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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1.

살아가는 일이란 고난과 해소, 다시 역경과 안도가 중첩되는 일이다. 

게임 퀘스트처럼 해결과 고난이 명확히 구분되고 상승과 하락의 변곡점이 분명할리가 있을까.


말은 쉽지, 죽겠다.


2.

예기치 못한 폭설에 자빠링 연타 달성. 다친데는 없냐는 후배의 물음에 '마음을 다쳤다'고 답했다. 여고생들이 나 보면서 키득거려서 엄청 쪽팔렸다고.


사실 산동네 사는걸 원망했다. 가난을 이토록 서러워하는 일은 처음이다. 문득 점차 별로인 사람이 돼가고 있다 생각했다. 요즘 예전만큼 멋있지 않은 엄마를 보면서 안타까워 하던게 우스워졌다. 가난은, 혹은 살아가는 일은 이렇게 내바닥이 얼마나 야트막한지, 내 심지란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를 드러나게 한다.


3.

'냉소' 혹은 '체념' 같은걸 한다.

철탑 위 노동자들을 바라보면서 울컥울컥 뜨거운 마음을 먹지 못한다.

그들을 보기보다 그들을 보지 않는높은 빌딩을 보면서 울컥울컥 서러워진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할거야. 


누가 말해줬었다. 희망을 갖지 못하면 패배하는거라고. 그럼, 지금 난 삶에 지고 있다.

바닥을 알지 못해 희망이나 앞으로를 보지 못하는 거였다면 좋겠다. 고 생각했었다.

그랬었다. 바닥을 알게되면 더 훌륭한, 똑똑한, 현명한 사람이 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바닥을 혹시 보게될까봐 무섭다. 바닥이라니.


4.

영화를 많이 봤다. 꼬박꼬박. 다운을 받아서든, 영화관을 찾아서든.

서울독립영화제는 찾지도 못했는데 그럼에도꽤 많이봤다. 

영화 속의 삶. 같은걸 바라게 됐다. 두 시간쯤 지나면 꿈인듯 끝나버렸으면.


5.

말 나온김에 올 해의 영화는 (올 해도 거의 끝나가니까) 남쪽으로 간다.

술에 취해 서글피 춤을 추는 그림자.에서 눈물을 쏟을 뻔 했다.


6.

아끼는 후배가 지난 달부터 연락두절이라는 소식을 한 달만에 알았다. 

대학 입학후 쭉 단짝으로 지내던 친구에게만 "다신 연락할 일 없을 거"라는 메시지만 남긴 채 잠수했다고.

걱정된다. 부친상을 당하고 오직 저 혼자 살림을 떠맡은 가난한 집의 장녀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사실 짐작은 간다.


말은 좋아하고 아낀다면서 정작 한 달이나 소식도 몰랐던 이 무심함에 미안하다. 사실 지난 여름 그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시고선 얼굴도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다. 조의금도 제대로 못냈는데.


소재나 알았으면 좋겠다. 어차피 아무것도 못해주겠지만.

위로가 되어줄 수 있다거나 그러고 싶다는 생각같은건 하지도 않는다.

다만.


내가 위로가 되주지 못할거라는 것을 아는 것처럼 그 녀석도 내게 위로가 되지 못한다는 걸

서로 알게만 돼도, 그 얘기만 서로 하더라도 조금쯤 힘이 되지 않을까.


7.

이 와중에 티비에선 김장훈 아듀 원맨쇼 광고가. 

아, 저 양반한테서 스마트폰을 뺏어야 하는데.


8.




눈오고 추운 날에는 오뎅빠.

작고 허름한. 유리문엔 김이 잔뜩 서린.

앞에 앉은 사람이 좋든 싫든 상관없어요.


9.



그리고 이런 노래.
조용필 - 그 겨울의 찻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