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박한룸펜
2014. 4. 23. 00:56
1.
이번 사고가 터지고 가장 마음이 먹먹했던 기사. 친구들을 떠나보내고 남아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의 고통.
하지만 살아야지, 먹고 놀고 웃으며 그래도 살아야지.
2.
말이 넘쳐난다. 저 위정자들의 유체이탈 화법이야 이제 하나하나 옮겨적는 일도 지치니 잠시간 뉴스를 끊고 심호흡, 일상으로의 복귀를 준비해야하겠다. 우리가 할 일은 짧고 굵게 분노하다 지치는 것이 아니라 길게 슬퍼하며 오래기억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그것이 살아남은 자들의 몫. 아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속죄.
누구 하나를 악마화 하고 몰아붙이는 것으로 분노를 소모해서도 안된다. 사고는 정권의 탓이 아니라 이 사회 전체의 구조적 모순 탓이다. 그리고 그 구조를 만들었거나 유지했거나 납득하고 체념하고 다른 세계로의 가능성을 체념한 우리 모두의 탓이기도 하다. 1년짜리 비정규직 선장과 선원들이 배와 함께 장렬히 최후를 맞이하는 해적만화 같은 책임감을 발휘할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비용절감과 규제완화만이 절대의 선인양 온 나라가 발벗고 나서는데, 합리와 효율이라는 말에 이미 생명과 안전은 배제되는 이 신자유주의의 세계에서.
책임의 소재를 가리고 적절하게 처벌하고 재발방지를 준비하는 일련의 과정에 필요한 것은 냉정한 분노와 정확한 진단이다.
3.
가뜩이나 봄을 타고 있는데, 온나라가 초상집이니 마음이 더 심숭생숭하다. 낮에는 괜히 티비에서 나온 서른즈음에를 듣다 울컥해버렸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불안과 우울, 서른해 남짓 나를 대표해온 키워드가 이런 것이라니 참 서글프기도. 아까는 운동 중에 한남대교 다리 위에서 담배를 태우며 멍하니 서있는데, 뭔가 걱정스러워 보였는지 어떤 아저씨가 말을 걸더라. "야경 참 예쁘죠?". 그 에쁜 풍경에 내 몫이라곤 하나 없는 것 같아서 괜히 더 울컥했다. 하지만 대답은 해맑게.
4.
이와중에 엘지는 승률 2할5푼을 찍으며 최하위. 며칠전엔 빈볼에 이은 벤치클리어링으로 구설수에. 좀 작작하자.
5.
몇 주 밀렸던 참좋은시절을 몰아서 다시 봤다. 요 몇 년간 그 시간대의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따뜻함과 자연스러움이 돋보이는 좋은 드라마다. 무엇보다 좋아하는 김희선과 윤여정이 참 돋보이고 예쁘다. 애잔하고 슬프다 피식 웃게되는 몇시간을 집중하고 있는데, 김희선이 밥을 먹는 식당장면에 이송 감독의 남쪽으로 간다 포스터가 잡힌다. 포커스가 완전히 나가서 글자고 그림이고 잘 안보이지만 실루엣만으로 포착해낼 수 있어야 진정한 덕후입니다. 내 덕력의 가이없는 성장이 뿌듯할 따름.
6.
며칠 전엔 고즈넉하고 어두운 바에서 친구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입구엔 지미헨드릭스가 걸려있었고 들어설 땐 김광석이 흘러나왔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트래비스니 콜드플레이니 하는 브릿팝부터 QVL이나 뉴트롤즈 같은 프로그래시브에 서태지와 다프트펑크까지 대중없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노래들이 흘러나왔는데, 노래가 나올적마다 반응을 보이니 흥이난 사장님이 대뜸 90년대 댄스뮤직 퍼레이드로 방향을 선회했다. 친구와 대화 중에 듀스니 Ref니 하는 팀의 이름이 나온걸 아마 사장님이 들었나보다. 시간도 늦어 가게 안엔 만취한 사람과 만취할 사람만 남아있었는데, 그 탓인지 사람들이 흐느적 흐느적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졸지에 밤과음악사이가 돼버린. 얼결에 나도 일어나 꼭지점 댄스같은 춤을 뒤뚱뒤뚱 추며 그 가게의 웃음거리가 돼주었다. 뭐 여튼 재밌게 잘 놀았다고. 시절이 어떠니 우울이 어떠니 해도 술을 마시고 흥겨운 음악이 나오면 춤도 추고 그러는 겁니다.
7.
그래서 내 장래희망인 대학가 허름한 술집의 털보 뚱보 사장겸 셰프겸 DJ가 이뤄졌을 때 꼭 틀고 싶은 오늘의 노래는 이거.