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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코펜하겐, 헌터스, 북친- 인간의 애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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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사고 2년, 의항리에선

허베이스피릿호가 태안바다에 기름을 쏟은지 어제로 정확히 2년이다. 백만의 사람들이 보여줬다는 그 감동의 자원봉사가가 끝나고 나자 거짓말처럼 바닷'가'는 깨끗해졌고, 어업도, 생태도 모두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렇다, 그건 거짓말이다.

눈에 보이는 곳만 닦아내, 바닷속은 여전히 기름 알갱이들이 가라앉아 죽어있다. 생명들이 살 수 있을리 없다. 자식들 가르치고 시집보낸 굴이며 조개는 돌아올 줄 모른다. 다시 기름이 쏟아져도 사람들이 금방 또 나서 닦아줄거라 믿는지 정유업체는 아직도 한겹유조선을 바다에 띄워 수만 수억톤의 기름을 들여온다. 보상도 당연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보상건수의 0.9%, 신청액의 0.6%만이 보상받았을 뿐이다.

우려했던건 이런 일이었다. 원인과 과실도 밝혀내지 않은 채 자원봉사 미담으로 사건을 왜곡했던 자본과 정부, 언론은 이제 아무런 것도 해주지 않는다. 태안의 주민들은 건강도 돈도 삶도 모두 잃은 채 한숨을 내쉬는 일밖에 남은게 없다.

사실 더 근본적인 물음은 사고가 누구의 잘못이냐를 따지는 것보다 더 깊은 곳에 있다. 무엇때문에 저 많은 기름이 바다위를 오가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은 그날도 오늘도 하지 않는다. 더 많은 소비, 더 큰 안락의 댓가가 결국은 목숨이라는 걸 알지 못하는 한, 이런 일은 끊임없이 일어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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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자발적 감축하되 성장에 필요한 만큼은 배출”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기후변화 정상회의에서 우리 정부는 '성장에 필요한만큼은 배출'이라는 미적미적한 카드를 들고 나섰다. 우리나라는 전세계에서 온실가스를 9번째로 많이 내뿜는 나라이고, 온실가스 배출 증가량에 가장 많은 나라이다. 그런나라에서 심지어 '저탄소 녹색성장'이란 기치를 내건 정부가 성장할만큼은 하고 되도록 줄여보긴 하겠다는 되먹지도 않은 말이라니.

물론 비단 어느 한 나라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의 온실가스 배출과 생태파괴는 이미 말로 담을 수 없을만큼이고, 일단 먹고 살기 바쁜 개도국들과 신흥 공업국들 또한 온실가스 따위에 신경쓸 여력이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결국 생산을 늘리고 소비를 증대하는 것만이 유일한 살 길인 자본의 속성이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집어 삼키는 것이다. 문제는 욕심이다.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하기 위해서 더 많이 죽여야 하는 제로섬게임. 결국 생산하고 소비하다 제 목숨까지 소비하는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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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일요일밤의 새 코너 '헌터스'에 대한 논란이 첫 방영 이후에도 잦아들지 않는다.
여론을 의식한 듯 첫 회 방송에선 멧돼지의 포획이나 사냥에 대한 얘기가 많이 등장하진 않았지만 근본적인 관점,
그러니까 인간의 이익을 위해 다른 동물의 개체수를 조절해야 한다는 그릇되고 오만한 관점은 명확히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많이 번식해 생태를 파괴하는 생물은 다름아닌 인간이다. 좁은 땅떵어리에 60억이 넘는 개채가 살며 모든 생태사슬을 끊어 놓고 있다. 멧돼지는 고래로 살아왔던 영역과 생존을 위한 본능만을 발휘할 뿐, 오히려 다른 존재를 위협하는 건 인간이다.

자기의 잣대로 다른 생명을 마음대로 짓밟을 수 있다는 생각은 고대의 노예제도를 생각하게 한다. 인간이 그토록 자랑해 마지 않는 사회의 발달, 신분철폐와 평등, 박애. 애초에 자신 아닌 존재의 생명 자체를 하찮게 여기고 있으니 노예를 죽이는 것쯤 아무렇지 않던 고대 귀족들의 모습과 무엇이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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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인간 자체를 증오하고 오직 인간의 절멸만이 답이란 무모한 주장을 하는 건아니다. 분명 인간은 어떤의미에서 조금 특별한 존재임에는 틀림이 없다.

머레이 북친의 말에 따르면 모든 오류의 시작은 (인간)사회와 자연을 분리하는데서 시작한다.
자연을 인간사회의 발전을 위한 정복의 대상으로 파악하는 관점도, 인간의 원죄에 의한 자연 파괴를 막기위해 인간을 혐오하는 관점도 인간사회와 자연을 분리하여 사유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사회'는 인간이라는 종이 다른 생물종과는 다르게 가진 특질이다. 동시에 인간의 사회라는 것도 (근본적으로는 같은 것이지만 그 의미는 엄청나게 다른)개미굴이나 늑대의 부족처럼 자연계의 일부분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간과하면 무조건적인 개발주의든 근본생태주의든 양극단의 늪에 빠지게 된다. 결국 인간이 생태계의 일부인 것을 간과하는 오만. 어리석은 인간의 욕심이다.

문제 인식의 시발점은 생태계 일부로서의 인간사회다. 정복하여 계급을 두고 착취하는 구조를 인간사회 내부에서 뿐 아니라 생태계 전체로 확장시키는 과정에서 생태계의 파괴나 부조화는 발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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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적 생산량이 극심히 부족한 시절로 회귀할 수 는 없다. 다만 과하게 누려오던 것들을 포기 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인간이지만 인간에 대한 증오가 답은 아니다.

결국 조금 버려야 한다. 조금 더 가난해 질 수 있어야 한다. 덜 생산하고 나눠 써야 한다.덜 먹고 덜 버려야 한다. 더 많이 걷고 더 여유 있어야 한다. 서로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아껴줘야 한다. 정복보단 공존을, 물질보단 정신을 우선하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어쩌면 신은 그럴 수 없는 존재로 인간을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더 노력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더 살기 위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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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스를 기다리다 일밤의 또 다른 새코너 '단비'를 봤다. 물이 없어 죽어가는 가난한 아프리카의 어린아이를 보다 수도꼭지를 열어놓고 양치를 하던 아침나절이 생각나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지구에 존재하는 수많은 물은, 뺏지 않으면 적어도 모자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