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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올해의 영화 / 음반





올해도 영화 / 음반 결산.

돈도 안주는데 이런 거 참 열심히 합니다.

하지만 돈 주면 더 열심히 해요.


어쨌든 영화 음반 각 10개씩.



# 영화


 

-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 홍상수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면 많은 걱정을 하게된다. 대부분의 경우에서 '더 나은'상황을 고려한 선택을 하게 되는데, 더 나은 상황을 고려하느라 진심이나 솔직함 같은 건 선택의 고려 요소가 아니게 된다.


그동안 홍상수의 영화는 선택의 그 덧없음을 보여줘 왔던 것 같다. "그렇게 따져봤자 어차피 안될거야. 병신들아" 같은 느낌. 이 영화라고 '어차피 안될'상황이 나아졌겠냐만 그래도 어차피 안될 상황에 대한 위로 정도일까. 우리의 삶은 어차피 안될 거고 실망할 테지만 지금 이순간 솔직할 수 있다면, 삶에 조금은 충일할 수 있다면 그래도 아주 약간, 이 뭣같은 삶에서 희망의 부스러기라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올해의 영화. 

이 영화를 보러 들어가던 날의 생각과 그리고 다시 영화관 밖으로 나왔을 때의 느낌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다. 


지금 이 느낌을 흘리고 싶지 않아요.


- 자객 섭은낭 / 侯孝賢, Hsiao-hsien Hou  





거장이라는 이름은 공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비정성시와 연연풍진 (특히 연연풍진)은 살며 본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꼽으라면 반드시 들어갈 영화기도 하다. 허우샤오시엔이 무협영화를 찍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미 장풍 쏘고 낙엽밟아 날아다니는 무협은 아닐 것을 알았다.


영화의 무협은 인간의 범주를 넘지 않고 섭은랑이라는 인물 역시 인간의 범주를 넘지 않는다. 자객이라는 비인간적 직업이 인간의 범주를 넘지 않고 존재했을 때 나타날 갈등 고민 연민이 그대로 담겨있으며 서기는 그 감정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다. (서기 누나는 여전히 완전 멋있다.) 


화려함보다는 수려함에 가깝고 침통보다는 아련에 가까운 화면이 백미다. 새로운 무협영화 장르가 개척됐고, 그 첫번째는 이 영화다. 



- 스파이 브릿지 / Steven Spielberg





냉전시대 이야기고, 스파이 얘기인데 심지어 스필버그가 만들어서 별로 보고싶지 않았는데.

반공영화는 아니고 미국 만세를 이야기하는 영화는 더더욱 아니다.


삶을 위대하게하고 세상을 유지시키는 것은 정의로움과 그 정의를 지켜내는 신념이라는 아주 당연한 상식에 대한 영화. 


신념은 내용이 아니라 신념 그 자체만으로 위대하고 사실 온전한 진실과 정의는 어디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 거울을 보며 자화상을 그리는 장면처럼. 그 장면에는 모두 4개의 시선이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남자, 거울속에 비친 남자, 자화상 속에 그려진 남자, 그리고 그걸 지켜보고 있는 나까지.

(그래서 모든 것엔 옳거나 그름이 없다는 양비/양시는 아니다. 그 믿는바를 지켜내려는 모든 신념이 위대하다는)


톰 행크스는 스필버그의 페르소나임에 틀림없고 스필버그는 거장임에 틀림이 없나보다. 그래도 난 ET가 여전히 제일 좋은데.



 

- 한여름의 판타지아 / 장건재





낯선 곳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 사람 '사이', 극과 다큐멘터리 '사이', 영화와 영화를 만드는 사람 '사이', 스크린과 관객 '사이', 카메라와 배우 '사이', 배우와 배우 '사이', 말과 말 '사이'


사이에 관한 영화이고 영화란 본질적으로 그 사이를 포착하고 담아내는 작업임을 알게하는.

그 사이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도 감독과 관객 저마다 제각각일테고 그 제각각이 영화의 매력이기도 하겠다. 사실 삶의 매력이기도 하겠다.


영화는 시종일관 선량하고 예쁘다. 그렇다고 지루하지도 않으니 로맨스 영화로서는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여행지에서 만난 낮선 사람과의 사랑은 비포 선라이즈 같은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데 뭐가 됐건 영화를 보고 나와 우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삶이 늘 그렇지 뭐. 현실은 시궁창. 젠장. 




- 버드맨 / Alejandro Gonzalez Inarritu 





다시 사랑받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그보단 사랑받은 적이 있기나 했던가.

사랑이라는 것은 어쩌면 받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깨달음.

버드맨의 가면 같은 건, 그러니까 내가 뒤집어쓰고 있는 가면같은 건 어쩌면 사랑을 받기 위한게 아니라 하기 위한 것.


삶은 늘 역설로 흐르고 인과는 무시되는 것처럼 보이거나 가끔은 정말로 무시되기도 하지만 삶의 불확실성이야말로 불확실한 삶에 세상이 주는 가장 따듯한 위로.일지 모르겠다. 그래도 살기는 참 힘들고 사랑은 주기보다 받고 싶은 법. 사실 영화 한 편으로 삶을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달라질까.ㅋ


이냐리투는 그동안 죽음과 감정이 베베꼬이는 영화들을 만들어내더니 버드맨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다른 영화를 만들어냈다. 아닌게 아니라 좋다. 나이가 들어서도 사람은 이렇게 변하고 발전하는구나. 




- 킹스맨 / Matthew Vaughn





'매너 매잌스 맨'. 올 상반기 최고의 유행어를 꼽으라면 주저없이.

오락영화란 이렇게 만들어야 한다는 걸 알려주기라도 하는 통쾌함과 뻔뻔함이 가장 큰 매력이다.

007도 사실은 실체를 모르고 (어쩌면 007에게 지령을 줄 것같은) 있을 듯한 고급 요원들이 아서왕과 기사의 이름을 받고 수제 양복과 포마드 잔뜩발라 넘긴 머리를 하고 앉아서 벌이는 그.


스냅백과 블링블링 악세사리를 차고 앉아 햄버거를 먹고 스마트폰을 무기삼아 세계를 정복하려는 악당과 대비되는 정갈함. 


뭐 내용이 필요한가. 그 잔혹한 액숀신에 흐르는 엘가 같은 게 이 영화의 요체고 전부다. 


그리고 콜린 퍼스의 간지. 갓양남의 전형일까. 

  



- 소셜포비아 / 홍석재





영국의 퍼기경은 SNS를 인생의 낭비라고 표현하셨다. (그러니까 퍼디난드 이 양반아 축구 좀 잘하지.)

혹자는 SNS를 시간(S) 낭비(N) 서비스(S)의 줄임말이라고도 했다. (그러니까 트위터와 페북을 끊고 모두 싸이월드 블로그의 세계로 돌아오세요)


소셜포비아는 스릴러 같거나 추리물 같지만 매우 엉성하다. 그렇다고 그 엉성함이 흠결은 아니고.


투명성에 대한 요구는 더욱 첨예화되어 하나의 정언명령이 된다. "다른 모든 것을 대체할 수 있는 윤리학의 유일한 계율은 다음과 같습니다. 온 세계가 보거나 들어서는 안 되는 것은 절대로 말하지도 말고 행하지도 말라. 나 자신으로 말하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밖에서도 다 보이는 집을 짓고 싶어 했던 한 로마인이야말로 가장 존경할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병철 <투명사회>


영화가 보여주는 건 우리사회가 이미 익숙하게 알고 있는 SNS의 폐해들이다. 마녀사냥이 어떻게 가능해지는지, 그리고 얼마나 바보같은 말과 행동들이 이를 통해 전파되고 있는지. 음모론 같은 거.


