 이음동의어.


# 그런 것들과 싸우면서 사는 거지. 


매순간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오늘에서 내일로 부유하며 두려워하는 것이 결국 사는 것일까.


자기 엄마같은 엄마가 될까봐 아이를 낳기 두렵다는 지영에서 수현은 "그러지 않기 위해 싸우면서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도 무서워죽겠으면서 임마.


집을 옮겨다녀야 하고, 관계는 피상적으로 변하고 편안함과 안락함을 주는 일상이라는 것은 왜 사라진 것일까를 생각했지만 어쩌면 실은 그런 것은 사라진 게 아니라 원래 없는 것이 아닐까. 삶이란 늘 어디에서 어딘가로 부유하는 것이고 매 순간이 낯선 것이라 늘 두려움에 떨어야 하고 수현의 말처럼 우리는 매순간 그런 것들과 싸워야 한다. 삶이 고달픈 건 그 때문일까. 매순간이 낯설고 두렵다. 그리고 그 두려움을 맞이하는 매순간이 지긋지긋하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어느 곳이라고 초행이 아닐까.


어차피 삶이 그런 것이라면 늘 낯선 두려움이 지긋지긋하게 벌어지는 이곳을 긍정하는 방법을 익혀야 하는 것 아닐까. 두려움을 아주 잠깐이라도 설렘과 기대로 바꿀 수 있는 순간.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2016년 겨울의 광장이다. 광장에 선 지영과 수현은 어디로 가야할지 모른 채 걷는다. "다들 반대쪽으로 가는 것 같아." 하지만 방향을 바꾸자 이번엔 다들 자기들이 원래 가던 쪽으로 가는 것 같다. 초행길. 


그 때의 광장은 그랬다. 다들 어디로 갈지 몰랐지만 어디로 갔고 어떻게 무엇인가를 해냈다. 어디로든 갈 수 있었고 그말인즉슨 어디로 가야만할지 몰랐다. 낯설었지만 또 두렵기도 했지만 조금, 아주 조금 설레고 기대하기도 했다. 


자기의 두려움을 모르겠다고 흘려버리지 않고, 무섭다고 긍정했을 때야 비로소. 


# 조현철


드라마 아르곤이나 마스터에서 조현철을 처음 봤을 때 독특하고 재밌는 목소리나 톤의 배우라고 생각했다. 얼굴이 쉽게 눈에 들어온 건 매드클라운을 닮았기 때문이었는데, 둘이 형제라는 기사를 나중에야 봤다. 


눈에 확 들어오지만 자연스럽고 몰입시키지만 과하지 않은 연기를 한다고 생각했다. 오래오래 두고보고 싶은 좋은 배우. 지난 번에 올해 최악의 영화 변산을 보면서 조현철 배우가 박정민 대신 캐스팅 됐으면 좋지 않았을 까 생각했는데, 특별출연하고 어쩌면 랩도 만들어준 게 아닐까 싶었던 매드클라운이 영화 속 랩을 대신 해주면 재밌었겠다 싶어서.ㅋ 변산의 수많은 악덕 중의 최고봉은 그 오글거리고 못하는 랩이었거든. 하지만 박정민은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