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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훈 꽃서트 공연후기 - 꼰대 아니고 어른


1.
오래간만의 공연이었다. 2년쯤됐을까.
그동안 공연에 뜸했던 까닭은 당연히 경제적 이유다. 김장훈같은 대형가수(?)는 공연비가 비싸다.
아니다, 사실 팬심이 조금 줄었기 때문이다. 플레이리스트의 노래들이 아주 조금은 변하기도 했고, 왠지 김장훈의 노래가 예전하고 다르다는 생각도 들었다. 소나기나 로망스같은 노래는 지금도 별로다. 기대했던 레터 투 김현식 앨범도 영 마뜩치 않았고.
그것도 아니다, 유달리 도드라지는 그의 정치적(?)행보가 더 큰 이유였겠다. 매번 노래보단 독도나 기부, 봉사, 부국강병같은 말로 사람들에게 인식되는 일이 싫었다. 그건 여러가지 의미에서였는데, 그의 노래를 매우 높게 평가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의 노래에 집중하지 않는 모습이 첫번째고(이게 정말 첫번째다), 둘째는 '국가'라는 허상에 천착하는 그의 태도가 싫었기 때문이다. '사노라면'을 부를 때 깔리는 애국가 전주나, 화면의 태극기도 영 싫었다.
좋아하는 가수의 정치성향에 이러쿵저러쿵 하는 일이 얼마나 웃긴 일인지 알고 있지만, 그거야 '가수의 철학과 삶이 그의 노래에 고스란히 베는 법'이라는 어디선가 주워들은 말로 떼우고.
여튼 '꽤나 충성도 높은 팬으로 그에게 기대한 것이 컸기때문에 마뜩찮은 부분도 많았다.' 정도로 정리해두고. 한동안  그렇게 그의 공연에 잘 가지 않았다.

2.
꽃배달 사업의 런칭쇼를 겸하는 공연이라는건 공연장에 들어가서야 알았다. 친구가 알아서 예매까지 해뒀기 때문에 어떤 사전 정보도 없이 갔다. 잘 매치가 되지 않는 조합일것 같다. 김장훈과 사업이라니. 기억이 맞다면 돈에 대해선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무던하려고 했던 그였다. 싫어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무던하려고 했었다. 그래서 수억씩 적자를 보는 공연도 계속하고, 단 한번의 연출을 위해 수천씩의 장치비를 들이기도 했었다. 지하 공연장에서 관객들이 쾌적 할 수 있도록 거액을 들여 공기청정기를 설치한 적도 있었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늘 청소년들에겐 반값으로 티켓을 판매한다. 부러 돈을 가져다 버리진 않지만, 마찬가지로 자기 주머니에 돈을 채우는 일에 무던하려는 노력. 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김장훈인데 사업 런칭쇼라니. "변했어"같은 생각이나 말따윈 떠올리지도 않았다. 그는 공연을 위해서라고 했다. 자기는 공연비를 조금이라도 낮춰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연을 볼 수 있으면 하는데 혼자서만 공연비를 낮출 순 없으니 또다른 수익창출의 길을 열어두려는 것이라고 했다. 당당하고 떳떳하게 공연비를 낮추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면 웃고 말았겠지만, 김장훈이라서 고개를 끄덕였다. 합리적 판단이나, 과학적 근거. 이런거 아니다. 오로지 팬심이다.ㅋ

다만 든 생각은 '무던하려는 강박'같은게 보이지 않았달까. 표현이 웃기지만, 무던하려는 노력보단 정말로 무던해보이는 모습이었다.  열심히 돈을 벌고 또 돈을 쓰고, 다시 노력해서 돈을 벌고. 그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모습. 이건 아마 팬심 아닐거다.

