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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본 영화들

 

 

 

끝과 시작

 

오감도를 그다지 재밌게 보지는 않았다. 민규동 감독들의 전작들도 어딘가는 늘 아쉬웠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은 다분히 오바스럽다고 느껴졌고,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은 그저 예쁘기만 했다. 결국 민규동의 최고작은 언제까지나 여고괴담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했드랬다.

 

그래서 오감도의 에피소드 중 하나였던 끝과 시작에도 그닥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마치 액자식 구성인 '양' (그렇다 액자식 구성인체 하고 있지만 이 영화는 액자식 구성이 아니다) 시간과 공간, 인물들의 인과가 말그대로 끝과 시작이 베베 꼬여들어서는. 마치 뫼비우스처럼, 그 끝과 시작을 알 수 없는. 아니 그보단 차라리 끝이 곧 시작이 될 수 있고 어느 시작은 끝에서 비롯됐음을 자연스레 이르는. 그래서 삶의 모형이란 마치 계단 모양의 꺾은선 그래프가 아니라 둥글고 원만해서 그 수식의 정리조차 어려운 연속의 그래프라는 그런.

 

물을 주면 식물이 자라는 카드나, 마술, 유령, 환상 같은 소재들이 눈에 띈다.

다만 김효진과 엄정화의 사랑은 너무 눈에 보이게 숨겨놓아 밋밋하다는 느낌도 든다.

황정민과 김효진의 정사장면은 엄청 섹시하다. 김효진이 엄정화 머리 감겨주는 장면도.

 

 

 

 

링컨

 

영화는 전형적인 스필버그 영화다. 위인은 다분히 신성화되고 정치적으로 올바르다. 공상과학에 대한 스필버그의 상상력은 대단하겠지만 그가 발휘하는 영화적 상상력은 언제나 아쉽다. 다만, 그럼에도 그의 영화는 재밌다.

 

그렇게 링컨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영화다.

노예해방을 이끌어낸 인간적인 대통령, 정치가로서의 링컨과 아버지, 남편으로서 괴로워하는 노년 남성으로서의 링컨을 적절히 조합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링컨을 덜 위대하게 그리지는 않는다. 영화는 그의 노예해방 정책이나 남북전쟁의 숨은 의도 같은 논란거리 많은 이야기들은 피해간다. 아니 피해간다기 보다는 아예 안중에도 없다. 그게 거슬리지는 않는다. 사실 링컨은 그런 뒷 이야기들을 하지 않아도 충분할 만큼 스토리도 많고 멋진 정치가임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긴 러닝타임에, 품 안에 숨겨놓은 비수같은 장치도 없는 영화가 재미있을 수 있는 공의 가장 많은 부분은 링컨을 연기한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가지고 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어쨌건 "내가 나오는 영화를 안보면 너희만 손해"라는 포스를 풀풀 풍겨주고 있고, 실제로 그의 영화를 보고 영화가 못마땅한 적은 있어도 (사실 거의 없다.. 라스트 모히칸이나 나인 정도..?) 그가 못마땅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심지어 잘생겼어.

 

 

 

장고

 

피가튀고 살점이 뚝뚝 떨어지는 와중에 묘하게 웃기기까지 한 서부극.은 아마 지구에서 타란티노가 가장 잘 만들 수 있을 테다.

 

제이미 폭스가 영화에서 몇 명의 백인이나 죽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진짜 엄청 많이 죽인다) 그가 죽이는 흑인은 단 한 명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디카프리오의 집사를 연기한 사무엘 잭슨을 죽이는데 그게 이 영화의 가장 재미있는 부분일테다. 영화의 와꾸는 결국 노예제도에 핍박받는 흑인들이 백인들을 향해 분노를 표출하는 내용인데, 영화의 가장 큰 악당은 백인 노예상들이 아니라 그 밑에서 호의호식(도 채 못하면서 오히려 제 동족들을 더욱 악랄하게 핍박하는) 흑인집사 사무엘 잭슨이다.

 

그밖에도 장고의 여정에 얼핏 보이는 모습들은 채찍맞는 노예 옆에서 행복하게 놀고있는 다른 흑인 노예들이 비춰지는데 사실 그게 타란티노가 보여주고 싶었던 모호함일테다. 더구나 주인공 장고 자체도 노예제도나 인권, 자유 이런 것 대승적인 것들에 별반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는 그저 사랑하는 아내를 구해서 함께 살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장고는 영웅이 아니다.

 

하지만 사실 이런 것들은 별반 중요하지 않다. 장고의 유럽인 백인 친구가 노예제를 찬성하든 반대하든, 뒤마가 흑인이었든 백인이었든 어쨌든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피칠갑과 통쾌함이다. 백미는 장고가 디카프리오의 저ㅐㄱ에서 벌이는 수십대 일의 총격전 장면. 오우삼 영화의 주윤발은 저리가라다. 역시 액션씬은 흑형들 간지가.

 

 

 

전설의 주먹

 

힐링캠프에 나온 강우석이 이번 영화가 투캅스나 공공의 적보다 재미가 없다면 더이상 영화를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걸 듣고 꾸역꾸역 봤는데, 결국.

 

강우석은 이대로 더이상 영화를 만들지 말라.

뭐 더 할 말도 없다. 굳이 끄적거리는 건 '강우석 이제 영화 만들지 말라'를 강조하고 싶어서. 

 

아, 이요원은 이런 영화에 발 좀 담그지 않았으면.

다른 좋은 배우들이야 강우석 영화를 찍고 강제규 영화를 찍어도 계속 좋은 배우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지만 이요원은 어쩐지 더 좋은 영화와 드라마에만 계속 나와야 할 것 같단 말이지.

 

 

 

모래가 흐르는 강

 

천성산 도롱뇽을 지키려던 지율스님의 노력과 강정마을의 구럼비를 지키려는 주민들의 싸움, 허물어지는 생명을 지키고자 열반하신 문수스님의 소신공양도 사실은 모두 다 같은 궤적을 그리는 일일테다. 인간은 불과 바람과 꽃처럼 모든 자연의 일부에 불과할 뿐이며 그것들과 함께 살아가지 않으면 결국 모든 것을 그대로 돌려받게 되는 것이 우주의 이치일 것이라는.

 

스스로 모래를 흘려 다시 깨끗해지고 아름다워지는 강의 모습을 보고 배워야 할 것이라는. 흐르는 것이 이치라면 억지로 고이게 만들어 썩게 한 물은 결국 다시 인간을, 우리를 썩게 할 것이라는.

 

4대강사업을 다룬 첫 번째 다큐멘터리를 지율스님이 만들어주셔서 참 좋다고 생각했다. 정권이니 자본이니 토건이니 하는 말들(그게 틀렸다는 것은 아니지만)보다는 자연과 사람, 모든 생명들이 서로를 기대고 서로를 바라보며 살아가야 한다는 불교적 이치가 영화에는 한가득.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모닥불을 태우며 스님과 어느 할머니가 나누던 대화. 흙을 밟고 강을 보며 살아온 긴 세월의 지혜는 어느 고승대덕의 깨달음 만큼이나 현숙할 수밖에 없더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