엉성한 남자애들이 나오기 때문에 영화 전체가 엉성하게 흘러도 어색하지 않고 실제 세계가 엉성하기 짝이 없다는 것도 더욱 여실히 드러난다. 어쨌든 결론은 이 세계에서도 우리들은 모두 패자에 불과하다는 것.


“디지털 파놉티콘의 특수성은 무엇보다도 그 속의 주민들 스스로가 자기를 전시하고 노출함으로써 파놉티콘의 건설과 유지에 능동적으로 기여한다” 같은 책

 

인디영화씬의 핫피플 변요한과 이주승이 동시에 나온다. 

그러고보니 이제 얘들은 인디영화씬의 핫피플이 아니라 그냥 핫피플이지. 



- 베테랑 / 류승완





얼마전에 개봉한 내부자들이 노렸던 건 베테랑이 가졌던 지위였겠지만 그러려면 영화를 그렇게 만들면 안됐지.


영화는 시종일관 가장 '대중적'인 언어로 악을 꾸짖는다. 분명 우리사회의 모순을 규명하는데는 더 많은 언어와 고민이 필요하겠지만 사실 2시간 남짓의 오락을 위해서 필요한 건 그게 아니다. 통쾌한 일침과 꿀밤. 


나쁜 놈을 나쁜 놈이라고 부를 수 있고, 그 새끼한테 꿀밤 날려주는 좋은 형에게 박수치는 단순하지만 명쾌한 구조. 여기에서 필요한 건 깊이가 아니라 정확함이다. 황정민과 유아인, 유해진은 모두 정확했고 그래서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거기에 유행어가 될 듯한 명대사까지.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같은. 이건 사실 강수연이 술 마실 때 배우들과 종종하는 건배사라고 한다)


장점이 명확한 만큼 한계들도 비교적 뚜렷한데,

구조적 모순에는 침묵하던 경찰조직이 '내 새끼'가 다치자 몽땅 나선 다는 점이나, 일상적 폭력을 희화하고 있다는 점이나, '영화적 재미를 위해 감안할 수 있는 범위'보다 과한 마초적 언어들이라든가. 

(그래서 사실 이 목록에 넣고 싶지는 않았는데, 너무 예민하게 구는 건가 싶기도 하고 한국영화도 너무 없고...)



- 잡식가족의 딜레마 / 황윤





우리는 늘 고기를 먹지만 그 고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모른다.

고기 역시 생명이고, 그 생명의 존엄성을 갖는다. 사실 존재하는 모든 먹거리는 다 생명이다. 그래서 모든 생명은 다른 생명의 죽음을 딛지 않으면 살 수 없다. 때문에 온정적인 태도로 '죽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삶을 인정할지 묻는 것. 그리고 내 생이 어떤 죽음을 딛고 있는지를 아는 것. 감사히 여기는 것, 나 역시 결국 흙으로 돌아갈 것을 아는 것. 


인간은 본래 채식을 하는 생물이 아니므로 나 역시 원칙적인 채식을 옹호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현대인의 섭생이 과도한 육식에 매몰돼 있고 그를 위해 엄청나게 많은 자본이 소용되고 있으며 지구 생태를 파괴하고 있다는 것은 알아야. 현재 지구에는 지구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소와 돼지가 있고 그네들이 뿡뿡 내뿜는 방귀와 가스들이 메탄가스란 이름으로 지구를 병들게 한다. 그들이 먹어재끼는 옥수수가 토양을 갉아먹고 있기도 하고.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풍경이다. 자본주의가 부채질한 풍경이고. 


황윤 감독은 이번 총선에 녹생당 비례대표 후보로 나섰다. 이 포스팅에는 그녀와 녹색당의 선전을 바라는 마음이 아주 많이 담겼지만 사전 선거운동은 아니다.



- 아무르 포 / Jessica Hausner 





폰 클라이스트는 천재 극작가였지만 자살했다. 생전에는 아무도 그의 작품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았고 극도로 가난했던데다, 조국인 프로이센은 식민지나 마찬가지였고, 연애도 잘 안됐다고 한다. (게이였다는 얘기도 있고) 여튼 그는 베를린의 어느 강변에서 유부녀와 함께 동반자살했는데, '유부녀와 동반자살한 천재 극작가'라는 모티프는 그동안 몇 번이고 영화화 됐어도 이상할 게 없는 소재되겠다. 낭만적이지 않은가 말이야.


영화 속 클라이스트가 실제의 클라이스트와 얼마나 가까운지는 모르겠다. 영화는 주로 동반자살한 유부녀 헨리에테 포겔의 입장에서 그려지는데 이 언니가 좀 멍청하다. 난 동반자살로 표현되는 자살 대부분이 사실은 살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삶을 남의 손에 맡길만큼 유약한 건 결국 멍청함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게다가 둘은 사랑하는 사이도 아니잖아.


그에반해 클라이스트는 또라이 기질이 코믹스러울 정도로 유쾌한데, 압권은 보는 사람마다 동반자살을 제안하는 장면. 그 유쾌함이 혁명 이후의 유럽과 그 지독하고 갑갑한 세상을 살아가는 천재의 염세를 잘 그려내고 있다. 


덧,

전주영화제에서 히트를 했다는 소문에 전주는 못갈지언정 어둠의 경로를 통해 힘겹게 구했는데, 자막 ㅆㅂ.

  







# 음반



- 모노톤즈 / Into The Night





“난 처음부터 록 스타가 되고 싶었다. 아니면 의미가 없지. 비틀즈한테 고무가 됐었는데, 그렇게 빛나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그만큼 행복하게 만들어줘야지. 내가 그랬거든. 로큰롤을 처음 들었을 때 너도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어.” 차승우


청년폭도맹진가와 청춘98을 듣고 자란 차차키드에게 모노톤즈는 평가나 왈가왈부의 대상은 아니다. 그야말로 락스타, 경배의 대상. 로큰롤은 차차고, 차차의 음악은 로큰롤이다. 여기서 로큰롤은 일개 장르따위가 아니라 삶의 태도 같은 건데, 로큰롤을 들었을 때 행복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차차의 말처럼.


문샤이너스 해체이후 차차가 박현준과 밴드를 만들었다는 소문, 보컬을 구하고 있다는 소문, 음악이 거의 완성됐다는 소문, 박현준이 결국 밴드에서 나갔다는 소문. 뭐 이런저런 소문들만 들으면서 간간이. 하지만 모노톤즈가 나온다던 락페스티벌에도, FF에서 했다는 데뷔공연에도 가지 않았다. 삶은 로큰롤이 없이도 굴러갔고 더이상 로큰롤은 곧 행복을 의미하지도 않았던. 블로그 이름을 바꿀까 하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름을 바꿀만큼 부지런하지도 않았던 날들. 하지만 다시 모노톤즈의 노래를 듣고있다. 그리고.


모노톤즈의 노래를 뭐라고 말해. 그게 뭐든 난 다시 시작했고, 공연날짜를 기다리고 있고, 또 사랑을 찾을 거고, 행복해질 거다. 가끔 방황해도 괜찮고, 질퍽하거나 암울해도 괜찮다. 그래서 다시, 그렇게, 로큰롤하게. 삶을 행복하게 살아도 괜찮다.