3.
삶과 철학이 노래에 그대로 묻어나는 법이라고 위에서 말했었다. 어제는 왠지 그의 노래도 그런 것 같았다. 그가 가창력의 절대 기준으로 삼고 있는 고음(아..8단 고음 드립은 정말 안 웃긴데..ㅋ)에의 의지를 버렸다는건 아니다. 그는 여전히 더 크고 더 높은 소리를 원했다. 하지만, 억지부리지 않아 보였달까. 뭐 이런건 지극히 주관적인데다 합리적 근거같은게 있을 수 없는 영역이니까. 다만 그의 노래가 마구마구 슬프고 처절하지 않았지만,(이건 어느정도는 선곡의 문제기도 함. 꽃서트에서 부른 노래는 주로 신나고 발랄한 노래들이었) 계속 듣고 싶어질만치 재밌고 즐거웠다. 일테면 'I Love You'. 이 노래가 처음 나왔을 때는 별로 신통치 않았는데, 이렇다할 고음도 클라이막스도 없는 이 노래가 참 좋고,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4.
무엇보다 연출과 선곡이 좋았다.
"끝 곡은 언제나 늘 당연히 무조건 '노래만 불렀지'"라고 말했었는데, '노래만 불렀지'가 끝 곡이 아니라서 참 좋았다.
김연우 덕분에(?) 예전보다 더 유명해진 '나와 같다면'을 더 뒤로 배치하는 마음, '여행을 떠나요'나 '그대에게' 같은 노래를 앵콜로 부르면서 신나하던 장면, 그리고 그 '내 사랑 내 곁에'를 부르던 마지막 장면도. 어떤 강박을 지나온 듯한 느낌. 그래서일까 '내 사랑 내 곁에'는 더 슬펐고, '그대에게'는 더 신났고.

체코필과의 협연으로 만든 레터 투 김현식이 못마땅했던건 아마 '과잉'때문이었다. 그 앨범 내내그런게 느껴졌다. 과한 소리 과한 연주. '김현식 노래니까 더 잘해야 돼.'라고 생각했었던 걸까.

무튼 꽃서트의 노래들은 그랬다. 과잉하지 않는 노래. 적절했고, 힘들지 않았고, 그렇다고 못나지 않았던.
꼰대같은 대충주의, 적당주의가 아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모욕같은거 당연히 절대 아니다. 최선을 다한 적당함. 이런거 얼마나 멋있나. 꼰대 아니고 어른. 앞으로 '형'말고 '아저씨'라고 부를까.ㅋ

5.
화면에 비친 김장훈의 얼굴이 자글거려서 좀 속상했다. 꽤나 시간이 지나갔음을 갑자기 알아버린 느낌. 하지만 나중에 잠깐 가까이서 얼굴을 봤는데, 잘생겼더라. 걱정은 패스. 하긴, 누가 누구 외모를 걱정하니.

사진은 정덤양. / 공연 당일에야, 덤양도 공연을 보러왔다는 소식을 접했다. 역시 중국대륙을 뒤흔들었던 한류스타의 위엄이랄까.



6.

그 시간들과 사람들도 오랜만이었다. 자꾸 옛 일을 주절거리며 낄낄댔지만, 사실 그건 결코 그 시절이 다시 올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때문에 가능했던 얘기다. 정말이지 세 얼간이들.ㅋ

2002년이나 2003년 어느 즈음의 대학로 모퉁이를 방황하던 건방진 청소년들은 지금, 처지를 비관하는 척 하면서 사실은 칼날을 갈고 있거나, 깨진 연애에 대한 슬픔을 개그소재로 삼거나, 서로에게 진심의 위로를 건낼만큼.의 지혜는 갖게됐다.

다시 10년쯤 지나서 또 오늘을 돌이켰을 때 낄낄거릴 수 있는 에피소드들이 다시 생겨서 좋았다. 오직 웃으면서 돌이킬 수 있는 시간과 공간들이 있다는 것은 참 다행스런 일이다. 그리고 그리워 하는 일이 욕망하는 일과는 다르다는 것을, 나도 그들도 알고 있다는 것 역시 참 다행이다.


7.

노래는 좋았던 I Love You. 로 할까하다가,
역시 나와 같다면. 하지만 굳이 어쿠스틱 버전으로 올리는 이유는
'나 이 냥반 꽤 예전부터 좋아했음'을 티내고 싶은 유치한 마음이라는 것도 솔직하게 고백해두자.ㅋ




8.

김장훈의 꽃민정음

꽃배달 서비스가 서로 달아 가격과 서비스가 서로 사맛디 아니할쎄
이런 전차로 어린 백셩이 마음을 전하고자 홀뺴이셔도 마참내 제 뜻을 능히 시러펴지 못할 노미 하니라
내 이를 어여삐녀겨
새로 꽃배달서비스를 맹가노니 사람마다 수비녀겨 날로쓰매
편안케 하고저 할 따라미니라

김장훈 꽃배달 '사랑'
http://www.janghoonflow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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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팬심이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