그래도 Let's Rock'n Roll   



강허달림 / Beyond The Blues





강허달림은 독보적인 블루스 보컬이다. 사실 한국은 블루스 풍토가 워낙에 척박해서 마땅히 대중적인 블루스 보컬 하나 없는 게 사실이긴 하다만.


2집에서 어쩐지 이모같은 노래로 살짝 엇나갔던 노래가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 쓸쓸하고 사무치는. 블루스는 그래야 제 맛. 그보다는 어떤 노래를 불러도 블루스가 되는 보컬이 된 느낌일까. '기슭으로 가는 배'나 '이슬비', '거리' 같은 트랙을 들었을 때 그런 느낌이 선연하다.


리메이크란 원곡의 후광에서 멋어나지 못하거나 어설픈 도전으로 이도저도 아닌 우스꽝스러움이 되기 십상인데 어느 쪽도 아닌 것 같아 좋았다. 마치 처음부터 자기 노래였다는 듯이.


얼마전에 본죽 광고에 강허달림의 노래가 나오던데, 

무엇보다 강허달림이 꿋꿋하게 블루스 보컬이었으면 좋겠다.  



- Kendrick Ramar / To Pimp A Butterfly





켄드릭 라마를 처음 들은 건 몇 해 전 '컨트롤 비트 대전'때문이었다. 사실 힙합은 그렇게 즐겨 듣는 편도 아니고. 어쨌든 켄드릭 라마는 컨트롤 비트 이후 "새 앨범이 나왔다니 들어는 봐야지" 정도.


켄드릭 라마의 랩은 어떤 의미에서 랩보다는 선언이나 연설과 같다고 생각했다. 'I'나 'King Kunta'같은 트랙들. 돈 많이 벌고, 예쁜 여자하고 섹스하고, 약이나 쭉쭉 빨아먹고 다니는 걸 자랑하는 게 전부인 노래가사랑은 다르게. 


무엇보다 전자음에 기반하거나 훅이 강한 멜로디만 넘실대는 주류힙합.(이라고 표현하기에 내가 뭘 딱히 대단히 많이 듣는 건 아니다만, 나 같은 애가 찾지 않아도 들었으면 주류힙합이겠지)에선 잘 들을 수 없는 음악. 펑크나 재즈에 가까운 사운드들도 매력적이다. 신나고 잘한다.의 느낌을 넘어서 분명 한 획, 내지는 거장의 냄새가 폴폴. 

(I를 듣다가 마틴 루터 킹을 생각했는데, 자기는 쿤타킨데라네. 역시 나 같은 범인과는 다르다.ㅋ)


비트나 따라하지 말고 좀 제대로 따라했으면 좋겠다.


- 정차식 / 집행자





"귀신 나올 것 같다"던 얘기처럼 그의 음악은 귀곡락이다. 듣기에만 그런 게 아니라 음악을 만드는 과정도 그렇다고. 코드 몇 개를 펼쳐놓고 입에서 나오는 말을 그대로 옮겨적으면 그게 노래.라니 그게 작곡이냐 신탁이지.ㅋ


정차식의 음악은 격려, 위무 이런 것들하고는 상관이 없다. 노래는 지난 '황망한 사내'에서보다 더욱 처절하고 고달파졌다. 할렐루야라니. 절대자인 아버지에게 구원을 갈망할만큼.


하지만 힐링이니 하는 거짓부렁 상품이 넘쳐나는 와중에 차라리 죽도록 힘들다며 "무엇을 선택해도 후회되며 어디로 가려해도 꿈이라 허무하다"는 말은 차라리 위로에 가깝다. 나도 사는 게 좆같애. 힘내라고, 내가 너를 힐링해 주겠다고 덤비는 사기꾼들 틈새에서 그만 오직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은 느낌. 한 번만 더 내게 힘내라고 말하면 침을 뱉어주겠어요.


  

- Bob Dylan / Shadows In The Night





예전에 며칠 연속으로 밥딜런이 죽는 꿈을 꾼 적 있다. 아마 내가 생각하는 가장 죽지 않았으면 하는 뮤지션이 밥딜런인가보다. 이 나이 든 히피는 여전히 한 순간도 안주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과거의 영광 같은 건 모른다는 듯이 연이어 앨범을 내놓다가 36번째 정규앨범마저 내놨다. 36집 가수라니.


시나트라의 노래들을 다시 부른 10곡으로 채워진 앨범은 이 노래가 원래 시나트라의 노래였나 싶다. (My Way는 없다.ㅋ) 전형적인 헤테로섹슈얼 마초 남성이었던 시나트라와는 또 다른. 시나트라의 도시적 우울함, 그러니까 30년대 뉴욕 뒷골목, 마피아와 시가같은 목소리보다는 더 관조적이고 더 쓸쓸하다. 70이 넘은 노인이 지나간 세월을 조망하는 것 같은.


이런 느낌은 Auyumn Leaves에서 가장 도드라진다. 온갖 드라마 같은데서 늘 끈적끈적 흐르는 노래인 이 곡을 더할 수 없게 담백하게 불러버린다. "가을 정도 지나는 게 뭘 그리 거창해"하는 것처럼.


하지만 나이든 히피의 목소리가 짙은 허무따위는 아니다. 오히려 삶을 관조해서 더욱 희망적인. That Luck Old Sun 같은 노래. 


Like that lucky old sun. Give me nothing to do But roll around heaven all day.

저 나이든 행운의 햇살처럼, 

천국을 배회할 일 말곤 아무것도 남겨두지 말아주세요. 


할아버지처럼 늙고 싶네요.



- 혁오 / 22





눈독 들이고 있던 밴드가 유명해지는 건 기분이 나쁘면서 동시에 좋은 일이다. 장기하나 국카스텐 같은. 이젠 지들 입으로 '나만 알고싶은 밴드'라고 말하는 혁오도 그 중 하나 '였다'. 망할 무한도전.


여튼 정규앨범 한 장 내지 않은 주제에 기똥찬 음악을 해내는. 이걸 어떻게 구분해야하나. 소울도 아니고 펑크도 아닌 것이 가만 듣다보면 알앤비같기도 하고. 여튼 제일 좋아하는 트랙은 'Hooka'인데 끈적거리면서 느끼하지 않은 오혁의 보컬이 가장 매력이다. (공드리가 제일 좋아. 라고 누가 말하길래 후카 끝나면 공드리 나와. 로 정리했다.. 이래저래 다 좋다는 얘기다.ㅋ) 요즘 표절 얘기도 나오고 방송에 너무 노출돼 이런저런 하마평에 시달리는 모양이더라만, 결국 나온다는 그 정규앨범이 모든 걸 설명하겠지.



- 이승열 / SYX





지난 앨범이 너무 실험적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유앤미블루 시절이나 솔로 1,2집 정도의 정서로 조금은 돌아온 느낌. 이거말곤 무슨 말을 더할 수 있을까. 그냥 마냥 좋은데. 올 해 가장 많이들은 앨범. 이자 올 해의 음반을 쓸 때 가장 먼저 떠올린. 지난 V 부터 뭔가 확고해진 형이라는 느낌이 들었고, 기다리던 유앤미 블루는 이제 물건너 갔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보다는 이제 기다릴 의미가 없겠다는 느낌에 더 가깝겠다. 한국에서 '음악'을 가장 잘하는 남자. 라고 부르고 싶은. 


'a letter from'은 세월호 이야기다.

깊은 물 속에서 온 편지. 




- Jamie XX / In colour





트랜스나 EDM을 영 듣질 않아서 가끔 뒤처지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클럽을 안다니는 게 문제인가 싶기도 (하지만 클럽에서 날 안받아 줄거라는 게 문제, 나이트가 더 체질이라는 게 더 큰 문제) 하지만 영 뚱땅거리는 소리가 익숙해지질 않았다.


올 여름에 EDM을 좀 '공부'하고 싶어져서 친구에게 물었더니 Jamie XX를 추천해줬다. 이걸 듣고도 맘이 동하지 않으면 다 텄으니 그냥 LA 메탈이나 들으라며. 다행히 다 트진 않았는지 이후에도 이 앨범을 꽤나 많이 들었는데, 특히 노동요로 이만한 게 없었다. 하반기에 나온 내 대부분의 글들은 대부분 여기에 힘입은. (지금도.ㅋ) 


클럽사운드에도 우아함이. 

얼마 전에 데미안 라이스를 폄훼하다 반성했던 일도 있고. 음악엔 편견을 두면 안된다.



- 김사월 / 수잔





김사월을 처음 본 건 우연히 따라간 김사월 X 김해원의 공연. 어쩐지 퇴폐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던.

인디씬의 여성 솔로에게 포크는 드문 장르가 아닌데, 그게 너무 지나쳐서 이제는 좀 지겨울 지경. 이런 상황에서 김사월은 특별한 존재가 된다. 예쁘기만 하지 않은 노래지만 예쁘다. 이 말도 안되는 문장으로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김사월의 앨범 커버에 있는 사진을 봐도 그렇다. 예쁘지 않은데 예뻐. 이상하게 예뻐.

퇴폐적이지만 참 곱다.   

 


- Steve Hackett / Wolflight





프로그래시브는 폼잡고 싶어서 듣기 시작했다. 뉴트롤즈나 QVL같은. 

그러다 학교 앞에 '르네상스'라는 펍의 사장님한테 물려서. (그 아트록밴드 르네상스 맞다. 신도시의 대학가 앞에 르네상스라니!!) 프로그레시브의 세례를 받게 됐는데, 괜히 QVL 노래를 신청했던 게 화근이었다. 여튼 거기서 맥주 공짜로 엄청 얻어먹었다. 스티브 해킷도 그 때 그 사장님이 소개해준. 씨디도 한 장 주셨다.  


아무튼 스티브 해킷 할아버지는 여전히 왕성한 창작력을 보여주는 록음악계의 흰수염해적. 힘이 괴물같아서 아직도 엄청난 대작들을 막 쏟아낸다. 'Love Song to A Vampire'같은 거. 9분이 넘는데 후반부는 심지어 메탈 사운드도 나온다. 


아트록 앨범들은 대부분 한바퀴를 다 듣고 나면 진이 다 빠지는 느낌이다. 고전파 클래식은 듣다가 간간히 졸기라도 하지. 이건 뭐 졸만 하면 쾅쾅거리니까.ㅋ


여튼 올해의 아트록 앨범을 끝으로 연말 정산도 끝. 진이 다 빠지는 느낌이다.   




2012 올 해의 음반



올 해도 어김없이 세금결산 대신 음반 결산.

돌이켜보니 작년에 비해서 기억하고 싶은 음반이 많지않다.

그건 아무래도 작년에 비해 음악듣고 흥아흥아 놀아재낄 시간이 적었던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작년에 비해 좋은 음반이 상대적으로 좀 적었던 탓인 것 같기도. 여튼.

언제나 그랬듯 내맘대로. 순위도, 근거도, 독자도, 상관도 없는 음반 결산 시작.



# 강허달림 - 넌 나의 바다





아마 지금 한국에서 한국말로 노래하는 여성보컬 중에는 이 언니가 1등이지 않을까.

그러니까 '매끄러운 은쟁반에 굴러가는 옥구슬만 먹고사는 꾀꼬리 같은 목소리' 같은 게 좋을 때도 가끔 있지만,

이렇게 묵직한 소리가 날아와 박히는 순간이 '진짜'다. 그걸 진심이니 하는 조악한 단어로밖에 표현하지 못해서 무척 안타깝다. 그 눈물나게 위로되고 아프고 씩씩한 소리들에 어울리는 더욱 좋은 말들이 있을텐데.


이 2집앨범은 가장 좋아하는 앨범인 1집앨범과 '독백'Ep만큼 달고 살지는 않았다. 예전에도 한 번 했던 말이지만, 같이 찌질거려주던 누이에서 이제 궁둥이 툭툭 두들겨주는 막내이모로 포지션을 바꾼 것 같아서. 아직 찌질한 누나가 더 고픈가보다. 여전히 전작들이 더 좋긴하다는 말이다. 신보보다 과거의 작품이 좋다는 말만큼 예술가에게 실례되는 말이 또 있겠냐만, 그건 전적으로 내 취향의, 마음의 문제. 


'꼭 안아 주세요', '아무도 모르고', '그리되기를' 같은 트랙은 강허달림이 얼마나 좋은 보컬이며 창작자인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넘버라고 생각한다.  '멈춰버린 세상'은 용산참사를 노래한 트랙이다. 본인에게 사회적인 메시지를 노래하는 가수라거나 페미니스트 가수라는 수식이 붙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거나 반기지 않는 것 같지만, 난 좋은 노래는 좋은 눈과 마음. 그리고 그렇게 살아온 삶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여러모로 강허달림이 짱이란 뜻이다.ㅋ 


여름, 두 개의 문이 개봉하고 다시 열린 용산참사 추모집회에서 조용히 뒷켠에 섰다 인터뷰도 발언도 없이 가버린 그녀를 목격한 건 내 자랑.ㅋ



# 강아솔 - 당신이 놓고왔던 짧은 기억




기타치면서 고운 목소리로 노래부르는 (좀 흔한) 여성 싱어송라이터.일 것 같았다.

이름도 그렇잖아, 아솔. 적당히 곱고 예쁜 목소리로 샤랄라한 멜로디를 부르다 외모가 화제가 돼서 여신으로 불리게 될. 그런. 뭐 그러다 어느 밴드의 누구랑 연애한다더라. 그러다 라디오에도 출연한다더라. 뭐 그런. 좀 뻔한.


그런 얘기들에 지겨워하고 있었다. 누가 누군지 구분도 안되는 목소리와 멜로디들이 쏟아지는데, 대단한 음악적 성취라도 있는 양 포장'하는' 레이블이나 방송들이. 그래서 '여성 싱어송라이터'로 소개되는 이들에게 보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사실 '여성' 싱어송라이터는 또 뭐야)


그런데, 강아솔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이건 뭐. 제가 완전히 잘못했습니다.

"4년 전 5월" 하고 부르는 그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 

"이 노래가 그대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바라오"하는 마음 씀씀이.


제 2의 OO 같은 말들이 아까운. 오래동안 노래부르고 듣고싶은 가수의 탄생.


(와우북페에 강아솔이 출연해서 꾸역꾸역 보러갔는데, 장래희망은 래퍼라고했다. 헐 대박. 근데 랩도 잘해. 이건 뭐. 못하는게 뭐임. 근데 얼굴도 예뻐. 엉엉엉)



# 정태춘 박은옥 -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선언의 결기나 혁명에의 꿈. 같은 것들이 민중가요라면 정태춘의 노래는 민중가요가 아니다.

다만 나약한 삶에 대한 위무, 미욱한 인간에 대한 응시와 절망. 역시 민중가요라고 부를 수 있다면 정태춘이야말로 민중가수다. 그런데 사실 이런게 뭐가 중요하겠는가. 


팔뚝질과 격렬한 언어만이 시대를 노래하는 것은 아니다. 시내버스와 고속전철, 서울역 이 씨에 대한 회한은 그대로 시대다. 마찬가지로 하룻밤 사랑이나 의미를 알 수 없는 주문같은 노래들도 시대의 반영이다. 민중가요라는 말 자체는 얼마나 어이없고 부질없는가.


정태춘과 박은옥의 노래들은 관조하고 위무하며 동시에 절망하거나 연민한다. 이건 어느 날들처럼 노래를 불러 분노하고 선동하고 다짐하는 대신 차라리 증언하고 있다. 시대를, 세상을, 사람을. 그래서 그들의 노래는 위로고 응원이다. 절망해주기 때문에 함게 희망일 수 있다는 메시지기 때문이다. 어설픈 낙관이 아니라 함께 절망해주는. 그걸 그대로 지켜보고있다고 증언해주는. 정태춘의 목소리는 외롭지만 감사하다.


이런 노래가 다시 불리워지지 않을까 무섭다.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를 타면, "아무도 손 흔들지 않는 등대 아래, 하얀 돛배 닻을 올리고 있을까"



# 여러 명 - Reborn 산울림




2011년의 들국화 트리뷰트에 이어, 2012년에는 산울림.

(2013년에는 어떤 전설에 대한 트리뷰트가 이어질 것인가ㅋ)


들국화가 놓쳐버린 시기에 존재했던 전설.의 위용이라면,(재결성해 더욱 위대한 음악을 들려주고 있지만 그것과 이건 또 다른 문제고 음악) 산울림은 꾸준히 지금껏 오래도록 이어오는 전설. 그러니까 들국화가 비틀즈 같았다면 산울림은 롤링스톤즈 같았달까.ㅋ (김창익 아저씨가 돌아가시고 산울림이라는 이름의 밴드는 없어졌지만, 김창완밴드는 그대로 산울림의 궤를 이어가는 또 다른)


여하간, 산울림의 노래는 그대로 '한 마디 말이 노래가되고 시가되는'.


NY물고기가 부른 '독백'이 가장먼저 귀에 들어오는 트랙. 장기하와 얼굴들이 부르는 '조금만 기다려요'는 그대로 너무 산울림스러워서.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무지개'나 킹스턴 루디스카의 '가지마오'는 그대로 자기들의 오리지널 넘버라고 해도 믿을만큼 신선하고 재미있는 헌정. 이진욱의 '나 어떡해'도 마찬가지. '나 어떡해'는 이렇게 변할 수 있을 줄 정말 몰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김창완밴드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산울림의 노래 중에 가장 애정하는 이 노래를 김창완밴드가이렇게 기깔나게 연주하는 것은 이 앨범이 지난 시대에 대한 존경심 따위가 아니라 지금 살아있는 위대한 음악인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한다. 그렇게 산울림은 지속된다. 그래서 차라리 Reborn은 적당한 이름이 아닐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태어나기는. 아직 그들은 죽지 않았다.



# 3호선 버터플라이 - Dreamtalk




3호선 버터플라이를 처음들은 건 2003년, <네 멋대로 해라>에 삽입된 '나비의 꿈'.


남상아의 보컬이나 성기완의 곡은 이미 그 자체로 완성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사실 남상아같은 목소리를 갖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전생에 나라를 한 100번 쯤은 구했었나봐. 허클 팬들이 괜히 이소영이랑 비교를 하면서 찌질거렸던게 아닌거다. (음.. 작년 이맘때 허클 앨범 얘길 하면서 다시는 비교를 안하겠다느니 하는 말을 했던 것 같은데...)


여하간 더욱 좋아진 것을 보면 아마 그게 완성은 아니었나보다. 멜로디는 더욱 정겹고 남상아의 보컬은 더 적절하다. '달이 뜨지않고 니가 뜨는 밤'처럼 더 슬프거나 '헤어지는 바로 오늘'처럼 더 묵직하다.


연주력이 어쩌고 하는 말은 내가 할 수 있을만한 얘기가 아니니 차치하고 다만 이런저런 노이즈를 가장한 사운드들이 매우 흥미롭게 반복돼 더 좋았다는 말 정도만. 사운드와 소음을 가르는 기준, 그게 연주력이겠지. 아마. 이런저런 의미부여 없이 가장 좋은 음악을 가장 적절히 해내는 밴드.라고 하면 올해는 단연 아마 이 밴드가 아닐까.



# 박지윤 - 나무가 되는 꿈





박지윤의 음악을 이야기함에 있어 늘 언급되는 JYP나 성인식의 이미지들은 이제 그녀에 대한 무례일 것이다. (아마)

그 시절의 아픔을 딛고 이제는 성숙한 여성 싱어송라이터로 거듭난. 같은 표현들로 치부하기에 박지윤은 훌륭한 보컬이고 이 앨범은 그 훌륭한 뮤지션의 수작이다.


거의 가성을 사용하지만 그 소리가 결코 부담스럽지 않다. (난 가성을 쓰는 노래들이 대부분 버겁다. 그래서 조관우를 높이 평가하는 이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잘) 그녀의 음색은 기타뜯는 소리, 올갠소리와 무척 잘 어울린다. 특별한 고조 없이 무난하고 평이하게 이어지는 멜로디도 좋다. 


'좋은 친구들'의 도움이 컸을 것으로 보인 지난 앨범과 달리 이번 앨범은 그녀의 심지에 좋은 친구들이 얹어진 듯한 느낌이다. 마치 이상은이 담다디를 부르고 춤을 추던 모습에서 탈피하기 위해 노력하다 이제는 그 시절을 말하며 탬버린 들고 담다디를 불러주는 것 처럼, 그녀도 어느 날인가 기타치며 성인식을 불러줄 수 있을 것 같다.



#  여러 명 - 블루스, The 블루스

 



블루스 앨범. 같은게 있을리 없다. 블루스라고 말하면 R&B를 떠올리는 이 땅에 말이다.

기껏해야 신촌블루스 정도가 대중들이 기억하는 블루스일까.


블루스는 재즈와 로큰롤의 기반이 되는 음악이고 좋은 로큰롤 연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연습 공부해야 하는 음악. 이라고 음악 교과서 같은데 보면 나온다. 지난 시즌 탑밴드에서 신대철은 자기 제자들에게 블루스를 연주하게하는 과제를 주기도 했었다. 거기서 애들한테 근본없다고 쿠사리 엄청 주더라만. (그 신대철의 아버지 신중현이 한국 블루스 음악의 거두.라고 볼 수 있겠다. 미군부대에서 기타를 연주하던 신중현의 음악은 블루스 기반이다)


여하간 이 블루스 컴필레이션은 그런면에서 신기하기도 소중하기도 한 음반이다. 강허달림이나 로다운, 림지훈 같이 꾸준히 블루스 연주를 지속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한번에 듣기가 어디 쉬운가. 거기에 조이엄이나 강산에, 깜악귀 같은 이들까지도. 


더 블루스엔 갖가지 블루스가 다 들었다. 엄인호의 신촌블루스와 채수영의 저스트블루스에서 노래부르던 강허달림의 '그러면 돼'는 그야말로 한국의 블루스다. (강허달림의 1집 앨범엔 엄인호와 채수영의 연주가 몽창 들어있다. 그야말로 한국의 블루스 디바) 제일 좋아하는 곡은 김대중의 '300/30'과 림지훈의 '좋아서 우는 겁니다'.


'300/30'은 300에 30짜리 월세를 구하러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는 청년빈곤층의 이야기. 옥탑방에 앉아 비행기 바퀴가 잡힐 것 같다고 얼버무리는 해학이 좋다. 사실 블루스야말로 흑인들의 애환을 노래하던 음악 아닌가.ㅋ

'좋아서 우는 겁니다'는 마치 60년대 대포집에 젓가락 두들기는 취객의 연주같다. 블루스가 부루스로 발음되며 불리던 노래처럼. 


여튼, 이런 음반이 발매되는 것은 이제 좀 더 많은 노래들이 더 쉽게 나올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을 갖게한다. 소모는 소리 정말이지 너무 지겹잖아.


# 김장훈 - Adieu


 

그래도 제일 좋아하는 가수는 김장훈이다. 

난 정말로 김장훈이 한국에서 가장 노래를 잘하는 보컬 3위안에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지난가을, 싸이와의 시덥잖은 소동과 SNS를 통해 보여지는 그의 창피한 모습에 이 앨범이 가려지는게 좀 안타깝다.

실제로 그의 노래는 한동안 별로였다. 8단고음이니 하는 웃기지도 않는 말을 하고 자기변명적 스토리만 주구장창 늘어놓는 태도나 별로 아름다워보이지 않는 기부와 선행, 독도. 그놈의 독도. 그런 것들이 그의노래에 전부 반영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앨범을 내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예상치 못하게(?) 좋았던 그의 이번 앨범이 안타깝다. (물론 몇몇 트랙은 그 맘에 안드는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 아니꼽다) 어느 시점부터 히트곡도 딱히 없고, 공연은 볼거리 이벤트용으로 취급받았던 그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독도니 기부천사니 하는 말로 칭찬이나 받는 것이 만족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노래가 슬프지 않아 떠난다던 그 절박함은 어디로 갔나. 싶었던.


이번 앨범에 실린 곡들은 대부분 좋다. '그림자'나 '너를 모른다'같은 곡들은 그의 슬픈 목소리가 그대로 드러나는 좋은 노래다. 이름이 아직 생소한 작곡가들의 곡이지만 좋은 곡들을 만들어낼 줄 아는 이들인 듯 했다. 'Someday'나 'Way You Are'같은 빠른 곡들도. 적절한 연출로 공연에서 좋은 효과를 얻어낼 수 있는 곡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그 사랑이 뭔데'같은 곡은 대중적인 히트를 노릴만한 곡이라는 생각도. 어느 히트한 드라마의 OST같은 느낌도 나면서 말이다. 아.. 말 할 수록 아깝고 안타까워.


결국 지금 김장훈에게 필요한 것은 좋은 형. 김장훈에게 스마트폰을 뺐고 다시 '노래만불렀지'하게 할 수 있는 그런 형님. 인권이 형은 요즘 바쁘신가.(말이 나와서 말인데, 랩버전으로 다시 실린 노래만 불렀지는 그게 뭔가. 그 구구절절한 자기변명과 느끼한 자기연민. 내 노래만 불렀지를 돌려줘)



#  No Control - No Control




인디 펑크 락밴드란 이런 것이다.

그들은 자립음악생산가협동조합의 멤버인데, 이 조합의 대표로 회기동단편선과 무키무키만만수가 거론되는 것에 반대한다. 최고는 단연 이들이다. 


'사장님 개새끼'같은 넘버가 비교적 가장 유명한데, 이들의 음악은 이 곡으로 대표되는 역동성이 있다. 장르의 경계나 연주의 숙련도 같은거야 내가 말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니까 넘어가고 시원하고 통쾌한 거칠고 날것같은 소리. 조선펑크를 부르짖던 노브레인이 돌아온 것 같았다.(지금의 그 완전 별로 노브레인을 말하는게 아니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이게 바로 '인디(펜던트)'다.



+

그 밖에도 윤영배나 로다운, 9와 숫자들, (외국인으로는 유일한)글렌 한사드 같은 앨범들이 좋았지만 지쳐서 더 못쓰겠다. 패스. 


++

콜드플레이, 킨, 시규어 로스 심지어 스매싱펌킨스까지 엄청난 팀들이 앨범을 냈지만 패스. 위대한 밴드는 언제나 기대를 넘어야 하니까요. 시규어로스는 애매하고 아깝고 좋았지만.. 음 좋아하니까 탈락. 같은애정어린 마음이라능..엉엉엉







강아솔 - 그대에게



여기 사람이 있었다



2년 반만에 다시 붙은 촛불...용산참사 현장 촛불문화제 - 참세상 기사링크








1.

어제 2년 반만에 용산참사 촛불집회가 열렸다.

남일당은 폐허로 변했고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다. 

서울시 주차난 해소를 위해 주차장이 그토록 급히 필요해서 6명이나 사람을 죽였나보다.


2.

두개의 문은 5만 관객을 넘겼다.

개봉을 할 수 있을지 걱정하던 영화에 5만의 관객이 몰린건 무엇보다 영화가 갖는 힘이겠지만 타이밍의 적절함과 배급위원회의 노력도 빼 놓을 수 없겠다.

정동영에 문성근 같은 정치인들이 대선정국에 맞물려 영화관을 찾아주고

현병철같은 인사도 비록 쫓겨나긴 했지만 영화관을 찾았다. 심지어는 경찰들도 단체관람을 했다고. 영화가 가진 힘이다.


이 관객 증가추세라면 10만도 가능할지 모르겠다.

거기에 공동체 상영이나 상영관 추가확보가 더 진행된다면 어쩌면 더. 더 많은 사람들이 '돈내고' '시간들여' '마음아파'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이 영화는 충분히 그만한 가치가 있다. 


이건 용산참사를 이해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하는 마음보다 '좋은영화'를 사람들이 봐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건 정말 잘 만든 웰메이드 필름이다.


3. 

어제 촛불문화제에 강허달림 언니님이 왔다.

(팬심돋게) 내가 제일 먼저 알아보고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가수가 아니라 개인 참가한 시민으로 온 그녀는 인터뷰를 거절했다. 

(팬심을 제거해서 봐도 그 태도는 정중했다. 인터뷰 신청한 내가 무례해보일만큼)


그녀 2집의 '멈춰버린 세상'은 용산참사를 위무하는 노래다.


++

가느다란 길 같이 걸었던 길
그 길에 내몰린 사람들
벌겋게 달아오른 불꽃에 멈춰버린 세상

내 모든 걸 주고도 남아 바뀔 수 만 있다면
나 아닌 누구의 삶이 유지될 수 있다면야
같은 공간, 같은 눈빛, 같은 웃음소리 나누던
촉촉이 젖은 길 흘린 눈물만큼 비린세상



기자들이며 팬들을 우르르 몰고와서 사진 한 방 찍고 떠나는 유명한 사람들에 비하면 

그녀는 확실히 덜 유명하지만 집회의 맨 뒷자리에서 끝까지 집회를 바라보던 그 마음만은 진짜인게 보인다.

늘 얘기하지만 노래는 딱 그만큼만이다. 살아가는만큼 살아본만큼 바라보는만큼. 

그녀의 노래가 사랑스러운 이유. 라고하면 너무 팬심돋는 맨트인걸까.ㅋ


4.

강허달림 얘기가 나와서.

그녀는 내가 아직도 붙잡고 끙끙거리고 있는 '레드마리아'의 OST도 불렀다. 

(본인은 페미니스트 가수라고 불리거나 규정되는 것을 마뜩치 않아하는 것 같아 그렇게 부를 수는 없지만)

그녀는 경직된 규정, 소외, 허한 마음에 대한 위로.(를 페미니즘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텐데)를 노래한다. 


언제가도 얘기했지만 그녀가 부른 '독백'을 듣고서 엉엉 울어버리기도 했었다. 엉엉엉


여하튼 인터뷰를 거절하고 거절받은 그녀와 나는 잠시잠깐의 어색함을 겪어야 했는데 

내가 바로 팬심돋게 싸인을 요청했다. 그리고 일전에 그녀가 내 블로그에 방문해서 내 앨범평을 보고선 내가 보러간 공연에서 앨범평을 얘기했던 에피소드도. 그렇게 팬 인증을 하고서야 명함을 받아주셨. 다음에 또 어딘가에서 만나면 기어이 인터뷰 해주셨으면. 이번에도 자기이름 검색하다 또 이 글을 봐주셨으면.ㅋ 


5.

이것도 언젠가 얘기했던 것 같은에 난 모든 예술가는 좌파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좌파를 있는 그대로만을 긍정하지 않고 더 나은 삶과 세상을 상상하고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면 

모든 예술가는 가장 근원적인 좌파일 수밖에 없다.


사실 모든 삶이 늘 새로운 것을 상상하는 일이라면 살아가는 모든 이가. 

그래서 모든 삶이 곧 예술이라는 거잖아.


7.

김석기를 비롯한 이들에게 고발운동이 시작됐다. 이른바 '나는 고발한다' 에밀졸라의 유명한 경구에서 빌려온 이름이다.


역사의 공범과 역사의 목격자. 두 개의 문이 다시 앞에 있다. 

경찰특공대에게 두 개의 문은 혼란이었지만 우리에게 두 개의 문은 용기다. 진실이고 선언이고 다짐이다. 


8.

남일당이 있던 곳은 공터로 변해 주차장으로 쓰인다. 

그리고 그 흉물스러운 주차장 바리케이트 한 귀퉁이에도 꽃이 피었더라.

밟아도 밟아도 살아나 다시 피는 꽃.









강허달림 - 멈춰버린 세상



단상


1.
담배를 사러가는데 별로 춥지 않았다. 심지어 얇은 티셔츠 한 장만 걸치고 나갔는데. 그러고보니 벌써 입춘도 지나 이월중순이다. 며칠 있으면 다시 봄. 봄이 설레기보다 겨울이 섦다.

2.
며칠 전엔 남에게 내가 쓴 글을 보냈다. 미루다 미루다 새벽녘에야 졸린 눈 부비며 쓴 글이라는 핑계가 구차하지만 그 핑계말곤 붙잡을 위안도 없이 졸렬하고 부끄러운 글들이었다. 정말이지 손발이 퇴갤할 것 같아. 사실 언제 쓴 글이라고 부끄럽지 않았냐만은, 그 부끄러움에도 강도란게 있는 법이니까. 그러고선 또 부끄럽지 않은 척, 후안무치하게 글쓰고 말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지껄여댔는데, 그건 또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냐. 이렇게 부끄러웠다고 토설하는 알량한 자기위안적 고백은 또. 침 세번 뱉는 것으로 모든 선언에 신뢰감을 부여하던 그 어린 놀이가 더 진정성 있어뵌다. 이건 대낮의 길 한복판에서 수음을 하는 짓.

3.
스물 일곱해동안 나를 키운건 팔할이 야식이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출근도장을 찍고있을 이 시간에 치킨과 맥주생각이 간절하다. 물론 먹지는 않는다. 그럴 돈이 없는게 오직 한가지 이유다. 하하하.

4.
먹는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올 해엔 자격증을 하나 따고싶다. 조리사 자격증. 자꾸 내 요리 실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반동분자들이 나타난다. 난 모래알로 밥을 짓고, 솔방울로 탕수육을 만드는 인스턴트 음식계의 한복례. 맛있는 음식보다 종이쪼가리를 실존적 증거로 채택하는 우둔한 혓바닥들을 전부 아오지행으로 만들어주기 위해 다시금 새벽별을 보며 연필을 잡기로 다짐했다. 요리실력을 증명하고자 국자와 후라이팬보다 연필과 참고서를 잡아야하는 이 문화적 후진국의 앞날이 심히 통탄스럽지만, 난 왜 또 그걸 굳이 증명하고 싶어서...응?
그냥 숙원사업인 대학가 인심좋은 털보뚱보 아저씨네 술집의 주방장겸 호스트겸 디제이를 위한 고되고 묵묵한 고련과정이라고 생각해야지.

5.
오래간만에 나온 강허달림 언니의 신보. 당연히 좋다.
하지만 왠지 같이 찌질하게 우울해서 위로되던 누나였는데, 어느 날인가 더 어른스러워지고 여유도 생겨서 그저 괜찮다고 얘기해주는 막내이모가 된 느낌이랄까. 그래도 당연히 좋다.
한국말로 노래하는 여성 중에서 지금은 이 언니가 (아마)1등 아닐까.


강허달림 - 꼭 안아주세요

6.
얼마전엔 생활이 궁핍하고 고되다며 질질짜는 친구를 만나서 얘기를 들었다. 도시가스가 끊겨서 집안이 냉골이고 당장 내일 식비와 차비가 걱정이고, 통장에 기십만원도 없는 생활이 비참하다고 했다. 그 친구의 힘듦을 무시하는건 아니지만, '얌마 그거 내 얘기잖아, 나 안 힘들면 병신인거냐?' 어쨌든 술값은 옆에 앉았던 돈 잘버는 친구가 냈다. 난 사실 그게 더 비참했다.

7.
예전에 엄청 좋아하며 따라다니던 선배가 있었다. 우리학교 총학생회장이었는데, 지금도 "그때 형이 삼계탕 사주면서 꼬시지만 않았으면 지금 이렇게 살고있진 않을거"라는 농담을 한다. 여하튼 내 대학생활의 아주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사람이다. 난 엄청 착하고 말 잘듣는 후배여서 그 양반도 나 되게 예뻐했던거 같다. 내가 그 양반 군대갔을 때 명절때마다 명절음식 싸들고 면회 다니던 그런 착한 후배다. 얼마전에 오래간만에 그 양반하고 술을 마셨는데, 다음 날 아침 일찍 출근해야 된다는걸 억지에 억지를 써서 그 양반 사는 동네까지 찾아가서 술을 얻어마셨다. 내 생일이었다. 여전히 변변치못하게 살고 있는 내게 이런저런 잔소리를. 사실 조금(보단 훨씬 많이) 못마땅했다. '변절'운운하는게 아니다. 자신의 삶을 정당화시키고 그 삶에 대한 확신으로 다시 스스로를 위안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그에겐 그 시절의 운동도 그런 것이었을까. 또 당분간 만나지 않을 것 같다.

8.
낮잠을 자고, 시덥지 않은 책을 읽고, 개콘 재방송을 보면서 낄낄거리다 식은 밥에 남은 반찬을 몽창 때려넣고 특제 비빔밥을 만들어 우걱거리면서 뉴스를 봤다. 쌍용에서 또 사람이 죽었다. 앞으론 모래알로 밥을 짓지 말아야겠다. 이렇게 까끌거려서야.

9.
목수정씨 좋아했는데, 이제 별로 안좋아하련다.
정명훈 사건에서 드러난 태도는 예민함의 발로라고 생각했고, 그 예민함이 남한사회처럼 두루뭉술이 미덕인 사회에선, 특히 좌파에겐 더욱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예민함이 다소 감정적으로 발현되는 것도 토론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가피한일이고 지속되는 토론은 결국 감정을 배제한 순수한 예민함과 정연한 논리로 귀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목수정씨가 선언하듯 사건을 종결하고 블로그를 닫았을 때도 예민한 감수성에 진중권의 비수같은 말들이(사실 그의 언어에 따듯함이나 상대에 대한 배려같은게 없는건 사실이니까) 상처를 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목수정씨는 얼마전 다시 블로그를 열었다. 그리고 '나꼼수와 비키니 사건'에 대한 글을 포스팅했다. 그녀는 이 일을 두루뭉술하게 넘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걸 포용과 관용이라고. 어디에서도 예민함은 찾기 어렵다. 어느 순간에, 어느 지점에만 예민하고 또 다른 순간엔 다시 두루뭉술, 포용과 관용을 운운하는 태도에서 명확한 정의를 찾기란 쉽지 않다. 사실 자신에 대한 공격과 자신이 애초에 상정한 '적'에게만 발로되는 공격성으로 해석하는게 되는 것이 어쩌면 수순일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야초부터 나꼼수를 옹호하는 태도도 영 마뜩치 않은 판이었다.
그녀의 책들을 통해서 그녀의 삶이나 그녀의 글, 바라는 세상에 대해 동조하고 또 그녀를 좋아했다. 그리고 그 호감은 말한 것처럼 그녀가 갖는 예민함이 바탕이었다. 아끼고 좋아하는 팬심에서 하는 말이다. 좀 정신차리고 살자.

10.
하이쿠나 한 편.

이 세상은 /
나비조차 먹고 살기 위해 바쁘구나

강허달림 -독백,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독백 - 강허달림


노래는 아마 '시절'로 기억된다. 첫사랑 그애가 좋아했던 아소토유니온이나 정인의 노래들은 그 시절을 소환해낸다. 그래서 잘 듣지 않는다. 내 사춘기의 노래는 웃기게도 윤종신과 공일오비였다. 그 땐 HOT가 무림을 평정했을 시절이라 어디를 가도 '위 아더 퓨쳐'와 '행복'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다니던 학원 선생님이 윤종신과 공일오비를 좋아해서 늘상 그걸 듣고 있었고, 학원에서도 학교와 마찬가지로 교실보다 교무실에 앉아 선생님들과 농담따먹기 하길 즐겼던 나는 자연스레 윤종신을 들을 수 있었다.

이런식으로 노래 한 곡이 시절을 대변 할 수 있다고 하면, 그리고 내게 가장 소중하고 기억에 남는 노래라면, 아니 기억에 남는다느니 소중하다느니 하는 겸연쩍고 진부한 표현이 아니라 지금 내 삶이 그 노래라면, 그렇다면 난 그 노래로 대변되는 그 시절에서 한발짝도 나서지 못한걸까.

'독백'은 그런 노래다. 그 때.
그러니까 혼란스럽거나, 외롭거나, 어렵거나.
결심했다가 무너지거나, 금방 일어날듯 하다가 또 일어선지 못할거라고 체념하거나.
세상은 혼자라고 읊조리거나 그러면서도 누군가를 간절히 찾거나.
위로받고 싶었지만 실은 위로하고 싶었거나.
그러니까 아무것도 아니었고
무엇도 되지 못했고 또 무엇이 되고싶은지 알지 못해서 무엇이 되고 싶다고 말하지도 못했던.

이런저런 사소한 일들이 있었다.
감자탕 한 냄비를 나눠 먹는 방법을 몰라서 혼나고 질질 짜거나,
삶을 다시 세워 홀로 올곧이 서겠다며 잘난 척하느라 뻗어 온 손에 침을 뱉었다.
세상은 책 바깥에 있다는 말을 책에서 읽곤 세상에 서려 했고,
갈 곳이 없는 주제에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노라 떠들었다. 그건 생각보다 힘겨운 시절이었다.
무엇보다 외로웠다.  

아마 하루종일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큰 길에서 아무 것도 없는 어두운 골목을 지나면 놀이터 맞은편에 우리집이 있었다. 집에 들어가기 전에 놀이터에 앉아서 담배 한대를 태우는게 습관이었는데, 그 때였던것 같다. 이 노래가 박힌건. 강허달림의 노래야 그 전부터 들어왔지만 왜 갑자기 그렇게 서럽게 울어버렸을까. 얼마인지도 모를만큼의 시간동안 울었다.

"무엇들이 그렇게 진실인지 알수도 없을수도. 그런 후에 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가"

이 노래는 여전히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아소토유니온의 노래를 들으며 첫사랑을 떠올리거나 윤종신의 노래가 유년기를 떠오르게 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미 바래져 미화되거나 희미해진 기억이 아니다. 난 아직도 그 '어둠에 지친 긴 터널'의 정체를 모르는 까닭이다.

난 여전히 혼란스럽거나, 외롭거나, 어렵거나.
결심했다가 무너지거나, 금방 일어날듯 하다가 또 일어서지 못할거라고 체념하거나.
세상은 혼자라고 읊조리거나 그러면서도 누군가를 간절히 찾거나.
위로받고 싶었지만 실은 위로하고 싶었거나.
그러니까 아무것도 아니었고
무엇도 되지 못했고 또 무엇이 되고싶은지 알지 못해서 무엇이 되고 싶다고 말하지도 못한다.

한 걸음도 나서지 못했다.
애쓴 다짐의 말이나,고백의 말은 필요하지 않다. 한 걸음도 나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고백이나 다짐은 그동안 얼마나 숱했던가.

좋아하는 이송희일 감독의 단편중에 '언제나 일요일 같이'란 영화가 있다.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을 읽고 화분을 키우지만 그 화분이 말라 죽을때까지 아무 것도 하지 않던 룸펜이 나오는. 아 그 뻔해보이는 클리셰에 갇혀서 여전히 같은 노래를 듣고있다.

아, 나란 남자......ㅋ

강허달림



친구와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데, 라디오에서 그때 그사람이 흘러나왔다.
"잠깐, 이거 강허달림 목소리 아니야?"

그 때부터 친구 얘기는 듣는둥 마는둥. 모든 신경이 그리 향한다.

노래에 이렇게 자기를 싣는 목소리를 일찍이 들어본일이 있을까.
그녀의 노래는 말 그대로 내던진 모든 것이 그대로 날아와 몸통에 박히는 느낌.
달림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눈물이 난다.

빼곡히 들어찬 숨결조차 버거우면
살짝 여밀듯이 보일듯이 너를 보여줘
그럼 아니. 또 다른 무지개가 널 반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